세상에는 몇몇 격외의 것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은익銀翼의 날개와 비행, 관념적으로 여겨지는 무한, 가장 독자적인 정보 시스템 즉 뇌수의 비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인간은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 시공간과 인식을 초월하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가? 일개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조그만 살덩이는 무엇으로부터 사고를 발화하지? 대개 그것들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진보해도 해명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에 사람들은 흔히 과학과 공상을 가르는 이 몇 가지 난관을 낭만 운운하는 것으로 추켜세운다. 그러나 진정한 미지가 도사리는 곳은 어느 지하실 속 플라스크 따위가 아니지.
그는 천천히 고갤 들어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가 탑승한 우주선의 위치를 보여주는 흰 점과 목표 지점을 가리키는 푸른 점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화면상에서 둘 사이의 거리는 기껏해야 5센티미터가 넘지 않을 터. 지어 이 순간마저 흰 점은 푸른 점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훤하다. 긴장감 역력한 눈빛. 그는 괜스레 꿀꺽 침을 삼키고 시선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전면 유리창 너머 새까만 바탕, 그 위로 흩뿌려진 자그마한 점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별 하나, 희미한 향수를 자아내는 푸름, 광활한 우주 속 하나뿐인 그의 목적지. 진정한 미지는 이곳에 있다.
게미누스, 통칭 쌍둥이 별. 궤도를 따라 행성 주위를 맴도는 잿빛 위성부터 질소와 산소 비중이 큰 대기 구성 성분, 출렁이는 새파란 바다, 몇 덩어리로 나뉜 육지와 그 위 서식하는 생물 종 일부마저 지구와 닮아있으리라 추정되기에 흔히들 그리 지칭하곤 했다. 무한히 거대한 우주에 서로 온전히 닮은 두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우연은 없겠지.
지구인들은 하나같이 게미누스를 향한 호기심과 선망의 시선을 보내곤 했다. 어쩌면 제2의 지구가, 인류의 두 번째 터가 될지도 모르는 그 행성을 향해 그들은 뜨거운 관심을 쏟았다.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다.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저명한 전문가와 방송인들이 게미누스에 관한 견해를 설파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게미누스로의 오랜 여정을 견딜 수 있는 우주 탐사선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미누스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우주인들을 희생해야 했지마는….
끝내 인류는 도달하고 만 것이다. 이곳 게미누스의 땅 위에. 여태 가라앉지 않은 회백색 먼지에 기침을 내뱉는 것과 함께 칼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시선이 닿는 곳곳이 온통 믿을 수 없는 것투성이라,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게미누스의 문명은 지구인들에게 뜨거운 관심사였다. 그가 지구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각자 자신이 상상한 게미누스의 풍경을 묘사하곤 했는데, 개중 가장 많은 이들에게 지지받았던 건 그곳의 지성체들이 기껏해야 지구 중세 무렵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을 거란 추측이었다. 게미누스를 대상으로 하는 상상화는 대체로 낯선 형태의 줄기 식물이 금이 간 석제 기둥을 휘감고 있는 모습이나 고대 그리스풍의 신전, 고딕 양식의 건물 따위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칼은 물론 지구의 그 누구도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또 다른 행성의 존재는 상상치 못했으리라 보는 편이 합당하다. 분명 그랬을 텐데, … 이건 뭘까. 칼은 그대로 멍청하게 눈만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홀로그램이 수차례 번쩍이며 건물의 형태를 이루었다 흩어지길 반복한다. 기차를 닮은 길쭉한 원기둥이 허공을 쏜살같이 달리는가 하면 기이하리만치 매끄러운 검은 바닥 위 은빛 원이 시계방향으로 그려지고, 그것을 중심으로 점점 더 큰 원이 겹겹이 나타나고……. 흩날리는 눈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손가락에 닿는 순간 파란 파편을 튀기며 사라지고 만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것은 초고층 빌딩, 어쩌면 타워. 종종 형태를 바꾸거나 사라지기도 하는 까닭에 무어라 정확히 정의내릴 순 없었다.
또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게미누스. 이곳은 흔해빠진 삼류 소설이 묘사하는 그 어떤 기적보다도 황홀한 땅이구나. 먹구름이 껴 어둑한 하늘 아래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눈동자, 반투명한 몸체를 가진 도시의 관리인과 눈을 마주친 순간 퍼뜩 깨닫는다. 대형 스크린 속의 그가 이방인인 칼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탄식과도 같은 숨을 내뱉는다. … 게미누스, 통칭 쌍둥이 별.
진정한 미지는 바로 이곳에 있다.
주제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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