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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연합과 전진의 새 시대가 열리다
Ⅰ. 연합이 침례 서약서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1. 통일적인 침례 서약서가 공식적으로 표명되었다
1931-1941년의 10년간에 그 실제가 여러 연합회에서 몇몇 큰 지방 대회에서까지도 그리고 어떤 지도적인 전도자들과 더불어 저들 자신의 침례 서약서를 사용하며 발전되었다. 그 기초적인 내영에 관해서 이들이 일반적으로 일치된 한편, 어떤 곳에서는 어떤 이상한 조항들이 나타났다. 우리 지도자들 중에 이전 상이점에 대하여 불안해하는 분이 소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상한 요구 조항들이 첨가되었다. 한 통일적이 침례서약서가 모든 사람들에게 사용되도록 제안되었다. 따라서 13 명의 대표 위원들이 임명되었다. 대총회 부회장 W. H. Bramson이 의장이 되고 조직될 때까지도 서기로 이름이 올라갔다. 그러므로 저자는 그 전 과정을 안다. 이 위원회가 맡은 일은 통일된 침례 언약과 침례 서약을 공식으로 표시하여 적당한 증서의 형식으로 인쇄하는 것이었다. 기록해야 할 것은 그것은 1931년의 기본 신조의 고백에 기초했다는 것보다. 이 증서는 그 이후로 침례를 통해서 SDA 교파에 입교하여 교인이 되기를 원하는 모든 후보자들을 위하여 공인된 신앙 고백으로서 모든 목사들이 사용해야 했다.
2. 그 증서의 의의
영원한 진리들에 관하여 이 언약 이제 교회 요람에 우리의 기본 신조의 고백에도 나타난 신성의 제 2, 제 3위에 우리의 연합된 신조를 명백한 말로 명기되어 있고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사전에 대한 믿음은 물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필수 요건이 명기되었다. 모든 침례 후보자는 이들에 대하여 침례 서약을 한다. 저들은 이리하여 이것들은 우리 교회의 신앙 고백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제시하며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남은 교회로 들어오는 필수요건이다. 이 통일적인 침례 증서는 선언된 재림 신조들의 요약을 포함하여 그리고 그 12가지 요점의 언약과 서약은 모든 후보자들이 이 엄숙한 예식을 행할 때에 제시하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의 항구적인 기록을 위하여 1941년에 교회에서 채택하였다. 1931년의 우리 기본 신조에 관계에 있어서 그 서약 중에 두 가지 요점인 신성의 삼위에 관하여 특별 강조가 과거에는 거기에 관한 공공연한 다른 견해 때문에 과거에는 강조하지 못했던 것을 여기서 강조했다. 이들 중에 하나는 속죄의 희생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강조했다. 또 다른 것,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것을 저들이 완전히 서약한 교인이 되어 교회의 침례 문을 통과할 때 모든 후보자들을 위하여 맨 앞에 이 기본 준비들을 첨가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재림 신앙의 확고한 부분으로 계속 남아 있다.
3. 큰 전진을 위해 준비됨
이제 우리는 받아들일만한 신앙 고백과 침례 증서에 관계되어 영원한 복음 기별을 더욱 명백하고 더욱 강요하는 방법으로 온 세상에 가지고 갈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영원한 진리들에 관해서 기본 원칙들, 준비들, 구속의 인격자들, 수세기 내려온 가장 건전한 기독교 신앙의 증거와 대립되거나 분리되어 있다고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역사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했던 연속적인 장애물들 중에 마지막 주요 신학적 거침돌을 통과했다. 결론적으로 1931-1941년까지 10년간의 절정에 달하는 사건들은 옛 시대의 종결을 나타내고 한 운동으로서 우리를 위한 통일, 희망적인 증거를 할 새 시대의 시작을 표시한다. 그것은 분명히 교회의 역사에서 또 다른 주요 전환점이었다.
4. 위원회의 대표적인 직원
최초의 침례증서 위원 13명의 대표적인 특성과 책임과 경험의 한계의 기록을 위하여 그 인원의 약력을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
W. H. Branson(GC 부총회장), W. G. Turmer(GC 부회장), J. L. McElhauy(GC 회장), J. L. Shuler(Seminery 전도법 교수), R. A. Anderson(목회부, 동사부장), A. E. Peterson(GC MV부장), J. F. Wright(GC 부회장), T. J. Michael(GC 동사서기), J. E. Weaver(GC 교육 부장), R. Rulbing(GC 일선 서기), L. E. Froom(SDA 목회 부장), D. E. Rebok(SDA 신학 원장), A. B. Russell(Tokomo Park 교회 담임 목사)(GC 위원회 의사록 7, 14, 1941)
5. 의견 차이 없이 하나 된 믿음을 가진 대표자들
침례언약과 서약은 교회 전체의 연합된 신앙을 대표한다. 어떤 목사의 개인적인 견해나 크거나 작거나 간에 어떤 지역에 있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교회의 견해가 아니다. 그것은 모드 ㄴ사람을 위한 것이요 모두 똑같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의 적당히 제한되었다. 그것은 외부적인 소수의 특성들로 방해를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그 위원회와 교회의 분명한 목적이었다.
Ⅱ. 다니엘, 계시록의 불가피한 교정
1. 어떤 책들의 교정이 필요함
우리 교회의 통일된 기본 신조들을 완수함에 있어서 그 다음에 할 논리적이며 필수적인 단계는 신성에 관한 그릇된 견해들을 가르친 말을 삭제하도록 어떤 표준 저서를 교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런 말들은 이제는 교회 요람에 제시된 받아들여진 기본신조와 교인이 되어 입교하기 원하는 모든 후보자들을 위하여 현재 사용되고 있는 증서 형태로 되어 있는 거기에 기초된 통일 침례 언약과 서약과 완전히 다르다. 그보다도 더욱이 명백한 예언의 신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선재와 완전한 신성에 관한 말씀들이 그런 표준 서적들에 있는 논쟁적인 말씀이 보유되어 있는 것과 실제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 저서들은 형제의 교회의 신앙 고백과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들 중에 첫째 되고 가장 현저한 것은(어떤 그릇된 신학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1903년에 별세한 Uriah Smith가 쓴 다니엘 계시록에 관한 견해에 오랫동안 나타나 있었다. 이 논설은 전체로서 평가할 때 우리가 이미 연구한 바와 같이 1860년대 후기와 1870년대 초기에 처음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것은 70년간 인쇄되어 왔으며 그 동안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고 그리고 아직도 그렇다. 더욱이 그것의 유일한 위치는 엘렌 화잇에 의하여 인정받았다. 그러나 화잇 부인은 또한 말하기를 우리 교회의 오래된 서적은 주의 깊은 연구와 교정이 요한다고 했다(Ellen White Ms. 11, 1910, 1SM 165). 그것이 이제 적용되었다.
2. 부당한 전통이 발전되었다
그러한 취급은 조심해야 할 곳의 취급을 의미했다. 어떤 이들 아직도 개인적으로 반 아리안 신조를 가지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는 다니엘과 계시록은 거룩한 땅이었다. 어떤 이들 특히 어떤 지리적 지역에 있는 큰 이 책은 실제적으로 영감 받은 책이라고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A. C. Bourdeau의 기억에 의하면 화잇 부인이 여러해전에 한 천사가 스미스의 곁에 서서 그가 페이지마다 그 글을 쓸 때 그의 손을 인도했다고 말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 먼 옛날 회상은 이 부류에 거의 신성한 유전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단지 말했다는 그 이야기가 있은 후 여러 해 후에 기록된 한 기억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화잇의 증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1944년에 1941년의 통일적인 침례 언약, 서약, 증서를 채택한 후 얼마 안 되어 D&R(익숙하게 알려진 대로)의 교정은 이행되었다. 3개의 주요 북미 출판소들의 그 책 편집자들을 포함하여 한 대표적인 위원회를 뽑았다. W. E. Howell 대총회장 서기 열렬한 봉사의 기록을 가진 분이 의장이 되었다. R&H 출판소 편집자인 M. R. Thuler가 서기로서 봉사했는데 그의 기록으로서 충분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3. 교정의 범위와 한계
그 위원회가 받은 근본적 숙제는 그 책의 저자의 그 예언적 해석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않고 D&R의 사실들, 통계들, 인용들을 현대식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 위원회의 일을 완수했을 때 뉴욕에서 개최된 194년의 00회의에 최후 보고했다. 당시 대총회 일반 부회장 W. H. Branson이 그 위원회의 전반적인 보고를 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이것은 D&R의 어떤 요청 때문에 비교적 적은 무리가 아직도 반 아리안 견해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크게 괴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본 저자가 뉴욕에서의 그 회의에 참석하여 직접 보고를 듣고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주목하였다. Bramson의 의견은 다니엘 계시록 책은 물론 우리의 스미스의 이름 저자로서 그냥 놓아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정 위원회는 어떤 분명한 우리가 스미스의 해석 매일의 북방 왕 로마의 10 분열극중의 하나로서 Huns등을 정당하게 고칠 수 없었다. 스미스의 해석적 견해는 그 자신이 알 책에 그대로 존경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나타난 그 저자의 다른 개인적인 신학적 견해,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그의 아리안적 견해 같은 것들은 (1) 그것은 예언의 해석이 아니요 (2) 우리 교회가 1931년에 기본 신조의 가납된 고백으로 받은 것, 1941년 통일적 침례서약서에 기재된 것과 대립되고 (3) 정기 간행 불과 책에 기록된 명백한 예언의 신에 있는 수많은 말과 직접 대립하는 고로 삭제해 버렸다. 이 말씀들은 모두 스미스의 쓴 책 이후에 수십 년간에 기록되었다. 특히 그가 죽은 후에 10년간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들을 알지 못했다.
4. 스미스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
아직도 아리안적인 견해를 개인적으로 주장하고 있고, D&R을 실제적으로 영감 받은 것으로 여기고 그러므로 건드릴 수도 없고 여하한 변경할 수도 없다고 하는 소수의 반응은 오히려 열렬했다. 전술한바 A. C. Bourdeau가 했다는 떠돌아다니는 뜬소문 즉 한 천사가 그가 D&R을 쓸 때 그의 펜을 지도했다고 화잇 부인이 말했다는 것을 인용했다. 그러한 항의자들은 또한 우리의 기초의 못하더라도 핀 하나라도 옮기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 엘렌 화잇의 말을 인용했다(EW 258, 259). 그러나 이 말씀은 실제로는 첫째 둘째, 셋째기별에 관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말이다. 그 회의에서 그 위원회의보고를 승인했다. 그리고 D&R에 있는 여러 아리안적인 말을 따라서 삭제되었다. 이리하여 그 책은 연감과 교회 요람과 침례서약과 언약, 이 점들에 과한 예언의 신의 말씀들에 있는 우리 교회의 기본 신조와 신학적으로 조화되었다. 교정된 D&R은 이 형태로 계속 출판되었다.
5. Bourdeau의 회고는 증언이 아니었다
엘렌 화잇이 했다고 함부로 주장한 논쟁에 관하여 엘렌 화잇 출판물의 장고에 그런 증언이 없다. 그것은 다만 A. C. Bourdeau가 띄운 편지에 나타난 자기 기억에서 나온 말이요, 그 사건이 있을 때 여러 해 후에 쓴 것이다. Bourdeaw가 거기서 한 말은 D&R 책이 검사를 마친 기록이 도착했을 때 화잇 부부가 자기 집에 Enosburg, Vermont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가 주장하기를 그 때 화잇 부인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화잇 부인은 저들의 여행의 일기를 보관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이 방문은 1867년에 있었는데 그때는 계시록에 대한 사상이라는 책밖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다니엘에 대한 사상은 1872년에다 나왔다). 그러므로 그 책 중 문제가 되는 다니엘 부분은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Bourdeaw의 주장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것에는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기억에서 나온 말이요, 그 사건 이후 여러 해 후에 쓴 것이므로 그런 부정확한 것은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Bourdeaw가 한 말의 정화가 성을 전체로서 위태롭게 한다.
6. 천사들은 모든 진리의 옹호자들 곁에 서있다
보호하는 천사의 지도의 특성에 관하여 화잇 부인이 말하기를 루터가 진리를 충실히 옹호할 때 천사들이 마틴 루터 곁에 서 있었다고 했다(GC 122). 그리고 존스 웨슬레에 관해서도 비슷한말을 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말하고 기록한 모든 것은 오류가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는다.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윌리엄 밀러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천사가 그의 무덤을 지키고 있으며 첫째 부활에 일어날 것이라고까지 비슷한말을 했다(EW 229, 258). 그러나 역시 그것은 밀러가 그가 제시한 모드 srusgo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거나 반만 영감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그는 첫째 천사의 기별의 주요 신임을 선포함에 있어서 주께서 강하게 쓰셨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잘못이 있는 인간들을 사용하신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이들의 곁에 서있다. 저들은 각 시대마다 그러했고 오늘날도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이 주장하는 모든 견해나 제시한 모든 것이 영감을 받았다거나 잘못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Ⅲ. 기록에 대한 상세한 말
1. 대표적인 교정 요원이 지정되었다
이 조목에 관하여 민감함 때문에 그 기록에 대하여 세목을 여기에 기록한다. 11명의 위원이 스미스의 책을 교정하고 현대화하기 위하여 지명된 것은 1942년 초였다. 그 위원회들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W. E. Howell, F. M. Wilcox, H. M. Blunden, A. W. Comade, W. E. Read, 태평양 인쇄소의 Merlin Neff, 남부 출판 협의회 James Scults, 그 위원회는 정해진 안내서의 범위 내에서 행할 권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적인 교정판은 기록하여 1945년 4월과 5월 “The Ministry”지에 기고했다. 이 교정은 오랫동안의 수고로운 작업 10개월 교정자들이 7번 모여 회의하여 완성했다. 그것은 충분히 완성하여 1944년 말에 새 교정판이 나왔다(M. R. Thurber. "D&R의 새 교정판" The Ministry 4월 1945년, p. 13-15).
2. 교리는 주장에 의하여 확립되지 않았다
직책상의 언명이나 성언 우리의 예언의 주요 해석에 관하여 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 대총회장 J. Lamar McElhany가 지혜롭게 말한바와 같이 우리는 위원회의 투표에 의하여 우리 교리를 확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공적으로 될 수 있다(1945 5월 The Ministry 제에서 인용 p. 3). 그 항구적인 원칙은 인정받았고, 그대로 따랐다. 그것은 의장 Hawell이 재확인했는데 “다니엘과 계시록” 책도 그 원자의 이름을 그대로 두고 그 작품 그대로 두었으니 스미스가 개인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던 해석적 견해를 가르치는 일은 그 때 적당히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이유 때문에 매일 북방왕 10나라를 하나로 Huns, 아마겟돈 기타 그의 원래 저서대로 남겨두었다. 이것들은 논박을 받는 점들이며 이들 중에 더러는 벌써 대부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3. 그리스도의 영원성의 문제
1942년 10월 22일에 Cincinnati 후기 회의에서 그 교정 위원의 진행에 관한 보고 중에 Howell 교수는 다음의 간단한 말을 했다. 우리 사업 중에 기본 교리의 문제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울리는 변경해도 좋다고 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경우를 발견했는데 구문은 소위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관한 가르침이다. 우리의 스미스는 한때 그리스도는 피조 된 존재라고 믿었다는 것은 기록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조와 가르침을 수정했는데 즉 그리스도는 지상 창조 전에 영원한 과거 어느 때에 낳았다고 했다. 그의 시대 이후에 그 후의 예언의 신서적들 DA같은 것들이 90년대에 나왔고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하게 영원하다는 성경의 지지로서 명백하게 하였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 중에 어떤 견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원회는 이 가르침을 생략하는 것이 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언의 해석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쉬웠다(The Ministry 5월 1945년, p. 4).
4. 스미스의 해석상의 견해에는 변화가 없었다
예선에 관한 스미스의 개인적인 견해에 관하여 Howell은 다음과 같이 요령 있게 말했다. 해일의 Turk 멸망, 144,000 계시록의 일곱 머리와 같은 그런 주제들에 관해서는 저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놔두었다. Amageddon, 짐승의 수, 다니엘 11장, 계 17장, 불못 같이 제 2차적으로 중요한 점들에 관하여 이와 연관해서는 우리아 스미스는 어떤 이들이 생각했듯이 혹은 어떤 이들이 저들 자신하기로 택한바와 같이 독단적이 아니었다(R&H 10, 29, 1942; The Ministry 5월 1945년, p. 4). 이 모든 점과 교정의 과저에 관해서 부언해야 할 것은 11명의 위원회가 만장일치가 되었다.
5. 엘렌 화잇의 말이 위원회를 지도함
The Ministry지 같은 난에 그리스도의 선재에 관한 인도적인 말이 14페이지와 18페이지에 나타났다. 아마 그 제목에 관한 이런 종류의 첫 번째 수집임. 이것은 13개의 정기 간행물 논제와 책에서 인용했는데 그리스도이 영원한 선재와 완전한 신성에 관한 인용문을 발췌했다. 이것은 그 위원회에 일을 인도했고 확고히 했다.
Ⅳ. 오류의 생략이 Bible Reading에 기록됨
1. Calcord에 의하여 연에 교정한 것을 또한 인식해야 한다
수년 동안 표준, Bible Readings For the Home Circle에 도전을 받지 않은 채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죄 없는 생애란 항목에 있었다. 1914년에 그것은 W. A. Calcord dp 의하여 최초에 기록되었다. 그것도 역시 여러 해 동안 견해 차이가 있었던 문제들 중에 하나에 속했다. Calcord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한 지상 생애 동안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있는 타락한 본성에 참여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예언의 신의 증언이 매우 명백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을 1931년의 우리의 기본신조의 고백에서 취급할 만큼 충분히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었다. 사상의 자유가 그 문제에 관한 수락된 태도가 되어 왔다. 그 결과로서 재림교인들은 이 그릇된 소수의 견해를 허용한다. 특히 이 인쇄된 말 때문에 재림 교인이 아닌 신학자들에게 오랫동안 비난받아 왔다.
2. 그릇된 기록이 적발되다
1949년에 당시 SDA 신학대학원 원장으로 계시는 D. E. Rebok 교수는 R&H로부터 “Bible Readings”를 교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74쪽에 있는 이 불행한 기록에 이르자 그는 죄 없는 생애에 관한 연구에서 이것의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 기록을 삭제함에 있어서 그는 아직도 어떤 이들이 Calcord와 같은 견해를 주장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엘렌 화잇이 한 많은 명백한 말이 나타나서 그리스도 안에는 악한 성벽이나 죄의 때나 죄로 굽은 것이 없었다는 참 견해를 확증하게 되었다. 그는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과 마찬가지고 어떠한 죄악적 경향도 없었다. 그러므로 부정확한 기록이 삭제되었다. 그 후의 모든 인쇄에서는 없었다. 이같이 또 다른 오류가 이 1940년대의 이 교정을 통하여 우리의 표준 조력의 저서 어떤 것과 같이 제거되었다.
제27장 본부의 연구 무리들 1930년대의 특징
Ⅰ. 상세한 문답에 영원한 진리들이 포함됨
1. 유별난 연구 문답, 기도, 그룹들
1930년대 초에 유달리 발전이 있었다. 참여자들의 생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끼친 점에서 말해야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1930년 대총회 이후에 1930년과 1935년 사이에 대총회 본부 지도자들 중에 한 무리가 안식일 오후에 친밀한 성경 연구를 위하여 비공식적인 원탁회의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것은 기본 신조의 고백이 출판된 때 직후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Daniells 장로의 간조에 의하여 의심 없이 불붙은 자발적인 발전이었다. 그러나 개인적 필요의 분명한 의식과 그 참석자들의 성숙한 영적 부요함을 위한 갈망에서 나온 성장이었다. 그 그룹은 본부 근처의 사무실 중에 한 곳에서 보통 모였다. 이것은 공식적인 모임이 아니었다. 그 모임의 형식적인 조직도 없었다. 의장도 서기도 선택하지 않았다. 의제도 없었다. 의사록도 없었고 보고도 없었다. 그어나 어떤 개인에 의한 풍부한 기록은 있었다.
워싱턴에 있는 상당수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영원한 복음의 그 큰 핵심 예수의 믿음, 영원한 진리들의 연구에 깊은 개인적인 관심을 가진 자들이 한 특별한 안식일에 그 도시에 모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모이자고 단순히 결정했다. 그 계획과 과정은 단순했다. 모드 ㄴ참석자들이 공동 관심사의 일치된 주제에 관하여 전진하도록 연구하다가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선정되어 그 무리 앞에 자기가 발견한 것을 먼저 제시해야 했다. 그 다음에 모두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을 하고 저들의 개인적인 공헌과 확신을 나눈다. 그리고 항상 발견한 것을 먼저 제시해야 했다. 그 다음에 모두 비공식적으로 의견 교환을 하고 저들 기인적인 공헌과 확신을 나눈다. 항상 신령한 빛과 축복을 위하여 기도 드린다. 참으로 그대로 했다. 그리하여 풍성한 결과를 가져왔다.
2. 이 진지한 서클의 참석자
이 그룹에는 1926년과 1930년 대총회시에 중대한 성경 연구 발표에 가담했던 자들 A. G. Daniells, W. W. Prescott, Oliver Montgonery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범주에 포함된 자들이 여럿 있었다. 다른 이들 F. M. Wilcox와 W. E. Howell등이 오히려 국0적으로 참석했다. 어떤 이들 L. H. Christian, C. B. Haynes 같은 이들은 본부를 방문할 때 가끔 참석했다. 이 이름들은 그 참석자들에게 어렴풋이 알려졌다. 12명-20명 있을 것이다. 각자는 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자라고 알려진 친구를 자유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교환이었으며 토론이 아니었다. 논쟁이 없었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어릴지라도 나는 참석할 특권을 얻었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이것은 이 특별한 주제에 깊은 개인적인 관심은 물론 Daniells장로와의 긴밀한 교제와 목회 책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이들은 모두 실제로 나의 아버지만큼 연상이지만 그런 특별한 무리와 만나는 것을 매우 즐겁게 느꼈다. 그것이 내가 그 최초의 그룹 중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그 이야기를 최초로 인쇄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나는 그 연구회에 계속 직접 참석하였으며 고로 그 사실들을 안다. 즉시로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유익을 가져왔다. 그 경험은 우리의 개인적인 집단적인 설교, 교수의 저서의 음성과 강조에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 이 회합의 도움이 되는 영향, 매체를 통해서 사역자들 의회, Camp meeting, 연수외, 연구회 등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 감화는 영구적이 되었다.
3. 그 회집의 끊임없는 부담
이 모임에 참예한 자들은 그 큰 진수, 구원과 영원한 복음의 구원을 가능케 하는 준비들과 영원한 진리들, 주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충만함 중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등에 관한 것이 부담이었다. 간단히 예수의 믿음에 있었다. 그리고 칭의와 선화와 영화와의 관계, 승리하는 성령으로 충만한 생애, 새언약의 경험, 믿음과 행함의 참 관계, 큰 외침, 늦은비, 필수적인 준비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 큰 주제들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한 빛 가운데에서 연구하는 것이 이것들은 모든 관심을 흡수하고 관심 갖는 분야였다. 그리고 특별히 저들의 실제적인 적용이었다. 어떤 형식적인 연구 개론은 제외되었다. 그 참석자들은 의견일치를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공식적인 결론은 기록하지 않았다. 참석자들의 개인적인 기록이외에는 그것은 지배적인 뛰어난 Martin, Luther가 없는 현대식 원탁회의의 연속이었다. 모두 한 형제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찾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모든 제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강조가 있는 실제적이었고, 진실로 천사의 기별의 길 안내였다. 저들은 기독교의 진수, 우리 신앙의 심장, 우리 기별과 사명의 기조를 이루었다. 결과로서 그 때에 모든 참석자들에게 놀랍게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되었다. 그런 비공식적인 기초 위에서 만남 다른 무리들도 의심 없이 가졌고 그 집회들도 큰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어떤 것의 지식을 알고 있다.
4. 쟁투를 위하여 강화되어 전진했다
때때로 생기는 논리에 맞지 않는 사소한 일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통적인 부담은 우리가 지금까지 애써 투쟁해 온 그 큰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 참석자들은 사색의 매혹, 철학의 마력이나 심리학의 매력에 관심이 없었다. 저들은 오직 성령에 의하여 인도 받기를 소원했다. 저들은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그의 인도를 분명히 의식했다. 이것들이 영감 적인 때요, 참석한 모든 인가의 생애를 위하여 비치는 조명이었다. 결과적으로 각 사람은 힘을 얻어 가지고 전진했고, 그 시대의 도전들을 당면하기 위해 더욱 잘 준비되었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진 맘으로 전진했다. 그 당시 거룩한 영구를 돌이켜 봄을 통해서 참석자들은 그 당시 인식했던 것보다 더욱 현저하고 항구적인 감화를 받았다. 직책에 상관없이 아무도 개인적인 견해를 당당히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말씀을 연구하고 의견을 확신과 경험을 교환할 뿐이었다. 현저한 합의가 결의되었다. 그 연구들은 어떤 위원회에 보고하기 위함도 아니요, 어떤 특별한 교리 적인 해석을 형성키 위함도 아니었다. 출판을 위함도 아니었다. 그 그룹은 한 새로운 사상의 학교를 세우고 있지도 않았다. 저들은 단순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찾는 것이요, 개인으로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함이다. 신 재림주의는 없었다.
5. 필연적으로 가깝게 되었다
우리는 요점을 강조한다. 그 회집을 위하여 공적인 허가를 구하지도 않고 애착을 두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공적인 자격으로 모이지 않았다. 저들은 조직 내에 또는 밖에 다른 조직을 만들지도 않았다. 저들은 잔지 저들 자신의 영적 생활과 이해를 깊이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저들은 저들 개인적인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기를 찾고 있었고 그리고 피차 강화시키고 그리고 이같이 더 크게 봉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확하게 결과가 왔다. 모든 사람이 전망이 넓어지고 확신이 깊어졌다. 그리고 모두 새로움을 피차 나누었다. 그러나 그 그룹의 명령으로서가 아니다. 조만간 사람들이 다른 장소로 이사 가고, 은퇴하고, 죽고 함에 따라 그 회집은 불가피하게 끝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그룹 중에 오직 하나 남은 자로서 그 당시 그 풍성한 경험을 가진 이 사람들과 교제했던 가장 나이 어렸던 나는 전에 기록된 적이 없는 이 유별난 집회에 대하여 여기에서 말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당시 동시대인들에게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을, 어떤 이는 그것들을 막연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결과들은 매우 실제적이었다. 이상이 1930년에 이 특별 연구에서 영감을 받고 결과를 맺는 개념이요 영향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1888 강조의 연속이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연결이 있었다. 내가 추가해야 할 것은 그 무리는 이후에 이야기 할 이야기를 알았다.
Ⅱ. 으뜸이 되는 강조는 예수의 믿음에 두었다
1.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이중의 예정
예를 들면 관심의 한 분야가 있었다. 재림 교인들은 항상 저들 스스로가 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고 공공연히 동일시 해왔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고통 적인 정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우리의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 취급되어 온 방법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로서 동일시하는 데에 실패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이중의 적용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이점에서 실패해오지 않았는가? 그것이 엘렌 화잇의 그 날은 확실히 올 것이다. 세계의 상태는 그것을 필연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계명에 관하여 초기에 역사적으로 신성 모독한 것과 꼭 마찬가지고 예수의 믿음이 우리 주위에 높은 오순절 모임 중에서 염치없이 모욕을 당할 뿐 오직 점점 포기하게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전체 재림교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은 진실로 모든 구원의 진리의 중심이요 경계선이기 때문이다(R&H 8월 15닐 1893). 그리고 그 분 안에서 진리의 완전한 조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이에게는 혁명적인 사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고 모호하지 않은 예언의 신의 선언이다. 그것 역시 나타나 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중대한 교리도 예수님의 믿음의 경계선 밖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강조할 것이다. 때때로 이 점에 대한 강조가 결핍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건전한 재림 교회의 기초이다.
2. 구원의 모든 원리와 준비를 내포한다
예수의 믿음은 구원의 모든 원리와 준비가 포함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의무를 포함한다. 그것은 모든 생애를 위한 필수적인 동기를 내포한다. 그것은 그 넓은 범위 안에 실제로 하나님의 계명도 들어 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신 대주재이시며 그 4번째 계명인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한 점도 작아지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이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될 때 그것은 더 높아지고 더 고상해지고 확대되고 강화된다. 그것이 강조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신령한 계시와 예언의 근원이시다. 그가 요한에게 계시록을 주셨다(계 1:1). 그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고리시다. 그는 모든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오, 지상에서의 완전한 생활의 무죄한 모본이시다. 그 분은 모든 필수적인 진리의 살아 계신 실체요, 표현이시다. 그는 생명 영원한 불멸의 생명의 근원이시오, 근본적으로 주신 분이시다. 그는 율법을 주신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자원해서 지신 분이시오, 우리 죄를 위한 속죄 희생이시다. 그는 또한 하늘에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이기시는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오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에게서 근원이 된다.
이것이 예수의 믿음이다. 이것이 영원한 복음이다. 이것이 또한 강조된 것이다.
3. 심판장 오시는 왕, 완전한 회복자
그는 또한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야 할 실수가 없는 심판장이시며 그의 판단은 틀림없고 00이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오, 곧 오셔서 그의 영원한 영광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실 것이다. 그는 죄와 회개하지 않은 범인들과 영속시키는 모든 자들을 완전히 용서 없이 멸망시키는 분이시며 기이한 일이 될 것이다(사 28:21). 그는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재 창조자이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자이시다. 그의 권능으로 모든 것이 영원히 일하고 조직될 것이다. 그는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시고, 육체로 거하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시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이 그 놀라운 예수의 믿음과 그 예수를 의미하고 포함된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크고 더 이해할 수 있는 더 달콤한 묘사가 없다. 그것이 예수의 믿음이 모든 것이 포함되고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더 큰 것에는 더 적은 것이 포함된다.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의 계명만을 강조할 때 우리는 단지 한 부분만을 이루고 전체를 이루지 못한다. 오직 그 분만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줄 수 있게 하시는 크신 능력자의 작용하는 권세를 필수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두 가지를 나란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묘사요 기대이다. 이것도 역시 취급했다.
4. 필수적인 의의 근원
예수님은 모든 의의 실체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도록 서기 위한 필수적인 거룩함은 그 분 안에 속해 있다. 그런 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하는 우리의 노력에서 오지 않고 전가시켜주시고 그 다음에 나눠주시고 우리 안에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의 완전에서만 온다. 그러므로 예수의 믿음은 모든 각도에서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계명만으로는 우리의 죄악적인 제한성 때문에 가능하게 하는 힘이 없다. 이것은 범법자를 그 정당한 징벌에서 자유케 할 수 없다. 그것이 왜 언제 어디서 예수께서 들어오시는가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믿음을 강조하기에 실패하거나 내버려주는 것은 영원한 복음의 구원하는 준비를 생략하는 것이다.
5. 안식일 위반에 관한 조기의 강조
우리의 기초를 놓은 조상들 중의 어떤 이들에 의하여 이것은 너무 많이 계획하지 못했음이 인식되었다. 폭넓은 사상이 점점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저들의 시야를 대부분 차지했다. 교황권과 개신교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한 것에 특히 4째 계명을 범한 것을 무겁게 강조함으로 모든 것이 그 안에 중심이 된 것같이 보였다. 심판, 율법의 완전성, 하나님의 정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냐, 불 충성이냐 그리스도와 사단의 대쟁투의 결과, 선과 악 성도와 죄인들 등에 내포된 것같이 보였다. 그것은 아직도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요 꼭 들어맞는다. 도덕률의 세계적인 모도 때문에 그 초기의 강조는 짓밟힌 율법에 자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서 우리는 주로 율법을 세우는 자로 알려지게 되었고 우리에게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시는 예수의 복음의 만능을 선포하는 자로서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율법주의자라는 명칭을 준 것을 이해할만하다. 그리고 우리의 바로 그 강조가 우리를 어조에서 강조에서 그리고 때로는 태도에 있어서 율법주의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 관한 많은 오해를 만들어 냈다. 이것들이 진지하게 토의된 면들이었다.
6. 나누인 견해가 예수의 관한 둔한 증인이 되게 함
우리 교회 초기 수십 년간에 그리스도의 신성, 신성의 다른 위들과의 그의 관계, 그리고 성령의 인격 등에 관하여 분열된 견해가 예수의 믿음에 관한 강조의 필수적인 진압에로 인도한 원인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지나갔다. 우리는 그때까지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 삼위일체, 하늘의 트리오 중의 제 삼위이신 성령들에 관하여 아주 연합된다. 그것은 1931년에 유명한 기본 신조 서언에 선포되었다. 더 이상 그런 강조의 필수성과 간급성에 관하여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최초로 1888년 전후에 명백히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예수의 믿음을 그 적합한 위치에 두는 일에 있어서 느리게 너무 훨씬 느리게 해왔음을 인식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은 불가분리이다. 첫째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둘째 것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결함 있는 기별이다. 더욱이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황의 영적 성공과 실패의 결과에 관하여 의심과 불 확실 속에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번민하는 정신과 불안한 정신을 초래한다. 그것은 개인적인 구원에 관하여 반신반의를 조장한다. 이것은 비극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이들의 문제가 되어 왔다. 이상이 그 대화의 다른 면이었다.
7. 세상에 우리의 인상을 변화시키자
우리가 아마 하나님의 계명에만 일방적인 강조가 널리 오해를 초래했다는 점을 또한 강조했다. 그리하여 큰 오해가 확실히 왔다. 우리는 이제 저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저들을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균형 잡힌 강조로서 우리는 00을 만회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게 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불행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상 앞에서 우리의 인상을 변경시킬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중대한 일이요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바로 지금 최고의 상징으로 삼으면 우리 자신에게 오는 반응은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부정적인 것에서 적극적인 것으로의 전환에 의미한다. 그것은 너희는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 에서 나는 그의 능하신 은혜를 힘입어 어떤 것이 올지라도 안식일의 주님을 따르겠다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체 재림교의 관념을 높이고 우리의 동기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확신에 대한 염려에서 믿음과 평화에 대한 열망으로 바꾼다. 그것이 이 복된 예수의 믿음이다. 그 모든 것이 강조되었다.
8. 첨가된 원동력을 위한 때
이 모든 것은 이 최후의 큰 운동이 완성되기 전에 와야 하고 올 것임이 인식되었다. 이 간조는 변화시키는 능력과 다이나믹한 정력을 제공한다. 그것은 성령께서 추진시키고 인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승리와 완성의 길이다. 그것은 오늘날을 위한 하나님이 분명한 부르심이다. 우리는 감히 지체하지 못한다. 참으로 그런 강조는 오래 전에 마땅히 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시대는 그것을 요한다. 세단은 그것을 위해 준비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기대하신다. 느림과 주저는 우리편에 있어왔다. 더 이상의 지혜는 파멸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 신령한 시기를 북돋아 주는 자 이 첨가된 원동력이 필요 된다. 하나님의 명백한 지시를 따라 행하는 것은 지금 이때요, 늦은 때이다. 비할 데 없는 사도 바울은 예수의 믿음의 큰 사도적인 해석자요, 모본이시다.
Ⅲ. 바울 - 예수의 믿음의 최고의 대변자
1. 바울의 한 가지 열정 - 믿음
여기에 한 가지 제시의 골자가 있다. 기독교의 최대의 신학자요 교사인 사도 바울은 영감으로 많은 신약 성서를 기록한 그의 편지서를 통하여 계속 달리는 하나의 최고의 강한 욕망을 가졌다. 그것은 그 믿음을 설교하고 그 믿음을 해설하고, 믿음을 변호하고 믿음을 직접 지키는 것이다. 때때로 그는 그 믿음의 완전한 의미를 목음의 신앙 혹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이라고 기록했다. 때때로 그는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보통 그것은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그리고 같은 예수의 믿음이었다. 바울은 그의 청중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고전 2:2). 그는 영원히 선재하시고 그리고 신성의 모든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골 2:9). 그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 그 외 지상 성육신, 그 외 완전한 시험에서의 승리, 그의 무죄의 생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의 효력, 그의 개선의 부활 승천을 그 후에 그의 중보와 심판장으로서의 하늘의 봉사, 그리고 만왕의 주로서의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다시 오심을 전파했다. 바울은 경향은 그리스도와 그의 충만하심 창조주, 입법자, 구속주, 재 창조주, 의롭다하신 분, 거룩케 하시는 분, 생명의 통치자, 의를 주시는 분, 영화롭게 하시는 분, 불멸성을 주시는 분, 영원하신 왕, 모든 것 중에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었다.
2. 바울의 믿음의 누가적(累加的)인 힘
바울은 죽기까지 충실하였다. 그의 부담이 우리의 부담이 되어야 하고 그의 기별은 우리의 기별이 되어야 하며 그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그의 충성이 우리의 충성이 되어야 한다. 그는 예수의 믿음을 지켰다. 그는 모본이요, 영감이다. 다음은 그의 영감 받은 간결한 누가적(累加的)인 힘이다.
“믿음에 굳게 섰다”(행 6:1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후 13:5)
하나님의 아들이 믿음으로 산다(갈 2:20)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엡 4:!3)
그는 강권하기를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협력(빌 1:27)
믿음에 거하고 흔들리지 않으면(골 1:21)
믿음에 큰 담력을 가지라(딤전 3:13)
그 다음 그가 경고하기를 어떤 이는 믿음에서 떠날 것이라(골 1:23)
믿음에서 떠나(딤전 6:10)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니라(딤후 3:8)
그가 직접 증거하고 권면하고 바울과 유다에 의해 지지를 받음
나는 믿음을 지켰노라(딤후 4:27)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라(벧전 5:9)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3. RSV)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믿음(딛 1:1)
이상 예수의 믿음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에 관하여 예언되기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이상에 그 믿음 그대로 생활하고 변호하고 지키라고 우리에게 위탁하신 이요 재림교의 진주로서 예수의 믿음을 맨 앞에 두어야 한다.
Ⅳ. 그의 권능의 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것들
1. 뚜렷한 보충병들이 우리와 결합하도록 되어 있음
하나님의 감추인 예비품에도 깊은 관심이 있고 부분적으로 지금 작용하고 있다. 뛰어난 사람들 뛰어난 설교자들, 교사들, 과학자들, 법률가들, 사업가들, 정치가들과 다른 지도자들 그리고 이전의 박해자들에게도 훈련받은 지성인들,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고 경험과 재정이 있는 자들 지금은 우리가 이용할 수 없는 자들, 우리의 현재의 계획들과 과정들이 엄격하기 때문에 이 예정된 때에 크게 선포하는 최후의 큰 외침에 기별자들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와 함께 행동할 것임이 인식되어 있다. 저들은 우리의 다시 오시는 주 우리의 속히 오시는 만왕의 왕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이전의 조직체를 떠나고 다른 모든 관련을 끊을 것이다. 저들이 존경받고 일터에서 거인들이 설교단, 교실, 법정, 과학 실험실, 회사, 왕궁까지도 버리고 우리는 권위 있게 말하노니 진실한 기별을 선포할 것이다. 그것은 거의 우리의 00로는 예측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 이 11시에 들어온 일꾼들은 다가올 큰 흔들림의 영향으로 떨어질 어떤 찬란한 빛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서있는 위치를 알기 위하여 이 모든 것에 대한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이 그 본부 연구 그룹이 숙고한 더 넓은 연구 범위 중에 일부였다.
2. 위기의 상태에서 일어날 것이다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우리의 고도로 완전한 기관은 그 마지막 절정의 위기 동안에는 충분히 작용하지 못할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주께서 그 최후 두려운 장면들 중에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그 숨어 있는 보충병들과 우리들 모두 지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기성 회계 계통을 통해서 규칙적으로 봉급을 주지도 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풍성한 능력의 가능을 저들에게 주실 것이다. 어떤 이는 이미 인간의 최고의 훈련을 소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평생 재림 교인이었던 우리 중 어떤 이들보다 살아 계신 우리 주님과 더욱 긴밀한 영적 교제 중에 이미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이미 우리 중 다수보다 훨씬 뛰어날 정도로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더욱 긴밀한 영적 교제 중에 이미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이미 우리 중 다수보다 훨씬 뛰어난 정도로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그 큰 필수적인 것들 옛 000 중요한 기능들, 재림교의 구조적 진수를 이루는 진리들을 속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 역시 건전한 사상을 위한 음식이었다.
3. 하나의 지배적인 기록만이 이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끝마치실 때 땅 끝까지 들릴 하나의 뛰어난 음성이 있을 것이다. 여호와 우리의 의는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고 꽉 채울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요 원동력이 되실 것이다. 그것은 성령과 함께 할 두려운 전망, 실패 없는 영광스러운 확신이다. 말해서 의가 되실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신속하게 사업을 행하실 것이다. 이상이 하나님의 보충병들과 그의 권능의 날을 위한 타당한 준비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의 귀결이었다.
Ⅴ. 교리적인 마른 뼈에 생명을 불어넣다
1. 생명을 불어 넣은 호흡
그 그룹은 비슷하게 공감하기를 우리의 구조적인 교리들은 단단한 골격, 에스겔 37장에 에스겔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 바와 같이 매우 많지만 매우 마른 뼈요, 한편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과 그의 의는 저들에게 생명과 능력과 매력을 불어넣는 호흡이요, 생명이요, 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수십 년간 우리 교회의 공중 계시에서 그 뼈들만을 강조해왔는가. 그러나 건전한 교리를 참 필요성 등은 결코 죽지 않았다. 이들은 우리를 재창조할 수도 없고 의롭게 할 수도, 가득하게도 영화롭게도 할 수 없다. 이들은 우리를 용서할 수도 정결케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끝 날에 우리를 부활시킬 수도 불멸성을 줄 수도 없다. 그리고 무어보다도 이들은 모든 것, 가장 긴요한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에게 임할 수 없다. 한 인격자이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수 있다. 이것을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여겨졌다. 우리 재림 교인들은 단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도록 정해진 추상적인 신조의 한 본성을 너무 자주 찬양해 왔다는 것도 인식되었다(그외 변화시키는 은혜와 능력을 충분히 받아들이도록). 우리의 찬양, 우리의 존경, 우리의 충성은 직접, 의식적인 그리스도께 들려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그 분께 충분한 순종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신뢰로 그를 섬기는 데에 능력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상이 계속적인 표현이었다.
2.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리가 필수적임
여기에 반복적인 또 다른 사상이었다. 여하한 단지 교리만으로는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중심되기까지도 되지 않는 한 변화시키는 가치가 없고 그리스도와의 산 교제로 인도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 되는 것은 단순히 안식일이나 율법 같은 것이 아니요, 안식일 중에 계신 그리스도, 율법 속의 그리스도이다. 그런 관련성만이 구원하는 가치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초기의 서적과 출판물의 검토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의 초기 선조들은 이것을 인식하는 데에 더디었다는 것도 인식되었다. 저들은 현저하게 고립되었고 자주 성령이 없었다. 한 변화가 필요 불가결했고 권위 있게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요청은 예언의 신의 저서에 예시되었고 특히 19세기와 1915년 화잇 부인이 돌아가실 때에 그러했다. 세상에 우리는 독선주의자들 교리주의자들, 율법주의자들이라는 인상을 준 것은 이 초기의 교리적인 지배와 우월성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느렸는가!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아직도 모든 교리에 초월적인 변화시키는 그리스도를 그의 정당한 필수적인 중심 자라에 두는데 느린가! 그 방법은 우리의 강조점을 변화시킬 것이요. 우리 자신의 생애와 증거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더할수록 그것은 공중의 마음에 재림교의 전체 인상을 변경시킬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세상을 향하여 세상 안에서 우리의 사업과 증거의 최종 국면을 특징짓기로 되었다. 이것들이 좀 더 발전한 표현이었다.
Ⅵ. 하나님은 겸비하고 가르침 받은 자를 택하시고 사용하신다
1. 개척자들을 비난하기를 삼가라
개척자들의 자질을 비판적인 경향을 가진 어떤 이들이 유감스런 어떤 토종 적인 방법으로 토론했다. 저들의 이론은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날 고등교육을 받은 어떤 이들은 우리 조상들은 신실했지만 교육받지 아니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향상된 훈련을 받지 않아 자격을 갖추지 못한 고로 교리 적인 자격 분야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무식하고 신뢰할 만 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개척자들은 저들의 진지함에 있어서 존경해야 하지만 분간하는 학문의 요구에 실제로 무식하기 때문에 불쌍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무모한 비난은 예수님 자신이 당신의 사도들과 새로운 신앙의 전도자들로 선택하신 베드로와 요한에 관한 가치를 감소시키는 비난 중의 하나를 생각나게 한다는 그리스도의 비난자들은 저들을 학문이 없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불렀다(행 4:13).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저들의 신임장은 저들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들의 무비의 자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튼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기 위하여 수세기의 시험을 견딘 기초 그 사람들의 사용하셨다. 저들은 성령의 역사에 복종하는 통로였든 고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대변자로서 자격이 있었으므로 자격이 있었다.
2. 사도들의 전문적인 훈련
저들은 사실 유명한 랍비 학교들의 학술상의 훈련에 있어서는 무식했다. 저들은 또한 저들 동시대의 비판자들의 눈에는 필수적인 전문 지식이 없는 무식한 혹은 어두웠다. 바꾸어 말하면 저들은 그 당시의 지성의 정예 부대 중에 속하지 않았다. 저들은 배우지 못한 평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까지도 이 사람은 배우지 않았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요 7:15)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지성인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았다. 당신의 사도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궤변적인 종교적인 무리에게서 돌이켜 즐겨 당신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택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저들을 통해서 수세기간의 당신의 택한 교회를 건설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적으로 박학한 자들에게서 돌이키사 1844년 전후의 진리를 학문적 전통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자들 종교계의 교만한 지혜보다 진리의 성령의 인도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자들에게로 향하셨다(고전 1:20). 엘렌 화잇까지도 때때로 형식적인 학문의 훈련이 없는 자라고 얕봄을 당해왔다. 그러나 그런 비난은 보통으로 우리에게 퍼부어 졌다. 우리 옷들의 경우에 있어서 저들은 저들 중에 견해차이나 불확실함이 있을 때에는 어디서나 예언의 신의 확증하는 증거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겸비한 사람들이었다. 그 무리들은 그것들은 보충하는 필수요건 우리 선구자들의 보충하는 자질이라고 느꼈다. 저들은 하나님의 신의 작용에 의하여 인도 받고 보호받았다. 하나님께서 재림 신앙의 기초를 놓은 것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이 본부 그룹은 우리 조상이 겸허하고, 가르침 받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임을 하나님께 감사했고 저들의 주요 발전들에 관하여 확신과 확증을 주기 위하여 확증을 세우는 예언의 신을 주셨음을 인해 감사했다.
Ⅶ. 시험하는 진리들의 능력과 호소에 더 큰 힘을 줌
1. 시험하는 진리를 제시하는데 다시 연구할 때
가장 공정한 연구를 해야 할 중대한 주제 중에 우리 기별 중에 구별하는 시험하는 진리들을 제시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이것들을 도전하는 것도 아니요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요 다만 이들의 능력을 증가시키려고 강화시키는 것이다. 땅이 그 추진하는 영광으로 환하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제시를 호소력 있게는 물론 더욱 적극적으로 제시할 때는 이미 왔다고 느껴졌다. 이것들을 설복시킬 능력을 가질 만큼 강권하는 능력으로서 최대의 꿈과 적극적인 호소로서 이들을 제시할 대가 우리 위에 있다.
2. 우리가 이들 중 중요한 대목을 빼버림으로 약화시키고 파멸에 직면한다
또한 한 말씀 주의 사항이 들려 왔다. 더욱 많이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어떤 이들 편에서 땅의 절정의 시간을 위한 우리의 특별한 진리들 중의 구별하는 힘과 주장 등을 진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특별한 마지막 날 끝에 심판 시간을 위하여 간조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제시되었다. 이것들을 발견하고 재발견한 것은 열렬한 개인적인 혹은 그룹 성경 연구의 결과였다. 재림 신도들은 결과적으로 위험하게도 이들을 축소한다. 이들을 쏟아버리거나 활력을 빼앗는 것은 하늘의 책망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재림 교회 사역자들로서 시온 성벽 위에 있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파수꾼들이다. 우리의 의무를 맡김에 있어서 충실해야 할 파수꾼의 책임이 있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강권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대목을 빼버리거나 약화시키거나 털어 버릴 수는 없다. 한편 그것은 증진시키고 강화시키고 어둑 미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더욱 매력적으로 효과 있게 더욱 호소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
3. 성령의 감동 아래 저항할 수 없다
위에 있는 것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설교의 도전임을 인식했다. 그리스도를 높임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과 설복력의 감화 아래에서 저항할 수 없도록 진리의 모든 원칙과 영원한 복음의 마지막 시대의 적용을 만드는 것, 하나님의 자녀의 큰 다수 나의 백성은 아직도 바벨론으로 정의된 어머니 교회와 딸들의 교회에 있다(계18:4). 이 영혼들은 나오도록 하루에 수천 명씩 되어 있다. 그 마지막 그런 현대 진리의 기별의 그리스도 중심의 호소는 하루에 수천 명씩 한 목자 아래 한 우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다(요 10:16). 참된 진리는 그 광택을 잃지 않았다. 수년간의 지체는 어둡게 하거나 침식하지 않았다. 그것은 조소할 수 없는 능력과 강력함으로 감출 수 없는 찬란한 광채로 곧 새롭게 비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그 영광스러운 운명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늦은 비 권능으로 충전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봉사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든 시험하는 진리를 위한 필수적인 필 요되는 새로운 능력을 공급하실 분은 과거에는 너무 자주 상실한 요소, 그리스도이시다. 트집 잡는 비평들은 그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이상은 1930년대 연구 그룹에서 제시한 부담되는 견해에서 얻은 영감이었다. 그 당시에 기록한 것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저들은 이 비상한 그룹의 생각의 합의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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