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에세이(4) : 을미사변 그리고 민비 또는 명성황후
1. 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는 조선을 식민지하려는 일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시모노세끼 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주권을 제거하였고 랴오동 반도와 대만 등을 할양받았던 것이다. 연이어 일본은 조선에 친일내각을 수립시켜 <홍범 14조>를 발표하게 했다. 조선의 실질적인 독립을 선포하고 왕실과 내정을 분리시키는 근대적인 개혁을 담고 있었다. ‘홍범 14조’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외세에 의한 강압적인 근대화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조선의 의지가 반영된 개혁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조선에서의 일본의 지위는 확고부동해지는 듯했다.
2. 하지만 일본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서구 열강은 주시하지만은 않았다. 러시아의 주도로 독일과 프랑스는 일본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여 ‘랴오둥 반도’ 점유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일명 ‘삼국간섭’이다. 아직 직접적으로 서구 국가와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던 일본은 굴욕적으로 요구를 받아들였다. 당시 일본에 퍼졌던 힘의 중요성과 복수에 대한 열망은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하였다. 대표적인 민주적 사상가 또한 ‘국수적인’ 일본의 힘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러시아 세력의 강화는 내각에도 친러 정치인들이 입각하게 되었으며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에 점점 의존하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일본을 대변할 박영효가 ‘역모’혐의로 내각에서 쫓겨나자 일본은 위기를 느꼈다. 정치적 상황을 급변시킬 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3. 1895년 일어난 을미사변은 일본의 폭력적이고 잔혹한 살육사건이었다. 일본의 낭인들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궁궐에 침입한 일본은 작전명을 ‘여우사냥’이라고 불렀다. 민비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궁궐에 있던 친위병을 죽이고 고종과 세자를 욕보였으며, 결국 건천궁에 있던 민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던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사건에 대한 어떤 발표도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민비의 폐비를 선언했고 새로운 왕비를 간택한다는 발표를 해야만 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고종은 참담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한 학자는 을미사변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민비시해 사건은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가 일본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즉각 전쟁의 모험을 감행할 형편이 못되었던 일본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차선의 대응책이었다.”
4. 민비 또는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한동안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었던 민비가 뛰어난 정치가이자 일본에 저항했던 항일의 인물로 등장하고 추앙의 대상으로까지 격상한 것이다. 이문열이 극본을 쓰고 윤호진이 연출한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런 변화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문열은 민비에 대한 비난을 당시의 상황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옹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척족세력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던 권력자가 다만 일본에게 희생당했다는 이유로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왕조의 멸망에 부정적인 기여를 한 것밖에는 없다. 그녀가 일본의 야만적인 국가범죄의 희생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반사적으로 희생자가 탁월한 인물로 역사에 공헌했다고 미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5.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동역자인 민비의 제거는 고종에게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고종은 항상 독살의 위험을 느꼈고 미국의 선교사들이나 러시아의 외교관들에게만 의존했다. 고종을 구출하려는 일명 <춘생문 사건>도 일어났다. 고종을 몰래 미국 공사관으로 탈출시키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패했고 일본은 친일적인 인물들을 동원하여 점차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가 고종의 <아관파천>이라는 반전을 가져온 것이다.
6. 사실 ‘민비’와 관련된 사건의 또 다른 축에는 ‘대원군’이 있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두 인물은 사적인 악연으로 얽혀 들어갔고 서로를 제거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동원했다. 국가의 위기보다는 사적인 원한이 사건의 원인이나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가의 힘이 약했던 상황에서 어떤 방안도 외세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을지라도 국가의 핵심 세력이 갈등으로 망국으로 가는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비난은 슬픈 우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양보할 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가들의 아집과 독단적 행동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현재의 정치상황도 그렇다는 점에서 위기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 권력을 누가 잡느냐? 그 앞에서는 나라도 민족도 형제도 동지도, 원칙도 정의도 체면도 없다. 힘의 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