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사
#청룡산
#만해 한용운
내포문화인물길을 따라 선진들의 발자취를 찾아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청룡산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고산사를 찾았습니다. 학창시절 고산사로 소풍을 왔을땐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한참을 올라왔었는데요. 대형버스가 올라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포장이 잘 되었네요.
학창시절 소풍가던 추억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고산사에 도착하니 마을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고산사 앞에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 도시락을 먹으려고 않았습니다. 사진 뒷편으로 공적비가 보이는데요.
고산사 문화재의 전승 보존을 위하여 초심고려하던 지방의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토지 등 사유재산을 출연하여 고산사 진입도로를 확장하고 새전을 헌성하여 명실상부한 명찰의 면모로 일신하였다고 합니다. 그 공적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하여 공적비를 세웠놓았답니다.
화려한 단청과 고산사 중수현판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법당 전면의 6개의 기둥에 한글로 아름다운 글귀가 써있네요.
하늘에 햇빛 달이
땅 위에 모든 생명
허공 속에 산소가
주인이 따로 없듯
숨 쉬며 갈아가는
우주가 나 아니던가
고산사는 신라 말엽 도설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대광보전은 고려 이전의 건축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적으로 국가지정 보물 399호로써 홍성군 결성 지방의 유일한 사찰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팔작지붕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이며, 다포계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산사 대광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불좌상은 소조불 특유의 섬세함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며 고려 후기 양식을 계승, 조선 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 불상의 독특한 특징은 반듯하면서도 당당한 외모와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정제된 세부표현, 사실적인 신체비례, 좌우대칭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 불상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미타불좌상을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 불상은 타원형의 둥근 얼굴에 민머리를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둥글게 솟은 육제가 있으며 얼굴은 마모되어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편편하고 길쭉한 신체에 양 어깨를 모두 덮은 옷을 입었고 둥근 옷주름이 가슴부분부터 발목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을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 다리에 붙이고 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는 시무회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기본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길쭉한 신체 비례 및 밋밋한 체구 등은 고려초기의 특징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본래 아랫마을 절터에 있었던 것으로 부처의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한 광배와 불상을 올려놓은 대좌는 없어지고 고산사로 옮겨져 모셔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산사 뒷편 청룡산으로 오르면서 고산사 정경을 찍어보았습니다.
청룡산은 결성면 읍내리와 교항리에 길게 걸쳐있는 해발 236미터의 산으로 등산하기 좋은 산입니다.
청룡산의 유래는 산줄기가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와룡천(臥龍川)의 용담(龍潭)에서 청룡이 풍경을 구경하는 듯 머물러 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또한 옛날옛적에 효성 지극한 농부의 어머니를 산에 사는 용이 약을 주어서 낫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산으로 그리하여 산 이름도 청룡산이라는 유래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청룡산은 결성면과 서부면에 걸쳐 위치하고 있는 산입니다. 결성면 소재지의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천수만을 끼고 있다. 산 서쪽에는 판교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결성)에 "고산(高山)이라고도 하는데, 현 서북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결성)에는 "한 갈래는 남쪽으로 내려와 고을의 주산이 된다."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향이 홍성이면서도 청룡산 등반은 처음인지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나봅니다. 더군다나 오랫만에 산행인지라 헬기장을 향해 쉬엄쉬엄 살금살금 산행을 했습니다.
크게 양팔을 벌려 쉼 호흡도 해보고 풍경도 감상하며 걷는 산길이 꽃이 피면 꽃길이요, 잎이 물들면 단풍길이고, 눈 내리면 설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산과 숲, 숲과 마을을 잇는 길. 흩어져 세상살이 하던 친구들이 잠깐이나마 거친 산길을 걸으며 무념무상 속에서 산과 더불어 호흡하고 발을 디디며 목까지 차오른 숨을 밷어 낼때마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친 산과 내 몸이 타협하며 내 자신을 만나고 타인과의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청룡산 줄기를 따라 조성된 내포 역사인물길도 있다고 하니 다음 번엔 결성향교에서 출발해 고산사 삼거리에서 곧장 산줄기를 타고 봉수대터도 둘러보고 칼날봉으로 향하는 길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뒷편으로 민족의 큰 별 만해한용운선사 생가가 있다고 합니다.
청룡산 줄기 동쪽으로 빤히 건너다보이는 만해 한용운 생가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
이입니다. 이 길은 우리나라 민족사에서 독립과 문학과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만해 한용운 선사의 고향마을로 향하는 의미 깊은 길입니다. 망대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과 산마루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걸어 내려오면 아스팔트길과 만나는 가로공원에 도착합니다.
청룡산의 정기가 쭉 이어지는 내포 역사인물길은 박철마을에 있는 한용운 선사의 생가
기념관에서 끝을 맺습니다.
한용운 생가 기념관 입구 안내 표지석을 따라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온갖 시련을 겪던 시절에, 독립운동과 종교인과 문학인의 삶을 살며 민족의 횃불과 소금역할을 하던 애국지사였습니다. 일제의 갖은 압박과 회유에도 대쪽같은 절개로 지조를 굽히지 않은 애국지사이며 한국 불교의 유신을 주창한 대선사이며, 한국 문단의 큰 별로서 가시밭길을 헤쳐가는 삶을 살다간 인물입니다.
한용운 선사는 승려로서 침체된 한국 불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한국선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1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죽는날까지 서릿발 같은 저항의 지조를 꺾지 않은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문인으로서 나라잃은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독립의 꿈을 잃지 않도록 희망의 불꽃을 활활 피웠습니다.
1879년 8월29일에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사는 16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습니다.
오세암에 머물다가 시베리아와 만주등을 순회하다 27세가 되던 해에 백담사에서 김연곡 선사에 의해 득도하고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되어 나라가 망하게 되자, 독립운동에 몸바치겠다는 생각으로 중국 망명길에 나섰다 일제의 정탐꾼으로 오인하여 총을 쏘는 바람에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입은 상처로 평생동안 아픈 몸과 함께 체머리를 흔들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다시 귀국한후에는 백담사에서 참선하며 대중불교의 실천자로 활약하였습니다.
33인의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을 주도하였으며, 공약삼장을 지어서 독립선언서에 첨가하였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에 체포된 뒤에도 변호사와 사식과 보석을 신청하지 않고 지조있게 버텼고 합니다.
조선천지가 감옥인데, 감옥이 천국이라 생각하며 3년형을 마치고 출옥하였습니다. 출옥하여서도 거처할 집이 없고 굶기를 밥먹듯하여 영양실조가 되자 그의 어려운 형편을 보다 못한 친분있는 인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성북동에 심우장이라는 집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조선총독부가 있는 곳을 바라보기 싫어서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만해한용운 선사는 47세 되던 1926년에 백담사에서 우리나라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시집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 시집이 유명한 88편의 시가 수록된 ‘님의침묵’입니다.
만해 한용운 선사는 안타깝게도 1944년 6월 29일에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홍성에서는 해마다 만해 한용운 선사를 기리는 뜻 깊은 행사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청소년 문학상, 만해문학의 밤, 만해 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해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홍성의 대표적인 문화제‘내포축제’에서 만해 한용운 선사를 주제로 하는 인물축제가 펼쳐졌습니다. 이 행사를 통하여 승려와 문학과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파란만장했
던 삶을 재조명하며, 그 발자취들을 되새겨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중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보라 하우스로 향했습니다. 보라하우스는 카페와 레스토랑, 이렇게 두 곳이 있는데요.
위에서 보이는 곳이 바로 보라 카페입니다. 마치 예쁜 작은 정원을 연상하게 되는 것 같네요
옆쪽에 테라스가 있어서 반려동물과 함께 하신 분들도 커피, 차 즐기기에 너무너무 좋습니다.
뒷쪽으로는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어서 마음의 여유를 찾기에 너무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늑하고 좋은 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함께 있다니 아이들, 부모님과 함께 그리고 모임 장소로도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야외에는 이렇게 흔들그네와 의자도 있어서 잠시 쉬기에도 좋습니다.
풍경 자체가 너무 예뻐서 인생샷! 찍기에도 좋고 사진도 너무 멋지게 잘 나오네요.
산행으로 지친 몸보신을 위해 닭백숙을 미리 예약해 놓았습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바람 솔솔 부는 느낌을 느끼기에도 좋구요.
야외에 넓은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주문한 음식 나올때까지 담소도 나누고 음향시설이 갖추어 있어 노래도 부르고 가벼운 댄스도 가능한 공간입니다.
보라하우스에서는 단체 예약하면 바베큐와 국밥 그리고 백숙을 즐길 수 있고 어린친구들을 위해 돈가스, 피자와 오므라이스등 메뉴도 다양하다고 하니 다음엔 소중한 사람과 함께 고즈넉한 풍경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