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교육개혁의 '새 대학입시전형제도'의 내용과 결과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암기위주 입시교육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여 입시지옥을 해소하고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여 인성교육을 회복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는 대학입학제도’의 내용과 그 결과를 살펴보자.
5. 국민의 고통을 덜어 주는 대학입학제도
현행 대학입학제도는 획일화된 암기위주의 입시준비교육을 조장하고 있으며, 인성교육은 학교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열과외 현상으로 학교교육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국․공립대학은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사립대학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 축소 등의 원칙하에 학생선발 기준과 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여 학생을 선발하도록 한다.
그리고 국․공립대학은 필수 전형자료로 종합생활기록부를 사용하고, 선택 전형자료로 수능시험, 논술, 면접, 실기 등 다양한 전형기준에 의해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하고, 과열과외를 완화하도록 한다.
5.31 교육개혁안과 이를 바탕으로 교육부가 1995년 12월 19일 발표한 ‘새 대학입학전형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형 요소인 종합생활기록부, 대학수학능력시험, 논술, 면접, 실기 등의 반영 여부(국․공립대학은 종합생활기록부 필수) 및 반영 비율, 전형 유형(일반전형, 특별전형, 특기자 전형), 모집 시기(정시모집과 특차모집)를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여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하고 학생선발방법을 다양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안이 마련한 ‘새 대학입학전형제도’는 과연 그 후 실제로 시행되면서 애초의 구상대로 과열 과외를 감소시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여 인성교육을 회복시키는 등,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었는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2001년 윤재설은 새입시제도의 도입 결과를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의 극복을 위해 도입되고 있는 입시의 다양화는 오히려 공교육의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고교 교과과정을 넘어서는 대학의 전공소양 심층구술면접과 영어면접은 현재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사교육의 영역이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강성재 팀장은 “심층구술면접이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도입됐지만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논술고사가 도입되자 논술학원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데 이어 심층구술면접이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에서 중시됨에 따라 구술면접 대비를 겨냥한 학원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도입 이후 학교에서는 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해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고 있다. 평균이 80점 정도 나오게 문제를 출제하거나 예상문제를 미리 나눠주고 그 중에서 시험문제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는 경우는 학부모의 항의를 받기 십상이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해당교사에게 시말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또 대학에서 각종 대회 수상자를 특기자로 뽑거나 정시모집에서 수상경력을 인정함에 따라 고등학교에서는 상이 남발되기도 한다. ㅎ고 3학년 전아무개 군은 “교내 경시대회가 매년 몇 차례씩 열려서 이런 저런 상을 나눠준다”며 “상위권 학생치고 수상경력란에 아무것도 안 적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기력 테스트에서 사고력 테스트로의 개선을 꾀했던 수능시험은 도입 초기와 달리 문제 유형이 정형화되면서 요령과 순발력만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기에 초점을 맞춘 ‘수능 족집게’ 강사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강화되고 있는 영어와 전공기초지식 중심의 심층구술면접은 학생들을 더욱 더 사교육으로 밀어 넣고 있다.(윤재설,2001).
이뿐만이 아니다. 강병운(2001)은 개혁안의 새로운 대학입학제도가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화된 대학입학제도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문화적 자본(문화적 습성, 사회적 연줄망 등)을 소유하고 있는 중상류층의 자녀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을 수도 있다. 중상류층의 학부모들은 유리한 경제적 자본을 바탕으로 사교육을 통해 공교육에서 부족한 입시대비 교육을 시킬 수도 있고, 다양한 사회적 연줄망을 통해 보다 다양화되어 복잡해진 대학 입학제도에 관한 체계적인 진학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고, 다양한 사회관계자본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대학입학제도의 변화를 유도하고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도 있다. 최근의 다양해진 대학입학제도의 변화된 내용이 중상류층의 자녀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결국, 주요대학에서의 중상류층 자녀들이 합격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도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학교생활기록부에 교과성적 이외에 각종 특별활동,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다양한 활동상황을 기록하는 경우, 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기회는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을 가능케 하는 각 가정의 사회경제적인 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 주요언론의 보도(조선일보: 2001. 6. 4)에 따르면 대입전형에서 수시 모집이 크게 확대되고, 주요대학에서 경시대회 수상을 중시하자 전국적으로 대입과 연계된 경시대회가 난립하고 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경시대회입상 = 대학합격’이라는 인식아래 경시대회에 매달리고 있으며, 서울 강남 등에는 월 수십만원짜리 하는 신종 경시대회 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보면 학교내신과 심층면접만으로 전형을 하는 2002년도 수시모집에서 소위 강남의 ‘8학군’ 지역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와 특수목적고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영역에서의 좋은 평가도 결국은 학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수능시험은 통합교과적으로 종합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통합교과적인 교과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수능에서의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외국어 영역에 듣기평가 문항의 비중이 높아진 사례 또한 외국여행의 경험, 외국에서의 생활경험, 위성 TV, Cable TV의 외국채널 시청 등 가정에서의 다양한 문화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다양한 문화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의 학생들에게 보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
서울대입시에서 심층면접을 도입한 이후, 심층면접이 타대학으로 확산되자, 입시학원들에서는 심층면접특강반을 편성하고, 비디오 카메라를 동원한 심층면접대비 과외가 등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면접대비 학원에 다니기 위해 매주 한번씩 지방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는 학생들까지 있다는 방송보도도 있었다.
논술고사의 경우도 연세대학교가 최근 연세대, 이화여대, 고려대, 경희대 4개 대학의 대학생 1,259명을 대상으로 수험생시절 논술고사 방법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49.5%가 논술고사를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했다고 응답했으며, 서울강남 출신 학생 중 63%가 논술학원에 다녔다고 응답하여, 34%라고 응답한 지방학생들보다 2배 가까이 되었다(경향신문: 2001. 9. 6).
기타 언론사의 사교육실태 보도에 따르면, 논술고사와 심층면접 과외뿐만 아니라 수험생을 상대로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추천서의 대필사업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 다양해진 입학제도를 학교교육에서 수용하고 있지 못하는 관계로 오히려 종전보다 사교육시장만을 다양하게 확대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복수지원기회 확대, 연중 수시모집, 전형자료의 다양화로 나타나는 최근의 대학입학제도 변화는 결국,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에 있어서 유리한 계층의 자녀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겠다.
......
최근의 서울 소재 주요대학들의 입시결과를 보면 서울대학의 경우 출신지 분포에서는 서울 등 6개 광역시 등 대도시 출신 비율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고, 부의 직업분포에 있어서는 관리직과 전문직 등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이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생산직이나 농어업의 경우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교육의 기회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로 보인다. 사실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싼 서울대학의 학생 분포에 있어서 대도시지역의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의 학생들의 비율이 점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중류 이하 계층 출신의 학생들에게는 양질의 고등교육에 대한 기회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강병운,2001).
사교육을 줄이고 중고등학교의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5.31 교육개혁안에서 마련한 새 대학입시제도는 실제에 있어서는 이전에는 없었던 논술 과외, 심층면접 대비 과외, 경시대회 준비 과외, 수능 대비 족집게 과외 등을 부추겨 사교육을 더욱 활성화시켰으며, 고등학교에서는 내신에서 모든 학생이 8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험 예상 문제를 미리 나눠주고 쉬운 문제만 출제하는 편법을 불러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입시제도는 저소득층에게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기에 너무 어렵고 복잡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반면 경제적, 문화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상류층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여 이전에 비해 고소득 하이트 칼라 계층의 자녀가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갈수록 더 높아졌다. 즉, 개혁안의 대학입시제도는 소위 ‘있는 집’ 아이들에게 유리하고 ‘없는 집’ 아이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여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이동성을 낮추고 계층을 한층 더 공고히 했다. 한마디로 교육 분야에서의 ‘사다리 차버리기’로 기능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학생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기는커녕 갈수록 대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과제가 늘어나, 2006년에는 학생들이 내신, 수능, 논술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부르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입학사정관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2009년 이후에는 기존의 3 개에 입학사정관제까지 더해져 수험생 사이에서는 ‘고3 죽음의 사각형’ 혹은 ‘죽음의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출발점이 된 것이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의 새 대학입시제도였다고 한다면, 그 교육개혁은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골짜기로 더욱더 몰아넣은, 탁상공론에 의한 개악책 중의 개악책이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강병운(2001). 대학입시제도 변화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연구 제7권 2호, 19-43.
윤재설(2001). 춤추는 입시 전형에 장단 맞추라, 교육비평 5호. 268-273.
대학입시제도 비판(윤재설,2001).pdf
대학입시제도 변화에 관한 연구(강병운,200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