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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비 국 합니다. 20세기 말 한국미술이 국제화를 외칠 때 미관彌款선생 기고문이라는데...뭐 읽어 보니까 21세기라고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더라고...작가들의 삼맹三盲...미디어-정보마인드야 바뀌겠냐마는 국제화에 무대책인 건 바뀔 수 있을텐데...
우서비 제화미 합니다. 우물 안 웅덩이에서 세계화의 공염불이 요란스럽다 한들 식탐食貪많은 황새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의 청개구리들을 수퍼스타로 만들어주겠냐...마는 연목구어緣木求魚라도 낚시를 던지다 보면 눈먼 준치라도 걸릴지 누가 알겠어?
매깨비 술 합니다. 답이 없는 문제만 산적한 곳이 미술판이라...고 포기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판을 뒤집는 피투성이 싸움닭인들 대안이 되겠어? 미술-예술-문화의 부감시각으로 현재를 진단-결산할 필요는 있겠지...아니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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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전략 속의 실천적 과제
- 영상매체로 국제무대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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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한국 평론의 이슈는 간접경험화 정보자료화 국제전략화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간접경험화란 전시장의 작품 대신 신문 잡지 팜플렛 등의 인쇄매체-비디오 텔레비전 등의 영상매체 등에 의한 정보를 직접경험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현장에 나가면 관계인사들로부터 작가 평론가 소장가를 포함한 관람객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푸념을 곧잘 듣는다.
두 번째로, 정보자료화란 총체적이고 개념적인 한국미술의 풍토에 자료적 개념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총체적 풍토를 대표하는 단골메뉴로는 대안없이 거론되는 한국비평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자격기준과 위계질서 없는 비평계-잡지에 게재되는 획일적 작가분포 및 비좁은 비평지면-편협한 비평의 목소리나 팜플렛의 주례사에 대한 불만-비평장르를 비하하는 틈입 자에 대한 질책 등이 올해도 여전히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미술계의 현장에서 체득한 정보를 미술경영개발원에서 작가-큐레이터-화랑 등에 전수하고 있는 소니아 한의 활동은 체계적 실천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평론활동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의 자료적 측면이 무시되고 있는 풍토에서 양식화 체계화는 평론 뿐 아니라 미술계 전체의 원천적 과제일 수 있다.
1.
세 번째 자료의 관점에서 국제전략화라는 과제를 볼 때 작가와 작품-평론과 미술사는 상호 자료관계라 할 수 있다. 최근 부쩍 늘어난 비디오 제작의 필요성과 호화판 일색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전 팜플렛은 간접경험화의 대안이기도 하지만 자료적인 측면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팜플렛의 양식 역시 국제양식화하고 있다. 즉 평론가의 이중언어에 의한 전시평문과 도판사진에 이어 역시 이중언어로 표기되는 이력이 그것이다.
그러는 일방 자국인에 의한 감수와 전문가에 의한 이력관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식 영어로 번역한 평문과 한글이력을 영문 화한 이력은 국제무대에서 오히려 치명적인 결점일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추세이다.
전시평문을 평론가에게 의뢰하는 관행은 한국미술계의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이 관행에 의해 강의료나 고료로 살기 힘드는, 또는 잡지사의 운영과 연구모임의 기금마련에 평론가의 글이 담보가 되기도 하는 척박한 풍토에서도 지속적으로 신진평론가들이 배출되고 평론 활동만에 정진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우리는 매우 중요한 관행 하나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에 의해 씌어지는 작품론-작가노트 등의 선언문이다. 때로 평론가에 의한 전시평문이 작가와 보는 사람 혹은 미술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개인전 정도는 작가 자신의 소박하고 진실한 작품론으로 한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관행이 미술계에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획일화한 팜플렛들이 미술계를 풍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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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략화가 만능의 맞쇠라는 점은 평론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평론의 국제화는 94년 현재 국내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다. 먼저 국내활동을 보면 올해 데뷰한 평론가로는 미술세계 평론 상을 받은 정재근이 있다.
기성평론가의 국내활동이나 역할로는 심광현 상산환경조형 사장 취임-김영순 대유문화재단 실무총책 담당-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으로 미술평론가 최민이 부임-최태만 민중미술 15년:1980-1994 기획 등의 기사가 보인다.
개인 평론가에 의한 저작으로는 최병식의 동양회화미학 저작 및 전시를 겸했던 장석원의 뉴욕 25시-거리에 미술이 있다 가 출판기념회와 함께 선보였다. 해외참관으로는 호한 재단Australia-Korea Foundation의 초청으로 윤범모가 호주 멜브런 시드니 켄버러-브르스번 등의 미술관-박물관 등을 방문했다.
윤진섭이 스톡홀롬 28차 국제 평론가 협회IAAC 총회에 생존과 전략, 지금... 이라는 주제로 참관했으며 도호샤同朋社와의 상호협약에 의해 일본에서 출간되는 아트 뉴스의 International 난과 한국미술특집 소개를 위한 정기기고자로 선정되었다.
국제전 기사로, 이일은 서울국제현대미술제에 중국 및 일본작가 선정차 북경 후쿠오카 다녀왔으며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로서, 김복영은 상 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현지를 다녀왔다. 이들은 때로 단체의 이름이나 권익을 업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 활동과 함께 국내의 이념그룹들은 도처에서 기습적으로 연구모임-번역모임-세미나-출판 등의 결과를 주로 활자매체를 통해 발표한다. 또 행정집단으로서의 미술협회 평론분과와 친목단체인 평론가협회는 견제와 균형의 단체들이다. 즉 많은 평론가들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상호 견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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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협회는 4월 동방플라자 국제회의실에서 춘계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추계세미나는 광주 무등산에서 12월에 개최예정이다. 1956년 결성되어 1963년 오늘의 짜임새를 정비한 이래 친목단체로서 협회장의 개인적 영향력에 따라 운영되어온 협회는 오광수 회장의 선임을 기점으로 권익단체-이념단체로 탈바꿈하기 위해 관행과 타성을 정비할 예정이다.
즉 국제평론가협회 한국지부IAAC-석남미술상-평단 등이 역대회장들의 개인적인 거취와 궤를 같이했던 전례와 망년회 형식의 연례총회로 친목단체의 명맥을 유지했던 그 느슨한 고삐를 조이겠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건부 정예화에 따라 회원의 감축도 전망되고 있다.
권익단체로서 협회는 5월 한국미술협회에서 선임한 커미셔너에 회원명의의 연판장을 돌린 바 있다. 전 세계 45개국 미술인 5백 80명이 참가하는 이 미술제의 국외총괄 커미셔너로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선정된 데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왜 하필 외국인인가 하고 반문하지만 기실 몇몇 평론가들이 도맡아 선정의 명예와 멍에를 지어왔던 관행에 따라 야기되었던 거국적인 잡음에 대한 방패막이로 영어권의 평론가가 아니라 프랑스인 평론가를 선정한 미협측의 고충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레스타니는 올림픽 조각공원의 조성에서도 큰 몫을 한 바 있으며 미협 측의 개인적 친분이 이번 선임의 배경이었음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평협의 이러한 불만에 대한 대안은 기관지인 평단 에 실린 제언에서 천명된다. 그것은 ‘즉흥적이고 어설픈 국제전을 주도해왔던 미협 국제분과를 해체하고 독립된 국제위원회-국제전 출품과 국제전 개최의 업무를 관장할 실질적인 기구의 조직’ 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무대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당위가 어느 분야보다 높은 평론에서 더욱 치열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제적 활동과 평론가의 역량을 동일시하는 한국적 풍토에서는 평론가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협회의 주장대로 그런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어느 특정 모임이나 국제전 구성의 경력이 있는 특정 평론가를 중심으로 하는 수의단체가 아니라 치밀한 조직력과 업무수행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능력별 결집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모든 논의는 국제무대를 향한 전략이라는 명제로 집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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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국제사회에 송두리째 노출된다. 그것만이 살 길인 양 모든 국민들이 국제화를 드높이 외친다. 이 국제화의 열병은 평론에서라고 예외가 아니다. 평론가들은 너도 나도 국제화의 전략을 제시한다.
이들은 주체적 사관의 확립-행정 이론 요원 육성-기업의 메세나 기능 제고-정보화 이벤트 화한 미술현장 등을 처방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총체적 개념적 처방의 뒤에도 평론가들은 철저히 자신을 중심 축으로 하는 반경 내에 손발로서의 인적자원을 떠올리는 경향이다.
그러한 주장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는 레스타니가 한국에 발을 뻗는 현실에서처럼 국제전은 개인적인 친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뉴욕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열렸던 서울 뉴욕 멀티미디어스는 백남준의 기획으로서 백남준 주제의 책을 출판했던 김홍희-이용우가 Korea Art Today에 발표연사로 참여했었다.
미국측 연사의 한사람인 레빈Kim Levin은 이러한 친분에 의해 김홍희-이용우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평론의 위상을 진술한 바 있었다. 그렇게 볼 때 국제화의 과제는 개인 평론가들의 활동을 포용하는 거국적인 것이 될 필요가 있다.
95년이 미술의 해로 결정되었다. 조직위원장인 예술원 회장 이대원은 10억 예산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미술의 해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건립되고 우리의 김대통령이 참석하기도 되어 있다. 문화재인 자르디니 공원의 환경훼손에 대한 정책적-당파적 견제가 거센 바람에 한국관 성사를 낙관하기에 이르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책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문화상품을 장진한 문화전쟁에 대통령까지 나설 때 민간차원의 외교수준에서 가부를 예상할 수준은 넘어섰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환상은 그러나 일본의 전략과 실전에 접하면 잿빛 회한으로 바뀔 수도 있는 그러한 것이다.
5.
아키히토 일본 왕은 유럽의 문화예술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단 세명의 작가를 상 파울로 비엔날레에 참석시키기 위해 일본재단에서만 4천만엔-약 3억 2천만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열 명씩의 조수와 함께 워키토키를 작가에게 지급하는가 하면 전시 수석 큐레이터인 브라질의 넬슨 아귈라를 사전에 일본으로 초청하여 작가들을 소개시킬 정도로 그들은 치밀하다.
반면 한국은 문예진흥원에서 김영원 신현중 조덕현의 세 작가에게 지원한 6백만 원이 공식보조금의 전부일 뿐 아니라 기자를 파견한 언론사 하나 없더라고 전해진다. 이것은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하다.
일본은 나아가 2010년-세계문화의 중심을 도쿄로 만든다는 야심찬 행보를 이끌어나간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영화사-컴퓨터회사의 전시장-미술관 등을 닥치는대로 사들인다. 그들의 문화상품을 세계에 세뇌했을 때 세계인의 머리는 도쿄라는 메카로 향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한국인은 일본만 생각하면 속이 끓는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상황으로 그 2010년까지 일본을 능가하기는 아무리 부아를 끓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일본에 질 수밖에 없는가. 그러나 아시안 게임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인은 일본만 생각하면 속이 끓기에 축구에서-마라톤에서-유도에서 일본을 젖힐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인이 구축한 홈 그라운드에서 우리의 뛰어난 예술 혼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전략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중이 대표주자가 영상매체이다. 인쇄매체로서 일본을 능가하는 것은 적어도 금세기에는 불가능하다.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일본만큼 투자한다는 것은 국력의 엄청난 낭비일 수 있다. 또한 방송현장에서 한국산 카메라가 일제 카메라를 밀어내리라는 기대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지한 미술현장의 뛰어난 작가들이라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세계를 담은 문화예술 비디오는 이를테면 핵 미사일의 탄두와 같다. 그리고 그것은 건조한 미술현장과 열악한 미술현상의 기록차원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일본 미술비디오를 능가할만한 폭발적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한국 미술비디오의 현황은 그다지 밝지만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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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11월 현재 한국의 방송은 미술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우수한 미술 비디오의 산실이었던 KBS의 TV미술관 은 84년-89년 방영 이후 문을 닫았고, 교육방송의 EBS 미술관도 93-94년 초까지 활발하게 제작 방영되다가 막을 내렸다.
짧은 시간대에서나마 밀도 높은 미술의 현장을 보여주던 KBS의 문화가 산책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결국 남은 것은 때로 출판사의 기획물로서, 혹은 작가들의 부담으로 만들어지는 호화판 화집이다.
그러나 인쇄매체는 어디까지나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환영으로 보여주는 대체수단이거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 21세기의 추세이다.
결국 21세기는 영상매체의 전성기가 될 것이며 미술에서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국제전의 부쓰에 개인 작가의 비디오 상영이 관행 화한 것은 어제 오늘의 화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영상매체와 정보화시대로서의 21세기를 향해 미술의 본질환원을 시도해야한다. 시각예술로서의 미술을 다시 시각의 영역으로 환원하는 방식으로 도입되었던 과도기적 인쇄매체와 함께, 혹은 인쇄매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의 비디오-CD-멀티 미디어 등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이 필요하다.
케이블 텔레비전과 증설되는 민방을 포함한 방송매체에 미술 채널을 확보하는 것은 국제무대에 한국미술의 영상매체를 깔아나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21세기 문화전쟁의 승리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1994-2020
“변화하는 문화지평, 평론의 국제화전략,”1994.12. pp.80-82.
金永材 Kim Yeong-jae, 월간미술 12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