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스본에서 바르셀로나까지 [6]
<스페인 포르투갈 8박 10일 여행>
■ 제9일 2020년 1월 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 인천공항>
▶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박을 불편한 가운데 지 세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호텔방에서 준비해 간 반찬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바르셀로나 최대 볼거리인 "사 그리디 파밀리아 성당"(성 가족 성당)을 관람하기 위하여 서둘러 출발, 가는 길목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병원이라고 하는 "산파 우 병원"으로 갔다.
▣ 산파 우 병원(Hospital de San PAU) 카탈루나 모더니즘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건축물로 15세기 산타 크레우(Santa Creu) 병원이 있던 자리에 환자들의 증가로 새롭게 부지를 확장해서 1898년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카탈루나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다. 총 48개 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라 불리는 대규모 병원으로, 완공되기 전 몬터네르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이 끝까지 도맡아 완공시켰다. 가우디와 동시대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몬터네르는가우디의 조언대로 환자들이 병동에서 창밖을 통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바라볼 수 있도록 병원을 설계하였다. 내부는 도저히 병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밝으며,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층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또 다른 걸작 카틀라냐 음악당과 함께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되었다. 2009년부터 보수작업에 들어가 2014년 2월 재 오픈되었다. 현재 환자들과 병원 시설은 산 트파 우 뒤편에 새롭게 지어진 현대식 병원으로 옮겨 젔으며 산트 파 우는 구실로만 사용되고 있다.
▶ 인간의 건강을 담당하는 병원이라는 기능에 더하여 내부는 화려하고 밝으며 환자들의 충분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디자인했다는 병원 내부를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성 가족 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Expiatoride la Sagrada Famllia) : 바디칸의 피 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 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 만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 맡기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거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바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페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작업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게 인부들과 함께 숙식을 하면서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성당의 지하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월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 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허가해 준 것이다.
그의 사후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설계도면이 불에 타 없어도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후배 건축가 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있어 착공된 지 130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르라다 파말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피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4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질 계획인데, 현재 까지는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다. 내부가 다 완성되지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 안토니오 가우디 이코르 네트(Antoni Gaudii Comet, 1852-1926) : 스페인 건축의 중심으로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이다. 1852년 6월 25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 주에서 주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17세 때부터 건축 공부 룰 하기 시작하였는데, 굉장히 개성이 강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자연을 모티브로 삼았고, 직선보다는 곡선의 디자인을 중시했으며, 소재의 선택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붕은 기암절벽으로 유명한 카탈루냐의 성지인 몬세라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으며 가우디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평생의 후원자였던 구엘을 만난 후 그를 위해 구엘 궁전, 공원,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그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926년 산책 길에 나섰다가 전차에 치여 사망할 때까지 그가 한평생 열정 열정 열정을 쏟은 작품인 성당 안에 유해가 안치됐다.
▶ 삼엄한 경비로 입장객을 검사하는 가우디의 걸작 성가족 성당 외부의 웅장함과 각종 조형물이 현란하게 설치되어 있고 육중한 돌기둥과 일출 일몰을 상징하는 조명, 벽화가 아름다운 내면으로 가득 채우며 현재도 건설을 진행 중인 내외부를 관망하면서 종교의 위대한 설법을 실현시키기 위한 초능력적인 인간의 지혜를 볼 수 있는 현장으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인다.
▶ 11 : 00 가우디의 또 하나 걸작품인 구엘공원을 가다.
▣ 구엘공원(Park Guell, parc Guell)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가우디의 초대 걸작으로 손꼽는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든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르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다. 1900년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 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3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공원 입구에는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 앞으로는 알록달록한 타일 조각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 있다.
시장의 지붕 위에는 구엘공원 꽃이라 불리는 타일 벤치가 있는데, 마치 누워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관광객 들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중해의 모습은 해 질 녘에 더 빛을 발한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공원에도 적용되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길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 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고, 마차가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다. 구엘공원에는 가우디가 아버지와 함께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는데, 현재 이곳은 가우디 박물관이 되어 가우디가 생전 사용했던 유물들과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 12 : 20 한식당 "가야금"에서 점심
▶ 13 : 00 자라 백화점 도깨비시장 쇼핑
▶ 15 : 30 까따루니아 광장 집합 바르셀로나 공항 출발
▶ 16 : 00 바르셀로나 공항 도착하여 이번 여행에서 불편한 몸으로 우리 일행 32명을 위하여 성의껏 안내 해준 강태진 가이드의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해야 한다"는 작별 인사로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19 : 35 OZ 512 편으로 바르셀로나 공항을 출발한다.
■ 제10일 2020년 1월 8일 인천공항
<15 : 40 인천공항 도착>
♣ 길고 멀게 만 느껴지던 여행도 지나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귀가하여 피곤한 몸으로 여행 일정을 뒤돌아보니 고대로부터 힘으로 국가를 유지하여 약소국을 지배하던 유럽 대륙의 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인종, 종교, 정치, 문화, 산업 등 전반에 걸쳐 상대적으로 타국의 지배를 제한적으로 받으며 긴 역사를 이어온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가 치열한 경쟁 없이 조용하게 자기들의 일상을 챙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도덕과 양심의 선진국일지는 모르지만 물질적인 풍요에는 결코 뒤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자부를 느낄만하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두 사위에게 마음의 빚을 남기며 훌륭하게 잘 키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효심을 다듬는 두 딸이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그리고 매일 학업에 쫓기는 두 손녀들에게 며칠이나마 자유스러운 시간이 재충전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