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타파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우리의 제안
학벌 문제는 일종의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이다. 우리는 학벌을 추종하는 광신도가 되었다. 학벌은 우리의 종교가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안주한다. 이 말세의 종교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종교는 내부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며, 오만한 배타성으로 자신들과 타인을 철저히 차별화한다. .
이 기이한 종교의 세뇌 작업은 대학입시를 절정으로 초중등학교 내내 어린 학생들에게 강요되고 있고, 그들의 주위에 있는 학부모는 자식을 볼모로 한 이 작업에 어쩔 수 없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가장 강력한 맹신자가 되거나 아니면 신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다. 교수와 교사는 이 종교의 사제로 일용할 양식과 서품에 매달려 교리를 전파하고 심지어는 교리의 정교화에 이바지한다.
이른바 일류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이 종교의 내부조직에로의 진입을 뜻하고, 선발 이후의 교육과정과는 별 상관없이 선발 그 자체로 고위교직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훌륭한 교도가 되기 위한 교육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단 한 번의 시험을 통해, 성골과 진골이 나누어진다. 성골은 영원한 성골이고, 진골은 영원한 진골이며, 육두품은 영원한 육두품이다. 기초훈련이나 실전경험은 개의치 않고, 골품의 획득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학벌은 현대판 골품이다. 한 번 획득된 골품은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결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포괄적인 차별로 인권의 문제와도 직결되고 있다.
게다가 학벌문제는 국가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청소년의 자살문제가 대부분 학벌과 관련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사실로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학벌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청소년의 권리는 훼손돼도 좋다는 이 사회의 암묵적 폭력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 등 집 값 상승의 주요원인 가운데 하나도 학군 등 입시와 직결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학원가가 잘 들어서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강남불패(江南不敗)의 신화를 유지시켜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강남의 주부들이 유한마담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엄청난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형할인매장 등에서 시간제로 돈을 벌어야 한다.
지방대는 철저히 서열화된 대학의 구조 때문에 입사시험에서 배제된다. 지방대는 이른바 필터링을 통해 시험 볼 권리조차 빼앗기고 있다. 지방이 망하더라도 서울이 살면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는 일임에도 이렇게 지방은 대학 문제와 직결되어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서울로 한 번 올라간 지방출신의 학생은 거의 모두가 다시 지방을 위해 내려오려 들지 않아, 결과적으로 서울은 자꾸 비대해지고 지방은 더욱 공동화된다. 그것은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다시 서울에서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가? 그것은 바로 살인적인 사교육비 때문이다. 평균적인 월급으로는 지탱할 수 없는 사교육비를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조차 낳지 않는다. 일시적인 출산 장려금을 얻기 위하여 평생 지불해야 하는 사교육비를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출산율 저조현상은 차세대 국가인력수급의 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국가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원정출산, 기러기아빠, 노년빈곤 등등의 사회적 문제가 학벌과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땅에 있을까? 모두 학벌 때문이다. 하다 못해 노조의 임금투쟁만 하더라도 자식의 학원비 마련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수출해서 유학 보내고, 춘투(春鬪)해서 학원 보낸다. 그러니 국가경쟁력이 확보될 리 없는 것이다. 학벌문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정립하는 절실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학벌은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말살하고 있다. 학생은 학생대로 입시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녀교육에 매달려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지 못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학원비를 벌기 위해 온갖 잔업을 해야 하며, 교사는 입시문제를 풀기 위해 참다운 교육을 해볼 엄두조차 못내며, 교수는 대학의 서열에 따라 학생과 더불어 평가되어 연구진작을 꿈꾸지도 못한다. 인생을 통하여 경쟁은 지속되어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단 한 번의 입시로 인생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이러한 병리현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망국의 종교가 무너지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믿었던 교리가 거짓임이 드러날 때, 우리는 공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우리의 병이 너무 깊다. 또한, 이 망국의 종교를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적절한 방안을 다방면의 집단과 계층을 접촉하면서 오랫동안 토론해왔다. 아래의 대안은 바로 이러한 토론의 결집이다. 우리의 대안은 단독적이라기보다는 유기적이다. 하나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해 여섯 가지가 모두 그 자리를 맡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제안한다.
1. 국립대를 무상평준화하라.
1.1 국립대 졸업자격을 단일화하라.
1.2. 사립대를 국립대 체제로 전환하라.
2. 서울대의 학문과 권력을 분리하라.
2.1. 서울대 학부를 개방하라.
2.2. 서울대를 대학원대학으로 개편하라.
3. 대학입학제도를 전면 개선하라.
3.1. 대학서열화 기제인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라.
3.2. 국립대학 통합전형을 실시하라.
4. 학벌에 의한 권력독점을 금지하라.
4.1. 공직임용제도를 개선하라.
4.2. 특정대학의 고위공직자 비율을 제한하라.
5.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정상화하라.
5.1. 응용학문을 전문대학원에서 교육하라.
5.2. 대학의 학문체제를 조정하라
6. 교육행정체제를 개혁하라.
6.1. 교육권력독점을 해체하라.
6.2.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라.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셔가 함께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