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는 것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차를 타고 가게되면 빨리 도착되어 그 곳의 풍경은 쉬이 볼 수 있을주는 있겠지만 가는 도중의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지나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산산악회 단합대회 점심 먹기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이 부근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법흥사가 여기서 12km, 법흥사까지는 안될 것 같고 가는데까지 가다 안되면 돌아오는 것으로 하고 길을 나선다. 30여분을 걸으니 길가에 모현사(慕賢祠)라는 돌 비석이 눈에 띈다. 생육신중의 한분인 원호(元昊)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생육신(生六臣) 조선 시대에,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자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신하. 이맹전, 조여,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 또는 권절을 이른다.
원호(元昊)선생 원호(元昊, 1397년 ∼ 1463년[1])는 조선 단종 때의 문신·학자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자는 자허, 호는 무항, 시호는 정간(貞簡). 본관은 원주이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단종이 수양 대군에 의해 영월로 쫓겨가자 세상과 접촉을 끊고 살았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는 조려, 이수형과 함께 영월을 찾아 단종의 문후를 드리기도 했다. 1457년 단종이 죽자 원주에 내려가 있는 것을 세조가 호조참의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생전에 손자 원숙강(元叔康)이 출사하였으나 예종 때 사관으로서 〈세조실록〉편찬에 참여하던 중 직필로 인해 살해당하자, 자신이 쓴 책을 모두 소각하고 자손들에게 글을 읽어 명리를 바라지 말라고 타일렀다 한다.[ 숙종 때 그 절개를 찬양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1782년에는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와 함께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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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산 둘레 원문보기 글쓴이: 오산 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