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소야곡
https://youtube.com/watch?v=t2HKaiDWeHM&si=5f7HE7BeHtS_xlBw
흐르는 소야곡 / 전정현
비가 오는 날은 차를 마시고 싶다
갈색 커피에 양주를 한 잔 썩어서
내장을 연동시키고 싶다
비는 지금도
창문에 비친 얼굴을 긁고
나뭇잎은 흐느끼며
창밖에서 너는
똑! 똑! 똑!
노크하고 있다
잊힌 시간
기억들이 슬라이드 파도가 되어
토닥이고
창가에 비치는 꽃은 동백 입술처럼
술잔에 아른거린다
밀물과 썰물
만남과 이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벽속에
비밀을 층층이 쌓고 있다
내가 죽어서 궤나가 될 수 있다면
네가 죽어서 궤나가 될 수 있다면
깊고 깊게 노을을 흩어 놓고
낮고
낮은
이름 없는 풀이고 싶다
서걱서걱 춤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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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행복 / 전정현
보고 싶어 미치겠어
나 왜 이러니
정말 왜 이러니
자꾸만 보고 싶어
한 시간
두 시간
압구정 지하철 벤치에서
세 시간을 말없이 기다렸어
바보인가 봐
아, 저기
머리를 뒤로 돌돌 말아 올리고
하얀 정장 입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앙큼한 그녀가 다가온다
나비 날갯짓에 춤추는 민들레처럼 그때의 그녀가 얼마나 이뻐 던 지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지금
도도한 그녀가 미치게 보고 싶다
2019. 10. 19ㆍ쓰고
(1.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지금
창문에 고운 그녀의 눈을 그리고
나는 행간에서 파도치는 심장을
탐하고 싶다
2. 행간에서 차 한잔을 놓고
도도한 그녀를 긴급 소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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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은석봉에서 / 전정현
은석봉에 올라서
하늘을 보니
세봉우리가 하늘에 닿았구려
내 얼굴이야 두손으로 가리고
님의 얼굴이야 술잔에 담을 수 있지만
저 아름다운 파노라마는
나의 언어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으니
이를 어이할꼬
안개가 허리를 휘어감은
저 구름을
망월사 스님이여 쓸지를 마오
편안히 바위에 걸터 앉아서
근심걱정 내려 놓고
스쳐가는 바람에 사유하나니
부엉아
부엉아
선만자에서 부엉부엉 울어다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다림을 주고
부리로 먹이를 찢어서 문앞에
쌓아 놓으려 무나
*선만자 : 도봉산의 3봉우리 선인봉,자운봉,만장봉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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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둘이서 / 전정현
그대와 손잡고
걷고 싶어요
잠실에서
판교에서
남한산성에서 걸어 보았지
그렇게
그렇게
밋밋하게 말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설렘있는 우산 속에서
어깨기대고
비 따라 그대의 허리선을 그리며
비처럼
비처럼
그대를 타고 낮게흐르고 싶어요
멀리
멀리
너무 먼 길을 와서
뒤돌아갈 수는 없어도
아직 미처 가슴에서 꺼내지 못한 말
사랑해
그 말
심장소리 들으며
그대의 두 눈에 말하고 싶어요
이 비가 그치기 전에...
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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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그녀 / 전정현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
작았던 나무에 동그란 나이테가
40여 개 새겨지는 동안
너의 이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소중했던 그 무엇인가 있었기 때문,
너 기억하니?
1980년 그 가을에 인연,
너와 주고받았던 10여 통의 서툰
꽃잎 편지...
세월의 강을 건너서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속의 내 친구
심명숙
만약 그때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시골에서
시골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 거야
네가 나를 흔들어 깨운 거야
내가 쓴 글이 초등생 같다고
그러면서 그랬지
펜의 힘은 날카로운 송곳이나
칼 보다 강하다고,
자존심 상하는 그 글의 붉은 힘은
내 눈에 힘을 주게 하였지
번쩍 섬광이 스치고,
그 덕분에 캠퍼스도 가보고
인생을 노래하는 시인도 되었네
고마워요
나에게 그대는 참 좋은 인연이었어
우주의 운석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