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아자브타니?”(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라마! 나를 버리셨나이까?”
『두 개의 Why(왜)』
시편 기자가 히브리 단어로 토해내는 슬픈 애가는 강렬하다. 우리 말이나, 영어 번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 다윗이 “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나님을 향해 물었을 때, “왜”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라마 ”(לָמָה)이다. 히브리어로 “왜”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는, 여기에 사용된 단어가 유일한 단어가 아니다. 히브리어로 “왜”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는, 두 개가 있다. “두 개의 Whys!” 여기서는 “라마”(לָמָ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따라서 시편 22편에서 다윗이 바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לָמָה”(라마, 왜)라는 히브리 단어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본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마두아』(מַדּוּעַ, 왜?)
히브리어로 “왜”라는 의미를 지닌 “라마”(לָמָה)라는 단어 외에 또 다른 단어는 “מַדּוּעַ”(마두아)다. 성경 히브리어에서 발견되는 이 단어는 “마(מַה) 야두아(מַדּוּעַ)”의 축약형으로 원래 “알려진 것이 무엇이냐?”(what is known)를 의미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보통 말하는, 그런 어떤 일이나 사건의 원인을 나타낸다. 좀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BDB, 396).
출애굽기 1:28
מַדּוּעַ עֲשִׂיתֶן הַדָּבָר הַזֶּה וַתְּחַיֶּיןָ אֶת-הַיְלָדִים"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라마』(לָמָה, 왜?)
그러나 “לָמָה”(라마)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현대 히브리어에서 보다 사용되고 “מַדּוּעַ”(마두아)와 그 어원이 다르다.
접두사 “לָ”(la, 라)와 “מָה”(ma, 마)로 구성되며 “무엇 때문에”(for what)를 의미한다.
과거의 원인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창 4 :7, 12:18), 출 5:22과 욥기 30:2에서와 같이 미래의 목적에 대해 질문할 때 사용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출애굽기 5:22
אֲדֹנָי לָמָה הֲרֵעֹתָה לָעָם הַזֶּה לָמָּה זֶּה" שְׁלַחְתָּנִי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이 “לָמָה”(라마)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출 6:1-8절에 기가 막히게 나와있다.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말이다.
롬 3:21절과 같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구약의 중요한 장(場)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Νυνὶ δὲ χωρὶς νόμου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πεφανέρωται)
실제 수많은 구약 신학자들은 이 히브리 한 단어를 놓고 “하나님의 계획”(God’s Design)이 무엇인지를 풀어 냈다.
그 중 대표적인 구약 신학자가 엘머 에이 말텐스(Elmer A. Martens)이다.
『미래의 목적을 나타내는, לָמָה』
"라마"(לָמָה)가 미래의 목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성경의 몇 난해 구절을 이해하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이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뒤짚는다. 예를 들어, 금 송아지의 죄가 있은 후 모세는 하나님께 "왜 라마, 하나님, 당신의 백성에게 화를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출애굽기 32:11
לָמָה יְהוָה יֶחֱרֶה אַפְּךָ בְּעַמֶּךָ"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언뜻 보기에 이 질문은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금 송아지 우상 숭배의 중대한 죄를 범했다.
히브리 단어 “마두아(מַדּוּעַ)”로 가지 않고 모세는 “לָמָה” (라마)로 물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위에서 언급한데로 "무슨 목적을 위해"(for what purpose) 하나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묻는 것이다. 도대체 그 목적이 무엇이냐고?! 알고 싶다고! 중요한 의미다.
그래서 질문 이후에 또 다시 “לָמָה”(라마)를 사용하여 이런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출애굽기 32:12
לָמָּה יֹאמְרוּ מִצְרַיִם לֵאמֹר בְּרָעָה הוֹצִיאָם" לַהֲרֹג אֹתָם בֶּהָרִים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여! 무엇 때문에 당신이 화를 내십니까? 지금 분노로 당신의 백성을 멸망시킨다면 어떻게 인류를 위한 당신의 목표를 어떻게 성취할 것입니까?
『앞과 뒤를, 그러나 앞으로, Looking forward!』
바로 이런 내용과 문맥은 또한 다윗이 지금 시편에서 묻는 것과 같은 관점과 동일하다. 그는 히브리 단어 “מַדּוּעַ”(마두아)를 사용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죽음의 진토 속에서 토해내는 애절한 다윗의 애가(哀歌), 십자가 상에서 주님이 그대로 성취한 4개의 단어로 된 절규의 문장,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אֱלָהִי אֱלָהִי לְמָה שְׁבַקְתָּנִי, 막 15:34, 아람어)
“엘리 엘리 라마 아자브타니?”(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시 22:2, 히브리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라마!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문장에서 각 단어가 다 중요하지만, 히브리 단어, “לָמָה” (라마)는 보석중의 보석이다. 그가 토해내는 이 한 단어에서 우리는 기도와 삶의 끝이 어떻게 갈 줄 이미 알 수 있기 때문이다(시 22:32).
다윗이 토해 낸, 히브리 단어 “לָמָה”(라마)는 “מַדּוּעַ”(마두아)라는 사탄의 족쇄에 걸려 인생을 망하게 하는 사단의 음모를 짓밟고 이미 승리를 선포하는 복음이 담긴 정말 너무 귀한 단어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여러 고난들, 삶의 비극에 대한 수많은 이유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 날지를 모르는 오리무중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초월해 있는 숱한 사연들. 다윗은 알고 싶어 주께 나아가 물었다. 이렇게 말이다.
“לָמָה”(라마)? “이 모든 것들의 이유와 그 너머에 목적이, 주님 무엇입니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 상황을 뛰어넘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왜(why)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 두 단어, “מַדּוּעַ”(마두아)와 “לָמָה”(라마)에 담긴 하 나님의 마음과 뜻을 보면서 어떤 사건에 대한 그 이유를 짚어보고 때때로 우리가 뒤돌아 보는 것 도 필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게 하는,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그 너머, 우리에게는 감추어져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우리를 향한 분명한 목적들을 믿음으로 취하고 그대로 수용하고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중심 이슈요 참 지혜인 것이다.
『나를 살린 감동의 언어, 히브리어!』
언어라는 것이 어떤 지역에서 더 풍부할 수 있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더 빈약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 번역 성경도 원문의 호흡까지도 그대로 담아내려는 감동의 번역이 많이 있다. 우리 말이나, 영어는 히브리 단어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히브리어 “왜”라는 단어에 상응하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히브리어 두 단어, “מַדּוּעַ”(마두아)와 “לָמָה”(라마)를 “왜” “why”로 번역할 뿐이다.
누군가의 말이다.
“만약 당신이 언어를 알았다면 최고의 언어를 배우시오!”
나를 살린 감동의 언어, 히브리어 그 언어는 멈출 수 없는 언어임에 틀림이 없다!
『티크바티』(תִּקְוָתִי my hope)
내게 2020년, 정리하기도 힘든, 너무 힘들고 힘든 한 해였다.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그리고 저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주의 한량없는 은혜가 2020년 끝 자락 카이로스(kairos)에 새벽 사슴되어 목말라 갈(葛)하는 내 영혼위에 부어졌다.
시편 22편을 시작하는 히브리 한 단어를 통해 2020년 나를 무겁게 짓눌려 나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그 아무 것 하나 손을 대지 못하도록 했던, 내 영혼을 살렸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מַדּוּעַ”(마두아)에 걸려 죽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향한 성령의 탄식은 우리를 살리려 “לָמָה”(라마)로 나아가도록 긍휼과 자비를,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마지막 32절에 있는 것처럼, “참으로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כִּי עָשָׂה) 아름다운 고백을 통해 곤고한 자가 듣고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시 34:2).
마두아에 (מַדּוּעַ에 갈려고 해도 나의 모든 생각과 힘이 미치지 못해 “לָמָה”(라마)로 결국은 걸려들어 죽을 뻔한 나를 구원하신, 나의 지혜가 되시고 강함이 되신 주님을 (고전 1:25) 이 아침 소리 높여! 찬양한다!
시편 62:5
אַךְ לֵאלֹהִים דּוֹמִּי נַפְשִׁי כִּי-מִמֶּנּוּ תּ"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곧 다가올 새해를 영(灵)의 감동으로 맞이하자!
(남방 미츠페 라몬 광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