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정월대보름맞이 장승제 및 마을축제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마을마다 다양한 형태로 축제를 빌어 지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주민들이 한마을이 되어간다.
우리는 이번에 이러한 정월대보름을 맞이하여 대전문화연대에서 주관하는 2011 정월대보름맞이 장승제 및 마을 축제에 참가했다.
3시에 시작려던 행사는 대전에도 엄습한 구젹으로 인해 4시에 대전역 동광에서 출말하기로 하여 그 행사를 시작되었다.
동광장에는 벌써 많은 회원과 그 가족들이 추운날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약속장소를 지키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늦은줄 알고 달려온 가뿐 숨을 고르고 출석을 하고 대전문화연대에서 준비한 차량에 탑승하여 그 목적지들로 출발을 한다.
우선 제일먼저 도착한곳은 소재동에 위치한 소재동 장승.
어릴적 주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추억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재동 장승은 장승이라는 기대를 처음부터 무너뜨렸다.
동네어귀에 작은 선돌 두개가 좁은 골목입구에 조용히 서있었다. -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명찰을 달고서.
이 소재동 장승은 일제가 예전에 2만여평의 커다란 호수였던곳을 메우고 만들어진 대동천 입구에 장승이 세워졌다.
<동네 입구에 조용히 서있는 소재동 장승-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이 장승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다시 대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재동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인 대동장승은 최근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앞에 위치해 있다.
대동장승을 보기 위해 작은 다리하나를 건넜다.
대동은 1945년 이전에는 한가로운 농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세대가 모여사는 주택지로 변해있었다.
동광교는 판암동 부근에서 흘러내려오는 시냇물이 대동과 신흥동의 경계를 이루는 대동천의 다리로서, 당시 이 부근에 유일하게 대동천을 건너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러한 다리입구에는 화강암으로된 돌 푯말로 동광교(東光橋)라고 세겨져 있었다. 다른쪽에는 다리가 만들어졌을만한 시대적 흔적이 남았었다. 하지만 일제의 잔제라는 것에 일부 글자가 훼손되어있었다.
또한 주변 공사를 하면서 이러한 돌 이정표가 옮겨지고 방치되었던것을 지적해서 다리 입구가 아닌 옆으로 이전에서 그 모양새를 갖춰 놓았다고 한다.
이 다리 바로 옆에 장승과 솟대가 서있았다.
예전에 하천정리가 되었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대동천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피해와 질병발생이 많아 이러한 환경에서 대한 기원의 대상으로 솟대와 장승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 동광교 주변의 사람들은 매년 장승과 솟대에 거리제를 지내 마을의 무병재액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 옛날의 대동 장승의 모습
대동 장승 앞에서
다시 자리를 옮겨 용운동으로 향했다.
용운동에 도착하니 도로변 한편에 작은 장승하나가 서있다.
이 장승은 조선 연산군때, 그의 폭정을 이기지 못하고 쫒겨온 임씨(任氏)들이 경기도 광주에서 이곳 용운동지역으로 이주를 하게된다.
그 후 이 마을에 돌림병이 심하게 돌아 아이들이 주어나가고 민심이 흉흉해지게 되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더 도인이 이곳의 지세(地勢)가 너무 세서 이를 이를 막기위해 보(洑)를 세우고 내의 양측에 장승을 세워 지세를 눌러야한다고 하여 그 비보역할을 하는 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용운동용방이장승)
내의 왼쪽은 여장승, 오른쪽에는 남장승이 있는데, 모두 자연석 선돌에 간단한 사람의 얼굴형태를 세기고 몸체에는 장신(將神)이라고 음각했다.
이 장신이라는 명문은 지금까지 경기도에서만(특히 광주군 중심) 사용하던 표현이었는데 대전지역인 이곳에서도 발견된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가 들어서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서로 바라보던 남녀의 선돌은 건물의 창을 통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용운동 장신 - 남장승
용운동 장신 - 여장승
이번에는 비룡동 으로 향했다.
비룡동 입구에 도착하니 남녀 장승이 비슴하게 마주보고 있었다.
우선 이 장승보다 저 건너에서 들려오는 오방도는 소리에 몸이 갔다.
동네 주변을 돌면서 액운을 몰고 지력을 눌러주어 동네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던 오방돌기..
잠시 오방의 쇠소리를 잠시하고 동네 청년들이 준비한 잔치상에 눈이 간다.
강원도에 공수되었다는 멧돼지..구이와 수육을 김치에 한입 싸서 막걸리와 같이 정을 나누었고 동네이야기도 듣고..
비룡동 마을회관 앞에 있는 장승들
오방돌기
멧돼지 고기 시식중
동네 입구로 다시나와 장승을 보았다.
남장승은 북쪽을 향해, 여장승은 남동쪽을 향해 서있었다.
이 비룡동 줄골장승은 전형적인 문관석형이다.
남장승은 높은 관을 쓴 수염달린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천하대장군이라고, 여장승은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의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으로 지하대장군이라고 세겨져 있으며 그들 앞에는 짚으로 짠 오쟁이을 메달아 두었다.
비룡동 줄골 장승 - 남장승
비룡동 줄골장승 - 여장승
다음으로 이동한곳은 비래동 느티나무 당산제가 올리고 있는곳을 향했다.
수령이 570년이 넘은 당산 나무에 금즐을 두루고 정성스런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의 안녕과 무사함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번의식에는 지역자치단체장(구청장 및 지역 국회의원)까지 오셔서 지역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했다.
다시 자리를 법동으로 옮겨 법동 장승제를 참여했다.
주민들의 풍물로 시작된 장승제는 여느 마을에서처럼 마을의 안녕과 무사함 및 번영을 기원하고 같이하는 자리였다.
추운 저녁바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서 장승제를 지켜보고 한마음으로 기원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이 법동의 장승은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보호받고 있었다.
마지막 장소인 읍내동 뒷골장승제로 향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늦겨울 바람이 간간히 몸을 움추르게 하였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은 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정성을 드리고 있었다.
본인도 지역의 안녕과 발전 그리고 개인적인 마음까지 담아 기원을 하고 소지식까지 했다.
동네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까지 같이나누어 먹고 좋은 말씀도 듣고 같이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고 인솔하신 대전문화연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안여종, 박은숙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