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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도 지배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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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짧은 글들에서 맑스는 영국의 지배를 통해 인도의 전통사회가 무자비하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파괴과정을 통해 초래된 자본주의적 토대 건설이 인도만 아니라 아시아 및 인류 전체의 진보를 위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맑스의 관점은 전형적인 유럽중심주의 및 생산력주의의 증거 아닌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한 판단에 앞서 맑스의 주장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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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맑스는 영국인이 인도에 초래한 곤궁은 과거 인도가 겪은 어떤 곤궁과도 근본적으로 다르고 또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명시한다.(인도412) 영국은 ‘인도 사회의 기본 골격 전체를 부숴 버려’ 놓았으며, 이로 인해 인도는 “자신의 고래의 모든 전통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과거 역사 전체로부터 격리되어 있다.”(인도413)
맑스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의 전통적인 경제기반은 관개시설에 의거하는 농업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정부의 권력이 관여해야 했다. 인도는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대규모 관개사업에 기초한 농업과, 농업과 수공업의 가내 결합, 이 두 가지를 통해 독특한 촌락제도를 만들어왔다. 이 소결합체들은 각각 독립적 조직과 개별 생활을 누려왔다.(인도415) 이 ‘가족공동체들’ 내지 ‘촌락공동체들’은 손노동에 의한 방직⋅방적⋅경작의 독특한 결합에 기초하여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유지했다.(인도416) 영국은 자유경쟁과 자유방임의 원칙에 따라 이 공공사업부분을 완전히 경시하며, 이로써 인도의 농업은 쇠퇴한다.(인도413-414) 또 영국의 증기력과 과학은 ‘인도의 베틀을 부숴 버리고 물레를 파괴’했다. 이로써 영국은 인도 전역에서 ‘농업과 수공업 사이의 연계를 끊어’ 버렸다.(인도414-415) “판에 박힌 형태의 이 자그마한 사회 유기체는 영국의 징세관과 영국의 병사가 자행한 야수적 간섭에 의해서라기보다 영국의 증기력과 영국의 자유무역의 작용에 의해 대부분 해체되고 소멸되었다.”(인도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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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의한 인도 전통사회의 파괴와 관련해 맑스는 그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다. 우선 인도의 촌락공동체부터가 파괴되어 마땅한 야만성을 지닌다는 것이 그 한 가지 근거다. “우리는 무해한 것처럼 보이는 이 목가적 촌락 공동체가 언제나 동양 전제정치의 견고한 기초를 이루어왔다는 것, 이 촌락 공동체가 인간 정신을 있을 수 있는 가장 좁은 틀에 제한하였고 또한 인간 정신을 미신의 온순한 도구로, 전통적 관습의 노예로 만듦으로써 그 웅대함과 역사적 정력을 앗아 버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인도417) “우리는, 이 야만의 이기주의 때문에 촌락 공동체 주민들은 땅 조각에만 신경을 쓸 뿐이지 제국들의 멸망이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잔학 행위들이나 대도시 주민들의 학살 따위는 강 건너 불 바라보듯이 방관하게 되어, 결국 그들 자신은 자신들에게 시선을 돌린 정복자들의 제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적 존엄을 모르고 정체해 있으며 식물과 다름없는 이 생활, 이 수동적인 삶의 방식이 다른 한편으로는 대조적으로 난폭하고 맹목적이며 멈출 줄 모르는 파괴력을 불러일으켰으며 살인을 힌두스탄의 종교적 의식으로 만들기까지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한 된다. 우리는, 이 자그마한 공동체가 카스트 제도에 의한 차별과 노예제라는 오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 인간을 환경의 지배자로 올려 세우는 대신에 외적 환경에 예속시켰다는 것, 자기 발전하는 사회 상태를 결코 변하지 않으며 자연에 의해 부여되는 운명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리하여 자연의 지배자인 인간이 원숭이 하누만과 소 삽발라를 숭배하여 그 앞에 무릎을 조아리는 사실에서 인간을 얼마나 값어치 없게 만드는가를 볼 수 있는 자연 숭배를 낳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인도417)
인도의 전통적인 차별제도들이나 자연숭배를 인도 민족주의나 반-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나름으로 평가하고 옹호할 수 있는 맥락과가 능성은 열려 있을 수도 있다. 맑스가 인도의 전통문화에 담긴 미래적 가능성들까지 세세히 읽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편적 관점에 근거하는 그의 비판이 순전히 서구 백인 남성의 이성 중심주의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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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인도의 공동체를 해체시킨 영국의 간섭이 “아시아 최대의, 아니 실은 아시아 유일의 사회혁명을 만들어내었다”(인도416)고 평가한다. 물론 맑스도 영국의 간섭 동기가 “천하기 그지없는 이익일 뿐이었고 또 그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취한 방법도 우둔하였던 것은 사실”(인도417)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맑스는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아시아의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영국이 저지른 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러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영국은 역사의 무의식적 도구 노릇을 하였던 것”(인도417)이라고 주장한다.
맑스는 무엇보다 영국의 혁명적 역할로 광범위한 정치적 통일을 지적한다. 이는 영국의 칼로 이루어졌지만, 전신과 철도를 통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영국에 의해 조직되고 훈련된 인도인 군대, 유럽인과 인도인 사이의 혼혈아에 의해 경영되는 자유로운 신문, 제한적인 규모로 이루어지는 토착민에 대한 과학 교육 등도 향후 인도 해방의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맹아 상태로 등장한 토지의 사적 소유형태(자민다리, 라이아트와리) 역시 그러한 조건에 포함될 것이다.(인도420-421) 그러나 그 무엇보다 맑스가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교통수단이다. “증기력은 인도가 유럽과 규칙적이고 신속한 교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고, 인도의 주요 항구를 동쪽과 남쪽 대양의 모든 항구들과 연결해 놓았으며, 인도의 정체의 근본 법칙이었던 고립 상태로부터 인도를 해방시켜 놓았다. 철도와 기선의 결합을 통해 영국과 인도 사이의 거리가 시간적으로 따져 8일 거리로 단축될 날도, 그리하여 과거의 전설 속에 있던 이 나라가 실제로 서구 세계와 연결을 맺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인도420-421)
맑스는 인도에 철도망이 부설될 때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인도421)이라고 믿는다. 인도가 자원이 풍부하면서 사회적으로 궁핍한 이유가 교역 수단의 부족에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는 다른 촌락과의 교류도 거의 없이, 사회적 진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욕구와 노력도 없이, 일정한 낮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었다. 영국인이 촌락들의 자급자족적 타성을 타파한 이상, 철도는 교통과 교류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인도422-423) 특히 철도 교통이 초래할 변화를 맑스는 순진할 정도로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철과 석탄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교통체계에 일단 기계가 도입되고 나면, 이 나라가 기계를 만드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다. 광대한 나라 전체에 걸쳐 철도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도 교통이 직접적이고 일상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공업 공정을 도입해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공업 공정을 도입하게 된다면, 철도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공업 부문에서도 기계사용이 늘어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철도 체계는 인도에서 틀림없이 현대 공업의 선구자가 될 것이다.”(인도423) 맑스는 철도로 인해 생겨나는 현대공업이 인도의 세습적 카스트제도에까지 영향을 주리라고 예상한다.(인도424)
맑스의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식민지 경영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제국주의 논리라고 비난받을 소지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친일파들에게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거부반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맑스가 순진하게도 생산력의 발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맥락을 보면 단순히 거부만 할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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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영국의 진보적 성과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 인도에 초래한 파괴적 효과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명의 지독한 위선과 그 고유의 야만성은, 이 문명이 점잖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본국으로부터 이 문명이 발가벗은 채로 있는 식민지로 시선을 돌릴 때 우리 눈앞에 여실히 드러난다.”(인도425) “유럽만큼 광대하여 면적이 1억 5천만 에이커나 되는 이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해 볼 때, 영국 공업이 안겨다 준 파괴적 영향들은 명약관화하며 엄청나다.”(인도425)
또한 맑스는 인도의 생산력 발전이 무조건 인도 민중의 해방으로 귀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철도를 비롯한 생산력 발전의 의의를 강조한 것은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영국의 부르주아지는 인도에서도 단지 해방을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만드는 데에 머물 뿐인 것이다. “영국의 부르주아지는 마지못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겠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인민 대중을 해방시키지도 못할 것이고 그들의 사회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과 개선은 생산력의 발전 여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산력들이 인민의 것으로 되느냐 않느냐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림없이 하게 될 일은 이 해방과 개선을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르주아지가 이 이상의 일을 한 적이 있는가? 부르주아지가 개인과 민족 전체를 몽땅 피와 진흙, 비참과 타락 속으로 끌고 가지 않고서 진보를 이룩한 적이 있는가?(인도424)
이 경우 어떻게 하면 “이 생산력들이 인민의 것으로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맑스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그것을 그가 영국 자체의 프롤레타리아트와도 관련짓는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영제국 자체에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의 지배계급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되든지 아니면 인도인 자신이 충분히 강해져서 영국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던지게 되든지 하기 전에는, 인도인은 영국의 부르주아지가 그들 속에 심어 놓은 새로운 사회의 요소들의 과실들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인도424)
맑스는 자본주의 발전 및 인도의 식민지상태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이 새로운 세계, 곧 사회주의 세계의 물질적 토대를 창조한다는 데에 의의를 둘 뿐이다. “역사의 부르주아 시대는 새로운 세계의 물질적 토대를 창조해야 한다. 한편으로 인류의 상호의존 위에 수립되는 세계적 교류와 그 교류의 수단을 만들어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물질적 생산을 자연력의 과학적 지배로 전화시켜야 한다.”(인도425-426) “부르주아지의 공업과 상업은 새로운 세계의 이 물질적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에 위대한 사회혁명이 일어나 이 부르주아 시대의 성과인 세계시장과 현대적 생산력을 장악하고 그것을 가장 선진적인 각국 인민의 공동 관리 하에 두게 될 때, 그때에 비로소 인류의 진보는 맛좋은 술이라도 피살자의 두개골로 만든 것이 아니면 마시려 하지 않는 저 소름끼치는 이교도의 우상을 더 이상 닮지 않을 것이다.”(인도426) 이때 인도 인민도 “가장 선진적인 각국 인민”에 포함되어 “공동 관리”에서 합당한 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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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가 인도를 상대로 영국이 자행한 야만행위에 대해 조금도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은 세포이 병사들의 반란에 대한 평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세포이 병사들의 행위가 아무리 혐오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국이 동방 제국을 건설할 때 자행한 짓뿐만 아니라 긴 지배를 거친 뒤의 최근 10년 동안에 자행한 짓들도 포함하는 영국 자신의 인도에서의 행위가 압축적 형태로 반영된 것일 뿐이다. 그 지배의 특징을 나타내려면 고문이 그 재정정책의 유기적인 한 제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인류 역사에는 응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 응보의 무기는 피해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해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역사적 응보의 법칙이다.”(인도438) 이 ‘역사적 응보의 법칙’이라는 개념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들도 만들어낸다’고 한 [공산당 선언]의 주장과 동일한 사고방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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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 맑스의 주장을 유럽중심주의나 생산력주의로 단언하는 것은 일면적이고 단순화된 견해라고 여겨진다. 맑스의 논의 속에 그럴 여지가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생산력 발전에 대한 맑스의 긍정적 일반론을 근거로 생산력주의를 외칠 수는 있다. 또 영국의 인도지배가 초래하는 긍정적 변화에 대한 맑스의 진술들을 친일의 알리바이로 활용하며 맑스주의를 깎아내리는 것은 자유다. 어떤 이론이든 이데올로기적 악용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악용에 맞서는 것도 이론의 주요 과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