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在의 空間을 만드는 빗자루
누구의 잔치에도 招待(초대) 받지 않으리라. 높이 세운 컬러에 풀을 빳빳하게 먹이지도 않을 것이며 黑色(흑색) 턱시도를 입지도 않을 것이다. 악수를 하기 위해서는 손을 내밀지는 않겠다. 술잔을 들고 미켈란젤로를 이야기 하거나 더 더구나 키신저와 아민과 알리와 그리고 아랍의 石油(석유)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意味(의미)를 사냥하기 위해서 그들은 겨냥을 한다. 가늠쇠를 가진 언어들은 언제나 標的(표적)을 찾는다. 냄새를 맡고 追跡(추적)을 하고 埋伏(매복)의 자세를 취한다. 잔치에 招待(초대)된 사람들은 모두가 몰이꾼들이다.
바람, 구름, 하늘, 그들은 텅 빈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ㅡ 비어 있는 침묵, 몸짓과 몸짓 사이의 머뭇거리는 停止(정지), 빈병이나 빈 상자들 같은 그런 공간을 죽이기 위해서 사람들은 잔치를 벌인다.
초대받은 손님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잔치가 끝나고 다들 떠나가고 난 뒤, 비를 들고 청소부 차림으로 나타나리라. 指紋(지문)이 묻은 유리컵 엎질러진 술 방울, 젖어 있는 종이 냅킨, 終止符(종지부)가 찍히지 않는 몇 마디의 낱말들과 함께 사람들이 앉았다 간 姿勢(자세)로 그렇게 의자들은 놓여 있을 것이다. 그들이 피고 간 담배꽁초와 그리고 파란 연기들이 얼마 동안은 머뭇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不在(부재)의 공간을 비질하기 위해서 당신은 비로소 그 자리에 參與(참여)한다. 모든 것을 애초의 그 빈자리로 돌려주기 위해서 당신은 노동을 해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잔들을 다시 비우고, 먹다만 음식을 거두어 접시를 거울처럼 닦아내야 한다. 窓을 열어 汚染(오염)된 공기들을 바꾸고 타다만 촛불을 꺼서 그 공간을 원래의 밤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턱시도를 입은 손님이 아니라 당신은 빗자루를 든 淸掃夫(청소부)이다. 잔치가 끝날 때에야 당신의 노동은 시작된다. 부재의 공간을 비질하기 위해서 당신은 땀을 흘린다. 천지의 모든 것, 신과 작은 풀잎까지도 모두가 이 빈 공간으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을 당신만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詩人인 것이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 1976. 11
마을은 염려 없다
아침 달이 서산에 걸렸다. 예쁘다. 아직 노란빛이 남았다. 아침 바람 부는 날이다. 양식이가 산책 못 간다고 문자가 왔다. 홀로 걷는 들판이 텅 비었다. 들이 멀리 한가롭다. 아내가 나들이 가면서 빨래 다 되면 널라고 한다. 바람이 거칠어져서 거실에 빨래를 널었다. 책을 보다가 잠이 쏟아져서, 낮잠을 길게 잤다. 어제 주워다 삶은 알밤을 다람쥐처럼 앉아 까먹었다. 배불렀다.
자전거 타고 알밤을 주우러 갔다. 회관 마당에 점순 어머니가 콩을 타작하고 있다. 점순 어머니가 삶은 감자를 비닐 주머니 속에서 꺼내 준다. 따뜻하다. 감자가 든 비닐 주머니 속에 김이 서려 있다. 하나 남은 것도 가져가라고 했다. 두고 갔다. 널어놓고 깨 위를 돌아다니며 두발로 고랑과 이랑을 만든다. 추상화 같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삶이 예술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밤나무 가지가 흔들려 알밤이 많이 빠진다. 생각대로 알밤이 빠져 있다. 밤나무의 생산은 아름답고 나의 수확은 신난다. 저만큼 밤송이가 알밤을 물고 떨어져 있다. 두 발로 밤송이를 열고 알밤을 꺼낸다. 서너 개 주우면 행복한 한주먹이 된다. 밤을 다 줍고 밤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오지 않아도 되겠다.
점순 어머니가 아직도 콩을 타작하고 있다. 나무막대기를 양손에 들고 콩대를 투닥 투닥 때린다. 콩들이 콩콩 뛰어나와 톡톡 뛰다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을 쫓아다녔다. 금방 한주먹이 된다. 일하는 중간에 올 수 없어 콩 타작을 다 할 때까지 콩을 따라다니며 주웠다. 콩 한 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이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다고 했다.
앞산에는 팽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다. 뒷산 그늘이 마을을 덮어 올 때 아내가 왔다. 뒤 안에서 호박잎과 새순을 땄다. 호박잎은 단 한 번의 서리로 시들어 버린다. 서리 오기 전에 호박잎과 호박 줄기 끝 새순을 따서 쌈을 싸 먹어야 한다. 무성한 넝쿨 속에 숨은 호박도 찾아 딴다. 여기도 있다! 저기도 있네! 이 무슨 일인가! 늦복 터졌네! 호박 두 포기를 심었는데, 많이도 열린다. 부침개 부쳐 먹기 좋은 애호박을 골라 회관에 가져다드렸다. “아니, 김 선생네는 왜 그렇게 호박이 잘 열린 데야”, “내년에 우리 집 호박도 좀 심어주지” 좋아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한 가족이 잔디 마당에서 뛰어논다. 아이들에게 크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이를 물었다 여섯 살, 네 살이다. 어머니 되시는 분이 나더러 “후손이세요?” 한다. 김용택 후손이냐는 말이다. 내가 본인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일꾼이세요?” 하기도 한다. 경기도에서 왔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어제 새로 나온 그림책을 한 권 줬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인터넷에 들어가 시집 리뷰를 찾아 읽었다. 월트 휘트먼의 이런 시 구절을 보았다. “당신의 영혼을 모독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날이 어두워진다. 창밖을 보았다. 밥 짓는 아내의 딸그락 소리가 나의 하루를 고른다.
사람 사는 일에 이일 저일 없을 리 없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견디며 이겨내고 무슨 수를 찾아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람들의 하루가 다 장하다.
나는 마을의 일상을 잘 따른다. 열다섯 가구가 사는 마을이라고 나라의 일과 무관할 리 없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나라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평상시처럼 산다. 여든아홉 점순 어머니는 우리 마을로 시집와서 70여년을 사신다.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좋다.
지은이: 김용택 시인
출처 : 강원일보 2024. 08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 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13 문학과지성사>
첫새벽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소리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13 문학과지성사>
단풍이 풍성하더니 지난 저녁 내린 비로 숲이 휑합니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나기에 내다보니 아파트 관리원 아저씨가 단풍나무 아래서 낙엽을 비질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 단풍은 노랗고 단풍나무 단풍은 빨갛고.......
유정독서모임 11월 21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열차에서 진행됩니다. 이번에 함께 읽을 작품은 김유정의 <두꺼비>입니다.
지금도 첫사랑을 기억하나요. 그 첫사랑의 기억은, 그 기억 속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김유정의 자전적 소설 <두꺼비>를 읽으며, 우리들의 첫사랑과 그때의 '나'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만나는 곳과 때: 2024. 11. 21. 14:00~16:00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