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시 심사평 |
나는 어디까지 나를 밀어 보낼 수 있을까요
이승희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시인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그 모든 다름은 당연히 존중할 만한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할 때 시는 더 멀리,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까지 가려는 마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멀리 가려 한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든 멀어지려는 마음이기보다는 그 무엇에 더 가까워지려는 마음이라는 것도 저는 믿습니다.
시가 삶의 슬픔과 아픔을 살뜰히 살피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의 제 삶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모든 마음들로 향하는 전진이자 위로의 마음일 테니 오늘 또 이렇게 좋은 시를 읽으며 그 마음에 기대에 마음이 아련하고 따뜻해집니다.
2023년 『문예바다』 여름호에 응모된 시 중에서 예심을 통과한 여섯 분의 시 열여덟 편을 읽으면서 저는 시에 대한 그런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절실하게 느낍니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고유의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음이 참 좋았습니다. 정직하고 담담하게 서서 세계를 바라보고, 내면의 그 뜨거운 마음으로 불화하고, 화해하고, 밀어내고, 안아주는 그 마음들이 아프고, 건강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선에 든 두 편의 시는 대상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마음이 쓸쓸함을 데리고 아주 먼 곳까지 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면 제 마음도 그렇게 먼 곳까지 이끌려 가고, 그 먼 곳에서 혼자인 듯, 비로소 혼자인 듯하여 어쩌면 이제 그곳으로부터 더 멀리 갈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먼저, 김미연의 시는 세 편 모두에서 보이는 내면의 쓸쓸함과 깊이가 정직하고 진정하여, 그러한 마음이 그저 아프고 쓸쓸함이 아니라, 시인의 시선에 의해 다시 새롭고 역동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세계가 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특히, 「나의 물구나무」는 그러한 시인의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세계 속에서 시인이 갖는 한 개인으로서의 불안과 허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다시금 삶의 치열한 시선으로 데려옴으로써 ‘존재하기’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끝, 어떤 극단의 지점을 향한다는 것은 그 지점을 가고자 함이 아니라 넘어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윤수의 「흰무늬애저녁나방」은 나비가 되지 못하는 나방에 대하여 혹은 “나방은 나비가 아니므로 나비가 아니”라는 두 개의 지점을 담담하게 풀어갑니다. 어쩌면 대상과 자신이 느끼는 아픔의 동일화를 통해 그러한 아픔들이 이 세계 속에서 나를 세워가는 주체적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스스로 단절하고 거부하고 혹은 소외되고 밀려나면서도 ‘나’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나로 향한다는 것은 그렇게 세계 속에서의 나를 거듭 확인하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자아에 이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에는 이처럼 한 시인이 처한 고단한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어디까지 밀어갈 수 있을까요. 주어진 시를 읽으면서 이 세계는 정말 있기나 한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내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시 읽기였습니다.
이승희 |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에 기대어 울었다』. 전봉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