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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千字文(천자문) - 37
篤 도타울 독
初 처음 초
誠 정성 성
美 아름다울 미
■ 篤初誠美(독초성미) : 돈독하게 시작하는 것이 진실로 훌륭하며,
愼 삼갈 신
終 끝날 종
宜 마땅 의
令 좋을 령
■ 愼終宜令(신종의령) : 신중하게 마무리해야 더욱 좋도다.
37. 篤初誠美 愼終宜令(독초성미 신종의령)
:‘처음에 온 힘을 쏟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끝맺음을 삼가면 마땅히 훌륭하게 될 것이다.
독(篤)은 '도탑다'는 뜻이고,
초(初)는 '처음'이란 뜻입니다.
성(誠)의 '믿음', '정성'의 뜻인데, 여기선 '진실로'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미(美)는 '아름답다', '훌륭하다'란 뜻입니다.
독초성미(篤初誠美)는 "돈독한 처음의 마음이 중요하며, 시작이 진실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에,
● 靡不有初 鮮克有終(미불유초 선극우종) - "처음부터 잘못하는 자 별로 없지만, 끝까지 잘하는 자 또한 드물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나라의 흥망도 그렇고, 개인의 결심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처음을 돈독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신(愼)은 심(心)과 진(眞)이 합쳐진 글자로,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이며,
종(終)은 '마치다'의 뜻이고,
의(宜)는 '편안하다', '마땅하다'란 뜻이며,
령(令)은 '명령'의 뜻인데, 여기선 '좋다'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신종의령(愼終宜令)은 독초성미(篤初誠美)와 대비되는 구절로 "마무리를 신중히 함이 마땅히 좋다"는 말씀입니다.
서경(書經)에,
● 嗚呼 愼厥終惟其始(오호 신궐종유기시) - "아~ 끝을 신중히 마무리하려면, 그 시작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바, 시작할 때의 훌륭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마무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번 편은 군자(君子)의 끝맺음이 진실로 처음과 같아야 함을 강조한 구절입니다.
■ 篤初誠美(독초성미) [篤 (도타울 독), 初 (처음 초), 誠 (정성 성), 美 (아름다울 미)]
: 처음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좋으며,
■ 愼終宜令(신종의령) [愼 (삼갈 신), 終 (마칠 종), 宜 (마땅할 의), 令 (하여금 령)]
: 마지막을 신중히 하면 훌륭해진다
解說
篤初誠美(독초성미)는 안짝, 愼終宜令(신종의령)은 바깥짝이고 령(令)이 그 운이다.
이 두문구는 乾卦文言傳(건괘문언전)의 知至至之(지지지지)라 可與幾也(가여기야)며 知終終之(지종종지)라 可與存義也(가여존의야)라. 즉 이를 데를 알아 이르므로 조짐을 잃지 않으며(始倐理) 마칠 데를 알아 마치므로 의리를 보존한다(終倐理)는 내용과 통한다.
학문의 길은 물론,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초지일관(初志一貫)해야 한다. 그리고 일을 감당할 때는 반드시 利보다 義를 먼저 가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공자가 말했다. “사(賜 : 子貢)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다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공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한결같이 꿰뚫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 자기의 도를 하나로 꿰뚫었다는 공자의 일관지도(一貫之道)다. 이러한 도는 바로 인(仁)을 의미하는데, 충(忠)과 서(恕)로 나눌 수 있다. 충(忠)은 글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한마음 한뜻이라는 말이요,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운 마음[恕]이 있어야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지습(蕩之什)에서 이르기를
● 靡不有初 鮮克有終: 처음에는 곧잘 하다가도 끝까지 잘하는 것은 드물다. 라고 했다.
그래서 옛말에도 ‘무슨 일이든지 처음과 같이 한마음으로 하면 꼭 뜻한 바대로 이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성공(成功)’이라는 의의(意義)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공(功)을 이룬다는 뜻인데, 예전에 수련하는 도인들이 쓰던 언어다.
사람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그 의(義)를 똑바로 세우고, 정직하고 착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쉬지 않으면 마침내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 뜻이 부도덕(不道德)하여 하늘의 도(道)에서 벗어난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중도(中途)에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 것이다.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 天道無親 常與善人(천도무친 상여선인) : 하늘의 도는 사사로이 친한 것이 없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라고 일렀다. 인의(仁義) 또한 매한가지로 천명(天命)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이는 곧 하늘과 하나가 됨으로써 비로소 구현(具顯)되는 도(道)가 아닌가 한다.
字義
篤 (도타울 독)
말이 머리를 숙이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이다. 자형은 ‘말 마(馬)’로 구성됐으며, 죽(竹)은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篤, 馬行頓頓也. 從馬. 竹聲]. 둔(頓)은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다. 즉, 머리가 땅에 닿는다[觸地]는 말이다. 예전에는 가차(假借)하여 독(篤)을 독(竺)으로 썼다. 독(竺)은 두텁다[厚]는 뜻인데, 독(篤)을 쓰면서 독(竺)이 없어졌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 “독(篤)은 견고하다[固]는 뜻이다.” 또, “독(篤), 독(竺)은 두텁다[厚]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독(篤)은 두텁다[厚]는 뜻인데, 무릇 경전에서는 다 견실(堅實)하다는 의미와 함께 썼다.
初 (처음 초) 처음을 뜻하는데, 자형은 ‘칼 도(刀)’와 ‘옷 의(衣)’로 구성됐다. 옷을 짓는 일의 시초다[說文 : 初, 始也. 從刀衣. 裁衣之始也].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 “초(初)는 시작이다[初, 始也].”라고 했다. 재(裁)는 옷을 만든다[製衣]는 뜻인데, 바느질[鍼]하여 옷을 짓는다는 말이다. 옷을 만들 때는 처음에 칼로 옷감을 자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활용돼 무릇 시작, 처음을 일컫는 말이 됐다. 그래서 초(初)가 도(刀)와 의(衣)로 구성된 것이다.
誠 (정성 성)
믿는다는 뜻인데, 자형은 ‘말씀 언(言)’으로 구성됐으며, 성(成)은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誠, 信也. 從言. 成聲]. 신의(信義)가 있다는 말이다. 신(信) 역시 성실한 것[信, 誠也. 從人言]이라 했으니 사람의 말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성(誠)은 사람이 하는 말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美 (아름다울 미) 달다는 뜻인데, 자형은 ‘양 양(羊)’과 ‘큰 대(大)’로 구성됐다[說文 : 美, 甘也. 從羊大]. 감(甘)은 맛좋다[美也]는 말로 오미(五味) 중의 하나다. 다섯 가지 맛[五味] 가운데 감미(甘美)가 도는 것이면 모두 감(甘)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美)는 ‘감미롭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인신(引伸)돼 미(美)가 무릇 좋다는 것을 모두 이르는 말이 됐다. ‘양대(羊大)’는 기름지고 좋다[肥美]는 말로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양은 여섯 가지 가축 가운데 희생물(犧牲物)로 쓰던 주요한 가축이었다[羊在六畜主給膳也]. 주례(周禮)에 “여섯 가지 희생물을 쓴다[膳用六牲].”라고 했다. 이는 장차 희생물로 쓰려고 일찍부터 길렀던 여섯 가지 가축을 말하는데, 곧 말[馬], 소[牛], 양(羊), 돼지[豕], 개[犬], 닭[?] 등을 가리킨다. 선(膳)은 찬[籑(반찬 찬)]과 같은 뜻으로 마련된 음식[具食也]을 일컫는데, 예전에 제를 올릴 때 바치던 고기[牲肉也]를 이른다. 그래서 선(膳)은 좋다[善]는 말이다. 양(羊)은 상서로운[祥] 것이다. 그러므로 미(美)가 양(羊)으로 구성됐으며, 양(羊)의 뜻을 지닌다. 미(美)와 선(善)은 같은 의미다[美如善同意]. 왜냐하면 둘 다 양(羊)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愼 (삼갈 신) 삼가하다는 뜻인데, 자형은 ‘마음 심(心)’으로 구성됐으며, 진(眞)은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愼, 謹也. 從心. 眞聲]. 근(謹) 또한 신중하다[愼也]는 의미인데, 이 두 글자는 서로 전주(轉注)가 된다. 곧,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뜻으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진실해야 하는데 그래서 신(愼)이 진(眞)을 가진 것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지습(鴻鴈之什) 백구(白駒)에서 “그대 너무 한가롭게 노닐지만 말라[愼爾優遊].”라는 구절이 나오며, 또 절남산지습(節南山之什) 교언(巧言)에서 “나는 참으로 죄가 없네[予愼無罪].”라고 했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도 신(愼)은 “진실하다[誠]는 의미요, 편안하고 고요하다[靜]는 말이다.”라고 했다.
終 (마칠 종)
실 끝이다. 자형은 ‘가는 실 멱(糹)’으로 구성됐으며, 동(冬)은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終, 絿絲也. 從糹. 冬聲]. 단옥재는 ‘구(絿)’자는 실끝매기를 한다는 ‘집( )’자를 써야 옳다[誤字]고 여겼다. 광운(廣韻)에서 이르기를 “종(終)은 ‘극에 이르다[極也], 다하다[窮也], 끝나다[竟也]’는 뜻이다. 그 의미를 모두 동(冬)으로 삼는다. 동(冬)은 사시(四時)의 끝이다. 그러므로 활용돼 이러한 뜻이 됐다.”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이 그 의미를 분별하여 동(冬)을 사시의 끝[四時盡]으로 쓰고, 종(終)을 극(極), 궁(窮), 경(竟)의 뜻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종(終)이 그 본뜻을 잃고 마친다는 의미가 됐다.
宜 (마땅할 의)
편안하다는 뜻인데, 자형은 집 안에 물건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양이다[說文 : 宜, 所安也. 從宀之下, 一之上. 多省聲]. 일(一)은 땅과 같다[一猶地也]. 회의문자(會意文字)다. 집 안에 물건이 제사(祭祀) 를 지낼 때에 그릇에 고기를 얹어 놓은 형상과 같이 쌓여 있다는 말이다[象屋裏俎上有肉的形狀].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서 “그 집안을 편안하게 한다[宜其室家].”라고 했다. 그리고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鳴)에는 “그대에게 안주를 만들어 드리리다[與子宜之].”라고 노래했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 “의(宜)는 일이다[宜, 事也].” 또, 석언(釋言)에는 “의(宜)는 안주다[宜, 肴也].” 석천(釋天)에서는 “전쟁이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때는 반드시 먼저 제사를 지낸 다음에 출동하는데, 그 제사를 의(宜)라 한다.”라고 했다.
令 (하여금 령)
호령(號令)을 내리는 것이다. 자형은 ‘삼합 집(亼)’과 ‘병부 절(卪)’로 구성됐다[說文 : 令, 發號也. 從亼卪]. 호(號)는 부르짖는다[嘑也]는 뜻이다. 발호(發號)는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인데, 명령을 내리는 윗사람이나 명령을 받고 일을 하는 아랫사람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령(令)이다. 사(使) 역시 호령(號令)한다는 뜻인데[使, 令也], 서로 전주(轉注)가 된다. 인신(引伸)돼 ‘율령(律令), 시령(時令 : 節氣)’으로 썼다. 상서(尙書)에서는 령(靈)이라고 했는데,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도 “령(令)과 령(靈)은 선이다[令, 靈, 善也].”라고 했다. 그래서 령(令)에는 ‘좋다, 훌륭하다’는 뜻이 있다. 령(令)은 신표[卪]를 가지고 명령을 내려 사람을 불러서 모은다[招集]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므로 집(?)과 절(?)로 구성된 것이다. 절(卪)은 옥으로 만든 신표(信表)다[卪, 瑞信也]. 서(瑞)는 옥을 가지고 신표로 삼는다는 말이다. 주례(周禮) 전서(典瑞)의 주석에서 “서(瑞)는 절신(節信)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지금의 부새랑(符璽郞 : 임금의 도장)과 같다. 또 주례(周禮) 장절(掌節)의 주석에서 “절(節)은 신표[信]와 한가지다. 행인이 지니는 신분증[信]이다.”라고 했다. 왕이나 제후는 ‘옥절(玉卪)’을 썼는데, 옥은 모두 왕의 사신이 지니는 ‘서절(瑞卪)’이다. 여기에서 인신(引伸) 활용돼 모든 사신이 소지하는 징표를 ‘신(信)’이라 부르고, 옥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다 ‘절(卪)’이라 일컬었다.
시초(始初)를 돈독(敦篤)하게 함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나, 결말을 온전히 마무리하도록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始終(시종)을 온전히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有德(유덕)한 선비요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
● “嗚呼愼厥終惟其始(오호신궐종유기시) - 아아, 끝맺음을 삼가기를 시작할 때처럼 하라”는 선인의 탄식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천자문 제37연의 篤初誠美하고 愼終宜令이라.(독초성미하고 신종의령이라)는 주(周)나라의 폭군 여왕(厲王)의 이야기이다.
무왕이 세운 주(周)나라는 제2대 성왕과 제3대 강왕 때 태평성대를 누린 후, 제4대 소왕 이후부터 정치는 혼란하고 나라는 쇠약해졌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제10대 천자(天子)인 여왕(厲王)이 즉위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왕(厲王)은 임금 자리에 있는 30년 동안 재물을 탐하고 간신들을 가까이 두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백성들을 못 살게 괴롭혔다. 특히 여왕은 영이공(榮夷公)이라는 신하를 총애했는데, 그 역시 탐욕스런 인간이었다. 더욱이 여왕은 신하들이 자신과 영이공의 포악하고 탐욕스런 행동을 중단할 것을 간청하고 또한 백성들의 원망이 높아지자, 제후국인 위(衛)나라에서 첩자들을 데려와 신하와 백성들을 감시하고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을 가두고 처벌했다. 이렇게 되자 신하들과 백성들은 겁에 질려 입을 다물었고, 제후들은 더 이상 주(周)나라 조정을 찾아오거나 조공(朝貢)을 바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왕(厲王)은 더욱 기고만장해져 포악한 정치를 멈추지 않았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해 소공(召公)이라는 충신이, 신하와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길을 막는 것과 같아, 일단 둑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므로 그 입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충언을 하였으나, 여왕(厲王)은 이 충언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 그때부터 3년이 지난 후, 마침내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궐기하여 여왕(厲王)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여왕(厲王)은 난리를 피해 체(彘)라는 지방으로 도망을 쳤다. 천자(天子)가 사라져버린 주(周)나라는 혼란과 분열을 거듭했고, 결국 제후들 중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이 천자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것을 중국사에서는, 평화를 위하여 임시로 천자를 대신하여 정치를 했다는 뜻으로 '공화행정(共和行政)'이라고 부른다. 소공과 주공이 천자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지 14년째 되는 해, 여왕(厲王)은 마침내 망명지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여왕(厲王)이 죽자 주(周)나라는 비로소 새로운 천자(天子)를 세우게 되었고, 이때 왕이 된 사람은 여왕(厲王)의 태자인 희정(姬靜)이다. 그는 주(周)나라 제11대 임금인 선왕(宣王)이다. 선왕(宣王)의 즉위와 함께 주(周)나라는 잠시 부흥기를 맞았으나, 이미 왕실의 권위와 제후들에 대한 영향력은 실추될 대로 실추된 뒤였다. 여왕(厲王)의 사건은 기원전 840년경에 일어났다. 주(周)나라가 유목민족의 침략을 피해 동쪽인 낙읍(洛邑)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제후들의 세상이 된 춘추시대가 시작되는 때보다 정확히 70년 전 사건이다. 여왕(厲王)의 사건은 70년 후에 일어날 주나라의 동천(東遷)과 춘추시대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던 셈이다.
'篤初誠美(독초성미)하고 愼終宜令(신종의령)이라' 즉 '시작할 때 온 힘을 쏟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마무리를 삼가면 마땅히 좋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 여왕(厲王) 같은 사람을 경계하는 말이다.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탕(蕩)」이라는 시(詩)는, 어떤 시인이 여왕(厲王)이 포악무도한 정치로 말미암아 장차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지은 것이다. 이 시에서, "처음부터 잘못하는 자 별로 없지만, 끝까지 잘하는 자 또한 적다"고 했다. 주(周)나라를 세운 초기 무왕과 성왕, 강왕의 왕업(王業)이 지속되지 못하고 그 후손인 여왕(厲王)에 와서 무너지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탕(蕩)」이라는 시(詩)의 구절은 비단 왕조의 흥망사(興亡史)일 뿐만 아니라 조직 혹은 개인의 흥망(興亡)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 篤初誠美 篤 도타울 독 \ 初 처음 초 \ 誠 진실 성 \ 美 아름다울 미 : 처음 도타웁게 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고,
독은 도타웁다는 뜻이다. {시경} [당풍]에 "산초나무 씨 흐드러져 한 움큼 가득 쥔다네 / 님께선 크고도 도타우셔라 / 산초나무여 긴 가지여"라하니, 장래의 기세가 날로 더욱 성대한 곳으로 나아감이 산초나무의 먼 가지와 같아서 날로 번성케 된다는 것이다. 무릇 집 지을 적에 토대를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끝내 집이 기울게되고 나무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지 않으면 나무가 말라 죽게 되니, 사람이 일할 적에 처음부터 도타웁게 하면 참으로 훌륭한 일이 이루어진다. 공자는 임금을 섬기되 처음에는 조심하고 나중에는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篤厚也라. {詩 唐風}에 椒聊之實 蕃衍盈 彼其之子 碩大且篤 椒聊且 遠條且라하니 其將來氣勢日益進盛이 亦猶椒之遠條하여 而益蕃也라. 凡作屋에 基礎不實이면 則屋終傾하고 種樹에 根本不培면 樹將枯하니 人於作事에 篤於始면 則誠爲美事라. 孔子曰 事君하되 愼始而敬終이라하다.
● 愼終宜令 愼 삼갈 신 \ 終 끝 종 \ 宜 마땅할 의 \ 令 착할 령 : 끝맺음을 조심하는 것이 참으로 좋으니,
신은 조심스럽고 정성스럽다는 뜻이다. 영은 좋다는 뜻이다. {상서}에 중훼는 말한다. 스스로 스승을 얻는 이는 왕이라 하고 남이 자기만 같지 않다고 하는 이는 망한다고 나는 들었다.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지고 스스로를 쓰기만 하면 작아지는 것이다. 아아, 끝을 조심스럽게 맺으려면 처음부터 조심해야 하는 법이니, 예 있는 이를 키우며 어두워 포악한 이를 덮어서 하늘의 도리를 공경히 높여야만 길이 천명을 보전하리라. 군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소인은 시작이 있지만 끝이 없으니, {시경}에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없지 않거늘 잘 끝 맺는 이가 드물다고 하였다.
愼謹也又誠也라. 令善也라. {商書}에 仲 曰 予聞컨대 曰能自得師者王이요 謂人莫己若者亡이라. 好問則裕하고 自用則小라. 嗚呼라 愼厥終惟其始니 殖有禮覆昏暴하여 欽崇天道라야 永保天命하리라. 君子는 有始有終하고 小人은 有始無終하니 {詩}云 靡不有初나 鮮克有終이라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