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의 리가 방문기
라트비아의 리가에 도착하여 에스페란티스토들을 만나 저녁을 함께한 후 Westa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니 6시 정도가 되었고, 방을 정돈하고 8시경에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가 제법 먹음직하게 차려져 있었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호텔을 체크아웃 한 후 근처에 있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러갔다.
스탈린이 지어준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10시경에 만나기로한 장소인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한 분인 아리스를 만났다.
광장에는 초병 두 명이 자리 잡고 서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모여 있었다.
만나기로한 분은 대학에서 일 하다가 퇴직하셨는데 계속 사무실에 나가시는 분으로 이름은 Aivars이다. 다시 만나 호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분수가 있는 건물을 지나 박물관이 있는 거리 등을 지나다가 러시아 정교회 대성당이 보이는 곳을 지나 구도시로 들어갔다.
화약 탑과 스웨덴 문, 3형제건물, 고양이모양이 지붕 위에 있는 건물, 대통령궁 등을 찾아 본 후에 한국식당인 Soraksan을 찾았다.
길안내를 해 주고 있는 두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점심 대접을 한국음식으로 해 주려고.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그것만 나오고 국물도 없다.
그러나 값은 거의 10유로에 가까운데 이곳 사람들에겐 벅찬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두 분은 비빔밥 한 그릇을 나눠드시겠단다. 낮선 음식이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겠고 해서.
아리스는 고추장에 비벼서 드시더니 흡족해하시고 아이바르스도 간장으로 비벼서 드시면서 새로운 음식을 처음 맛보았다고 하신다.
2시경에 약속이 있는 아리스와 먼저 작별한 후 피터성당과 시청사 앞에 있는 검은머리전당 건물을 본 후에 아이바르스가 근무하는 대학 사무실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사무실을 나와 한국말을 하는 패션 디자이너 나탈리아의 사무실에 들렀다.
그녀는 남편이 한인 교포인데 한국말은 못 한다고 하며, 시어머니가 부산에 살고계시지만 일본어를 많이 섞어서 얘기하신다고 전했다.
한국어학당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어서 인지 한국말 사용이 능숙하며 한국음식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어제는 길 찾기를 어려워하고 있던 한국인에게 길을 잘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 녀와 헤어진 후 근처의 커다란 건물 앞에 있는 rimi에서 물과 음식을 구매한 후 버스터미널에서 길안내를 해 준 아이바르스와 헤어진 후 16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빌뉴스로 향했다.
라트비아 - 리가
고딕, 바르크, 고전주의 등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 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여행지라서 더욱 특별하고 들릴만한 가치가있는 여행지이다! 구시가지 관광은 필수이고, 123m의 첨탑을 보유하고 있는 피터대성당, 여행자나 무역 상인들이 머무는 동안 연회장소로 사용되었던 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검은머리전당, 석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삼형제, 라트비아의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스웨덴사람들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세웠다던 스웨덴의 문도 있다!
유럽 최고의 아르누보 도시로 알려진 이곳은 중세 유럽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994년 UNESCO(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리가의 역사 지구는 물론, 800채가 넘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까지 정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우리나라 면적 반 정도의 규모를 가진 작은 나라이지만, 라트비아 바로 옆에 있는 두 나라,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서 나름 경제와 행정의 중심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활기찬 분위기를 가진 나라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리가는 2013년 Travellers(트래블러스)가 선택한 아름다운 도시이며 여러 나라의 침략으로 굴곡 많았던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잘 어울려져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발트 3국의 중앙에 위치한 라트비아. 에스토니와 같이 발트 3국을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로 1991년 구소련연방 해체와 함께 생긴 신생 국가 중 하나이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동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처럼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도시이다
라트비아 수도는 리가 공용어는 라트비아어 이다. 인종구성을 살펴보면 라트비아인이 62.1% 러시아인 26.9% 벨로루시인 3.3% 등으로 라트비아인이 가장 많다. 하지만 전 구소련 국가답게 러시아인도 꽤 많은 편이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비슷하게 수많은 주위 강대국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러시아로부터 침략을 받았었고, 독일의 침략도 받았었다.
그렇게 다른 나의 침략을 받다가 1991년 구소련 해체와 함께 드디어 라트비아도 독립을 하게 되었다.
라트비아의 1인당 GDP를 살펴보면 가장 동유럽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에스토니아와는 다르게 경제 상황은 썩 좋지 않다. 2008년 경제위기 때 나라가 부도위기까지 갔었고, 지금도 경제가 좋지 않다. 1인당 구매력 GDP는 14,460달러로 한국의 절반이 채 안되고 1인당 명목 GDP의 경우는 10,694달러로 역시 한국 1인당 GDP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시작한 에스토니아와도 지금은 꽤 격차가 나는 편이다.
라트비아의 인구 제 1의 도시는 리가로 약 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인데,
인구의 약 1/3이 살고 있는 라트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리가의 평균 날씨 그래프를 보면 한국보다 평균기온이 낮다. 12월~ 3월까지 평균 기온이 영하권이라서 매우 추운 날씨를 보여주는 리가의 날씨이다.
라트비아 리가를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정도로 날씨가 한국의 봄, 가을 날씨로
날씨가 매우 포근하다.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답게, 한여름 기온이 12~21.7 도 분포로
매우 포근한 날씨를 보인다. 대신에 리가의 겨울은 한국보다 길고 약간 더 춥다.
그래도 라트비아 리가는 바다를 낀 해양성 기후라 내륙의 러시아보다 연교차가 작은 편이다.
라트비아 리가의 구시가지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색감이 핑크, 노랑, 하늘색 등으로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리가의 구시가지 이다.
보통 동유럽 국가에 포함되지만, 때때로 북유럽 국가에 포함이 되기도 한다.
라트비아 역시 다른 발트3국처럼 친 서방노선을 걷고 있는 구소련 국가 중 하나이다.
역시나 라트비아는 2004년도에 유럽연합에 가입해서 더욱 서유럽 국가와 더욱 가까워졌다.
Art Nouveau(아르누보) 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서유럽 전역 및 미국에까지 넓게 퍼졌던 장식적 양식. 아르 누보라는 명칭은 1895년 파리에서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1863~1957)가 내부 장식한 빙Siegfried Bing의 공예품점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르 누보의 탄생은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중세적인 수공예 정신의 복귀를 선언했던 모리스William Morris(1834~1896)의 미술과 공예운동, 빅토리아 시대의 인습에 반항하고 초기 르네상스의 우아함과 색채를 재생하려 했던 라파엘전파, 아카데미에 순응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비하고 계시적인 태도로 작업했던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1827) 등이 그 기원이다.
Old City Riga 리가 구시가 거리
이곳은 화재와 전쟁으로 초기 빌딩이 많이 소멸되었으나 남아있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곳이니까 구석구석 잘 살펴보는 게 좋다. 소련의 지배 때문에 구시가의 오래된 명성과 달리 조금 어색한 느낌의 건물도 볼 수 있다.
St. Peter’s Church 성 베드로 성당
구시가 전체를 볼 수 있는 St. Peter’s Church(성 베드로 성당)이다. 1209년에 처음 세워진 이곳은 형태는 카톨릭 성당같이 보이지만, 루터교 교회이며 리가의 파란만장한 세월만큼 무너지고 재건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된 곳이다. 현재 보이는 건물이 1983년 마지막으로 재건된 모습이라고 한다. 재건되는 과정에서 시대별로 다양한 양식이 반영되어 건물 외벽과 인테리어가 재미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