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s child has far to go (목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갈 길이 멀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키르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단순한 미신 같지만, 사실 스테판 데덜러스(그리고 제임스 조이스 자신)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1. 기원: 마더구스 (Mother Goose) 전래 동요
이 대사는 영국의 유명한 전래 동요(Nursery Rhyme)인 <태어난 요일 점(Monday's Child)>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요일에 따라 운명을 점치는 노래입니다.
[원문과 번역]
Monday's child is fair of face, (월요일의 아이는 얼굴이 예쁘고,)
Tuesday's child is full of grace, (화요일의 아이는 은총이 가득하며,)
Wednesday's child is full of woe, (수요일의 아이는 슬픔이 많고,)
Thursday's child has far to go, (목요일의 아이는 갈 길이 멀다,)
Friday's child is loving and giving, (금요일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베풀 줄 알며,)
Saturday's child works hard for a living, (토요일의 아이는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고,)
And the child that is born on the Sabbath day (그리고 안식일[일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Is bonny and blithe, and good and gay. (아름답고 명랑하며, 착하고 즐겁다.)
여기서 **"Has far to go"**는 물리적으로 먼 곳을 여행한다는 뜻(방랑)과,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고난/성장)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2. 《율리시스》 속의 맥락
'키르케' 에피소드에서 조이(Zoe)가 스테판의 손금을 보며 묻습니다.
조이: "무슨 요일에 태어났어?"
스테판: "목요일."
조이: "목요일의 아이는 갈 길이 멀다던데."
이 짧은 대화에는 조이스가 심어놓은 여러 겹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 자전적 사실 (Autobiography)
실제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1882년 2월 2일 목요일에 태어났습니다. 조이스는 자신의 분신인 스테판 데덜러스에게 자신의 생일 요일을 그대로 부여했습니다. 이는 소설 속 스테판이 곧 조이스의 젊은 시절 초상임을 증명하는 장치입니다.
② 작품의 시간적 배경 (Bloomsday)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04년 6월 16일(블룸스데이) 또한 '목요일'입니다. 즉, 스테판(목요일의 아이)이 자신의 운명적인 날(목요일)에 겪는 하루를 다루고 있습니다.
③ 문학적 상징: 방랑과 망명 (Exile)
"갈 길이 멀다"는 스테판의 운명을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방랑자 (The Wanderer): 스테판은 집, 종교, 국가(아일랜드)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입니다. 그는 파리로 떠났다가 어머니의 임종 때문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일랜드를 떠나 있습니다.
예술가의 길: 그는 아직 미완성된 예술가입니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가 걸어야 할 내면의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합니다.
텔레마코스 (Telemachus): 《오디세이아》에서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나듯, 스테판도 영적인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긴 여정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블룸을 만납니다.)
3. 심층 해석: 긍정과 부정의 이중성
부정적 해석: 스테판은 현재 지쳐 있고, 술에 취해 있으며, 돈도 없고, 잘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런 그에게 "갈 길이 멀다"는 말은 **'아직도 고생길이 훤하다'**는 저주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린치는 옆에서 그를 "겁쟁이"라고 조롱합니다.
긍정적 해석: 하지만 역설적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블룸은 정체되어 있거나 과거에 갇힌 인물들이 많은 더블린에서, 스테판이 그곳에 머물지 않고 결국은 자신의 길(예술)을 찾아 비상(Fly/Dedalus)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요약
"목요일의 아이"는 스테판 데덜러스가 숙명적인 방랑자이자 성장 중인 예술가임을 나타내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조이는 손금을 통해(비록 엉터리 점쟁이일지라도) 스테판이 이 좁은 더블린의 매음굴에서 끝날 운명이 아니라, 훨씬 더 먼 곳(예술적 성취 혹은 망명)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임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