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swc.mil.kr/main.htm 특전사령부
[천리행군]
이 천리행군이라는 명제를 글로 쓰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들이 특수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며,
정상적인 대한민국 군인을 그 대열에 끼워넣으면 다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군대 특성상, 거꾸로 생각해서, 걷는 거 빼고는 다른 무엇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통과훈련이 아니라 국방부 시계가 돌아가는 행군입니다.
실제로 덩치가 작은 사람들이 잘 걷는 경우 많으며,
행군 잘하는 어느 작은 체구의 중사고참은 별명이 '오다리'였다.
걸을 때 만화처럼 다리가 다섯 개로 보인다고....
(또한 행군을 좀 해 본 사람으로써, 박격포나 기타 중장비 행군 보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특전사 지원하는 친구들은 행군을 얼마나 하는 지도, 행군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지요.
행군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고도의 기술도 아니고...81밀리 메고 다닌 x포님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여간 특별한 평가기준으로 아래 내용을 봐주시는 것은 조금 그렇습니다. )
위의 사진은 1988년의 천리행군 복귀로를 그려본 것입니다.(마우스로 그린거라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라인이 안동까지 너무 내려갔군요. 아산만 방파제도 안 걸리고...실제로는 안동이 아니라 영양 옆의 청량산을 돌아서 좌로 틀었습니다.)
아래쪽에 영주 부근의 청량산에서 고등산악훈련을 받았고, 게릴라 베이스는 태백산맥줄기였습니다.
행군기간동안 아주 추웠지요.
휴식하고 움직이려면 몸이 얼어서 뻐걱뻐걱했습니다.
1월이었는데 특히 아주 경사가 깊은 골짜기의 강풍은 너무 힘들었고, 어디 한군데 앉을 곳도 없는 얼음계곡입니다.
게릴라 베이스에서 유격장으로 한 70킬로 정도를 걸어 들어가는데
길은 빙판에 강풍이 몸을 날려서 절벽의 바위조각들을 붙잡고 걸은 기억이 납니다.
특히 고등산악을 마치고 천고지 넘는 모 고지의 공군기지를 방문한다는 갑작스런 행군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천리행군 첫날 한껏 땀을 흘리고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끓여 먹은 새벽의 라면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 해의 코스에서 가장 힘들었던 곳은 문경세재와 속리산 넘기였습니다.
황북이라는 곳이 기억나는 군요.
이 천리행군은 출발 시에 부대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기에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걸어다니면서 육군 나는 고양이 부대와 용감한 조랑말 부대의 활동지역과 겹쳤고,
결국 그들이 고랑의 개구리를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헛물켰던 훈련입니다.
전술 타격을 하기 위해 모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부대로 천리행군 복귀하는 흑표부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서로 쌩까면서 지나갔음. 뒷통수에 욕하고.....킥킥대고....)
이 88년의 천리행군은 올림픽때 3달 논다고 그랬는지.
도상거리가 400킬로를 훨씬 넘었고, 실거리는 별들에게 물어봐였습니다.
당시 복잡한 사정으로 잘 알려진 원더우먼을 한번도 못했습니다.
(복잡한 사정은 비슷한 나이와 다른 출신의 4명의 팀장들의 지지않으려는 자존심때문이었음. 뭐 FM이 맞는 것이지요. 군말 있습니까?)
<민주지산 위로 통과를 했고, 현재는 민주지산이 가장 많이 통과하는 여단들의 코스입니다.
특히 재경여단은 복귀로가 많이 겹칩니다.
맥가이버 님이 아실만한 원물왕 저수지에서는 독수리와 흑룡은 자주 만났습니다.
85년도는 거기서 흑룡이 대대 대항 고문(co)훈련을 했죠? 허허허...>
과거에는 천리행군이 1년에 두 번이었습니다.
<유격천리>라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일반전술훈련과 유격훈련 끝에 똑같이 천리행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여단만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번의 또 다른 실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2천리행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행군한 대원들이 보름 넘게 행군하여 들어오기는 했으나 '완전한 전투 불가능상태'에 빠졌기에 무익한 훈련이라고 판단지어 중단되었습니다.
(육군 인간 교보재 부대. 몸에 파란 칠이라도 해주시라요....)
부대 복귀시 2천리행군자들은 기본이 막대기 두 개에, 여단장 신고식에서 1분마다 한 명 씩 쓰러졌다는 후문.
국토가 좁아서 2천리는 남한 땅에서 빙빙 돌았기에 병사들이 돌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부대와 특정지역을 와따리 가따리 하자고 하기도 했다고 함.
과거 1986년도의 재경여단들은 전술종합을 서울과 인근 위성도시에서 빙빙 돌게 훈련을 짰다.
시국이 불안해서였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빙빙 돌면서 부대로 돌아왔다.
맥가이버님의 과도한 찬사에 힘을 얻어,
또한 저의 뇌리에서 작은 기억들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며,
천리행군의 일반적인 증후군을 적어 볼까 합니다.
<천리행군 복귀후의 증후군>
1. 개인 혁띠가 끝까지 조여져 끝이 너덜거림. 나중에는 하도 조여 배가 아픔.
2. 복귀 후 식당에서 먹는 첫 식당밥은 정말 꿀맛임.
3. 군장을 벗으면 허리가 출렁거리면서 균형을 못 잡음.
4. 상당한 다이어트 효과 있음.(저의 경우 보통 5-6킬로 정도? 그러나 훈련동안 전반적으로 빠진다고 봄)
5. 소가 핥은 연변머리를 긁적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도 잡음)
6. 군복은 3-4번은 빨아야 불땐 냄새가 빠진다. 빨래의 달인이 된다.
7. 모자를 잃어 버려서, 복귀직전 부대에서 가져와 착용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생긴다. 심한 경우 바지가 너무 찢어져서 가져다 입은 경우도 있다. 여단장님이 나오시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우 어느 해인가 비바람치는 산등성에서 모자가 완전히 비행접시처럼 날아갔는데, 행군 내내 아주 무언가 허한 느낌을 받았음.
8. 부대 인근에 도착해서 조용한 부대를 바라보면 희비가 교차함.
9. 부대 인근에서 기상나팔소리를 들으면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듬.
10. 복귀 후 아침 첫 구보는 뛰는 것이 상당히 적응이 안됨.
11. 복귀 후 2일간은 아주 조용조용 다닌다.
12. 내무반에 들어오면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지고, 냄새가 매쾌하다.
13. 내무반에서 군장을 내려놓을때, 다시 안 메어도 된다는 것에 실감이 안 난다.
14. 복귀할때-정문 통과시에는 어깨를 좀 편다. 그러나 도열자들이 사라지면 다시 노틀담의 꼽추와 살얼음판 걷기로 돌아온다.
15. 타 대대는 복귀 병력의 걷는 상태를 보고 훈련 정도를 가늠한다.
16. 복귀후 부대원을 기다리는 것은 온갖 종류의 빨래다.
17. 실제 정문통과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조금 기쁘다.
가장 기쁜 것은 전역하는 것이다.
18. 영내병들은 느낀다. 이제 남의 것도 닦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19. 복귀후 츄리닝 입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다.
20. 식당 선임하사가 3일 정도는 온화하게 대해준다.
21. 타 대대 동료들이 3일 정도는 온화하게 대해준다.
22. 3일후에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다.
23. 목욕과 면도를 재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간부는 대부분 신혼이다.
24. 그 신혼 간부들이 대낮에 퇴근하여 뭘 할지는 나도 모른다. 조금은 안다.
25. 최고의 특전맨은 천리행군 복귀날에도 A급 군복 다림질해서 갈아 입고 시내 김양 만나러 간다.
26. 부대 복귀후 잠을 자면 오히려 너무 고요해서 잠이 안오는 경우도 있다.(왜 이리 허해? 산새소리 바람소리도 안들리고...)
<천리행군 중>
1. 지도 든 사람을 상당히 경계한다.
2. 가끔 민가를 깨워서 길을 물어본다. ('아랫골이 어디여요?')
3. 밥을 지어먹으려 휴식하면 자기 부식주머니를 빨리 내놓고 사라진다.
4. 출발전 자신의 쌀주머니가 그대로 있으면 상당히 구슬프다.
5.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환각현상을 일으키는 사람이 생긴다.
6.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몸에 부스럼이 생기는 사람이 생긴다.
7. 진통제 대용으로 수통소주 먹다가 환각현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8. 그러나 취한 사람이 노래 많이 불러줘서 조금 즐겁다.
9. 그러나 취한 사람은 대부분 고참이므로 후창을 목청껏 해야 한다.
10. 온갖 저질가요를 다 부른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지루했던 길은 대전부근의 대청호를 따라 걸으면서 빠져나오는 행군이었다. 지역대 행군 2일차에 두 번이나 이 코스에 걸렸다. 걷다가 노래가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노래 떨어지면 고참 화낸다. 걸으면서 급조도하로 건너서 행군을 단축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물이 고요해서 더욱 힘들었다. 고요한 달밤에 우리의 군화 발자국소리만이 처벅처벅 들리고, 당시 비포장 도로에서는 포얀 먼지가 피어오른다. 먼지 때문에 목이 컬컬하다. 거의 평지였지만, 물가를 좌우로 비트는 코스는 정말 지루했다. 물에 끝이 안보인다. 아, 흑표 동무들은 여기서 수영하고 놀텐데....>
11. 후미에서 졸다가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이 생긴다.(특히 Y자형 우마차길 분기점)
12. 졸다가 시냇물이나 고랑창에 빠지는 사람이 생긴다.(비 올 때는 아무도 모름)
13. 상사님들과 인사계님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와도 힘 안들이고 잘 걷는다.
14. 신경이 예민해져서 휴식시간에 맞짱 뜨는 사람이 생긴다.
15. 내 앞에 걷는 놈이 누군지 몇 시간 동안 전혀 모른다.
16. 내 뒤에 걷는 놈이 누군지 몇 시간 동안 전혀 모른다.
17. 쉬지 말고 더 빼자며 항명하는 무리가 생긴다.
18. 비 오는 날 밥하려고 쉬면, 온갖 종류의 작전용 폭약 잔유물이 나온다.
20. 군장은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이 꽁꽁 묶는다.
21. 총은 분실을 우려해서 군장에 꽁꽁 묶는다.(분해해서 넣는 놈도 있다)
22. 권총만 차고 가는 지역대장이 무지 부럽다. 특히 203들.
23. 휴식 후 출발하는데 누군가 그 장소에서 같이 안 온 사람이 생긴다.
24. 출발 시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어떤 새끼 총이야? 이거.."
25. 군화 일부를 도루코 칼로 오리는 사람이 생긴다.
26. 새벽에 빨간등 켜진 민가를 지나면 아주 구슬프다.
27. 새벽에 빨간등 켜진 민가의 주인이 되고 싶어진다.
28. 훈련초기처럼 박수치는 민간인이 사라진다.
29. 훈련후기에는 신고하는 민간인이 많아진다.
30. 반찬이 떨어져서 민가 김치구걸이 시작된다.
31. 부대 복귀 3일전부터 가장 정신적으로 괴롭다.
복귀로를 알며, 행군거리와 소요시간이 빠삭하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전형적인 코스이며 독수리, 흑룡도 자주 지나가는 코스는 -삽교-아산만 방파제-평택-오산-수원-짠물쪽으로.....작년에 구축한 텐트자리를 본 적도 있다. 진천쪽으로 빠져서 북상해도 되는데 항상 돌아서 아산만으로 가는 것이 참 그렇더군요. 디코 모임에서 그쪽으로 가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32. 어떤 경우 휴식 중에 작년에 쉬었던 곳임을 알게 된다.(기억나는 곳 대청호의 끝 피반령)
33. 행군 후반으로 갈수록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다.
34. 콩크리트 도로를 싫어하기 시작한다.
35. 밤에 깜짝 깜짝 놀라는 민간인을 어둠 속에서 마주친다.
36. 주먹밥을 만들어서 남들 밥할 때 자는 팀이 생긴다.
37. 밥할 때 빨리하려고 똥국을 안 끓이고 간장과 고추장에 비벼먹는 팀이 생긴다.
39. 식사량이 점차 감소한다. 나중에는 밥 먹다가 물먹으면 바로 식사 끝이다.
40. 도심과 가까우면 사람에 냄새가 나서 즐겁다.
41. 정서적인 최대의 적은 도로를 질주하는 고속버스 등이다.(저 길을 따라가면...)
42. 시골의 경운기 몰고 가는 아저씨를 군침 삼키며 쳐다본다.
43. 자전거도 본다.
44. 먹을 것이 없어도 부식이 군장에서 떨어지면 오히려 좋아한다.
45. 고참의 쌀주머니를 잘 보고 먼저 소비해야 한다. 들어가 결산에 포함된다.
46. 휴식소리 나고 30초만에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47. 출발소리를 듣고 깨어보니 담배가 필터까지 타는 상태로 내 손가락 사이에 있다. 가끔 "앗, 뜨거" 소리도 들린다.
48. 자주 부르는 노래. <선창> <울고 넘는 박달재> 오늘도 걷는다만은....정처없는...생식기 지칭이 가사 대부분인 노래는 선진국군의 문화 향상을 위해서 뺍니다.
49. 길가다 우리보고 우는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리. "왜 그러지?")
50. 밤새 걷고 나면 민간인들의 사투리가 바뀐다.
51. 이정표의 킬로미터 수가 비 현실적으로 느껴진다.(애써 외면하는 사람도..낙서하는 사람도, 모모 여기 지나감....)
52. 닷지차가 보급차로 오면 무전기 실어달라고 애걸하는 사람이 생긴다.
53. 개인 소지품을 버리기 시작한다. (본인은 386밧데리 3-4개 버렸음. 모 여단에서 무전기를 버린 전설도 있음. 해당 병사 "흑흑흑. 씨바 집에 연락해서 돈으로 메꿀꺼다. 쏠테면 쏴...")
54. 휴식 중 똥을 누는 자세도 힘이 들기 시작한다.
55. 길을 잃으면 애어른 할 꺼 없이 욕한다. 지도든 사람이 후레쉬로 지도 자세히 볼 때 병사들은 높은 산 깊은 골 한 맺친 눈동자로 그들을 주시한다.
56. 마지막에는 아무리 급속행군을 해도 땀이 나지 않는다.
57. 등짝이 벗겨지는 졸병이 생긴다.(요관찰 요망)
58. 왠만한 물집은 무시한다. 복귀전날 한 80-100 행군은 군화를 아무도 안 벗는다.
59. 부대가 가까워진 대대행군에서는 좀 시끄러워 진다. 음담패설이 줄을 잇는다.
60. 부대가 가까워진 영외거주자들이 무엇이 맛있다로 말다툼을 한다.
<본인의 경우 88년도인가? 천리행군 4일차 즈음에 공중전화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여동생이 대학 떨어졌다고 우는 바람에 상당히 기운이 빠졌음. 그 말에 갑자기 상당히 지쳐 주저 앉았음. 당시 내가 월급을 몽땅 투자해서 보내줄테니 시험보라고 시킨 것이었고, 과외도 시켜 주었었고, 그날 난 합격소리를 들을것으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었다. 음악쪽이라서 적잖히 돈 아껴서 부쳐주었었다. 난 군장을 맨 채로 기운이 풀려 허탈했다. 옆에서는 동기 새끼가 빨리 통화라라고 지랄하고...그것 때문인가...하여간 난 나중에 전역해서 진학을 택하게 된다...아마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61. 점차 반합에는 무언가 덜 닦은 노패물들이 견고하게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62. 숟가락 분실자가 증가함으로 인해서, 나무 젓가락을 깍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63. 천리행군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한 평발임을 자각하는 사람도 있다.(아주 힘듬)
64. 휴식중에 도루코 칼로 자신의 발뒤꿈치를 깍는 사람들이 생긴다.
65. 겨울 불가에서 졸다가 모닥불에 전방낙법치는 사람이 생긴다.
65. 불가에서 군복이나 군화를 태워먹는 사람이 생긴다.
본인도 뒤로 돌려 자반구이로 몸을 굽다가 군화 윗부분이 그을려 오그라졌다. 결국 장딴지를 너무 긁어서 상처가 났고, 결국 도루코 칼로 명함크기만큼 오려냈다. 선임하사들은 불가에 서서 불을 쪼일 때 졸병들의 허리를 자주 움켜줘야 한다.
66. 같은 길이라도 보통 옆의 밭의 고운 땅을 밟으면서 간다.
67. 산에서 길을 잃으면 대책이 없다.
<대부분 컴파스로 보고 뚫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컴파스 잘못 믿으면 전혀 다른 계곡으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통 이럴때는 상사분들이나 인사계님이 지도를 보고 본능적으로 판단해 본다. 특히 사방에 참고점으로 각도를 찍을 만한 읍내 등의 불빛이 없을때 더욱 곤란하다. 무장공비들이 지도없이 월북가능한 이유를 대충 알수가 있다. 시나 마을의 불빛은 상당히 멀리서도 보이고 지도정치의 참고점이 된다. 어떤 경우 각도를 예리하게 파 낼려고 지도를 보고 시가지 불빛의 중심점을 조준하기도 한다. 물론 지도를 보고 시가지나 읍내의 모양을 정확히 보고 찍어야 한다. 물론 참고점이 두개면 우리의 위치는 자세히 나온다. 요즘은 GPS도 쓴단다. 세상....
장교나 과거 정작하사관의 경우, 현재 길을 잃었다는 것을 느낄 때 먼저 밝은 미소로 팀원들을 둘러본다. 그러나 응대하는 팀원들은 이미 알아채고 그 눈빛이 북한군으로 되어 있다. 먹던 수통 든 손을 정지하고 쳐다보는 비릿한 눈동자 "씨파, 또야?">
68. 무월광은 힘들고, 달이 있으면 조금 덜 힘들다.
69. 팀장은 군장에 있어서 경계용 실탄이 가장 원수다.
70. 새벽에 오줌을 싸면 몸이 한줌으로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71. 무언가 특별히 먹거나 마시고 싶은 것이 생긴다. 특히 마시는 것. 생맥주 등.
72. 산이 가로막으면 좀 더 걸려도 돌아서 평지로 가고픈 생각이 든다.
73. 먹는 것 보다 자는 것이 점차 병사들의 선호사항이 된다.
74. 어쩌다 다른 사람의 군장을 바꿔메면 아주 힘들다.
75. 천리행군을 통해서 막걸리를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
76. 휴식 중 기운이 남아도는지 팔다리 돌리면서 몸푸는 사람이 보기 싫다.
77. 걸어가는 곳이 경치좋고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이 못 믿긴다.
78. '령'이란 글자를 싫어 하게 된다.
79. 천리행군 중 쥐나는 사람은 없다. 쥐날 에너지가 없다.
80. 자바라를 든 타 지역대원이 보이면 휴식지역에 들어왔음을 알고 기뻐한다.
81. 타 지역대원을 보면 나도 저렇게 남루한가 생각해 본다.
82. 행군 중 정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단지 "휴식!"
83. 생각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고향지역을 지나가는 사람이다.
84. 진통제를 먹고도 반응이 없는 체질은 정말 욕 나온다.
85. 군장을 받아줘야 할 사람이 생기면 무거워져서 힘들지만, 어차피 똑 같아 진다.
86. 부상으로 닷지차를 타야하는 사람은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고 한다.
87. 전역 후 행군지역을 지나가면 기분이 묘하고, 내가 당시 생각하던 대로 됐구나 생각이 든다. 만약 행군 부대를 만나면 대부분 가게나 통닭집으로 차를 몰고 가서 구입해, 추적한다.
88. 천리행군 중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아주 드믄 사건이다. 카메라를 꺼내기 위해서 군장을 풀고 묶는 것이 하기가 싫은 것이다.
89. 산에 난 의외의 넓고 잘 닦인 길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
90. 먼저 정상을 넘어서면서 "다 왔다!" 소리치는 놈이 싫어진다.
91. 걸을 때 민가에서 미친 듯이 짖는 개가 너무도 싫다. 돌을 던지기도 한다.
92. 그래도 해상훈련보다는 천리행군이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93. 휴식중 아무 거리낌없이 바로 돌아 오줌싼다.
94. 그래도 지역대장님은 조금 가서 방료한다.
95. 일어서기 쉬운 경사각에 누워서 군장메고 쉰다.
96. 실제로 놀랄만한 인내심의 소유자를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흑룡의 동기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기 지역대 어떤 중사분이 방송통신대 교재 10여 권을 한달 내내 짊어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막판에 졸병 짐까지 자청해서 받더란다. 천리행군 중 남의 짐을 자청해서 받는 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결정이다. 그래서 보통 문제가 있는 개인은 그냥 잇빨 악물고 참는다. 오히려 근육질의 덩치 큰 사람들은 별로인 경향도 있다. 작고 탄탄한 사람들이 이런 무한한 인내심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뛰기도 오부지게 잘 뛴다....
97. 변의 양이 감소한다. 그러나 습관때문인지 열리기는 열린다.
98. 전역을 앞둔 중사나 병장은 의외로 잘 걷는다. 희망이 있어서 인가?
그러나 보통 전역 한달 전 정도면 거의 모든 훈련에 데리고 나간다. 그래서 훈련
중에 복귀하여 쓸쓸히 전역하는 사람들이 적잖히 많다. 부대원들은 복귀해서 정신
을 차리고 나가 '누가' 나갔구나 느끼기도 한다.
99. 부상이나 전출 등으로 야전에서 사람이 떠나도 행군 시작하고 한 두시간이면 그를 완전히 잊는다. 후배중에 천리행군 하루 하고 27경호대에 훈련차출되어 들어간 녀석이 있었다. 그러나 솔찍히 말해서, 헤어지는 아쉬움도 천리행군 1일차 행군의 끝이라서 별로 없었다. 그냥 손흔들고 떠 났다. 그리고 나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갔다. 나도 이해할수가 없다. 동기 심중사와 내가 키운 녀석인데, 녀석은 태권도 선수 5-6년을 한 놈으로 여단에서 상대가 없었으며, 하여간 쓸만한 녀석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27서도 별명이 '이 소룡'이었다고 한다.
우린 당시 잠이 덜깬 상태로 피곤하게 무미건조하게 배웅했다. 시골길에 차에 실려 가던 모습은 기억이 난다. 당시 홍성부근으로 생각하는데, 은거지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비슷한 골짜기가 3-4개가 나열된 지형이었다. 거리는 얼마 안 되었는데 해가 뜨고나서 너무 헤맸다. 보고 싶기는 하다. 지금 경호실에 있는 것으로 들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부여'근처였다. 이 기억이 난다. "아니 저 절벽에 3천명이 과연 올라갈수 있나?")
100. 숫자를 맞추려는 과거 군대 암호법의 습관에 따라 100번까지 왔다. 100번. 대부분 천리행군을 싫어한다.
<천리행군 출발 전>
1. 유난히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2.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3. 팀 공용의 물건들의 분배에 계급상관없이 심각하게 주시한다.
4. 있는 쌀을 최대한 많이 밥 해 먹는다.
5. 시도때도 없이 숲에 들어가서 누워 잔다. 한 겨울에도 해만 뜨면....
6. 마지막 비트 자리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7. 마지막 비트 자리를 야전삽으로 덮을 때 기분이 묘하다.
(화장실 판 것은 물론, 그냥 빨리 덥는다)
8. 필요 없는 물건을 남에게 다정하게 준다.
9. 필요 없는 물건을 받은 졸병은 기도비닉으로 다 버린다.
10. 돈이 거의 떨어진다. 졸병들은 중대장과 선임하사의 쌈지돈을 기대한다.
11. 천리행군 출발시간은 모두가 상당히 고요하다.
12. 하루 이틀전에 천리행군을 주제로 잠꼬대 하는 사람도 있다
첫댓글 1977인가 어느날 평창(큰강이있는 곳)에 원더우먼 하다가 강물에 빠졌던 악몽이 생각난다.
엉덩이가 축구공만하게 된 여석
찰과상 등
다행히 한 사람도 죽지않았으니....
악몽 같았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