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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풍뢰
이제 수련일지를 하루 썼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자기자신만의 수련을 만들어야한다고하여
나름대로 제 자신에게 맞는 수련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선 두가지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첫번째 :
땅해수련을 근간으로 의념을 집중한후에
호흡과 주문을 함께한다
호흡의 들숨 날숨을 주문의 음률에
맞춰 한다. 호흡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신경써서 들숨 5초 날숨 5초를 한다
들숨과 동시에 머릿속에 고도운을 쓰고 읊으며 5초
날숨과 동시에 머릿속에 지음사를 쓰고 읊으며 5초
호흡과 주문간에 음률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으로 하는것이다
만약가능하다면 땅해수련과 함께 의념한다.
차차 호흡과 주문이 익숨함에 따라 시간을 늘려간다 5초,6초,7초..
두번째 :
주문수련으로 한다.
준비단계로 마음의 안정을 위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를 외운다
그다음 의수단전으로 단전에 항상 신경을 쓰며 살아간다.(의수단전지식부족)
그다음 수련에 들어가며 단전주문으로 옴마니 반메훔을 읊는다. 여러가지방법으로 주문이 내입에 붙도록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 질문드립니다.. 많은 선배님들의 조언부탁드립니다
1. 첫번째와 두번째 둘다 수인을 맺어도 되는것인가요?
수인을 맺는다면 수인은 어떤수인이 있으며 어떤수인을 선택해야할까요
2. 첫번째와 두번째의 다름은 주문과 호흡의 차이라고 할수있는데요
만약 첫번째와 두번째를 섞어서 가장 효과가 좋은 수련은 어떤방법이 될까요?
물론 자기자신에게 맞춰야하지만..
3. 고도운지음사나 옴마니반메훔을 읊을때 집중할수있는 노하우있으면 알려주세요
4. 두번째 주문수련시에 호흡은 그저 자연호흡으로 편안하게 하면되나요?
5. 그밖에 조언부탁드립니다
현일
글세요 주문이면 주문따로 호흡이면 호흡따로 가 집중이 잘되지 않을까요
복잡한데 그리고 주문도 고도운지음사면 될거 같은데 다른주문은 불필요할거구 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이렇게 써있는걸 보니 거추장스럽다고 보이는데
이렇게 저렇게 처음부터 정확하게 할거 없이 해가면서 몸에 먼저 익숙해지는게 좋을듯해요
서두른다고 될것도 아니라서요 ㅎㅎ
그리고 단전의 정확한 혈자리를 구분 안합니다.
이유는 그렇게 단전에 집중하는것이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단전이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되기도 하고 모양자체가 일반인이 알고 있는것과 다릅니다.
수인은 사진이 잇을텐데 ㅎㅎ
반야
왠지 제가 하고있는 수련법이랑 그에 대한 고민이 유사한 것 같아서
너무 동질감이 느껴지고 반갑네요
같은 여정에 들어선 도반분이 또 계셔서 행복합니다
저도 옴마니반메훔 고도운지음사 섞어봤는데 이젠 고도운지음사에만 올인하게 되었어요
부족하지만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고도운지음사를 할 때 호흡은 그냥 내버려둔 채 지켜보기만 하고 주문소리가 단전에서 난다고 의념을 뒀어요
사부님은 불필요하다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단전이 빙그르르 하니깐 집중할 때 조금은 더 도움이 되는거 같더라구요~
풍뢰
반야선배님 말씀감사드립니다
제가 뭔가를 할때 미래의 계획을 세워둬야 박차를 가하는성격이기에 체계를 잡으려했어요
호흡은 두고 고도운지음사를 하면 되나요?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초보라서 막연하게 고도운지음사를 되뇌이는게 몸에 숙달이 안되어서 그런가보네요
주문수련(고도운지음사)할때 다들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전 조용한방안에 편히 앉아 고도운지음사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써내려가려노력하는데 이게 과연맞는지...ㅠㅠ
반야
아 풍뢰님 저도 이제 막 시작한 생초짜라 선배로서 조언드린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체험 나누는거에요 ㅎ
다만 일상중에서도 틈나는대로 고도운지음사 되니이고 호흡도 바라보려고 꾸준히 노력하고는 있는데 이 정도로도 충분히 도움을 받는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떠올려서 써내려가는 것도 좋아보여요^^
풍뢰
선생님 말씀감사드립니다~
제가 너무 체계를 잡아서 하려했나봐요 자연스럼움이 좋은데 너무 정의를 내리려했네요
집중을 위해서는 첫번째처럼 고도운지음사로 주문에 의념하여 수련해야겠네요^^
그후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몸에 먼저 익숙해지는게 좋을꺼같아요^^
Q 선생님 질문(부탁)이 있어요.
풍뢰
제가 글을 읽다 보니 다른선배님들께서는 단계를 이룰때나 느낌이 있으실때 사진을 보내서
측정을 해주시거나 올바른길을 제시해주시는거 같아서요
혹시.. 저도 가능할까요?
제가 제대로 하고있는것인지
주문마다 체질이나 어떤부분에 따라서
맞는게 있고 안맞는게 있는거 같아서요
예를들면 양적체질은 어떤주문이 안맞고 음적체질은 어떤것이 안맞고..
제가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여러 수련법을 해보고 저에게 맞는걸
찾는게 좋다고 하셔서 광룡정에서 여러 주문을 정리해서 수련해 보려고
하거든요^^
괜찮으시다면 메일로 사진보내드리려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낼때에는 최근사진으로 보내야하나요?
기존사진으로 가능한가요?
현일
주문과 체질은 지금은 구분을 안합니다.
"고도운지음사"는 기수련에 가깝게 만든수련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좋으면 하는거구
그외 불교적 수련은 몸으로 느끼거나 기와는 별개의 것이라서 자신이 느끼는것은 다를수 잇는것입니다.
땅해는 명상으로 딱히 호흡이나 주문이 불편하거나 거부하는사람일경우와 땅과 해로 도를 전해받을 이유로 하는겁니다.
사진은 최근것으로 하는데 수련진도를 측정하고 등급조정을 하기위해서만 합니다. ㅎㅎ
풍뢰
아... 알겠습니다
고도운은 기수련에 가깝게 만드신거였네요^^ 불교적 주문수련은 기수련과는 별개인거고..
땅해는 명상으로 하는 심법과 비슷한거네요 ~
열심히 정진하고 차후에 소기의 성과가 있을때 사진보내도록 하겠습니다~
Q 2단 수련시 마음가짐과 중점을 두어야 하는 이유
두루마리
2단으로 계제가 올랐는데 막상 바뀐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 느껴지고 가끔 뭔가 보이는 그런 것들이 있고 그간 수련에 마음을 두면서 부터 죽 그래온 것 처럼
마음이 많이 가라앉고 부드러워 졌다는 것과 가족들과의 관계,
가족들의 행동같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주요한 변화같아요.
선생님 글을 찾아 읽으며 2단 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시련이 있을 수 있지만 소홀히 하면 안되는 단계라는 것.
개인, 나라, 세계, 우주와 감응하며 수련해야 한다는 것.
각성. 결단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등이 중요한 내용인 것 같아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결단이라면 앞으로의 수련에 대한 결단을 말씀하시는 건지?
반성이라면 이제까지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 혹은 수련과정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지?
집착은 육체가 느끼고 바라는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과 자신만의 생각, 관점에 대한 집착을 말씀하시는 건지?
한호흡 한호흡에 정성을 들이고 ......시간날때마다 주문을 외고
수련을 생활화하려는 노력이외에 무엇 더 필요한지? 어떤 마음이 중요한지?
사람마다 처방이 다 틀리긴 하겠지만
혹시 제 현재 상태에서 조언을 해주실만한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써놓고 올리려니 이게 다 조급한 마음이지 하는 생각에 좀 부끄럽긴 한데요....
알고 싶은건 물어봐야 하는 성격이라...... 죄송합니다......
현일
예 그런것이 다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련에대해서 전문적인 길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그단계에서 다양한것에대한 생각이나 경험이 중요할거라고 봐요
정답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준비단계이니 차근히 알아가게되어요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마음이 가는지 알아보는것도 중요할거구요
결단은 내가 전문적인 수도의 길로 갈건지 결정해야해요 이다음부터는 다른길이니까요 반성은 이제 시작입니다.
잘못을 반성한다는거보다 더 큰의미로 성찰일겁니다.
자신이 무엇이고 뭘하고 있고 뭘 알고 모르고 이런것이 나중에 지혜가 되는 시발점입니다.
집착은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야해요
이걸알면 각성의 시작입니다.
반야
두루마리님의 질문은 저 또한 궁금해하던거라 제게도 큰 도움이 되네요
사부님 말씀 깊이 곱씹겠습니다()
생각
현일
생각 좀 해봅시다.
수련에 우선 누구나 수련만하면 다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 수련은 뭐죠?
단전호흡이 수련이에요?
아님 주문, 명상, 선, 많은 수련법이 있는데 이런것이 수련이에요?
지금껏 이렇게 알았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안일한거 아닐까요?
도가 그리 쉬운가요?
기를 느끼고 황금을 본다고 정말로 자신이 하늘에 올랐다고 믿나요?
또 하늘이 뭐죠 구름 떠있는거요? 아님 신장들이 있는곳요?
거긴 뭐하는 곳이죠? 우린 이렇게 살기 힘든중에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고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고민인데 그 하늘은 뭐하고 있는 곳이죠?
왜 거길 가길바래요?
뭔가 보이고 또 뭔가 알거같고 아니면 정말로 확연한 각성을 경험했나요
그래서 의심없이 자신의 공부를 주장하시나요?
그런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수련과 아무 상관없이
경험하고 있다고 서양 심리학자는 말하고 있어요
이미 백년도 넘은 심리학자도 말하죠 윌리엄 제임스요 얼마전에 읽은 에이브러햄 매슬로도 그러더군요 웃기죠 선불교에서 거창하듯이 말하는 그런 깨우침들이 아무 상관없이 일어나요 이 지구에는요
자신의 경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싶은것은 알겠는데
그런건 남들도 다해요
그래서 지혜가 중요한거에요
지혜가 없으니 우물안 개구리를 못면하죠
영안은 지겨워서 그냥 넘어가구요
자자 보자구요
수련에 대한 의미나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말하고 싶은거에요
그러니 그 수련법이라는것도 어이없을수 있구요
그리고 누구나라는 것이 어디까지지요
님들은 사람이면 다 사람으로 보이나요
이런말하면 안되나요
서양에선 이렇게 말하면 인종차별, 성차별, 우생학이 어떻고 하며 비난해요
하지만 우린 은연중에 사람이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죠
자신의 스승이나 개파조사에 대해 그들은 감히 우리가 넘볼 수 없는 분이라고
신성시하죠.이것도 인간평등에 위배된다고 생각해봤나요
불가의 여래장은 평등론으로 누구나 깨달으면 같다고 하는것인데
아닌가요?
아무튼 우린 서구의 유전적 이유외에
다른방식으로 사람이 다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업과 전생수련과 태초의 발생인까지 합쳐 그렇게 보지요
수련만 하면은 아무거나 다하면 된다고 하나요?
아님 자신들의 수련만을 의미하나요?
요즘은 어찌된것인지 퇴보하나봐요
자신들의 수련만 인정해요
종교전쟁과 다를것이 뭐죠
우리가 우매한 백인이 하는 저런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셧나요
수련의 목적이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살고 이끌어주고 같이 행복하게 살기위한 것이 아닌가요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자신의 학문만 위하면서 싸우죠
지금이 조선이면 그들은 자신의 방법외의 다른단체들을 숙청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있나요.단학가들이 그당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편협한 사고가 한스러웠는데 왜 지금은 우리끼리 그런 싸움을 하죠
수련법은 사람이 중요해요 사람마다 방법이 다른거에요
한의학 같아서 대강 체질적으로 비슷하게 처방하여 수련도 같은수련을 하지만
거기엔 같은 증상이라도 원인이나 다른이유로 다르게 처방하는 방식도 있어서
또 다르게 하는거에요
이 다르게 해야하는 것을 모르면 아직 수련을 가르치는것에 실력이 없는것이니
자신을 알아야해요
깨달음은 또 어디까지 깨닫는걸까요?
끝인가요? 끝이 있긴 하나요? 어디요? 간 분도 있구요?
아 ! 무조건 부처나 노자나 자신의 우상을 말하지 말구요
본인이 확인했나요? 했으면 님도 그 버금 가는건가요?
그래봐야 역사상 얼마 안되는 분만 거기를 갔다고 해야 하네요
내가 보기엔 단 한명도 거기에 이른자가 없는거 같은데요
어찌 아냐구요 전그냥 기록을 본거에요
또 이런식으론 깨달음의 요원함을 말할뿐 우리가 접근할 그건 아니죠
'얼마나 깨달을수 있다'고 해야할거에요
얼마를 어느정도 까지 가죠 ?
세상이 평등해지는 거기까지만 가보세요
그러면 왜 거기냐 물으면 그냥 웃지요 흘흘흘
그냥하는 말
현일
그냥 하는말
요즘 요러가지 이유로 수련을 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걑습니다.
다들 수련의 초보적 단계인 수단, 단전 위치. 축기, 기느끼기, 특히 소주천에 관심이 많은듯 합니다.판타지나 무협소설로 초능력이나 내공에 관심있어 빨리 단기간에 어떤능력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내경우엔 80년대 후반부터 丹이라는 책을 보고 수련한 것이라 소주천은 89-90년에 완성했고 지금은 그때로부터 20여년이 되가니 그당시의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고 그때 수련일기를 쓴것을 나중에 부질없다하여 버린것이 이제야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블러그에는 상달한 부분 위주로 쓰게되어
상당히 허황된것 같고 초월적이고 신화적이어서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도 없는 것들이 많게 되었습니다.
수도자가 되어서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은 가끔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기혈의 뒤틀림을 경험하지만... 꾸밀 수 도 있고 더 황당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면 업이 됩니다.
세상은 쉬운듯 하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거짓말하는 내 기운의 뒤틀림도 느끼며, 날 아는 많은 신명의 비웃음도 느낌니다.
그리고 세상은 말한마디 작은 행동 뿐아니라 순간순간 일어나는 욕망도 그리고 소소한 생각 생각들도 원인을 소급하여 알려하면 어느정도 알게 됩니다.
그 무엇도 불가의 인드라망처럼 얽혀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잡념하나도 내옆에앉아 있는 동생의 생각이 전이된 것을 확인 할 수 있고 떠오르는 아이디어적 발상도 삼일후에 서점에서 고른 책에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도를 닦으면서 알게된 처절한 진리중에 하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내가 그무엇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자유롭고 평온하지만 따져보면 이것도 원인을 추구하면 알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폐쇄하여 외부영향을 막을 수 는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은 것과 같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것이 들어오고 나가며 나는 그안에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쏠리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거짓이나 속임수는 알 수 있고 또 알려집니다.
잘못안 것이 있어 실수 할 수는 있어도 속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다음에 어떤희생을 강요하며 다가올지 두려우며, 그것보다 수도자의 자부심이 허락치 않습니다.보이는 것을 보인다하고 안보이는 것은 안보인다 하며,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뿐입니다.안타까운것은 초보자에게 해줄 수 있는 안내가 미흡하다는 것입니다. 기억나지 않고 기록도 없어졌고 제자도 기르지못해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수련을 쉽고 즐겁게 했으면 합니다.
경제생활도 가능하고 사회생활도 하면서 해야 하는데 기수련이나 여타 수련단체의 수련을 잘보면 좀어려운것 같습니다. 용어나 이론도 그렇지만 수련을 진척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울듯 합니다. 왜냐하면 기수련은 생략이 없고 단계 단계 밟아가야 하는 귀찮고 더딘 과정이 많습니다.
기로 내공을 쌓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단련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다면
다시말해 기수련을 굳이 집착하지 않다면 우리엄마 처럼 수련하는 것이 나을듯 합니다.
도를 스승이나 신에게 전해받아 조금씩 스스로 수련하면 빠르게 수련이 될 것으로 보는데 이러면 힘도 덜들고 다른 생활에 지장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기수련든 주문수련이든 단전호흡이든 어떤수련이든 깨우침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은 필수입니다.
원래 어떤수련이든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몸을 만듭니다. 바른몸은 깨우침을 실체로 구현한 것 입니다.
결국 수도란 깨우침이고 그리고 깨우침의 실체화 작업입니다.
초보에서 고단자들 까지 이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명심하고 명심하세요 진짜입니다.
지금 님께서 그수련에서 진척이 더디다면 한번 해보세요
깨달음이 부족하지 않은지 점검하고 이때 서경덕님의 원이기 이기론을 숙고하심이 내가 한 방법입니다만 혹 도움이 있을까 권합니다.
깨우침 그것을 마음으로 굳게 잡고 매진하면서 합니다.
그래야 깨우침에 합당한 몸이 그러니까 원신갱생이, 바른몸이 이루어집니다
Q 마음(생각)의 이동???
세심
전에는 주문외우면 머리(상단전)에서 외웠는데,
요즘은 머리(상단전)에서 외우다가 어느순간 가슴(중단전)에서 외우는데, 다른 분들도 이러한지 아님 저만 뵨태인지 궁금합니다.
현일
ㅋㅋ 의식이동이라 생각을 가슴으로 한다고 했자나여
아마 가슴이 발동하는걸거에요 마음가라앉듯 의식이 가라앉은 걸거구요
주위 주변 천지와 함께 외우기도 하겠어요 ㅎㅎ
세심
에휴 점점 어려워지네요,,,,,주변천지와 동화하는걸 느끼기 시작하면 ,,,
이제 생각도 맘대로 못하겠네요,,, 어려운거하고는 별로 안친한데,,,
금평이 아빠
이게 가슴으로 외워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언제부터 집중하면 전중혈 근처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치 가슴한중간에 구멍이 있어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느낌이랄까요.
지금은 거기서 조금 밑으로 이동을 하고있는 느낌이 있지만
일전에 선생님과 통화후 댓글처럼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셔서
아하~ 그런가부다 하고 있습니다^^. 뵨태 전혀 아닌것 같다는,,,,,,,,
저팔계
책 등을 외울 때 머리로도 하고 배나 가슴으로도 할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머리에서 상기증도 약간 있어서 머리가 띵하거나 머리에 혈액순환이 안될 때는 가슴으로도 머리 대신해서 해보곤 햇습니다^^
호흡 수련할 때는 가끔 구구단을 머리나 아니면 배나 가슴으로도 멍청하게 외우곤햇습니다.
땅해 수련법
현일
땅과해
우선 앞의 암시에서 한 맑음과 없음과 고요함을 해본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처음엔 눈감고
감은 눈을 생각한다.
그리고 눈안쪽을 생각한다.
눈과 뒤통수 중앙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대로 목을 타고 내려온다.
그리고 가슴을 지나 배로 온다.
그리고 항문을 지나 땅속으로 들어간다.
깊이깊이 그리고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 둥근 구체가 있다
그것을 생각한다.
그대로 가만히 있는다.
그끈을 잃지 말고 그대로
그리고 다시 눈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하되 이제는
정수리로 올라간다.
머리위로 나가서 태양으로 간다.
그곳에도 구체의 것이 있다 그곳에 머무른다.
또 그끈을 잃지 말고 아까 처음에 했던
머리가슴배를 또 차례로 해서
이제 다섯개를 한꺼번에 연상한다.
대충하면된다.
한번 연결하면 이어져 있으니 억지로 힘쓰고 떠올릴 필요없다.
아니면 순서대로 하나씩 반복해서 연상하면 된다.
익숙하면 빠르게해도 된다.
몸은 자동이라 한번 해본것은 알아서 해간다.
그리고 한번 이은끈은 생각안해도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조용할때 이렇게 하고 일상생할에는 가끔 떠올리며 나를 중심으로 땅과 해가 있다고 생각하면되요 아마 삼위일체겠죠 ㅎㅎ
그리고 기나 빛이나 다른 것이 느껴지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흥분하지말고
이것을 조장해서 더 느껴보려거나 하지말고 또 막아서 없애려고도 말고
그져 관망하듯 해요 이 조장과 막는것을 안하고
지켜보는것을 언제나 항상 앞으로 자신의 수도에서
중심을 잡고 해야하는 균형적 심법이라 생각하고 요령을 잘 익혀야해요
이건 수련법이다.
땅만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호흡도 내쉬는것이 많아지기도하고
편안해지기도하고 우울해지기도한다.
흥분되거나 들뜨거나 이것이 편안함을 느끼면 이것을 위주로 해도된다.
이건 백색원신을 만든다. 지기가 너무 많다.
태양은 그반대적인 의미가 있다.
황금색 원신을 만든다. 좀거칠고 불안정하다.
내가슴이나 배를 함께해야 나에게 더 가까운 원신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건 내가 도를 주지않아도 된다.
이자연, 지구,땅, 태양, 천지가 주는 도통이다.
초보자가 하는수련입니다.
이건 땅과해가 주는 도로써 스승없이 수련하는 방법입니다.
땅이 해가 스승이되는 것입니다.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하는것이니 아주 좋은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도를 받고 수련하는 사람처럼 빠르고 쉽게 수련하고
부작용도 없습니다.
수련상의 격는 고통은 당연히 있지만 잘못되것이 아니니 이겨내야합니다.
그래도 이상하면 도움을 청해야죠
Q 땅해수련 수련법이해못하겠어요.
이인
정수리로 올라간다.
머리위로 나가서 태양으로 간다.
그곳에도 구체의 것이 있다 그곳에 머무른다.
또 그끈을 잃지 말고 아까 처음에 했던
머리가슴배를 또 차례로 해서
이제 다섯개를 한꺼번에 연상한다.
이부분에서 빨간부분이 무슨뜻인지..
머리가슴배에 구체가 있다고 생각하는건가요?
그구체가 무슨색인지 또 어떤구체인지 태양의 그 구체인지 땅의 그것인지....
그리고 다섯개라는건 머리위,발밑,머리,가슴,배에 구체가 있다고 상상하란건가요?
그럼 그 구체는 각각 어떤구체인지..
땅의구체도 태양의구체도 아니라면
그 구체가 하는 역할은 있을거자나요 그 역할이 무슨역할이죠?
거기에
내 앞에 공중에 가슴높이로 둥근구가 있다고 생각하고
좌우 그리고 뒤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머리위와 앉아서는 엉덩이 밑에 서서는 발바닥밑에 하나 더 있구요
그러니까 상하 좌우 앞뒤 이렇게 여섯개요
거기에 머리 가슴 배 이렇게 세개
또 땅과 해 이렇게 두개
총 열한개요
여기서도 파란부분에서 말한 열한개의 구체가 대체 뭔 구체인지 모르겟어요
아!! 지금생각난건데요 혹시
머리위에 태양의구체가있고 발밑에 땅의구체가 있고
그리고 나머지 구체들은 그냥 색깔은 상관없고
나한테 도를 주는 구체라고만 생각하면되는건가요?
제가 미숙해서..
현일
재미 있네요 질문이 ㅋㅋ
우선 구체가 도를 주는 무슨 밧데리가 아닙니다.
서로 함께 존재하는 상호의존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식을 몸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확대해서 가지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혜윰님도 말했지만 단전만 의식을 두고 있으면 마음도 협소해지는 것같고
또 사람이 그렇게 단순해지기도 합니다.
머리가슴배의 세개 주체는 그냥 구체이상 색깔이나 모양을 지나치게 연상하면 귀찮습니다.
이런 구체는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하는 정도의 희미한 연상이면됩니다.
해나 땅도 안되는 색깔이나 크기나 모양에 신결쓸거 없습니다.
그리고 기운을 빨아들이거나 하는 당치 않는 행위를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거보다는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용하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내수련을 위해서 자연을 학대하는 것은 흡혈귀같은 짓입니다.
머리 가슴 배는 원래 정기신이나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나 하는 것을 말하는데
머리만한 구체가 머리와 가슴과 배에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단전이 혈이나 점처럼 작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큰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의 역할은 정과 기와 신의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것을 공부하면 됩니다.
11개의 구체는 머리 가슴 배 이렇게 세개가 있고
가슴앞에 등뒤에 머리위에 발이나 엉덩이 밑에 왼손 오른손옆에 이렇게 여섯개
그리고 머리위로 태양에 있다고 상상하고 땅속에도 있다고 상상하고 이렇게 두개 그러니까
머리위에는 머리위에 하나 태양에 하나 이렇게 두개가 있죠 땅도 그렇고요
그리고 지나치게 확연하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아도 되요
그런게 있다고 인정하거나 믿으면되요
잘 떠오른다고 잘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런것의 응용은 대의련법이나 자광신도법에 보면 있어요
나중에 수련이 좀더 되면 한번해보세요 ㅎㅎ
이인
아 그런거군요 감사합니다
윤집궐중
중국 요순시대에는 유토피아와 비교되어 왔다.
중국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태평했던 시대.
얼마나 살기 좋았으면 이런 애기도 전해온다.
요임금 때의 일이다 .
어느날 요임금은 미복을 하고 민정을 살피러 나갔다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가만히 들어보니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였다.
요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걸음을 계속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노인의 노랫소리는
신하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배를 두드리고,발로 땅을 구르며,흥얼거리는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니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임금의 힘이 소용없다니!’
신하들은 안절부절 못했지만 요임금은 달랐다.
백성이 임금의 존재도 모를 정도로 태평히 살고 있으니
이는 정치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천천히
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신하들은 요임금의 지혜와 성품에 감복했다.
요임금은 제위를 물려줄 때도 성군다웠다.
그는 9남 2녀의 자식을 물리고 나라 안에서 덕망 높은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렸다.그때 순임금에게 준 네글자가 있었으니
바로 ‘윤집궐중(允執厥中)’이다
풀이하자면 ‘진실로 그 중심을 잡는다’는 말이다
중심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정신을 집중하라!’고 할 때의 ‘집중(執中)’과
가운데 중(中) 밑에 마음 심(心)변이 있는 충(忠)또한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꽉 잡아두라는 말이 집중이요,
마음을 항상 중심에 두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성이다
그렇다면 중심이란 무엇인가. 바로 인생의 축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축이 있어야 세파에 흔들리지도,
사의(邪意)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심을 지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흔들림 없는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심중에 윤집궐중(允執厥中)이란 네 글자를 꼭 새겨두길 바란다
-차 길 진 법사님의 글중에서-
봉천명
"중용" 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중"과 "중중" "중중중"...
계속 되는 "중"의 "중의"의 "중중의"의... 이를 관법 이라 하지요.
이 하나의 깨달음 만으로도 능히 천허인 이상이 되신 분이 계시지요
일신
천관님 말씀이시지요....ㅎㅎ
6개월 걸리셨고... 중을 7번 벗기셧다고 하시던데요...^^ ..
저는 도덕경에 도전장을 한번 내밀어 볼려고 하는데... .. 도전이 쉽지가 않네요..^^
일신
그렇게 되었네요... ㅎㅎ 중이 어려워요...
영풍문고에서 .... 대략 두시간을 책 고르기만 하다가 왔어요..ㅎㅎ
봉천명
相授心法(상수심법)은 允執厥中(윤집궐중)이니라.
中也者(중지자)는 天命之性(천명지성)이라.
萬理具備(만리구비)하야 天變萬化(천변만화)가 皆從此出(개종차출)하나니
乃天下之 大本而(내천하지대본이) 爲道之體(위도지체)하고,
예로부터 서로 전해 내려온 마음 닦는 수련법은,
윤집궐중」(允執厥中) 그 중(텅빈 마음)을 잡는 것이다.
中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준 성품을 뜻한다.
그 가운데는 만가지 이치가 고루 갖춰 있어서
천번 변하고 만번 화함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며
하의 큰 근본으로서 道(도)의 근본(체)이 되느니라.
현일>
윤집궐중은 <논어>에 나온 말로
주자가 중용서문을 쓰면서 도통을 세우기위해 다시 쓴 것인데 어려운 말이다.
중을 하늘에서 내려준 성품이라고 하는데
하늘을 지금사람들이 저위쪽 어딘가에 있는 낙원이나
증산상제가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그곳으로 알지 모르겠는데
이런것은 일차원적인 발상이고
진짜 하늘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처럼 시작과 끝을 모르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도 모르는 바로 그러한 전일적인 어떤 것이다.
일이란 모른다는 것이고 초월이라는 것이며 시공의 개념을 넘는 것이다.
왜 이런 것이 하늘이냐면 삼일신고에도 나오니 당연하고
또 오직 내안에서 나의 하늘을 상대하는 것으로
내적 깊이에서 오는 그곳의 심연이다.
중이란 하늘에서오고 하늘은 내 깊은 그곳에서오며 오직 스스로 알뿐인 그런 것이다.내안이 모든 것으로 확대되어간다.
그러함에서 지킨다는 것은 단전을 만들고 안으로 수렴하는 의미도 된다.
이러면 혹 하늘이 이미 내안에 구비된 듯하게 말한거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이미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사실 많은 사람은 우리가 이미 하늘이고 부처이고 모두 신성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런 말은 수도 시키기위한 말이며 개념을 설명하기위해 만든 이론이다.
우리는 아무리 공부해도 부처가 될 수 없다.
하늘은 물론이고 신이 되는 것은 요원하기 만하다.
딱 정해진 고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수도 하라고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경지가 되면 이젠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목적도 불분명이고 궁극의 경지 그곳도 어딘지 모른다.
부처가 어디 있고 하늘은 어디부터이고 모든 것이 어딘지 어디부터인지 알 수가 없다. 무극은 어디고 태허란 어디인가? 알 수가 없다.
이런 신의 세계, 형이상학적인것에 대해서 알듯이 말하고 뭔가 깨달은 것처럼 말한다면 난 그 사람이 아직 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라고 하고 싶다.
모두가 그저 말일뿐 가고보면 그런 것은 없다.
논리적으로 장자처럼 배로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고
고기를 잡았으면 투망을 버리라고 비유적으로 말하며
위상개념으로 상위를 논한 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말도 필요없다.
가봐야 한다.
도가 이루어봐야 그다음 서로 대화가 가능한 그런 세계가 있다.
세계가 있다고 하면 이것도 나름으로 뭔가 이미지를 만들 것이다.
역시 가르침이란 어려운 것이다.
중이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선 의지세움을 해야한다. 이 의지란 필요에 의해서 자신이 정하고 자신이 책임지며 자기의 영역과 세계를 구축하면서 살아가는 그 홀로섬의 아픔을 견딘 것이다.
이런자가 중이 있음이다.
필요란 내가 알아낸 필요다
일신
꼭히 중을 생각해본적은 없지만...
중은 '내가 세운 뜻과 의지 뿐' 이 아닐지요......
그외의 중은 그 중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나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한쪽이란것도 명확한게 없으니...
내 가 가진 뜻과 의지를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기울어지는 방향에 따라 가감이 필요할 뿐인게 아닌가 합니다....
몸 만들기
현일
바른 몸 만들기
자, 몸을 만드는 첫째 관문이 바른 몸입니다.
원신갱생이고 양신이고 법신,영체 등 다양하게 불리었습니다.
이름이 뭐라하든 그런것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그 보편적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만드는 의미는 초월적 자신의 몸을 만드는 의지의 첫 결실입니다.
우리 인간이 넘어야 할 첫번째의 장애가
불교적으로 안,이,비,설,신,의에 해당하고 지감에 해당하는 인간 한계 극복입니다.이건 우리가 얼마나 얻기 힘든 것인지는 지금 우리 주위에
넘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알고
과학적, 합리적, 논리적인 이데올로기의 우스운 관념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인간 사고의 현실을 보면알고
수도하는 곳에 초월적 능력, 기적과 이적을 바라고
특이공능같은 영안이나 기공류의 능력을 바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의 현상계 이상을 이해못하는 것도 있고
스승이나 부처나 성인이나 뭐를 안다는 권위적 우상에,
법에, 진리에, 말에, 힘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 공을 각한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세계에 진입한 것이며 그것에 알맞은 몸이 탄생됩니다.
아는 것이 신체화 되지 못한 것은 부족한 지혜이며
이런 것은 무지라고 합니다.이 아는것을 신체화하는 의미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거 같습니다.과거나 현재나...
이렇게 만든 바른몸이 있어야 우선은 인정합니다.
내 의식의 크기에 맞게 하늘 기운이 들어옵니다.
각성의 진보없이 하늘을 탐하는 것은 안됩니다.
하늘이 들어오면 땅도 들어와
천기와 지기와 나의 삼보가 합쳐지면 공단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힘과 정신의 소모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신체활동외의 여유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몸은
그 준비와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힘과 기운이 필요하고 바른 몸을 만들기
위한 신체의 재구성과 정신의 준비와 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한 첫단계가 여유의 기운과 심리적, 정신적,
준비가 단전이며 그래서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머리는 의식작용이 중요해서 안되고
가슴은 심장과 심리작용이 영향받아 안되고
배가 무엇을 모으고 전환하고 탄생시키기에
적합해서 여기로 모든 생성의 기준으로 합니다.
우리몸의 피부와 모든 혈과 운행은 분명이 막힘없이 열리고 제 역활을 한다.
하지만 이정도의 열림과 운행으로는 안되서 더열고
운행시키고 해야하고 나중에는 내면의 변화된 질적 상승에
걸맞는 외부 것을 들이고 운행해야 해서 개혁과
운행이라는 작업을 할뿐이고 이것은 나의
내적 변화에 발 맞추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머리는 천기를 들여 변화기켜 배와 온몸으로 보내고
배는 지기를 들여 변화시켜 머리와 옴 몸으로 보내고
머리는 지기를 들이는 원동력이고 온몸으로 보낸다.
배는 천기를 들이는 원동력이고 온몸으로 보낸다.
가슴은 증폭하고 들이고 변화시키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천진양화기나 진정대화기의 운행이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이것외에 더 많은 방법이 있다.
◎ 회광반조
내관법, 반성, 성찰, 내적관찰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빛을 안으로 되돌려 비치는 것입니다. 빛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의식을 말하고, 기운을 말하고, 근원적 관념체계를 말하고, 시공의 위치나 흐름도 말합니다. 마음이고 순수한 정신이기도 합니다. 빛에 빗대어 설명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만큼 빛이 우리일상에 큰 의미가 있나 봅니다.
그리고 안이라 하면 바깥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평소생활을 말하며 사회나 직업등 외부세력의 틀 속에 끼어 맞추듯이 살아온 것이며
교육받아온 것이나 상식적 통념과, 일상 생활하는 문화나 시대적 현상들에 해당하는 겁니다. 수 많은 크고 작은 이데올로기 입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남북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유교 불교, 도교나 도가, 기독교등등 종교나 과학, 그외 우리가 알게 모르게 습관처럼 당연시하는 모든 관념체계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고 자라고 교육받고 취직하고 종교를 가지며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관심 갖거나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며 사는 것이나 ,
사회적 이슈들과 통념적 지식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임자 없는 지식, 말들, 누가 살고 있고 또 살아가게 하는지 모르면서 살고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외부로 향해서 사는 거라고 봅니다..
즉 우리 일상생활의 총체적 형태입니다.
사회와 문화와 문명들과 자신의 자아가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
타성에 물들어져 가며 길들여지듯이 살아가고
자아의식이 있으면서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많은 분별되지 않는 개개인이면서 개개인이 아닌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고 안으로 거두어 한번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어디에 있고 어떻게 지내왔고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반추하며 성찰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자아발견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재인식해야 하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안으로만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고
외부로만 향하던 추구에서 조금은 안으로 방향을 틀고 자신을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결국엔 그 안과 바깥을 긴장된 균형 잡기의 기술이 있어야 하지만
항상 중의을 잡는 것은 어려우며 춤추듯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할 것이지만 이것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의 가르침은 중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 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중에 치우친, 진여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을 봐야 하고 언제보고...
언제 해야 하냐면, 이것은 처음에는 일부로 시간 내서 익숙하게 할 수 있게 연습해야 하며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항상 할 수 있게 단련해야 합니다.
어디를 보는가는 우선 몸 안을 봅니다.
몸 안이 텅빈 듯이 아무것도 없는 그저 몸속을 막연히 관하는 것입니다.
내장이나 뼈나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몸 안에 그저 의식을 두기만 합니다.
그리고 몸속에 중심이 있는데, 중맥이라고 하는 회음에서 백회의 직선적인 관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지만
너무 경맥론적으로 봐서는 안 되며 기가 흐른다고 하는 자천법적 방법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기나, 경맥이나, 흐르는 어떤 것이나, 자극적 감각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그 알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묘한 중간적 감각을 알아야 합니다.
즉, 느끼면서도 거리를 두며 확인하면서도 외면하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와의 연관성으로만 중맥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몸속 중앙의 길이 있다는 것 정도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몸속 중앙을 넌즈시 관합니다.
눈을 감으면 의식이 눈꺼풀 부위에 있게 됩니다.
눈을 뜨면 눈앞의 사물로 나아갑니다.
또 감으면 눈에 있게 되고 뜨면 앞으로 치닫게 되고
이렇게 의식이 눈을 감고 뜨는 것에 따라 앞으로 혹은 뒤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 요령을 알면 눈감고 더 깊이 의식을 안으로 들여 봅니다.
뇌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뇌의 중앙으로 의식을 두게 합니다.
다음은 가슴을 생각하고 가슴속 중앙으로 감정을 들인다고 생각하면서
의식으로 감정의 중심을 안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또 몸도 배의 중앙으로 오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의식과 감정과 함께 두게 합니다.의식도 감정도 모두 배속에 두고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게 합니다.
안으로, 안으로 밑으로, 밑으로 들어가고 내려 갑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은 눈을 감고도 하고 뜨고도 하는데 그냥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눈감고 있습니다.가만히, 가만히 그냥 있기만 합니다.
몸 전체를 인식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고요히 있습니다.
의식가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그냥 또 가만히 그렇게 있습니다.
눈뜨고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다시돌아오고 또 가고 의식이 의식가는 곳을 따라 갑니다.
이 따라가기를 잘해야 합니다.
신체에 의념을 일부로 두는 집중을 할 필요 없고
중맥이든 단전이든 몸속이든 아무것도 집중하지 않고 의식이가면 가고 오면 옵니다. 그렇게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도 가치판단도 안합니다.
감정이 일어나도 무엇이 일어나는지 확인하지 않습니다.
눈뜨고 할 경우 눈앞에 사물이 보여도 무엇인지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중요 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즉 인지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건 그냥 보이는 것으로 끝납니다
느껴지는 것도 느껴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보여도 보이는 것이 아니고, 느껴도 느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고요하고, 고요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몸을 위주로 한 회광반조 입니다.
다음은 몸을 넘어 관념체계, 이데올로기. 형이상학, 인생과 운명, 생활과, 일상을 관조합니다.시간도 공간도 넘고, 유형도, 무형도 넘고, 윤리 비윤리의 가치판단이나 지식, 정보, 선, 악, 삶, 죽음, 모든 것을 반조 합니다.
우선 몸을 반조합니다.
고요히 몸을 내관하며 무언가 고요해지고 적막감이나 선정에 들면
그래서 그 행복감에 젖어들면 그대로 있다가 서서히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돌아오게 되면 내 인생을 대입하여 관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지식, 알고 싶은 것, 과거, 미래, 내 모든 것이나 세상이나 감정의 여러 변화나 이치나 원리를 반조 합니다.
이것을 몸에 띠우고 마음에 띠우고 대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항상 선정에 들어 반조하고 내관하지만 그 안에는 내 인생역정이 둥둥 떠있고 함께 원융되어 있는 것입니다.
명상이나 내관이나 어떤 자천에서도 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알고 하는 것입니다.
애써서 고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고 없애지도 않는 것입니다.
세세하게 꼬투리 잡듯이 생각하며 따지듯이 보기도 하지만 거기서 물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기도 합니다.
그냥 보기만 하고 잊지는 않으면서 외면하듯 살기도 합니다.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일이나 현재의 상황을 한 몸에 항상 같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또 보고, 또 보고 이렇게, 저렇게 보며 사물이나 사실을 항상 같은 것으로 보지 말고 다르게 보며 결론내어 아는 것도 다른 결론을 유추하며
어떤 사실도 다른 결론이 가능함을 알고 내가 내린 결정도 그저 반조하며 보기만 하지 믿지는 않고 또 달라진 상황에 다르게 해석하고 모든 사실들이 그저 대상이며 내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내 몸을 보고 내 인생을 보며 보기만하지 취하지는 않습니다.
취하며 가지면 이후엔 보이지 않습니다.
안보이면 내관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너무 반조하고 삼매에 들어가는 것만 중요시 하지말고 내 삶과 고민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입정이든 뭐든 심리적 감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안됩니다.
그럼 지금까지 누가 보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의심하면 그 의심하는 그것이 보고 있는 거에요
이 보는 자는 항상 변합니다.
또 변해야 합니다.
내관하고 보게 되면 또 내안에 내가 자라고 드러나게 됩니다.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항상 다르고 달라지니 자기를 잡아서도 지녀서도 안 됩니다.
지켜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지 확인하여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가 나오고 자아가 자라며 진아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아는 내관하고 회광반조하는 그대 자신입니다.
그렇게 내면을 보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새로움을 느끼고 뭔가 달라진 자신을 보며 다르게 세상을 보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그렇게 진아는 나와 함께 자라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진아는 자라기만 하지 멈추지 않습니다.
진아를 잡아 확인하고 안다고 하는 순간 진아는 사라지고 허물어 집니다.
내관하지 않는 것이며 보는 것이 아니라 안보는 것입니다.
결정하고 인정하면서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집착하면 안 본다는 것입니다.
아까처럼 뇌속에 의식을 두고 눈앞과 내 주변 사물을 봅니다.
그렇게 멀리 멀리 내 뇌속 중앙을 기준으로 또 중심으로 내 주변과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영안이나 그런 잡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연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간적으로 자기 위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익숙해지면 시간적으로도 합니다. 눈뜨고 그러면서 의식은 뇌속 중앙에 있습니다. 그래서 날 중심으로 내주변의 사물을 인식하며 멀리 세상과 모든 것들을 내가 중심에 있는 것같이 인식합니다.
내가 천지의 기준이고 중심이며 세상만물은 날 중앙으로 널려 있는 것입니다.
난 그것을 뇌 중앙에 의식을 둠으로써 세상이 날 중앙에 두고 배치 된 듯이 인식하게 합니다.이것이 천지중앙이며 천중입니다.
나아가 중맥의 기둥을 세우고 천지기둥을 정하고 세상을 보면 천주가 되고 내가 천심이 됩니다. 내 중력에 모든 것이 나로 이끌리고 나와 함께 동조하며 난 그 중심이며 기준으로 그것을 고요히 내관 합니다.
이것은 술법이 아니고 초월능력도 아닙니다.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고 지금까지 알던 육안의 시각과 편협한 의식적 인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도 가능함을 알고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중에 하나를 이해한 것입니다.
◎ 암시
이런 건 초보적 심법이라 다들 알고 있을 것인데,
그냥 정리해보아요
우선 머리부터요
머리를 떠올리고 맑다, 내 머리는 맑다, 맑아져라 , 맑아져라, 맑음,맑음
이렇게 계속 암시를 주는 겁니다.
밝다고 해도 되는데 이러면 너무 불이나 열이 연상되어서
초보자는 상기될 수도 있으니 「맑다」로 한다.
둘다 연습해서 맘에 들거나 상황에 따라 써도 될 것으로 본다.
맑다고 하면 머리가 아프거나 답답하거나 등등에 효과가 있다.
그 외 어떤 작용이 있는지는 해보면서 터득해간다.
우선 자천이 될 것이니 자천외에 응용은 체험하며 알아가는 것이다.
그다음은 가슴인데
가슴을 떠올리며 즉, 가슴에 의식을 두고
비워져라 비워져라하고 반복하며 떠올린다.
또는 없음이나 무, 공으로 해도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리고 배이다.
여긴 고요하다, 고요하다, 무거운거나 담담한거나 이런 것으로 한다.
차례로 하나씩 해보고
나중엔 한꺼번에 은근히 정확하게 연상하지 않아도 되니
세개를 한번에 한다.
머리 가슴 배를 떠올리고 한다고 하지만
집중을 한곳에 너무 하지 말고
고단자들은 아마 내 몸 넘어 넓게 퍼져갈 수도 있으니
머리나 가슴 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꼭 거기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요령을 잘 생각하고 한다.
이런 암시는 다른 것도 되는데
어렸을 때는 열이나 뜨거움, 불을 연상해서 몸을 따뜻하게 하기도하고
얼음이나 눈을 생각해서 반대도 해보았는데
지금은 잘 안 된다.
다른 것도 이것저것해보고 나름의 자천 재미도 몸으로 느껴보기도 한다.
혼백 천도도 가능한데 혼이나 백을 둥글게 감싸서 밝아지라고 하면 제갈길로 간다.이런 염을 쓰면 타존재도 영향이 간다.
내 몸에 암시했을 뿐인데 내 주위 사람들도 그 여파가 흐르고
또 대놓고 타존재나 사람에게 해도 그 영향이 가니 조심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하기를 바랍니다.
암시를 한부위도 하지만 몸 전체나 사물에게나 어떤 대상에게도 한다.
음~ 이런 건 가르쳐주면 위험한 짓을 하기도 해서 비밀로 해온 것들인데
어떤 염을 어떤 대상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이건 자신이 판단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것은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심하면 신벌이 있겠지만 그전에 자신의 정신적 피폐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천은 당당하고 떳떳한 자긍심을 위한 것도 있는데
그럴려면 하늘아래 부끄럼이 없는 행동이 있어야한다.
명심하고 세상에 이로운 방법을 찾길 바라며 자신의 갈 길을 개척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여기에 단체마다 전해오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요령을 위한 것이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집중력과 암시적 효과를 그리고 기술적인 것일 뿐이다.
이런 건 해보면서 나름대로 터득하고 알아가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내 생각엔 다 거기서 거기다.별대단한 거 없다.원리는 같으니까.
한가지 예를 들면 불나라고 생각하면 불이 난다.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이게 더 쉬운 현상이다.
담배에 불붙이긴 어려워도 어딘가에 불로인한 사고가 난다.
이건 내 생각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고단자는 특히 명심해야한다.
세상이 고단자를 키우는 것은 그 힘을 이로운 것에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님들의 생각과 감정의 절절함을 쓰기 위해서다.
그래서 님의 생각은 하늘의 생각이고 그것은 이루어진다.
너무 많은 것을 보다보니 이젠 담담해지는 내 마음이 무섭다.
5명이 모이면 그들의 생각이 형태를 띠고
10명이 되면 그들의 생각이 현실에 나타난다.
3백만이 모여 원하면 신도 상대한다.
이건 기본적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