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이제서야 메일을 열고 인사드립니다.
제 교과서를 사용하시면서 좋은 질문과 비판을 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먼저 선생님께서 해주신 질문에 답변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셨듯이, 제물포조약은 일본공사관원과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갑신정변 후에 맺어진 톈진조약이 청일전쟁과도 시기적으로 가깝고 청국과 일본간의 조약이었기 때문에 농민전쟁을 진압하기 위한 일본군 파견이 근거로 널리 알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 일본의 교과서에서도 이렇게 서술된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은 파병의 근거로 텐진조약을 내세웠지만, 텐진조약은 만약 출병할 경우 상대국에 “문서로써 통지”하고 변란 진정 후 신속히 철병한다는 두 가지 사항만을 양국이 상호 준수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실제로 양국의 출병에 관해서는 내용도 담겨 있지 않다. 이 점은 텐진조약에 대해 무츠 무네미츠(陸奧宗光) 스스로가 “텐진조약은 단순히 병사를 조선에 파견하는 절차를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거나(일본외교문서 27:2, 313-314쪽) “텐진조약은 단순히 청․일 양국이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는 절차를 규정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약속도 한 바 없다”(陸奧宗光, 1943 《蹇蹇錄》(岩波書店), 24~27쪽)고 명백히 밝힌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아가 그는 “이번[1894년]에 우리 정부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것은 제물포조약상의 권리에 근거하며, 또한 이를 파견함에 즈음하여 텐진조약에 준하여 [청국에] 문서로써 통지하였다”(陸奧宗光, 1943 《蹇蹇錄》(岩波書店), 75쪽)고 천명하였다. 따라서 일본이 한국에 출병한 근거로 갑신정변 후 청국과 합의했던 텐진조약의 제3조를 삼고 있는 것 자체가 명백한 오류이다.
위는 제가 일본교과서를 분석하면서 {한국사연구} 129(2005년 6월),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한국근대사 서술과 역사인식>에 발표했던 내용입니다. 제가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군 파견을 주도했던 일본외무대신이 직접 자신의 회고록에서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무츠는 대외적으로 일본보다 외교 혹은 조약에 훨씬 밝은 서구열강들이 자칫 텐진조약을 일본군파견의 근거로 내세웠을 경우, 반드시 그 하자를 꼬투리잡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서구주재 일본외교관에게 굳이 톈진조약이 아니라 제물포조약을 파병 근거로 삼으라고 지시했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교과서에서도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자 굳이 제가 그 과정을 서술해두었습니다. 일본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잘못 쓰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제물포조약도 일본군파병의 온전한 근거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출병 통보만을 규정한 텐젠조약보다는 국제법적 근거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충분한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좋은 비판을 주시면 좀더 공부해보겠습니다.
역사 혹은 한국사를 둘러싸고 상식 이외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선생님처럼 학교현장에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인식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분들이 많아서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질문과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몸 건강하시고 가을의 향기를 맘껏 맡으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