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이 드러나는 스포일러입니다. 이미 다들 영화보셨지요? ^^
1. 강의
안산 강의엔 제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스스로, 제 목의 성대수술로 강의 나설 입장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저절로 드는 생각입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 어쩔 수 없지만, 민망한 건 또 민망한 겁니다.
영화, <암살>로 토론을 여는 건, 사실 꼼수입니다.
성대수술의 제 목 상태 때문에 영화로 얼마 정도 시간을 때우고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즉흥적인 영화 토론 때문에, 토론도 심도 깊게 가지 못하고,
예정되었던 독서토론 실습도 충실하지 못해서
스스로 많이 민망한 강의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교실 권력에 대해, 허용적 태도와 소통에 대해, 토론에 대한 마음가짐은
진정이었습니다. 그 진정이 선생님들의 마음 언저리에 살짝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2. 제목
영화 <암살>, 저도 봤습니다.
좋았습니다. 기대보다 더.
제목의 중요성, 제목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 논했지요?
그래요. 왜 영화 제목을 '암살'로 정했을까요?
숨어서 몰래 죽이는 게 '암살'입니다.
사회가 승인한 합법적인 공개 처형이 아니지요.
사형제도가 아닌 겁니다.
사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차마 못할 짓이지요.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마음을 다져도,
역시 그 임무와 역할을 마치고 돌아서는 이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차마 못 견딜 고문이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임무임에도
그 대가가 대개 자신의 목숨을 내놓거나, 아님 고문이거나,
설령 운 좋게 살아서 빠져 나간다 해도 드러내 말할 수 없는 어두운 훈장 같은 겁니다.
- 암살자는 누구보다 더,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의 표정을 생생하게 당겨서 봅니다.
생생하게 대상의 눈빛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그를 죽이고
그 확실한 죽임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하며 돌아서야 하는 숙명의 존재입니다.
'암살자'의 운명은 그런 거지요.
그럼에도 시대가 요구하는 압박과 명분에 떠밀려 어금니를 악물며
몰래 숨어서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누군가'가 있었을 겁니다.
최동훈 감독은 그런 시대, 그런 역할을 해야 했던,
그럼에도 그 처참한 역할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할 수 없었던, '어떤 이들'을 기억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두울 암(暗)'자엔 바로 그런 어둠의 비극이 느껴집니다.
어둠 속의 누군가가 느껴지나요? 그 고독과 고뇌와 그리고 두려움의 숙명이?
- '암살'이란 제목엔 숨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동시에 목숨 걸고 수행하는 자신의 역할을 숨겨야 하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의 제목엔 그런 이들에 대한 연민과 채무감과 기억하겠다는 약속 같은 것이 배어있는 듯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곱씹어 봅니다. 암살... 살인... 살...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숨을 죽이며 방아쇠를 당기는. 그렇게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살아서 빠져나가든, 잡혀서 죽든. 어둔, 어두운...
전 그렇게 이 영화의 제목을 생각합니다. 암, 살.
3. 장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떻게 보셨나요?
선생님들의 각 모둠에서 나온 텍스트 분석은 놀라웠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텍스트를 분석해냅니다.
- 아마도, 역시! 교사 집단인 거지요? ^^
저도 그 장면을 봤습니다.
전, 전지현의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김구 선생님께 고하는 말.
- "선생님. 밀정이라면 죽이라고 하신 말씀, 16년이 지나서야 이제 그 말씀을 지킵니다."
(대충 이런 대사였지요? ^^;)
전, 그 대사에서, 참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감독의 의지가 개입되는구나 싶었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이라고 느껴집니다.
갑자기 전지현이 등장해 그렇게 처단하다니요. 헐...
그럼에도 투박한 그 장면에서 감독의 염원이 느껴져서, 제 개인의 감정이 배경으로 작용해서,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바람으로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친일 청산 실패'의 우리 현대사에서,
이제 세월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우리가 이제라도 그 잔재를 처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계몽으로 여겨진다는 거지요.
그런 맥락 없는 강요에 거부감이 적은 이유는, 저도 심정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일 겁니다.
- "아! 진짜 청산해야 한다니깐! 빌어먹을 세상."
4. 의도
그런 의미에서,
반민특위의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서 나무망치를 팽개치는 장면은
우리에게 통쾌함을 주거나 위로를 주기 보다는,
현실에 대한,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열 받지만 어쩔 수 없는 자조적 불평' 같은 거 말입니다.
동시에 특무대 출신의 친일파가 해방 이후에도 득세해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할 말을 다하는데, 거기에 청중들도 쉽게 동조하는 장면은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 게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영화적 진실이고 현실 고발이라고 생각됩니다.
씁쓸한, 한숨 나오는, 그러나 현실인.
5. 인물
어땠나요? 어떤 인물이 인상적이었나요?
거야 뭐, 전지현이지요. 이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 여배우는 나이 들어가며, 오히려 결혼해서 더 매력적이네요.
프로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배우이더군요. 빛났습니다.
그치만 전, 전지현이나 하정우나 이정재, 오달수, 이경영보다(헐... 대박이네요. 연기의 신들이 모인)
속사포 조진웅에 마음이 더 갑니다.
이거 돈벌이 안 된다고 투덜대는,
그러나 그 이면엔 누구보다 투절한 강철 의식이 빛나더군요.
그 드러나는 방식이 진지하지 않아서,
느물느물 속물 같아서,
그러함에도... 2층에서 죽어가는 그 순간에,
"어. 알았어. 먼저들 내려가슈. 1층에서 봅시다."라고 건성건성 말할 때,
그 캐릭터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 캐릭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해내는 조진웅이라고 하는 배우가 좋았습니다.
- 조진웅이 없었더라면, 앙꼬 없는 찐빵 같을 거라는 거.(이 상투적 표현! ^^)
(똑같은 대사를 조진웅이 아닌 다른 배우가 뱉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이 배우의 진가가 눈부시게 여겨지네요.)
그렇게 느물느물 속물 같은, 그러나 투덜거리며 기어이 임무를 완수해내고 마는,
그런 인물들이 있었을 겁니다. 불과 얼마 전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시기에.
그들이 숨어서 해치워야 했던, '암살자'들이었기에 더 드러나 칭송받지 못했을 뿐.
그래서 우리가 더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채무가 더 많아지는.
그런 역사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파집니다... 음... 미안합니다... 미안...해...집니다.
6. 텍스트: 영화 읽기, 삶 읽기
텍스트를 읽어내는 건, 내 삶의 체험 위에서 가능합니다.
거꾸로 내 삶의 살결로 느껴지는 텍스트 읽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배움은 앎이 삶으로 체화되는 배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텍스트 삼아 읽었지만,
그 텍스트가 활자라고 해도, 읽어 들이는 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영상의 수용보다 활자의 수용이 아이들의 뇌를 자극하는 정도가 더 크겠지요?)
‘영화 읽기, 삶 읽기’의 방식을
‘글 읽기, 삶 읽기’의 방식으로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독서토론하듯, 영화를 샘플로 적용해봤습니다.
7. 하여간, 기타
하여간, 우린 이렇게 공부합니다.
저도 마이크를 잡고 선생님들과 얘길 나누며 공부합니다. 공부가, 됩니다.
사는 게 뭐, 다 공부 같습니다.
기왕이면 그 공부가 좀 흥미롭고 호기심 생기고 웃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하면, 참 좋겠습니다.
짧게 영화 얘기 쓴다는 게, 역시 길어졌습니다.
오랜 병입니다.
다음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공부 모임으로, 함께 수다 떨면 좋겠습니다.
제 목 상태, 참 죄송했습니다. 꾸벅-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