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巴靑싸움
본부대를 동소산에 정하고 대오를 정비한 뒤
역할에 따라 무기를 골고루 분배하였다
경험과 기술에 따라
장검, 단검, 봉술용 몽둥이, 죽창,
부족하지만 개량한 뇌관식 화승총, 천보대총,
구한국 군인들이 쓰던 양총, 노획한 일본식 장총,
그래도 모자라면 사냥용 화승총, 손도끼,
하다못해 괭이 등 농기구,
남하한 의병들이 가지고 온 각종 무기
동학란, 청일전쟁, 노일전쟁, 전년의 온갖 의병,
수많은 난리를 겪으면서 익숙해진 가지가지 간이무기들
거기다 의혈의 주먹과 사나이 뚝심까지 한 몫
이만하면 매복작전 , 기습작전, 유인작전 등
온갖 유격전 소단위 작전에는 넉넉하였다
무엇인가 손에 쥐어지자
그들의 팔뚝엔 핏줄기가 붉어지면 힘이 올랐고
온 몸이 근질근질, 약 오른 주먹은
쪽바리 이마빡 박살을 내야 직성이 풀릴 듯
맨손으로 호랑이 잡던 무송이 기상
양산박 108호걸 싸움 솜씨 그대로
동소산 안규홍 담살이 부대 , 금방 눈앞에
원수 왜놈 나타나듯 얏! 얏! 기압소리
징소리 꽹과리 소리 요란한 군호소리
높푸른 3월 하늘 아득히 울려 퍼졌다
본부대는 동소산에 남아
안규홍 의병장 지휘 하에 훈련을 받았고
구한국 군인출신 의병들의 경험을 바탕삼아
각종 무기 사용법 익히기, 각종 초보적 전술공부,
단체 싸움의 요령과 협력 사항을 습득시키며
한편으론,
글을 아는 염재보 오주일 등을 중심으로
작전지도 작성, 접근거리 파악, 민심동태 파악,
선무공작을 위한 포고문 작성 등
부서마다 맡은 일 착착 진행되고
폰쇠를 중심으로 빈틈없이 짜여간다
한편, 지모와 의리를 겸한
의장 윤영채를 조장으로 정탐반을 조직하여
적의 근거지 찾아 사방으로
머리 좋고 몸이 날랜 사람을 뽑아 파견한다.
승리의 비결은 고래로
우리를 알고 적을 아는 일
매복전 기습전의 요결은
사전 정보를 입수하는 일
어찌 정탐을 소홀히 하겠는가?
장돌뱅이 재담가 땜 쟁이 옹기 쟁이
온갖 장사 경험 가진 사람과
오입질 투전방 기생집 머슴
건달 한량 상대의 양반 골려온 사기꾼 전과자
땅꾼 호리꾼 간땡이 큰 사람
난다 긴다 하는 약장수 떠돌이 광대들
온갖 차림으로 변장하고 사방으로 정탐을 나간다
당시 조선주차군 사령부 산하, 총사령관
하세가와 대장 밑에 수개 부대가 있었고
헌병사령관 아까시모도 밑에 51관구 452분견소
경무국장 마쓰이 밑에 70경찰서 7분서 339주재소
이 땅의 곳곳에 이미 헌병과 경찰을 배치하여
치안권을 완전 장악, 이 땅 위엔 총검이 난무하고
저항하는 민중의 가슴을 향하여
곳곳에서 무시로 총검을 뿜었다
파견소나 분견소나 주재소가 있는
보성, 순천, 동복, 화순, 광양 등지로 파견
그곳의 일인 상인 활동과 군대 이동 상황을 정탐
수시로 본부대에 연락하는 일이었다
낮에는 장꾼이나 들에서 일하는 농부로 변장하여
평민 속에 섞이어 은밀히 행동하고
밤에는 의병, 산으로 연락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들의 눈길은 번득거린다.
그들은 민간인이면서 의병(요샛말로 게릴라)
오솔길 지름길 이용
놈들의 검문을 피해가며
장거리 주막, 주재소 부근, 부대주둔 지역 네거리,
의병들의 눈길은 여기저기 빛난다
그리하여 속속히 염탐된 정보는
밤도와 본부대 담살이 장군에게 전해진다.
평소 익숙해진 엿장수 차림으로
정탐 길 떠나는 윤영채 거동 보소
머리에는 더벅머리 흰수건 질끈 동여매고
광목 바지저고리 차림에 짚신감발로 장꾼을 가장
등에는 엿판, 온갖 종류의 엿 골고루 짊어지고
타령도 한 곡조 구성지게
엿장수 의병 나아간다
쨍그랑 쨍그랑 엿가위 소리도 흥겹게
‘엿사씨요, 엿사씨요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달디단 조선엿 사씨요
혓바닥 몽땅 녹는다 쫄깃쫄깃 갠엿에 피엿
과부 엉댕이 찰떡궁합에
홀아비 구곡간장 다 녹는다 찹쌀엿
맛맛으로 먹으면
처녀총각 궁합에 신방살 쫓아주는 호박엿
어떤 힘 좋은 머슴 놈 침 탁탁 뱉어가며
신나게 씻겨낸 찰조 서숙 방망이 정력엿
총각놈 와삭와삭 할머니 오물오물
동짓달 기나긴 밤 , 오입쟁이 남편 기다리다
안방 마님 혼자서 몰래 먹는 한밤중에 참깨엿“
넉살 좋고 입심 좋은 윤영채
복내장터 얼른 지나 보성읍으로
선걸음에 달려가 형세를 살핀다
분견소엔 왜놈 헌병과 보조원 까지 많아야 사오십명,
광주와 순천 큰 부대 파견소와 수시로 연락하며
민심을 살피고 밀려 남하하는 의병을 색출,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의 전초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순천과 보성 사이 이미 고개를 뚫어
새로운 신작로, 작전 경비도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경비 전화통의벨소리 따르릉 따르릉
하이! 모시! 모시!
전화통 앞에서도 뻣뻣한 통나무가 거 수 경례 붙이며
쩔쩔매는 쪽바리 졸병의 꼬락서니
하이, 하이를 연발하고
두리번거리는 주재소 정문 앞 보초병들
뭔가 분주히 명령과 보고가 오고 갔다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점령할 때
맨 먼저 만드는 게 도로와 철도
이탈리아 군대가 에치오피아 쳐들어갈 때
최초로 아프리카 횡단철도 부설했듯
이 나라 경인선 경부선 호남선 모두 다 같은 목적
그 도로와 철도로 침략군이 실려 왔고
그 길로 쌀과 금은보화가 실려 나갔다
밭은 헐어서 신작로 나고
집은 헐어서 정거장 되면
그 신작로 기찻길 위론 무엇이 왔던가
가는 곳마다 왜바람 신식바람
실려 오는 건 일본 군대와 일본 상품
세상은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보성도 이젠 완전히 왜놈의 세상
상인, 측량기사, 군대 꾸역꾸역 밀려와
벌써 노른자 점령하고 착착 침략이 진행 중
양희일 의병대 소탕 직후라, 잔유병 색출로
분견소 경비가 삼엄,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본대는 순천에 두고 수비대가
벌교를 거쳐서 보성까지 수시로 왔다갔다
여수, 광양만, 일인 장사치 상선을 보호하고
분산되어 남하하는 의병을 잡으러
노름꾼 건달들 부랑아 꼬여 보조원 만들어
주막이나 장바닥에 쫙 깔았다
헌병 하나에 보조원 다섯 명
돈에 꾀인 건달들, 장거리에 어슬렁 어슬렁
1원짜리 한 닢에 동족의 피를 팔았다
보성 장터 건달패 노름꾼 칠복이
분견소에서 배당받은 정보의 일원 가지고 주막으로 간다
외상꾼 칠복이 문 밀고 들어와 술 청하자
벌써 이맛살 찌푸리는 주모,
“나도, 현금 있수다” 탕 소리 나게 동전 한 닢
목로판 위에 내던지며 큰소리로 호통친다
출세한 헌병 보조원 나리 신바람이 난다
거푸 너댓 잔, 그제야 거지가 든 뱃속이 풀린 듯
넘어 가는 속도 느려지며, 깍두기 안주 우적우적
볼따구 미어지게 처넣으며
“나 괄시 미수다, 칠복이 놈 이제 보통 사람 아닙네다.
겐빼이 아라이상, 명령만 한 번 떨어지면
네년 모가지 하나쯤은 재깍,
내 직위가 뭣인 줄 알간? 산천초목도 발발 떤다는
다이니뽕 헌병보조원 나라를 몰라 볼꺼여?
탕! 또한 번 죄 없는 목로판을 두들긴다
넋이 나간 주모 술청 구석에 쳐 박혀
벌벌 떨고 있을 때
저편에 앉아 , 막걸리 한 사발 앞에 놓고
딴전 부리듯 두 눈은 반대쪽에 , 머리털 곤두세워
두 귀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장꾼
그는 안규홍 부대의 의병장 윤영채였다
이윽고 칠복이 꼬시는 모양 보소,
술도 한 되 새로 받고, 넌지시 주모 불러
순대 곱창 똥보 뒤섞어 걸쭉히 한 접시 시킨 다음,
칠복이 곁으로 가서
술 한 잔 같이 나누자 수작을 건다
8도 유람으로 닳아진 언변,
나이는 어리지만 노숙한 말솜씨
대장부 마음 얼음 녹 듯 슬슬 구슬린다
‘나도 본시 노름꾼, 가산 탕진하고
팔도강산 돌아다니며 배운 재주 없어
풍류 삼아 엿이나 파는 터, 오늘 보성 땅에 와
호걸을 만났으니 어찌 한잔 나누지 않겠소?
오늘 귀형의 말을 들으니 아라이상 심부름 괜찮은 일인 듯
나도 한몫 끼어 주면 , 엿장수 변장으로 골마다 다니며
의병굿쟁이들 속속히 알아다 줄 수 있쇠다
청컨대 나도 귀형 사업에 한몫 끼어 주외다‘
돼지 똥보 몇 점에 녹아난 칠복이, 주거니 받거니,
술 세 순배에 형 동생 어쩌고 의기가 투합.
윤영채는 가짜 보조원 지망생 후보가 된다
참으로 어리숙한 시절
속고 속이고
그리하여 알아낸 정보가
순천 파견대 나가또와 히라이 부대가
며칠 간격으로 순천과 보성 사이를 순찰한다는 정보
기타 몇 가지 장비에 관한 정보도 얻었다
그날 밤 보성을 빠져 나와
단걸음에 기러기 재 넘고
비둘 고개 넘어 벌교로
그 사이 짚신을 두 켤레나 던졌다
오솔길로 제석산 금치 재 넘어 순천으로!
이슬 젖은 발길에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수비대 막사가 보이는 장터 술집에서
아침 점호를 받는 총검 든 일인 병사들!
아직 싸늘한 3월 햇살에 칼 빛이 빛나고
달구지에 매달아 놓은 듯한 바퀴달린 대포의
검은 아가리가 읍내 장터를 향하여
선하품 내 뿜듯, 3,4문 열지어 선 철조망 넘어
호각 소리 구령 소리
신식 꼬꾸당 나팔 소리 요란히 울려 올 때
멀거니 구경만 하는 조선 사람 절로 간이 오그라든다
쭛쭛쯧
이따금 혀를 차며 한숨을 쉬는 늙은 주모!
힐끗 연병장쪽을 바라보면서 몸서리를 친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 두 눈에
연민과 공포가 서려 있는 모습,
영채는 가까이 가서 술을 시키며 말을 건다
‘저 경비대가 어디서 왔다요? 본래 있었다요?
국말이를 훌훌 마시며 예사롭게 묻는다
‘몇 달 전 여수 쪽에서 상륙하여 올라온 부대인데
보성까지, 왔다 갔다 토벌작전인가 뭣인가 한답니다
어제 밤에도 이 주막에서 술 마시던
낯선 젊은 청년 두 명이 잽혀 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고
의병굿이 났다고 쑤근쑤근
어제 밤도 무서워서 한잠도 못잤다오“
부대장 이름은 나가또와 히라이
순천과 벌교 보성 일대 남해안 순찰대
며칠 후 보성 쪽으로 순찰작전 나가는 것까지
속속들이 알아낸 다음 동소산에 귀대,
이 모든 정보는 안장군에 낱낱이 보고됐다.
며칠간의 강훈 끝에 피로한 군사들을
술밥 고기로 호군하여 쉬게 한 다음,
주장들이 모여
영채의 정보로 치밀한 작전 계획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
밤도와 이동명령이 내리니
지름길로 산을 넘고 넘어
보성 안치 기러기재에 이른다
오리쯤 상거한 비둘기재 구현과 연결
요로의 숲속에 매복 길목을 막고 있다가
이곳을 넘는 일병 수비대를 기습하여
의병거사 후 첫 승리를 장식하려는 작전이다
아직은 경비 도로가 채 뚫리기 전
안치는 험준한 고개이고
구현은 숲이 빽빽하여
작전을 펴기에는 유리한 지형
안대장을 중심으로
염재보 오주일 윤영채 안택환
소휘천 선규명 이관희 임창모
몇몇 작전 주장들의 지모를 모아
길 양쪽에 아군을 매복
그들의 일행을 기다리는
고양이 쥐새끼 잡기 작전이다
강성인 부대와 합류
80여명 대부대가 된
안규홍 담살이 부대의 첫 싸움!
만감이 스치는 가운데
생사가 걸린 운명의 시간이
숨통을 조이며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전투를 앞둔 안대장, 엄숙한 분위기 속에
간단한 작전 지시가 내려진다
몇 마디 기본적인 주의사항과 전투 요령,
끝으로 그는 독심을 품어 적의를 강조한다
“왜놈들은 도적들이다, 남의 밭에 심은 곡식을
총칼로 빼앗아 가는 도적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상감을 종 부리듯 하며
충청도에선 한 마을을 다 불태웠으며
어린아이 부녀자까지 칼로 꿰어 죽였다
우리가 그들의 간을 꺼내 씹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의 창자를 찢어 반길 것이다“
농군을 가장한 연락병이
괭이도 들고 깔 망태도 메고
군데군데 배치 수시로 염탐,
그 정보는 재 빨리, 릴레이식으로
매복지 작전본부까지 미리미리 전달된다
제갈공명 8진치고
화약 묻은 다음
귀신도 못 빠져 아갈 포위망 속에
사마의 군사 아가리로 들어오기 기다리듯
매 눈이 된 호랑이 의병장
신명께 빌며 숨을 죽인다
조선의 수호신 보성으로 모여든다
호랑이 눈깔 속으로 기어드는 쥐새끼들
단숨에 삼킬 듯 확대되는
눈과 눈!
저만큼 골짝을 돌아
비탈길로 오르기 시작하는 수비대
기관총 총포 약 장비를 진 짐꾼,
총검으로 완전 무장한 보병부대 백여 명
앞뒤에 대장인 듯한 자는 말을 타고
거드름 피우며 유유히 대오를 이끈다
양희일 부대가 궤멸한 뒤라
새로이 의병 굿 난 것을 꿈에도 모르고
국민학생 소풍 나온 듯
느릿 느릿 두리번 두리번
양계에 나온 별주부 토끼 찾듯이
유유히 땀 개여 가며
조선의 아름다운 3월 하늘 아래 빛나는
빽빽한 조선 소나무 사이로 난
고르지 못한 고갯길 따라
별 경계도 없이
군기도 엄하게 잡지 않고
고갯마루 가까이 두 굽이 막 접어든다
매복 제 1진은 신식 화승총 양총
매복 제 2진은 구식총 장검 단검 죽창 몽둥이
메복 제 3진은 손도끼와 기름과 솜뭉치 섶나무
치밀한 준비를 갖춘 다음
안장군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화닥닥 꿩이 나는 소리
산 전체가 숨을 죽이는 듯했다
200보 100보 50보
드디어 10보, 이 때다,
쏘아랏!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펑! 펑! 펑!
탕! 탕! 탕!
길 양 옆에서 터지는 화승총 양총 소리
뒤이어 징소리 꽹과리 소리 천지를 진동하여
잇따라 제 2진에서 터지는 화승총 소리
맨 앞에 오던 부대장 나가또는
호령 한번 못해 보고
저격수의 총알에 나가 떨어졌고
뒤에서 지휘하던 히라이
후다닥 놀랜 말 위에서 요동하다
역시 저격수의 정확한 사격에 명중, 고개를 꺽으며
길옆 개울에 머리를 처박은 채 나가 떨어졌고
순식간에 대오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리멸렬한 일본 수비대
단기전으로 마구 퍼붓는 아군의 총포
뛰어난 군비라도, 매복부대의 급습에는 속수무책.
양쪽에서 날아오는 총탄 세례를 받고
화닥닥 화닥닥 놀랜 토기들 모양
불 맞은 곰 새끼 모양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갈피를 못 잡는다.
그 대 양족 앞뒤를 차단하며
4면에 뛰어 나온
장검, 단검, 몽둥이 손도끼, 죽창을 든 돌격대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찌르고 꺾고 골통을 바수니
낭자한 선혈, 아비규환의 신음소리,
골자기 가득 사꾸라 피 꽃이 만발한다
당시 조선 죽창이라는 것은
동학혁명 때도 유명한 돌격 무기
푸른 참대 잘 다듬어
끝을 뽀쪽히 날 세운 다음
펄펄 끓는 참기름 가마솥에 담그어 낸
쇠보다 더 단단하게 먼드름히 날선 무기
왜놈 가슴팍이나 목 줄기에 박으면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 대며 막 구멍이 났다
어찌 이 죽창이 창이나 칼이나
그 성능 좋은 양총에 못 미치랴
순식간에 달려드는 돌격대에
미처 달아나지 못한 적군은 거의 전멸
담살이 부대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그날 빼앗은 무기와 장비
특히 수백발의 탄환은
안규홍 부대 전원이 완전무장하고도 남았다
만세! 만세!
어느새 알았는지 인근 마을에서
꾸역꾸역 모여든 동포들까지
징소리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춤추며
가슴에 쌓인 원한 반분이나 풀렸을까?
술 밥 고기 그릇그릇 날라 왔고
피륙이며 현금
두둑히 희사금까지 내는 마을 사람들
아군 위사기는 충천 하였다
부상병들은 쑥 잎으로 지혈을 하고
어렵게 구한 양약 머큐룸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아까징끼 옥도징끼
심한 총성이나 화상은
독한 소주 꽃 주로 씻어내려 응급처치하고
중상자는 다시 농부로 바꾸어 민가로 후송했다
아군의 피해는 경미한 편,
몇몇 수가 줄었으나
파청 젊은이 몇 사람이 자원
의병의 사기는 절정에 이른다
전승 뒤의 교만은 금물
다시 대오를 정비하여
첫 번째 주둔지 동소산으로 향했다
지금 기러기 재와 비둘 고개는
탄탄대로 아스팔트길
비둘 고개 골짜기는 가로 막아
커다란 덕산 저수지
기름진 옥야 조성들을 적시는 수원
그날의 의병도 없고
더구나 일본 헌병 수비대도 없고
맷 비둘기 구슬피 우는
구현 고개 위에
쓸쓸히 서있는 아담한 승첩 비!
산천은 의구하되(사실은 그것도 변했지만)
그날의 인걸은 간 데 없는가?
눈 감고 귀를 기울이면
그날의 총소리 아우성 소리
피비린 화약 내음이 풍겨올 듯
그러나 눈을 뜨면,
역사가 고요히 누워 있는 고개 위
평화로운 조성만 파란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20리 상거한 은곡리 대야마을 뒷동산
쭉쭉 줄기 곧은 대나무밭 뒤
고요한 소나무 숲 속에
유해가 안장된 담살이 장군의 묘소!
70년 전 대구 감영 공동묘지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나뒹굴던 뼈다귀
그 서러운 혼백이 고향에 돌아와
지금은 고요히 쉬고 있는가?
부끄러운 나그네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비는 마음,
일본 놈 물러가고 다시 찾는 나라
아직도 분단된 하늘 아래
핏빛 진달래만 더욱 붉어 가니
어디다 고하여 절을 올릴까?
나그네여, 고향에 가거든 전해다오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다가
조국의 흙 한줌으로 돌아간 사람들
여기 자랑스레 누웠더라고
그날의 음성 멀리 들으며
핏빛 진달래 흐드러지는
기러기 재우에 서서
다시 3월의 하늘 바라보면
구슬프게 들려오는
산비둘기 울음소리
그날의 넋들이 찾아와 우는가?
불을 뿜던 그날의 담살이 장군
그 우렁찬 목소리 대신
고갯마루 굽이 돌 때마다
한 많은 전라도 머슴새가
피를 토하며 운다
오 지금도 들려오는
그날의 통곡 소리여
안담살장의 호령 소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