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콘도와 일행(조천읍 함덕리)1
정기여객선(모슬포2호)2
오전9시50분에 모슬포 항에서 승선해서 11시50분 다시 모슬포 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마라도의 바위3
관광객들 마라도 섬(자리덕 선착장)4
물이귀한 마라도에 시집을 온 여자는 물을 아끼는 것부터 배워야했다.
마라도는 물 때문에 1974년부터 초가를 슬레이트로 바꾸고 집집마다
저수조를 만들었다.
마라주민들의 물을 아끼는 조냥(절약)정신을 배워야 하겠다.
가파도에는 바람과 세월의 공동작품인 해식동굴이 있다.
마라도는 동서500m, 남북으로 1300m로 빙둘러4.2km, 9만평의 넓이이다.
우리나라 705개의 유인도중 434번째 크고, 제주도 8개 유인도(우도.하추자
가파도.상추자.횡간도.비양도.마라도.추포도)중 2번째 작은 섬이다.
마라도 천연보호구역(천423호)(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5
마라도 등대.마라도성당.최남단비.장군바위
할망당.자리덕선착장.마라분교.기원정사.초콜렛박물관(사진설명)
마라도는 바다에서 독립적으로 분화된 섬으로 원시적 특성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섬의 해안은 파식대와 해식동굴이 잘 발달되
어 경관이 매우 아름답게 보존되었고, 면적은(육상과 해역)(5745제곱미터)이다.
마라도 걷기6
가파초등 마라분교장7
가파초등 마라분교장8
관음성지 기원정사9
기원정사(관음상)10
기원정사(중생의 얼굴)11
기원정사(중생의 얼굴)12
바다낚시13
해외개척자 야외박물관14
초콜렛 박물관15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You16
대한민국 최남단17
마라도 관광지18
알살레덕.기점표석.백년초.등대.최남단비.장시덕
자리덕.애기업개당.마라본교.남대문.신작로.구최남단표시.장군바위
마라도의 신화(애기업개당)19
가파도에도 모슬포에도 사람이 살지 않던 시절 모슬포의 이씨부인은
3개월도 안된 우는 아기를 풀숲에서 발견했다. 애기엄마를 찾지 못해 이씨부인이
대신키웠다.
이씨부인도 이 아기가 8살쯤 때에 아기를 낳았다. 이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당시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그러나 매년봄 망종
에서부터 반달은 허가를 내주었다.
그 때 모슬포 잠수 예닐곱명이 갔는데, 그 때 13세된 애기업개도 함께 갔다.
해산물을 많이 잡았지만 돌아갈려니 풍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 때 선주와 선주부인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애기업개를 두고가라했다.
애기업개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지만 사람들이 오르자 그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마라도(사인보드)20
들어가서 살 수 없었던 금섬인 마라도에 1883년부터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다고 한다. 대정골에 살던 김성오라는 사람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
하여 친척들이 마라도 개경을 제주목사 심현택에게 건의 했다.
그 때 모슬포에 살던 라씨, 이씨, 김씨 등이 합세했다고 한다.
이 시기쯤에 원시림으로 덮혔던 나무들이 모두 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 때 마라도가 석달열흘정도 불에 탔다고 한다.
1981년 4월 가파리에서 마라리로 이름을 얻어 현재 대정읍 마라리로
부른다.
1958년 8월31일 가파분교 마라분교장이 세워졌다.처음 김의백씨집과 등대
창고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1962년 25평, 1972년 32평의 집이 지어졌다.
마라도(사인보드)21
등대이야기
마라도 등대는 최남단에 있는 제1호 등대로 제주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아도 마라도 등대는 표시될만큼 유명하다.
빛이 대략21마일이나 간다는 3등급 등대는 무안군의 칠팔도, 홍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4군데 밖에 없다.
최초의 등대는 1903년 6월에 점등된 무인등대인 인도 팔미도 등대이다.
그해 12월에 점등된 포항 장기갑 등대이며 제주도의 최초등대는
1906년 3월에 점등된 우도 등대이다. 마라도 등대는 1915년 처음 무인
등대, 1955년 유인등대, 태풍으로 인해 1987년 지금의 등대가 되었다.
해방후 군인집으로 불렀던 마라등대는 4.3 때 서북청년단에 의해 파괴
직전에 라봉필이라는 마라도 사람에 의해 설득을 해서 겨우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
1988년 마라도 등대는 항로표지관리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마라도 잠수이야기
마라도의 바다밭은 풍성했지만 매우 위험했다. 마라도 사람들은 엄격한
입어관행을 만들었다. 섬의 잠수가 섬바깥으로 시집을 갔다가 이혼을 하고
돌아와도 또한 부득이한 사정으로 돌아와도 1년을 살아야 다시 입어권을
얻을 수가 있다. 또한 아무리 부지런해도 혼자서는 입수할 수가 없다.
바다밭이 워낙 험해서 서로가 도와가면서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보통 잠수들은 20m만 들어가도 기록적이지만 마라도에서는 25m에서
30m까지도 내려간다고 한다. 현재 20대 잠수들은 없고 입수권을 가진
사람은 대략 10여명 정도라고 한다.
마라도(사인보드)22
1번 신작로.2번살레덕.3번자리덕.4번장시덕(사인보드)22
신작로는 선착장 중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이며, 살레덕은 섬의 북동쪽의
선착장이다. 살레란 방언으로 찬장을 의미한다. 살레를 엮는데 쓰이는 대나무를
잇댄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자리덕은 주위에 자리돔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시덕은 국토최남단비가 세워져 있고 장군바위가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비와 장군바위(사인보드)23
마라도 성당(포르지운콜라.뽀르지 웅물리)24
그리스도 향기를 전하기 위해 부산교구 대연동 본당 은인들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정성을 모아서 만든 곳이다.
(2000년 8월2일 축성)
마라도 성당(사진)25
프란치스코 교황. 강우일 베드로 주교. 성당 건립자 민성기 요셉신부
성당내부의 모습26
마라도 성당27
마라도 등대28
마라도 등대는 1915년 처음 무인
등대, 1955년 유인등대, 태풍으로 인해 1987년 지금의 등대가 되었다.
해방후 군인집으로 불렀던 마라등대는 4.3 때 서북청년단에 의해 파괴
직전에 라봉필이라는 마라도 사람에 의해 설득을 해서 겨우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
1988년 마라도 등대는 항로표지관리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의 한국해양사 중에서29
누가 한국을 구원할 자이냐, 한국을 바다에 서는 고쳐 만들기 그것일 것이다.
세계의 등대(위에서)30
미국 보스턴 등대.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등대.칠레 푼타 던젠레스 등대
케나다 에스테반 포인트 등대.한국 팔미도 등대.독일 뉴베크 등대
영국 벵락 등대.스코틀랜드 메이섬 등대.남아프리카 희망봉 등대
마라도 교회(선교사 기념비)31
마라도 교회32
자리덕 선착장33
살레덕 선착장(아래쪽)34
지례덕충(통일기원비)35
용이 품어야할 중요4대 덕목을 말한다.
모슬포 항구36
모슬포에서 형제해안로(산방산)37
제주 전복이야기(점심)(대정읍 형제해안도로 송악산 주차장 앞)38
(2015.11.04)
첫댓글 바둑이 16.01.13. 15:15 마라도
저는 제주도를 한 열번은 갔는데 마라도는 한번도 못 갔어요
언젠가는 가 볼 수 있겠지요
마라도도 볼거리가 많으네요
여행매니아 16.01.13. 19:54 반갑습니다. 병신년에는 더욱더 행복하십시요. 제주도도 볼것이 참 많지요. 앞으로도 차곡차곡 볼 생각입니다.
운남성에 대한 내용은 회원님란 홍현옥님 사진에서 찾아보시기를...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