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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잡는 아버지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읽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를 읽고, 바우의 입장, 경환이의 입장, 바우 아버지의 입장, 이렇게 주요 인물 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바우와 경환이의 싸움이 이야기의 주요 사건이기 때문에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도 생각해보았다. 나는 바우나 경환이나, 둘다 유치한 심술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기에, 둘 다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온 경환이의 잘난척이 마음에 안든 바우는 나비를 잡고 있는 것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바우의 행동에 화가 난 경환이는 괜히 심술이나, 바우네 밭에 들어가서 일부러 농사를 망치면서 나비를 잡는 척 했다. 이런 행동이 바우를 더욱 더 화가 나게 했다. 하지만 당시 그 시대엔 땅 주인과, 땅을 빌려 쓰는 사람으로 갑과 을이 확실하게 구분되 있었다. 경환이네가 땅 주인이였고, 바우네가 경환이네에게 땅을 빌려 쓰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우네는 경환이네에게 항상 잘 보여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경환이는 바우에게 화가 나 바우네가 경환이네에게 나비를 잡아다 주지 않으면 땅을 빌려 주지 않겠다고 했다. 바우네 부모님은 바우에게 나비를 잡아다 경환이에게 주고 무릎 꿇고 싹싹 빌라고 했다. 하지만 바우의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았고, 바우는 끝까지 나비를 잡아다 주지 않았다. 그러다 나비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였다. 이를 보고 바우는 경환이가 나비를 잡나 보다, 하고 코웃음 치며 다가갔다. 더 다가가 보니 덩치가 큰 어른이 나비를 잡고 있는 것이였다. 그래서 바우는 경환이가 머슴을 시켜 나비를 잡게 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더 다가갔다. 그러자 불편한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힘들게 나비를 잡고 계시는 자기 아버지가 보였다. 갑자기 울컥해지고 뭉클해진 바우는 아버지를 부르면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누구나 이런 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경환이만 나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환이의 입장으로 이야기가 전개 됬다면, 경환이 또한 억울했을 것이다. 학교숙제로 나비를 잡고 있는데 바우가 와서 방해하니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경환이는 복수 한 것이고 또 이에 화가 난 바우는 경환이와 싸우게 된다. 바우는 자기 집이 땅이 있고 땅을 빌려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땅을 빌려 쓰는 주제에 나에게 덤비고 방해하니 경환이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이젠 바우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바우네 아버지는 겉으로는 따끔하게 바우를 혼내며 나비를 잡아다 주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이기에, 아버지기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땅을 계속 빌려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존심이 쎈 바우는 나비를 잡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직접 나비를 잡으셨다. 이렇게 보면 엄격한 아버지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라고도 볼수 있다. 이렇게 주인공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며 책을 읽었더니, 금새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한 사람의 입장만 보고 이야기를 이해한것이 아니라 모두의 입장을 생각해 보며 읽는 것이 효과적인 책 읽기 방법인 것 같다.
홍길동전
오늘은 생애 처음으로 홍길동전을 읽어보았다.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었기에 더욱 더 깊이 빠져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홍길동이 도술을 하며 부패한 부자들을 잡아 그의 재산을 가난한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는 그런 도술들을 펼쳤다. 자연을 거느리고, 축지법을 쓰며 분신술까지 써 악의 무리들을 처단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홍길동을 의적이라 부른 지는 못할 망정 나라에서는 그를 도적이라 하며 어떻게든 처단하려 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신을 잡으리. 홍길동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계속해서 악의 무리들을 처단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러워 하고 왕이 노발대발하며 홍길동을 잡으려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왕이 세상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홍길동이 잡은 사람들이 일반 시민이 아니라 무고하고 가난한 시민들의 재산을 강제로 가져가는 그런 부패한 부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홍길동을 싫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왕은 그런 것도 모르고 홍길동을 도적이라고 전국에 알리니 홍길동은 점점 불리해졌다. 그러다 왕은 홍길동의 효심을 이용해 가족을 잡아다 홍길동을 잡으려 했다. 홍길동의 아버지와 형의 사정으로 홍길동은 그런 일을 그만두고 나라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이런 홍길동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자기를 죽이려 했던 나라에게 가서 자기의 힘을 보태주는 홍길동은 정말 마음씨가 선한 것 같다.
육촌형
오늘은 '육촌형'이라는 책을 읽었다. 육촌 형에서는 등장인물이 정말 많다. 그래서 주인공들을 모두 종이에 적어가며 읽어보았다. 등장인물들의 관계까지 적으며 책을 읽고 나니, 적지 않은 것보다 훨씬 주인공들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귀찮은 부분도 있었지만 귀찮았던 만큼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에는 크게 음실과 양짓말 아이들로 나뉘어져 있다. 3명의 아이들이 가가 음실과 양짓말로 전학생으로 오면서 사건이 일어났다. 양짓말에 전학온, 손비연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별명이 오토바이였다. 음실에는 유세아와 홍철식이 전학 왔다. 부잣집의 아들 유세아와, 유세아네가 운영하는 목장의 관리인의 아들 홍철식까지. 둘은 이런 관계가 있었다. 홍철식은 탱크 같은 덩치 때문에 별명이 홍 탱크였고, 홍탱크는 유세아의 경호원인 듯 유세아를 보호했다. 유세아는 홍탱크만 믿고 자기가 왕인듯이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거느리고 다녔다. 아이들 모두 독재자 같은 전학생들을 싫어했다. 어느날 전학생들끼리 싸움이 났다. 그 후로부터 음실 아이들과 양짓말 아이들은 각 마을의 대표 오토바이와, 유세아 홍탱크를 따라 적대 관계가 되었다. 나는 이런 전학생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들의 힘만 믿고 이렇게 덤비는 애들이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같이 힘을 합치면 아무리 힘이 쎄더라도 밀릴 수 밖에 없을 테지만 아이들은 순순히 그런 전학생들을 따랐디. 왜 아이들은 그런 애들한테 눌려 자신이 불편한 해동을 할까? 만약 나였다면 나 혼자라도 그런 애들한테 반항했을 것이다. 어쨌든 다른 마을에 사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육촌 형끼리 싸움이 났다. 아니 싸움을 대표들이 억지로 붙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화가 났다. 왜 자기들이 뭔데 평범한 학생들을 싸움을 붙이나, 하고 화가 났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육촌 끼리 싸움을 붙였다. 그냥 전학생들끼리 싸운 것 같고 굳이 마을의 모든 아이들까지 적대 관계가 되야 하는가. 하지만 이때 육촌 형이 싸우지 않고 전학생들에게 맞섰다. 처음에는 아무도 형을 따르지 않았지만 하나 둘 씩 육촌향 주위로 몰려들어 다같이 맞섰다. 이 부분이 정말 통쾌했다. 딱 내가 원했던 장면이였다. 만약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맞설 것이다.
동백 꽃
오늘은 동백꽃을 읽어보았다. 동백꽃 이야기를 읽기 전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자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걸 알고 이야기를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것과 내용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의 주요 사건은 감자 사건이다. 감자 사건은 점순이가 주인공에게 감자를 건냈다 주인공이 받지 않자 점순이가 화를 내며 계속해서 주인공을 괴롭히게 된 사건이다. 나는 감자 안 받은 것 같고 왜 이렇게 점순이가 화를 내나 하며 의아했다. 점순이는 굉징히 민감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순이는 주인공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였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감자로 표현했는데 주인공이 그걸 몰라주기에 화를 낸 것이였다. 그렇게 마음 표현을 하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점순이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확실하게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그렇게 화를 내니 주인공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소설의 화자 말하는 이는 멍청한 사람을 화자로 잡아야 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만약 화자가 점순이였다면 점순이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이에게 다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을 읽으면서 읽는 이가 생각할 것이 없는, 재미없는 소설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 같이 점순이의 마음을 몰랐다면 당황한 마음만을 읽는 이에게 표현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읽는 이가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소설 하나 쓰는 것도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이야기 끝에 점순이가 감자 사건보단 더 확실하게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점순이의 닭을 죽이니까 점순이는 안 말할 태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생각할 것이 많았던 재미있는 소설이였던 것 같다.
소음공해
오늘은 소음공해르 읽었다. 제목 '소음공해'를 보자마자 바로 낯익은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주택에 살고 있지만 주택으로 이사오기 전 나는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 때는 딱 중간 층에 살았고 나, 동생 모두 어려, 한창 뛰어놀기를 좋아할 나이였다. 그래서 소음공해를 이웃들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었다. 꼭 위층에서만이 아니라 아파트는 소리가 울리기에 아래층, 같은 층, 모두 소리가 나면 우리에겐 소음공해로 돌아왔다. 이야기에서는 위층의 소음공해로 인해 차지 못한 주인공이 전화를 하다하다, 결국 위층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윗집 사람이 나오고 그녀의 모습을 본 주인공은 놀랐다. 휠체어를 타고 하반신이 없던 그녀는 당연히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주이공은 소리를 줄여달라는 겸 슬리퍼를 선물로 들고왔다. 하지만, 슬리퍼는 오직 발이 있는 사람만을 위한 선물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선물에 대해 미안한 마음에 어서 슬리퍼를 감추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슬리퍼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면? 주인공이 직접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이라 마음에 들어 했다면? 그러면 조금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주인공이 슬리퍼를 준비한 이유를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서로 간의 감정이 더 나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모두가 1번씩은 있을 것이다. 가족이든, 친구든, 오해로 인해 사이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오해를 하기전에 서로의 이야기가 잘 맞아야 오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아리
오늘은 <항아리>를 써본다. <항이리>는 정말 작은 희망으로 끊임없이 기다리다 결국에는 꿈을 이루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항아리다. 항아리는 젊은이가 시골에 올라와서 처음 만든 항아리다. 첫 작품이라 젊은이는 기대한 모양이 아니라 실망했다. 그래서 그 차가운 눈초리에 항아리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창고 구석에서 잊혀지며 먼지 쌓이는 자기 모습에 실망한다. 항아리는 무언가에 쓰이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다 어느날 젊은이는 항아리를 땅에 묻어 놓는다. 땅에 묻힌 항아리는 오줌독으로 쓰였다. 항아리는 자기가 너무 처량하고 슬프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몸에 오줌이 쌓이고 겨울을 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자기를 만든 젊은이도 늙은 독 짓는 노인으로 병마로 인해 죽었다. 어느 날, 여러 사람들이 와서 집을 지었다. 그 집은 아주 큰 절이였다. 그 절의 승이 와서 땅을 파다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항아리는 승이 종의 소리를 더 아름답게 하는 종각으로 썼다. 자기 아버지가 만든 항아리라는 것을 깨닫고 둔탁한 소리를 내던 종의 소리를 맑게 했다. 이렇게 항아리는 정말 작은 희망으로 그 오랜 시간을 버텨 꿈을 이뤘다.
그런데 나는 항아리 주인이 항아리를 오줌독으로 썼을 때, 항아리는 자기가 쓸모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주인이 항아리를 아꼈기 때문에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줌독으로 썼다고 생각했다.
수난이대
오늘은 <수난이대>라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은 만도고, 돌아오는 자기 아들을 보러 가는 내용이다.
만도는 옛날에 섬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 팔을 잃었다. 산에 굴을 뚫기 위해 다이너마트를 설치하고 불을 붙인 후 뛰처나오던 중 공습이 일어났다. 깜짝 놀란 만도는 다시 산에 들어갔다 폭발과 함께 팔을 잃었다.
그런데 아들을 만나는 순간 다리를 잃은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기도 팔을 잃었는데 아들에 이어 다리까지 잃었다. 만도는 화가 나고 억울해서 아무 말 없이 길을 간다. 주막집에 들러서도 항상 하던 장난도 하지 않고 아들과 아무 말 없이 먹을 것을 먹었다. 만도는 아들을 만나러 가던 길에 고등어를 샀었는데 이 고등어로 아들과 아빠 사이의 서먹함이 없어졌다. 고등어는 저자가 아빠와 아들 사이를 다시 붙여 놓기 위한 소재로 쓴 것 같다. 또 아빠와 아들이 집에 가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상황에 처 했는데 그 외나무 다리를 둘이 힘을 합해 건넌다. 팔이 한 쪽 밖에 없는 아빠는 아들을 없고 아들은 다리가 없으니 아빠에게 업히고 고등어를 들어드린다. 이렇게 '외나무다리'라는 소재도 아빠와 아들이 힘을 합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그 외나무다리 앞에는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있었다. 그 용머리재는 외나무다리를 둘이 힘을 합쳐 건넛듯이 둘이 힘을 합치면 그 동산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뜻이 담겨 있다.
수난이대는 아빠가 아들을 아끼는 마음과 아들이 아빠에 대해 생각하고 배려하는 효자심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어색함을 없애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학
오늘은 <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학은 두 친구 사이의 우정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이름은 성삼이와 덕재다. 성삼이와 덕재는 북한에 있다가 성삼이는 남한으로 넘어왔지만 덕재는 병든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 북한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성삼이는 남한의 경찰이 되어 잡혀온 농민 동맹 부위원장인 자기 오랜 친구 덕재를 봤다. 성삼이는 깜짝 놀라 덕재를 봤다. 그리고 자기가 덕재를 데려 가겠다고 했다. 덕재와 함께 가는 동안 성삼이는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사람을 몇명 죽였냐고 묻자 덕재는 한명도 죽인적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 된 것도 원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성삼이는 덕재에 관한 오해가 풀렸다. 그래서 아내는 있냐는 등 개인적인 것들도 물어보게 됬다. 이렇게 걷다 학 무리를 보았다. 성삼이는 학 무리를 보자 어렸을 적 덕재와 함께 학 사냥 했던 것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학을 한마리 잡아다 괴롭히며 놀았는데 어느날 한 사람이 국가에서 허락을 받고 학을 총으로 사냥 해 가려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성삼이와 덕재는 얼른 자기가 잡아둔 학을 풀어줬다. 하지만, 오랜 시간 묶여 있던 탓에 학은 날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성삼이와 덕재는 얼른 날아가라고 부추기다 다른 학 마리가 나타나자 같이 날아갔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자 성삼이는 덕재가 묶여있던 포승 줄을 풀고 학을 잡을테니 학을 몰아오라고 했다. 성삼이는 덕재를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성삼이는 친한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적을 풀어줬다.
나라면 이러지 못했을 것 같다. 둘은 정말 친한 친구였던 것 같다.
기억 속의 들꽃
오늘은 <기억 속의 들꽃>을 한번 더 읽어보았다. 처음 읽은 것보다는 이해가 잘 되었다.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나만 이해가 됬다.
<기억 속의 들꽃>은 전쟁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이야기였다. 전쟁 때문에 명선이가 고아가 되어 주인공 집에 가게 되고 비행기의 폭음 때문에 명순이가 떨어져 죽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명순이의 엄마가 죽게 되기도 했다. 명순이는 숙부 집에서 지내다 자신을 죽이려던 숙부를 피해 주인공 집에 오게 되었다. 숙부가 명순이를 죽이려 한 이유는 명순이는 부자집 자식이고 금 가락지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죽이려 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명순이는 이 금가락지를 아무에게도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서 명순이는 처음에 염치 없는 아이였지만 나중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명선이가 금가락지 주머니를 숨겨서 주인공이 그 주머니를 찾을 수 있게 그 주위를 서성거렸다. 명순이는 주인공 정도의 아이면 그 금가락지를 줘도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은 <기억 속의 들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억속의 명순이와 같다. 들꽃, 쥐바라송꽃은 주인공이 지어낸 이름이다. 그리고 이 꽆은 어려운 환경에서 위태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명순이와의 공통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 이야기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전쟁' 이 소재가 주요 소재인 것 같다. 전쟁으로 인해 친구가 죽었다고 볼수 도 있다. 그래서 주제는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라는 것이 주제 같다.
흥부전 (이 박을 타거들랑 밥 한통만 나오너라)
오늘은 흥부전을 읽었다. 흥부전이 내가 읽은 흥부전 내용과 조금 달랐다. 알고 있는 내용으로는 흥부가 놀부에게 쫗겨났다가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 주어 부자가 된 내용까지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몰랐던 이야기까지 나와 있었다. 흥부가 놀부에게 쫏겨난 것을 보면 놀부는 굉장히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다. 반대로 쫒겨나면서도 놀부에게 복을 빌어주는 흥부를 보면 굉장히 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쫒겨난 흥부는 돈이 필요해 곤장을 대신 맞는다. 곤장을 대신 맞고 돈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 형벌이 곤장이였고, 형벌을 대신 받을 수 있었던 시기이다. 굉장히 오래전의 시간적 배경에서 이야기가 흐른다. 어쨌든 제비가 흥부 집에 찾아온다. 제비가 찾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던 흥부의 모습을 보면 제비는 굉장히 좋은 의미의 동물이였던 것 같다. 어느날, 제비의 다리가 부러지고 그 다리를 흥부가 고쳐주자 제비가 은혜를 갚기 위해 보은표를 갖다준다. 보은표에서는 환혼주, 개안주, 능언주, 불사약 등 이 시대에도 이런 약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부가 부자가 되자 놀부는 자기도 부자가 되려고, 악행을 저지른다. 그래서 큰 벌을 받는다. 이렇게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든다는 이야기가 흥부전이 써진 시대보다 더 오래전부터 내려왔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꼭 놀부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재산을 상속받으면 자신이 독차지하고 싶어한다. 놀부는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고 흥부는 굉장히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였을 뿐이다. 놀부를 흥부랑 비교하면 나쁜 사람이라 볼 수 있지만 놀부를 우리 주위 사람과 비교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산 상속 때문에 형재자매끼리 법정도 가는데 놀부에게만 이렇게 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약방할매
오늘은 약방할매 라는 책을 읽었다. 뭔가 허무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책 초반 부분을 읽을 때에는 약방할매가 실존 인물인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은 엄마가 약방할매를 만나러 간다, 라고 말하면 굉장히 좋아했다.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어디든 무엇이든 좋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약방할매만 만나면 좋아진다고 믿었다. 엄마를 치료해준다고 생각했다.
책 후반에 읽었을 때는 약방 할매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항상 언덕 위에 앉아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외롭거나 지칠 때 스스로 달랠 무언가가 약방 할매였다. 그래서 나는 왜 엄마가 아빠가 집에 자주 있을 때는 약방 할매를 만나러 가지 않고, 아빠가 술독이 있을 때는 약방 할매를 만나러 갔는지 알았다. 나에게는 약방 할매란 학교인 것 같다. 학원 때문에 지치고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고 지쳐도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면 다시 모든 것이 좋아진다.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 생활도 하면 어제 일이 다 잊을 수 있게 되고 좋아진다.
사람들도 자기만의 약방할매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을 것이고 긍정적일 것이다. 지금 우리 중학생들의 대부분의 약방 할매는 PC방 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게임을 해서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거나 스스로를 달래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산탈출
광산탈출. 저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만 봐도 광산이라는 곳이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곳이라면 탈출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산'하면 답답하고, 덥고, 불법 채류자들이 힘들게 일하는 곳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밤인지 낮인지 구별도 못한 채로 일하고 쉬고를 반복할 뿐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곳에서 일한다면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둠속에서도 희망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 희망이 아무 생각 없는 노동자들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미 희망을 잃은 사람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의 희망은 타이바라는 한명의 소년과, 희망을 잃은 이는 부티이며 주인공입니다. 부티는 오랜 시간 광산에서 일해왔고, 새로운 신병들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파파 마부소라는 권력자에게 신뢰를 받고 하는 역할이였습니다. 4에서 5달 동안 광산에서 일하면 잠깐 지상위로 올라옵니다. 어느 정도 역할이 있는 부티는 자유를 누립니다. 파파 마부소의 딸 카테카니와 어울려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날, 리쿠르트(신병) 중 특이한 리쿠르트 한명을 관리하게 됩니다. 바로 희망찬 빛 타이바입니다. 타이바는 말이 많고 광산에서 떠도는 전설 '스파이크 마부소' 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산을 탈출해 자신을 불법으로 강제 노동시킨 신디게이트를 체포시킵니다. 그리고 자마자마, 광산 노동자들을 풀어주는데 생을 바치고 있다는 전설입니다.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타이바는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타이바의 설득 끝에 꽉 막힌 주인공도 스파이크를 찾아 나가고 결국 찾습니다. 이 책은 불법 채류자들이 어쩌지도 못하고 광산에서 힘들게 돈을 벌고 있는 배경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리고 다쳐도 그냥 둡니다. 돈, 이 돈이라는 것을 벌기 위해 사람의 인권을 이렇게 침해할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너무나도 극악한 환경,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폐광, 경비들과의 총 싸움, 좋지 않은 공기, 등 불안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다 보니 사람들은 기계가 되어 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일, 휴식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런 곳에 항상 긍정적인 타이바가 오고 기계는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작가는 희망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극악한 환경이 있고, 죽을 정도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챇을 읽으며 저자가 원하는 것을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곳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지금 만큼은 이런 환경이 없어졌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 살고 있으면 얼마나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지 느껴봤으면 합니다.
우리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항상 생각해주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무라이스 잼잼
<오무라이스 잼잼>,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가지의 음식을 담은 만화책이다. 저자의 일생활을 음식과 연관지어 재미있고 사실적이게 그려놓은 이 만화책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림도 정말 섬셰하고 세밀하게 그려놨으며, 맛에 대한 감상도 구체적이여서 먹방 방송을 보는 듯 했다. 매 차례마다 처음에는 가족 생활로 시작하다 점차 음식으로 연결되어 그 음식의 유래,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만들고 먹어본 느낌을 쓴다. 스스로 만들어본 음식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변신 크림스프>, <등교길에 소시지빵이 있더라>, <수제비 4개요~>, <참치통조림은 우리들 맘대로>, <불고기 코리아>,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그곳 토루코라이스>, <우리집은 하얀색 안동찜닭>, <저글링 박 VS 북경오리구이>, <인간은 팝콘을 튀기는 동물이다>, <어묵볶음이 좋은 3가지 이유>, <코코아빛 칼라교정지>, <프랭크 로이드 '돌솥밥' 라이트>, <우리집 붕어빵은 귀에도 팥이?!>, <사이다처럼 자라주려무나>, <외할아버지 순두부>, <맥스와 나 그리고 캔스파케티>, <곤드레밥 만세!>, <돌돌이는 에스카라고를 싫어해!!>, <서울랜드 짬뽕밥 개시!>, <식빵은 오토 프레데릭 로웨더 씨가 만드셨다>, <119 구호식량>, <홍콩 불고기 버거>, <아들이 사다준 커피우유>.
이것이 이 책에 들어있는 모든 이야기다. 이중 <등교길에 소시지빵이 있더라>를 예로 들어 이야기의 구성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한 가족의 아빠로서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다. 딸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학교가 있고 학교 반대쪽으로 10분 거리에 아들 유치원이 있다. 각각 왕복 20분으로 아이들 등교하러 바래다 주는 데만 40분이 걸린다. 저자의 아내는 지쳐 저자가 1년 동안 대신 대려다 주기로 한다.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동안 빵집의 소시지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소시지빵을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소시지를 반죽으로 감싸고 세로로 완전히 잘리지 않게 자른 다음 가지런히 펴서 오븐에 굽는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주 먹음직스럽고 디테일하게 그려놓은 소시지빵의 종류가 있다. 파삭파삭하게 파이처럼 구운 빵에 소시지를 얹은 소시지 빵, 도너츠처럼 쫄깃하게 튀겨 한 입 베어물면 기름이 줄줄 흐르는 소시지빵이라던가, 말랑말랑빵에 돌돌 말린 것과, 비엔나 소세지를 넣은 미니버전, 그리고 소시지나 햄을 넣어 동그란 은박지로 감싸 구운 빵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 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저자는 학교 매점에 들어가서 빵을 사 먹어보는 소감까지 쓰고 이 작은 이야기를 마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도 나는 감명을 받았다. 바로 <119 구호식량>이다. 119 구호식량 중 콘 소야 블랜드라는 음식이 있다. 한끼에 250원으로 정말 낮은 가격의 음식이다. 4000원의 커피 한잔을 마시면 16끼의 콘 소야 블랜드른 사먹을 수 있다. 4 가족을 먹일 수 있는 가격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이야기는 <홍콩 불고기 버거>이다. 그 이유는 그림을 너무 잘 그려놨기 때문이다. 불고기버거, 노북경 트위스트, 스키야키버거. 그리고 맥도널드 음식, 인도를 위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넣지 않은 마하자라 맥, 감자와 콩으로 만든 패티를 넣은 채시거거 맥알루티키, 맥스파게티, 맥아라비아, 맥터코, 맥파라펠, 맥토스트, 크로크 맥도, 베이컨 롤, 맥크로킷, 맥 취리히, 맥립, 맥이베로코, 맥이태리, 사이민, 프랜치므라이 푸틴, 맥랍스터, 맥몰리에테, 맥부리또, 맥핀토, 베이컨&에그 맥머핀, 키위버거, 바나나파이, 단팥파이, 타로파이, 베이컨&으깬감자 파이, 커스타드&민스미트 파이, 스모어 파이, 쿠키&크림 파이, 맥카롱, 맥비어, 맥와인 등 정말 정말 미치도록 먹고 싶게 그려놨다. 꼭 이 음식들을 찾아보고 먹어보고 싶다.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어묵볶음이 좋은 3가지 이유>이다. 어묵의 유래가 신기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는 생선을 무척 좋아했는데 생선 가시는 무지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진시황은 밥 먹다가 가시라도 나오면 주방장이 자신의 목에 가시를 집어넣으려 했다는 죄목으로 바로 목을 쳤다. 그런데 이렇게 죽은 주방장이 한둘이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진시황제가 꼭 생선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만에 하나 가시라도 들어가면 바로 죽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고민하던 주방장은 도마 위의 생선을 계속 칼로 내리쳤다. 한동안 그러고 있었는데 생선살이 으깨지면서 가시가 자동으로 발라졌다. 이 으깬 살을 곱게 빚어 만든 경단으로 탕을 끓여 황제께 올렸다. 진시황제는 인류 최초로 어묵을 먹고 그 요리사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어묵은 중국에서 국민간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잘 팔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묵과 오뎅의 아주 큰 차이가 있단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묵은 생선살을 발라 으꼐서 만든 생선묵을 말한다. 하지만 오뎅은 어묵, 무, 곤약, 유뷰, 삶은 계란 등 보글보글 끓인 탕 요리를 말한다. 즉 어묵은 재료고 오뎅은 요리인 것이다.
<참치 통조림은 우리 맘대로>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였다. 나는 원래부터 통조림에는 참치 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20세기 초까지 정어리 통조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대류가 북상해서 정어리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쓸 데없이 몸만 크고 기름져 맛도 없고, 빨간 피가 뚝뚝 떨어져서 식욕도 안 도는 참치가 잡히게 되었다. 미리 만들어둔 산더미 같이 쌓인 깡통에 뭐라도 넣으려고 참치를 잡아왔다. 스포츠 낚시용으로 잡곤 했던 참치는 당시 서양에서 먹을거리로는 비호감이였었다고 한다. 그러다 참치를 쪄보고 기름기가 빠지고 맛도 무지 담백해져서 대박 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여러 시도를 해보고 안될 것 같은 음식으로도 시도를 해보면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끼전
내가 읽은 <토끼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토끼 이야기와는 약간 다르다. 조금 더 세부적이고 사건이 많고 흥미진진하다. 자라가 토끼를 끌고 용궁에 가서 간을 빼려다 실패한 사건이 주요 사건이지만 <토끼전>에서는 더 많은 사건이 나온다. 용왕은 최근 술과 여자를 지나치게 가까이 하여 간이 놀라 병이 난 것이였다. 그렇기에 해와 달의 기운이 한 몸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어야만 병이 낫는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토끼의 간이 아주 좋은 보양식이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토끼의 간이 그렇게 좋은 음식이라고 대접 받았을까? 어찌됬든 겨우겨우 토끼를 속여 데려가지만 토끼는 꾀를 부려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상으로 올라온 토끼는 올라오자마자 인간의 덫에 잡힌다. 이번에도 꾀를 부려 도망가가 독수리에게 다시 한번 잡히지만 또 한번 꾀를 부려 도망친다. 정말 얍삽하지만 세상 살기에는 최고인 것 같다. 나쁜 토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나쁘지 않다. 요즘 세상 살 때는 토끼 같은 사람이 잘 살 것 같다. 토끼의 꾀로 용왕은 죽고 충신이였던 자라도 자결한다. 토끼가 죽지 않도록 응원한 사람에게는 해피엔딩이였을 만한 이야기지만 용왕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응원한 사람들에게는 슬픈 앤딩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라를 응원했다. 끝까지 토끼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토끼의 간을 잡았으면 좋아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자라는 신하였기에 용왕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자라는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물이였지만 불운한 인물이였던것 같다.
첫댓글 엄청 나게 썻네 역시 여준혁 같ㄱ크랏스
무엇을 엄청나게 쓰었느냐 나보다는 없는것 같구나 여준혁꼬때야
그래도 다시 보니까 많네
아직 나보다는 클라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