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구름도 없었다
정홍순
가난은 누구도 행복한 추억일 수 없다
당신들이 중국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여수, 순천으로 일자리 찾아
고향 떠나던 날
오늘같이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먼 이국땅까지
애써 죽음을 찾아왔겠는가
우리들의 가난
포경선에 올라 태평양 어느 작은 섬
쓸쓸한 무덤이기도 하고
목화밭, 사탕수수밭
등짝 찢어지는 채찍소리이기도 하며
광부로 간호사로 파병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우리들의 가난
앞서간 순난이 손가락
꽃이 돼 떨어지는 재봉틀소리 피어나
붉은 이 땅
당신들로 또 엎어져 왜 울어야 하는가
2007년 2월 11일 새벽
그믐 가까운 달 아직 동쪽에 있을 때*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304호실에서
당신들은 자고 있어야 했다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울리지도 않는 화재경보기만 무심히
보호되고 있었다
악몽을 꾸었더란 말인가
아, 그래도 녹차 잎을 말아 나눠 피며
동족의 슬픔 위로하던 당신들
임금체불보다 더 지독한
빼앗긴 인권
부검의 칼이 목을 따도
당신들은 죽음만 싸늘히 설명해 주었다
꽃(불꽃)과 구름(연기) 볼 수 없던 날
와이어 자물쇠는 당신들의 꿈을
단단히 채우고 있었다
다음날 체불임금이 입금된 통장
그이의 이름은 사망
오동도는 소리 없이 떨어지는 꽃으로
더 붉은 섬이 되었다
당신들은 죄수가 아니다
수갑을 차지 마라
새우꺾기도 당하지 마라
가난한 이들이여
이제 여기
꽃과 구름이 건너지 못할 곳은 없으니
열 사람 이름이 낭자한 돌
햇볕 잘 쪼이는 한 평에 새긴
이국의 이름을 보라
우리들의 가난이 살아가고 있는
처절한 봄
붉은 이파리 하나에도 모독하지 마라
*과 제목은 경향신문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