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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한국고유철학
-고구려고분벽화의 이·저승의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사층세계-
Ⅰ. 서 론
우리는 한국의 역사드라마에서 고구려를 상징하는 것으로 삼족오 깃발을 보고 있다. 고구려와 삼족오 깃발 사이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 인류가 5분전에 탄생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인식에는 아마 인류만큼의 인식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인류가 생각하는 모든 사고방식은 인류사의 산물이고,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용어들은 인류의 인식형태의 산물이다. 마던인식형태는 개인, 민족, 그리고 인류의 인식구조가 모두 다르다. 인식형태의 구조는 인류사에서 인류가 과거, 현재, 미래에 사용한 인식구조이다. 우리는 인류의 인식형태에서 주로 현재의 인식형태 마던형태에 주목하고 이 부분에 많은 연구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형태의 미래에 대해 아주 많은 다양한 사고실험을 해보지만 조금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인류의 과거의 인식형태들에 대해 마치 생물학의 진화단계들처럼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고생물학에서 생물의 일부 화석만 보고 나머지 부분을 복원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인류의 인식형태도 특정시점의 특정나라의 일부 인식의 파편만을 보고도 나머지 부분을 복원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집게 손가락뼈만 보고도 직립원인을 복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인식형태의 단편만 보고도 그 시대의 인식형태를 복원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 접근방법이니 어떤 특정 시대나 공간에도 예컨대, 고대 한국, 고대 이집트나 고대 그리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삼족오를 보고 고구려시대의 인식형태를 공시적인 좌우맥락과 통시적인 전후맥락을 통해서 복원해 보려고 한다.
인류사를 5가지 지식형태의 역사로 파악하겠다. 인류사의 지식형태로 구체적인 나라인 고조선의 자연인격신형태와 기축형태에 적용해서 고구려 사회의 인식형태를 분석해보겠다. 구체적으로 북부여-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삼족오와 섬여를 자연인격신형태의 생전과 사후를 연결하는 통일적 사고방식이라 보고 천상, 산상, 지상, 지하세계의 전체 맥락에서 해석하겠다.
먼저 2장에서 인류의 지식형태들을 5가지로 설명한다. 3장에서 인류지식형태의 역사를 고조선 시대에 적용한다. 4장에서 포스트 고조선시대의 북부여-고구려 사회의 고분벽화를 당대의 기축형태와 자연인격신형태의 지평융합으로 설명한다. 자연인격신형태에서 삼족오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해와 해의 상징으로 삼족오이다.
둘째, 실물 해와 해의 흑점이 활동이다.
셋째, 실물 생물의 돌연변이로서 삼족오, 적오, 금오 등이다.
그 후 포스트 고조선 시대의 자연인격신형태의 사고 변천과정을 5장 대신라와 발해에서 6장 고려에서 7장 조선에서의 삼족오의 변천과정을 다루고 8장에서 현대의 마던형태에서의 새로운 차원의 부활을 서술한다.
Ⅱ. 인류의 인식형태들(토템형태, 자연인격신형태, 기축형태, 마던형태)
역사적 시기구분을 위해서 양식, 형태, 지배, 철학, 시대, 시기, 때 순차로 장기에서 단기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생산양식에는 “수렵·어렵·채집 양식”, “유목·농경·해양 양식”, “마던 상공업 양식”으로 구분한다. 인식형태는 “토템이전형태”, “토템형태”, “자연인격신형태”, “기축형태”, “과학형태”로 구분한다. 하나의 인식형태는 생산양식, 자연질서, 사회질서 그리고 개인질서를 포함한다. 맞수 없는 지배는 고조선 지배, 몽골 지배, 미국 지배로 구분한다.
철학은 고조선 지배의 붕괴 이후에 등장한 기축 형태와 첫 번째 철학들, 몽골 대제국의 지배 이후에 등장한 과학 형태와 두번째 철학들이 있다. 인류의 인식구조는 700만 년 전에 직립원인으로 등장해서 대략 4-5만 년 전에 토템형태에 도달하고, 1만 년 전에 자연인격신형태에 도달하고, 기원전 900-600경 사이에 기축형태에 도달하고, 1350-1500년경 사이에 과학형태에 도달한다. 철학은 맞수 없는 지배국(초강대국)이 붕괴한 이후에 등장한 획기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인류사의 초강대국은 고조선, 몽골, 미국이 있다. 자연인격신 시대의 초강대국은 고조선이고 고조선에서 자연인격신형태의 최고의 인식형태를 볼 수 있다. 고조선 대제국이 붕괴한 이후에 첫 번째 기축 철학, 고전 그리스 철학이 등장했다. 기축형태의 초강대국은 몽골대제국이고 그곳에서 기축형태의 최고의 인식형태들로서 기축사상들의 복합체들을 볼 수 있다. 몽골대제국이 붕괴한 이후에 두 번째 철학 모던철학, 유럽철학이 등장했다. 과학형태의 초강대국은 대륙 섬 미국이고 미국에서 모던시대 최고의 인식형태를 볼 수 있다. 아마 미국 대륙섬이 붕괴한 이후에 세 번째 철학이 등장할 것이다.
첫 번째 철학은 기축형태의 고대그리스 철학, 팔레스타인의 선지자 철학,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철학, 석가족의 불교, 선진의 제자 철학이 있다.
두 번째 철학은 마던 형태의 유럽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쯔, 로크, 버클리, 흄,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 철학, 마르크스주의, 분석철학, 현상학,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철학이 있다.
세 번째 철학은 현재 시대에 아마 그 싹들이 자라고 있겠지만 모던도 없고 미국의 지배도 없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에 등장할 철학이라 미리 알 수 없다.
토템형태는 수렵·어렵·채집생산양식을 기반으로 하며, 자연 질서에서 토템 조상신이 인간의 먹을거리인 동식물 토템의 조상이면서 수량의 지배자이며 동시에 사회질서에서 인간 토템의 조상신이면서 토템 인간집단의 생사의 지배자이며 재산축적이 없어서 성원들 사이는 원칙적으로 평등하다. 이 사회의 개인질서는 그 소속성원 토템 집단과 일체화되어 개인질서 의식이 없다. 토템양식의 후반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토템간 결혼동맹이 등장하고 여기서 족외혼 토템이 등장하고 족외혼 토템에서 토템 내부성원간의 성적결합을 막기 위한 성기가리개가 등장한다. 족외혼 토템에서 말기에 카스트의 싹이 등장한다.
자연인격신형태는 유목·농경·해양 생산양식을 기반으로 가축화와 작물화가 된 사회이며 자연 질서는 자연인격신이 천문(해, 달, 별), 지리(산, 집)와 수리(하, 강, 천, 저수지)의 계절을 지배하니 부족은 인격신과의 거래[계약]로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내고 신의 축복을 받아서 가축과 곡물의 흉풍을 결정한다.
사회질서는 토템 야생 동식물에서 가축과 곡물이 구별되면서 신의 형상이 비천한 토템 동물형상에서 자연인격신의 인간형상으로 변하며, 자연인격신이 생전과 사후의 천상, 산상, 지상, 지하세계의 구조를 하나로 연결한다.
생존의 사회에서 자연인격신은 부족의 후원자이고, 부족집단 내부질서로 사제, 무사, 평민, 노예의 카스트를 결정하며 국가질서로서 자연인격신의 후예로서 왕과 그 추종자의 왕신관계가 성립한다. 족외혼 토템 이후의 아버지의 구별용이성과 재산축적, 임신한 여성의 후원자로서의 남편의 필요성에 따라 가족이 탄생한다. 개인질서는 자연인격신이 규정한 사회질서의 부족, 카스트, 가족 관계에 따라 3층을 이루게 되며 인간의 정신구조도 마음이 얼, 넋, 맘으로 3분되며 사회제도와 구분된 개인의식은 없다. 그리고 영혼불멸신앙에 따라 생전과 사후에도 카스트가 유지되며 전사는 전쟁 중에 용감하게 싸우다 죽으면 조상신의 나라, 천상으로 들어가지만 비겁한 죽음은 천상에서 추방되어 지하 세계로 들어가니 전쟁에서 용감하며 사후 세계의 행복을 위해서 적어도 초반에는 시종이 기꺼이 주인 따라 죽는 순장제도가 있다.
신선과 옥녀는 산상에 살며 지상과 천상을 교류하게 하며, 왕 중 일부는 죽어서 산상의 산신이 된다. 자연인격신형태의 최후, 최고에 초강대국 고조선-스키타이관계망에서 고조선이 스키타이족을 동방에서 서방으로 이동하면서 기축사상혁신을 준비하고 스키타이족이 서방에서 기마궁사의 기술혁신을 해서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해양과 농경생산양식들의 자연인격신형태의 왕정질서를 차례차례 붕괴시키자 순차적으로 기축형태가 등장한다. 기축형태는 유목·농경·해양 생산양식들 중에서 반농경반유목 생산양식의 고조선-스키타이족이 동서로 이동하면서 농경생산양식과 해양생산양식을 공격하자 자연인격신의 후예로서 임금의 권위가 붕괴하자 사회질서에서 카스트 붕괴되어 무질서하게 되고 자연 질서에서 자연인격신에 의한 천문·지리·수리의 계절지배가 불신당해서 계절이 자연현상으로 독립하게 된다.
기축양식은 자연 질서로서 자연현상이 자연현상으로 설명되자 천문관측이 독자기구로 등장하고, 별자리[28수, 12궁도], 해와 달 변화인 책력 등이 등장한다. 사회질서는 인간의 카스트질서를 자연인격신과의 거래를 통한 이해관계로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자 이제 사회질서는 인간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내면질서[초월적 관계]로서 각 지역에서 등장한 “고대 그리스 철학”, 팔레스타인의 선지자 사상, 페르시아의 배화교 사상, 석가족의 불교사상, 주·노·제의 유교사상, 초나라의 도교사상, 그리고 고조선의 선인 사상을 통해서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와 왕신관계를 정당화한다.
태왕의 제국질서는 고등종교의 경전 표준화작업을 지원하니, 기축종교와 제국이 상호 지원하면서 공동지배하는 사회질서가 된다. 개인질서는 ‘태왕/경전’의 양축에 의해서 ‘사/농·공·상’의 제국질서가 정당화되자 개인질서는 제국질서 밖의 내면적 초월질서로 등장한다. 기축형태는 장자와 제 아들로 구별되어 가족제도의 처첩가부장제와 국가제도의 왕위장자상속제와 군신관계라는 사회질서가 성립하고, 국외적으로는 종통과 방계 사이의 족속관계와 천자국와 제후국 사이의 책봉관계라는 천하질서가 성립한다. 기축형태의 최후, 최고에 초강대국 몽골대제국에서 제국종교로서 유교, 불교, 마호메트교, 무속 등이 복수로 공존하면서 하나의 세계시장이 등장한다. 기축형태 중에서 최고최후의 나라 몽골대제국의 붕괴 이후에 해양생산양식 중에서 세계시장의 서쪽 변방인 서구 기독교왕국전통과 동쪽 변방인 일본 가미왕국전통에서 마던형태가 등장한다. 마던 상공업 생산양식은 자연질서로서 자연과학인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 등장하고, 사회과학인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등장하고, 인문학으로 철학, 역사, 예술이 등장하며 생산관리수단으로서 경제와 법학과 인구관리수단으로서 성과 의학이 특권화 되어 생산양식으로 상업과 공업이 결합되어 생산되는 사회가 된다.
사회질서로서 마던 상공업 사회는 보편적인 인간, 인류, 인도주의, 권리 개념이 최고원리인데, 인권이라는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로서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 개념에서 인간에 대한 권리[노예제]를 포기하고 물건에 대한 권리로 소유권을 정당화하는데, 상품에 대한 소유의 주체가 개인인가 사회집단인가에서 사적 소유권[자본주의]과 집단적 소유권[공산주의]인가로 분할된다. 마던 사회는 상공업 생산양식과 인권 사이의 결합해서 양도 불가능한 인간권리 중에서 노동력에 대한 권리만을 예외적으로 매매가능하게 하면 특수한 상품으로서 노동력상품과 화폐상품이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되고, 노동력 매매의 예외조차 거부하면 비착취와 비상품의 공산주의 체제가 된다.
인간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상품소유자들이 상품시장에서 자본가들의 사적 거래를 하면 자본주의 체제가 되고, 생산자 연합의 집단 거래를 하면 사회주의 체제가 된다.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는 물건교환의 추상적 장소로서 시장을 가지고 있고 물건거래의 추상적 척도로서 화폐를 공통요소로 가지고 있지만, 양자의 공통요소는 그 이상은 없고 나머지 경제영역은 모두 다르다. 마던 형태는 인권에 따라 고등종교들을 초과해서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국가종교를 해체하며 기독교소왕국 전통에 따라 민족국가 단위이며 민족국가 내에 학교교육에서의 공용어 문제로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서 원주민 문제, 소수민족 문제, 이주민 문제 등이 등장한다.
절대강자 초강대국 대륙섬 미국의 시대가 언젠가 끝나면 새로운 시대가 등장할 것이다. 그 새로운 시대의 출발지가 어디가 될지는 미리 알 수 없지만 한국의 촛불축제시위처럼 전혀 예측불허의 불가살이(不可殺伊)가 등장한 곳에서 새로운 세계사가 등장할 것이다. 새 시대에는 세 번째의 철학이 등장할 것이다.
세 번째 철학은 생존생명권처럼 기존의 좌·우의 이념대립조차 초월해버리는 전혀 예측불허의 현상을 동반할 것이다. 미래는 지속되고 우리는 그 경계선상에 있다. 한국사는 환국-배달국-고조선이 자연인격신형태의 시대이고, 북부여-고구려에서 발해, 대신라, 고려를 거쳐서 조선까지가 기축형태의 시대이고, 한국이 마던형태의 시대이다. 한국사의 기축형태에서 북부여-고구려와 발해, 고려는 천자국이고, 대신라와 조선은 제후국이다. 한국사에서 삼족오는 자연인격신형태에서 등장해서 천자국일 때는 전면화하고 제후국일 때에는 민속에서 전승된다. 고조선 시대에 등장한 삼족오는 그 후예들인 북부여-고구려, 북위, 그리고 한의 구 예조선 지역에서 기축형태와 자연인격신형태가 구조적 공존을 하며, 대신라-당 시대이래 약화되다가, 고려에서 다시 기축형태와 자연인격신 형태의 결합이 파편적으로 부활하고, 조선에서는 약화되다가 고종황제 때 해기[봉황기]가 부활한다. 한국의 마더형태에서는 한국 드라마 속에서 자연인격신형태의 상징들이 고대 민족의 상징으로서 각색의 소재가 되어 파편적으로 부활한다.
Ⅲ. 고조선(-2333~-232)의 자연인격신형태의 사층 세계관과 기축형태의 원형으로서 상호 존중의 원리(『고기』,『산해경』)
인류는 지식형태의 자연인격신형태에서 가축과 곡물의 흉년과 풍년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소로서 계절을 지배하는 해, 달, 별을 숭배하는 것을 필수적인 지식형태로 파악했다. 초반에는 계절 자체의 변화가 자연인격신으로 숭배대상이 되지만 후반에는 자연이 자연현상으로 독립하면서 해, 달, 별은 자연현상을 표현하는 상징적 동식물로 이해된다. 자연인격신 형태의 사회질서에서 천문지리수리 현상을 지배하는 자는 천제나 천제자로서 지배자가 되고 다시 지배자의 상징은 천문지리수리현상으로 표현되어 지배자는 천제와 하백녀의 자손이나 일월의 자손과 황천의 자손으로 표현된다. 자연인격신형태에서 고조선은 해를 상징하는 것을 새로 표현했고 그 새는 삼족오이다. 삼족오는 자연질서로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해와 해의 상징으로서 새이고, 둘째 실물인 해속의 흑점 활동의 표현으로서 삼족오, 셋째 실물인 돌연변이로서 현조, 삼족오, 1두 2체조, 적오, 백오 등이 출현하면 상서로운 조짐으로 파악한다. 천자의 상징으로 일월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인격신 해와 달의 변화가 가축과 곡물의 흉풍을 조정하는 절대신의 존재라는 자연관이 배후에 전제되어 있다. 일월의 상징으로 토템 까마귀와 두꺼비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인격신형태를 토템형태의 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천제나 천자의 상징으로 해가 검은새[은], 까마귀, 닭[동명왕, 신라], 봉황으로 표현되고 달이 두꺼비, 개구리[동부여], 뱀[스키타이], 룡으로 표현된다. 삼족오는 사회질서로서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지상의 천제, 천제자나 왕가의 상징으로서 삼족오,
둘째 왕의 조력자의 상징으로서 삼족오,
셋째 고분 벽화에서 사후 세계의 천상세계에서 일월을 표현하는 상징으로서 일중 삼족오와 월중 섬여가 있다.
자연인격신형태에 조직은 일반적으로 부족국가이지만 그 최후 최대의 초강대국 고조선은 대제국이다. 고조선의 인식형태는 좁은 의미로는 『삼국유사, 고기』의 세 가지의 상호 존중의 원리이다. 『삼국유사, 고기』 “고조선”의 기축형태의 상호존중의 원리는, 첫째 천제 환인과 인민 사이의 상호존중관계와 천부 환인과 천자 환웅 사이의 상호존중관계, 둘째 환웅과 신하들, 1백2사5주부360여제부사 사이의 상호존중관계와 환웅과 이치통치 사이의 상호존중관계, 셋째 환웅족과 곰족, 범족 사이에 식생활문화차이극복, 종족차이극복의 다문화의 상호존중관계와 환웅과 곰녀 사이의 신분차이극복, 종족차이극복, 남녀차이극복의 상호존중관계가 있다.
고조선의 자연인격신형태는 삼국유사, 고기에서 단군왕검이 천제 환인, 천제자 환웅 그리고 환웅과 곰녀 사이 결합으로 탄생한다. 자연인격신 형태에서 왕신 관계는 환웅, 1백2사, 5주부, 360여사로 표현된다. 자연인격신형태는 천제자 환웅, 그의 주요 세 신하로서 풍백, 우사, 운사가 있다. 5주부는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이다.
주곡은 식량생산담당의 경제부처이다.
주명은 장부전담의 국적, 부족, 카스트, 가족 관리부처이다.
주병은 예방의학 중심의 의료 시스템이다.
주형은 무장 시스템으로 경찰과 군대를 겸비하는 대내외적 방어기구이다.
주선악은 학교, 도덕 관련 부처이다.
고조선의 토템형태는 곰과 범이 토템으로 등장한다. 곰과 범의 토템은 토템시대의 토템이 아니라 기축형태에서 흔적으로서 토템이라 토템형태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토템법칙이 간략하게 생략되어 있다. 고조선의 상호존중의 원리가 기축형태의 제 철학들의 모태이다. 고조선의 상호존중의 원리는 스키타이족을 통해서 동방에서 서방으로 전파되고, 다시 스키타이족의 기마궁사 기술혁신 이후에 서방에서 동방으로 전파된다. ‘고조선-스키타이-고대 그리스-고구려-신라-한 화상석’의 연결은 스키타이족의 전승(헤로도토스의 『역사』)과 『산해경』 일부의 일치, 스키타이족의 괴조(『역사』)와 환웅족의 새(고구려벽화와 한 화상석)와 일치, 단군조선의 삼족연합국가(『삼국유사, 고기』,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와 스키타이족의 삼왕제(『역사』)의 일치, 반농반유목의 생활방식의 고조선(『후한서』『삼국지』부여, 『환단고기』)과 스키타이족(『역사』)의 일치, 스키타이의 ‘새-개구리-쥐’ 토템(『역사』)과 북부여-동부여-고구려-신라에서 ‘새[삼족오]-개구리[『삼국사기』동부여, 금와왕]’ 및 신라 소지왕의 ‘까마귀-물속 노인-쥐’ 등장의 서출지 전설[『삼국유사』“서출지”] 사이의 연관성, 일월 숭배에서 북부여-고구려의 고분벽화 및 흉노 관습(『사기, 흉노전』)과 그리스 델로스의 해신 아폴로신(까마귀)과 쌍둥이 누이 달신 아르테미스를 아시아로부터 수입(『역사』) 사이의 연관, 두개골 술잔관습의 스키타이족(『역사』)과 흉노족(『사기, 흉노전』)의 공유, 스키타이족의 두 종의 씨족성립신화(『역사』)와 북부여-고구려 1세 주몽의 두 종의 건국신화(『삼국유사』“북부여”, “고구려”『삼국사기』“1세 주몽”)의 이중의 구조적 일치, 즉 천제 제우스와 하백녀 보리테우스 강신의 딸 사이의 관계(『역사』)와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하백녀 사이의 관계(『삼국유사』“북부여”, “고구려”)의 구조1의 일치, 천제자 헤라클레스와 하백녀 뱀여자 사이의 관계(『역사』)와 천제자 해모수[까마귀관과 룡광검]와 하백녀 사이의 관계(『삼국사기』주몽,『동국이상국집 권3, 동명왕편』)의 구조2의 일치, 스키타이족의 각배, 도끼, 농기구의 카스트신화(『역사』)와 신라 석탈해의 각배 전설(『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유사성,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테세우스의 부왕 찾아가기 전설(『그리스-로마신화』)과 고구려 유리왕의 부왕 찾아가기의 공유(『삼국사기』“2세 유리명왕”), 스키타이족의 자살법과 고구려 유리왕 때 해명태자 자살법(『삼국사기』2세 유리명왕)의 일치, 스키타이족의 화덕 여신 헤스티아 숭배(『역사』)와 고구려 3세 대무신왕의 화덕 존숭(『삼국사기』“3세 대무신왕”)의 일치, 진평왕의 스키타이-석가족의 성골의식(『삼국사기』, 『삼국유사』)과 자장법사의 석가족 의식(『삼국유사』), 스키타이족의 아스티아게스왕의 딸의 사해 오줌꿈 해석(『역사, 메티아의 역사와 키로스의 성장』)과 보희의 언니 오줌꿈 구매 설화(『삼국사기』 신라 30세 문무대왕, 『삼국유사』 신라 29세 태종대왕)의 유사, 마이더스왕의 당나귀 전설(『그리스-로마신화』)과 신라 경문대왕의 당나귀 전설(『삼국유사』, 신라 48세 경문대왕)의 유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 당대의 인식형태는 천하를 산해경의 해내경과 해외경의 구조로 분할하고 그중에 고조선은 해내에 존재하는 천독[하늘의 천벌의 주재자]으로서 사람을 외경하는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다(『산해경』제3기 해내경). 산해경은 고조선 문명의 수준과 영향권을 보여주는 당대의 저작이다. 사방은 『산해경』제2기에서 해외 사방신인 『권1 해외남경(卷一 海外南經)(山海經第六)』 남방 축융(南方祝融), 『권2 해외서경(卷二 海外西經)(山海經第七)』서방 욕수 (西方蓐收), 『권3 해외북경(卷三 海外北經)(山海經第八)』 북방 우강(北方禺彊), 『권4 해외동경(卷四 海外東經)(山海經第九)』동방 구방 (東方句芒)이 사방신
의 시초이다.
춘추 때에 사령수는 용, 기린, 봉, 귀이고, 이것이 한 나라 때에 사신,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가 된다. 사신은 천상과 지상에서 사방위가 대응해서 천상에 4·7=28의 28수 별자리 이름이다.
고조선은 자연인격신형태에서 환인[환국], 환웅[배달국], 단군[조선]의 계보를 가진 나라이다. 배달국 14대 환웅, 치우천왕이 운사 헌원을 신하로 삼아 천하를 하나의 질서로 다스렸고,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단웅, 제준이 인예[이예]를 보내 요를 도와 9개의 해[구이]를 제거해 하나의 해를 섬기게 부담을 덜어주었고, 고조선의 단군왕검이 태자 부루를 보내 순의 신하 우가 하족들을 수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치우천왕의 신무기는 동두철액의 무기류와 갑옷, 그리고 오리무중의 주술이었고, 18대 환웅 제준의 신무기는 활과 화살, 그리고 ‘해=삼족오’ 주술이었고, 단군왕검와 태자 부루의 신무기는 천부왕인, 황거종, 신침, 그리고 황제중경의 이념이었다. 자연인격신형태는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통합한 세계에서 해와 물을 다스리는 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고조선은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의 삼족 연합국가이며, 고조선의 문명은 스키타이, 흉노, 고구려, 신라의 문명과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고, 이후에 북부여-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 문명, 그리고 선비족, 고창국으로 계승되었다. 이런 해속의 까마귀[삼족오]와 달 속의 두꺼비[섬여]라는 문화권은 고대 동이족의 문화로 고조선[朝鮮], 은(殷) 그리고 포스트고조선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은나라는 현조의 자손[『사기, 은본기』]이며 은허에서 방정 삼족조(方鼎 三足烏)가 나타난다.
삼족오의 기원은 『산해경 대황동경 26』, 『환단고기, 단군세기』, 8세 단군 7년, 그리고 은허의 방정삼족오이 가장 빠르다. 삼족오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에서 고조선 시대에 탄생했고 『산해경, 대황동경 26조』에서 최초로 “해 속에 까마귀”가 등장한다.
“대황의 한 가운데에 얼요군저라는 산이 있다. 그 위에 부목이 있는데 높이가 300리 이고 잎은 겨자와 같다. 골짜기가 있어 이름이 온원곡이다. 양곡 위에 부목이 있는데 한 개의 해가 막 도착하자 한 개의 해가 막 떠오르며 모든 해가 까마귀를 싣고 있다.[皆載于烏]” 『산해경 제3기 대황남경 27』에서 “동해 밖, 감수 사이에 희화국이 있다. 여자가 있어 희화인데, 바야흐로 감연에서 해를 목욕시키고 있다. 희화는 제준의 아내로 열 개의 해[十日]를 낳았다.”
『산해경 제3기 대황서경 30』에서 “여자가 바야흐로 달을 목욕시키고 있다. 제준의 처 상희는 12개의 달[十二個月]를 낳았는데 이 달을 처음으로 씻기고 있다.” 열 개의 해는 십간(十干)이고 열두 개의 달은 십이지(十二支)이다. 『산해경 제3기 해내경 34』에서 “제준이 예에게 붉은활과 흰주살을 하사하여 그것으로 소속의 아래 국가를 돕게 하니 예가 처음으로 가서 아래 땅의 백가지 어려움을 구율해 주었다.” 열 개의 해가 뜨니 동이족 활의 명수 이예가 아홉 개 해를 활로 쏘아 아홉 마리의 까마귀를 제거해서 하늘에 한 개 해만 남겼다는 동이족의 전설은 해와 까마귀 사이의 자연인격신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제준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예를 천상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지상에 살게 했다. 이예가 지역신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얻었다. 이예의 처 상아가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도망갔다. 상아는 달에서 벌로 두꺼비가 되었다. 이 동이족의 이예와 열 개의 해 속의 까마귀, 그의 처와 상아와 달 속의 두꺼비는 한애제 때 유흠이 교정한 『산해경』지식을 전제하지만 『산해경』에 모두 나오지 않으니, 『산해경』 이후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2-2-144구』: “8세 단군 우서한(혹은 오사함) [2-2-144] 7년 갑인에 세발 달린 까마귀가 궁중으로 들어왔는데, 날개의 너비가 석자가 되었다고 한다.” 은허, 후가장 1004호 대묘에서 삼족오의 시발로서 “방정삼족조”가 등장한다. 논자에 따라 삼족오의 시발이 고조선이냐, 은나라이냐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모두 동이족(東夷族)에 속한 것은 같다. 세계사의 중심축 고조선과 스키타이족이 붕괴한 후에 농경문명권에서 기축형태의 정신혁명이 발생한다. 기축형태가 되면서 자연인격신형태의 후반기에서 신성했던 해와 달 그리고 별의 변화는 평범한 자연변화가 된다. 별자리 관측은 28수의 성좌 발전을 가져오고, 28수 성좌 속에 별자리 변화는 이후에 성체 변화를 가져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성체론은 먼저 해와 달의 크기가 결정되고, 마침내 지체가 구형이라는 것[“지구”]이라는 것으로 발전한다. 세계의 다른 농경문명권은 기축형태로 변화되면서 급격한 사회변혁이 발생하고 고조선사회는 제국의 통치원리로서 상호존중의 원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서 서서히 자체 와해된다.
Ⅳ. 북부여-고구려(-232~+668)의 첫 번째 철학으로서 기축형태『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자연인격신형태의 사층 세계관(고구려고분벽화, 한화상석, 선비족, 고창국)
1) 포스트고조선: 북부여-고구려의 기축형태의 자연질서
고조선 사회가 자체 와해된 후에 고조선사회를 재구성한 집단이 포스트고조선의 북부여-고구려이다. 북부여-고구려는 기축(어떤 사상이나 조직 따위의 토대나 중심이 되는 것)형태로 천제-천제자와 하백녀 사이의 결합이라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원리를 재활용하면서도 천제의 논리를 천제자의 논리로 변형한다. 북부여 제국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금방 와해된다. 고구려는 북부여 천제국 또 천제자국의 계승자로서 고구려의 땅만 아니라 고구려의 하늘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한다. 고구려 천자의 제천은 유지되지만 자연현상은 이제 자연현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이제 제천행사는 과거처럼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예컨대 고구려 유리명왕 때에 제천담당 신하는 감히 교제를 지낼 돼지의 다리에 상처를 내고 천자[유리명왕]는 그런 신하를 처벌한 후에 번민으로 질병을 얻었다가 죽은 신하에게 용서를 빈 후에야 비로소 질병에서 벗어나는 사회가 되었다[『삼국사기』유리명왕].
북부여-고구려의 기축형태의 사회질서
북부여-고구려 시대는 기축형태의 사고방식이다. 북부여-고구려는 태왕의 천제-천자국으로서 자기를 천하의 지배자로 인식하고 있다. 태왕의 국가는 제 부족 왕국들을 표준 경전으로 통치할 때 태왕국과 고등종교 사이의 상호지지로 발전한다[한 무왕과 유교표준경전, 아소카왕과 불교표준경전, 콘스탄티누스 1세왕[313년]과 기독교표준경전, 예언자 마호메트와 이슬람교표준경전 등].
북부여-고구려는 고조선의 상호존중의 원리를 발전시켜서 북부여 천제-천제자의 후예라는 이념으로 천하를 통치한다. 북부여-고구려의 사고방식은 자연신형태의 고조선의 사고방식과 스키타이족의 사고방식을 토대로 결합시켜서 기축형태의 사고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고조선의 “천제”와 “천제자” 의식이 스키타이족의 “천제”와 “하백녀”의 후손, 북부여-고구려의 천제와 하백녀의 후손, 진의 “시황제” 개념의 시발이다.
고구려 사회의 정당화방법은 충효[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한다. 고구려 유리왕 때 해명태자의 충효관]이고, 국제질서는 인질교환[흉노와 월지의 모돈 인질교환『사기, 흉노전』, 고구려-동부여의 도절태자 인질교환『삼국사기, 유리명왕』 논의]이다. 『선사』(신라, 최치원)에 따르면, 고조선의 전통사상은 풍류사상이고 풍류사상에는 포함삼교로서 공자 사상, 노자사상, 축건태자[석가모니]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 고기』의 세 가지 상호존중 사상은 『선사』의 포함삼교사상과 상호대응 한다.
『고기』의 첫째 제민관계와 부자관계는 공자의 충효사상이고, 둘째 군신관계와 이치관계는 노자의 무위와 불언사상이고, 셋째 다문화관계와 삼족연합제국관계는 석가모니의 과거 업불문의 인류평화의 선행 실천 사상이다. 북부여 천제[또는 천제자] 해모수와 고구려 천제자 동명성왕 주몽, 유리명왕은 모두 천제자들이다. 북부여 해모수는 천제이거나 천제자이다. 『호태왕비문』에서는 추모왕이 “천제의 아들, 황천의 아들” 표현되었다. 『모두루묘지문』에서는 고구려 추모왕이 “하백의 손자, 일월의 아들”로 표현되었다. 고구려 유리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돼지를 키우고 있다[『삼국사기』유리명왕, 교제].
해(삼족오)과 달(섬여)는 천제와 천제자의 상징이다. 해는 까마귀[해모수]와 개[몽골의 고구려출신 시조모 알랑 고아와 누렁개, 『몽골비사』]이고 달은 두꺼비와 토끼이다. 해는 까마귀에서 까치, 매, 제비로 변형되고, 달은 두꺼비, 개구리, 수달로 변형된다. 해는 닭이 되고, 달은 뱀이 된다[신라의 계림과 사릉, 계룡]. 해는 봉이 되고, 달은 룡이 된다[가야의 환두대도].
해의 상징은 ‘해=삼족오[해모수의 오우관, 연오랑·세오녀]=닭[고두막한 동명왕]=알[주몽, 혁거세, 수로왕]=빛[유리명왕]’이다. 달은 ‘달=섬여=개구리[동부여 금와왕]’이다. 왕의 조력자는 ‘왕의 변호자=시종명 까마귀[주몽의 협력자인 烏伊, 온조의 협력자인 午干]=까마귀[비처왕]’, ‘왕의 고지자=까치[석탈해]=까마귀[궁예]=닭[김알지와 계림]’, ‘왕관=일중삼족오금동관식[평남 진파리 제7호고분]’이다.
6부족의 연맹의 상징으로 6축관명이 등장한다(『후한서, 부여』,『삼국지 위지, 부여』, 『위서, 두막루국』). 6축관명은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이다. 다른 6축으로는 닭과 양이 있다. 북부여 고두막한 동명왕 건국신화는 마가와 저가의 두 가축명 토템의 지원을 받았다. 고구려 주몽건국신화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 그리고 조수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축명 토템은 표현방식이 토템이지만 그 내용은 야생토템이 주가 아니라 가축토템이 주여서 유목·농경생산양식의 자연인격신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부여와 고구려는 육축관명의 인식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북부여는 육축관명으로 마가, 우가, 저가, 구가, 조가, [수가]를 가지고 있다.
북부여-고구려에서 스키타이족의 사고방식은 해모수, 주몽왕, 유리왕과 해명태자, 대무신왕의 여러 대에서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주몽왕 건국신화는 천제 해모수와 하백녀 사이의 결합의 자식이면서, 천제자 해모수와 하백녀 사이의 결합의 자식이라는 두 종 건국신화가 나오는데. 스키타이족의 건국신화도 제우스[천제]와 보리테우스강의 딸[수신녀] 사이의 결합으로 탄생한 족속이면서 헤라클레스(herakles)[천제자]와 사녀[하백녀] 사이의 결합으로 탄생한 족속이라는 두 종의 족속신화를 나와서 양 신화는 구조적으로 동종의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무인지역이었던 그 국토에 최초로 태어난 자는 타르기타오스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그의 양친은 제우스와 보리스테네스강의 딸이었다. 이 타르기타오스에게 세 명의 자식이 태어났는데 그 이름이 각각 리폭사이스, 아르폭사이스, 그리고 콜락사이스였다. 이 삼인이 지배하고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황금제 기물, 쟁기의 멍에, 전쟁용 도끼, 술잔이 스키티아 땅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맏형이 제일 먼저 이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으려고 접근하자 그 황금이 불길에 휩싸였다. 둘째형이 접근하자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막내가 접근하자 불길이 사라졌다. 그래서 막내 동생은 그것을 자기 집으로 갖고 돌아갔다. 거기에서 두 형도 이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왕권을 모두 막내 동생에게 양도했다 한다.
게리오네우스의 소를 쫓던 헤라클레스는 현재 스키타이인이 살고 있지만 당시는 무인지역이었던 이 지방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의 말들이 잠든 사이에 불가사의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잠에서 깨자 말들을 찾아 ..헤메다가.. 힐라이아 지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지방의 동굴 속에서 엉덩이까지는 여자 모습이고 그 밑은 뱀의 형상을 한 사녀(蛇女)를 발견했다. ..그러자 사녀는 자기가 말들을 갖고 있지만 자기와 몸을 섞지 않는 한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이에 동의했다. ... 그러다가 마침내 말들을 돌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 이 나라에서 살도록 할까요? 아니면 당신 곁으로 보낼까요?” 여자가 이렇게 묻자 헤라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다. “...아이들 중 이 활을 이렇게 잡아당길 수 있고 또한 이 허리띠를 이렇게 두를 수 있는 자가 있으면 그 아이는 이 나라에 살게 하시오. 하지만 이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 아이는 이 나라에서 추방하시오. ...”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활 하나를 잡아당겨 또 허리띠를 매는법을 시범보인 후 활과 매듭 끝에 금배(금술잔)가 달린 허리띠를 그녀에게 주고 떠났다. 한편 사녀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자라자 큰 아들에게는 아가티르소스, 둘째 아들에게는 겔로노스, 막내아들에게는 스키테스란 이름을 가가 부여하고 헤라클레스의 명을 잊지 않고 그대로 시행했다. 두 아들은 실패해서 나라를 떠나고 막내아들은 성공해서 이 나라에 남았다.
스키타이족의 “농기구”[농민], “도끼”[무사], “각배”[사제]의 부족 카스트 신화에서 고구려 주몽왕가의 왕가신화로 변한다. 천제와 하백녀 사이의 결합이나 천제자와 사녀 사이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해신와 수신 사이의 남녀신 사이의 결합은 남신과 남신의 딸 사이의 결합으로 변형되어 남성중심이다. 스키타이의 부족사회는 유목민사회의 말자상속관습이며 고구려왕가는 장자상속이다. 『고기』에 이렇게 말했다.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기원전 58년) 4월 8일 천제가 흘승골성에 내려왔다. 오룡거를 타고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라고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고 했다.“옛날에 시조 추모가 있었는데 왕의 기초를 창건했다. 북부여 천제의 자손으로부터 나왔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왕이 나루터에 이르러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황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니 곧 추모왕이다.”“... 하백녀를 얻어서 실내를 가두어 두니 일광이 따라 다니면서 비추었다. 감응으로 잉태해서 한 커다란 알을 낳았다. 한 남자가 알을 깨고 나오니 이름이 주몽이다. ... 주몽이 ... 강이 깊어 건널 수가 없었다. 주몽이 이르기를 “나는 하백의 외손이요 해의 자손이다.” ... 그 구도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칭 천제의 자손 해모수라 하고 와서 도읍하였다. ...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얻어 내력을 물으니 대답하기를“나는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입니다. ,,,한 남자가 나타나, 제 말로 천제의 자손 해모수라 하며 나를 웅심산 아래 압록 가의 집 속으로 유인하여 사욕을 채운 후 곧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 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더니 닷되들이만한 큰 알을 낳았다. ,,, 알에서 주몽이 나왔다. ,,,주몽은 강물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자손이요 하백의 외손이다.”고 하였다.
그 여자는 말하기를 ‘나는 하백의 딸인데 이름을 유화라고 합니다. ... 한 남자가 자기는 천제의 자손 해모수라고 하면서 나를 웅신산 밑 압록강 가에 있는 집속으로 유인하여 정을 통하고 가더니 돌아오지 않으므로(「단군기」, ...) ,,,’했다. 태기가 있더니 알 하나를 낳았다. ,,, 한 아이가 알 껍질을 깨치고 나왔는데 ... 그의 이름을 주몽이라 했다. ... 이에 주몽은 ...“나는 곧 천제의 자손이요, 하백의 손자이다.”
고구려 유리명왕은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가 아버지, 아테네왕을 찾아가듯이 부여에서 아버지, 고구려왕을 찾아간다. “테세우스(Theseus)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얻지 못해 텔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물었더니 아테나이로 돌아갈 때까지는 아예 술 부대의 마개를 열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게우스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테나이로 돌아오는 도중에 트로이젠 시에 들려 그 고장의 왕인 피테우스의 집에 잠시 묵게 되었다. 그는 그의 딸이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게우스를 술에 취하게 해 놓고 딸인 아이트라와 하룻밤을 지내게 했다. 다음날 아이게우스는 떠날 때 아이트라를 어느 큰 바위로 데리고 가더니, 만일 아들을 낳아 청년이 되어 이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면 바위 밑에 넣어 둔 샌들과 칼을 가지고 아테나이로 찾아와 자기의 뒤를 잇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테세우스가 어른이 되자 아이트라는 테세우스를 그 큰 바위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샌들과 칼에 대한 것을 알려주었다. 테세우스는 바위를 들어올려 바위 밑에 있던 칼과 샌들을 신고 아버지를 찾아 아테나이로 향했다. 여행 중에 테세우스는 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 초대 받은 자리에서 테세우스는 고기를 자르는 척하면서 자신의 칼을 뽑아 왕이 그 칼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왕은 그때서야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리고 독약이 든 술잔을 내던져 버리고 부자상봉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틈에 메데이아는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아시아로 달아났다.”
“처음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에 예씨의 딸을 취하여 아이를 뱄는데 주몽이 떠나 온 후에 낳게 되었다. 이가 곧 유리니, 어릴 때에 밭두둑에 나아가 새를 쏘다가 잘못 물 긷는 여자의 물동이를 깨뜨리니 그 여자가 꾸짖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아비가 없는 까닭에 이 같이 완악하다’ 하였다. 유리가 부끄러워 돌아와 어머니이게 묻기를 ‘우리 아버지는 누구냐 어디에 계시냐’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는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나라에서 용납되지 못하고 남쪽 땅으로 도망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셨단다.’ 떠날 때 나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사내를 낳거든 그 아이에게 이르되 내가 유물을 칠릉석 위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으니, 능히 이것을 찾는 자가 나의 아들이다.’ 히였다 하니 유리가 듣고 곧 산곡에 가서 그것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지쳐서 돌아왔다. 하루는 그가 마루 위에 있을 때에 무슨 소리가 주초 틈바귀에서 나는 것 같았다. 가서 살펴보니, 초석이 일곱 모로 되어 있는지라 곧 기둥 밑을 찾아보니 부러진 칼 한 조각이 나왔다. 드디어 그것을 가지고 옥지, 구추, 도조 등 세 사람과 함께 졸본으로 가서 부왕을 보고 단검을 바쳤다. 왕은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내어 맞추어 보니 완연한 칼 한 자루가 되었다. 왕이 기뻐하여 유리를 세워 태자로 삼더니 이에 이르러 위를 계승하였다.”
고구려 태자 해명은 유리왕 28년 3월에 고도 졸본에 있다가 왕이 칼을 보내 자결케 하자, 그는 아버지가 불효자라 칼을 주어 자결케하시니 어찌 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 있으랴 하고, “이에 여진의 동원에 가서 창(槍)을 땅에 꽂고 말을 달려 거기 찔려 주었다. 그 때 태자의 나이 21세였다. 태자의 예로 동원에 장사하고 사당을 세워 그것을 창원(槍原)이라 이름하였다.”(『삼국사기』유리명왕)
해명 태자의 자살방법은 스키타이족의 후예들 보이는 창을 꽂고 말을 달려 거기 찔려 죽는 자살법과 동일하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세 대무신왕』
“3년 10월에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보내 적오(赤烏)를 보냈는데 머리는 하나요 몸은 둘이었다. 처음에 부여왕이 이 까마귀를 얻어 부여왕에게 바쳤는데, 어떤 자가 말하기를 ‘까마귀는 검은 것인데 지금 이것은 변하여 적색이 되고 또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두 나라를 아우를 징조라 왕께서 혹 고구려를 합병하실지 모르겠습니다.’하였다. 대소가 기뻐하여 이것을 고구려에 보내는 동시에 어떤 자의 말을 전달하였다. 대무신왕이 군신과 의논하고 대답하기를 ‘검은 것은 북방의 색인데 지금 변하여 남방의 색 적색이 되고 또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물건이거늘 그대가 얻어 가지지 않고 나에게 보냈으니 고구려와 부여 양국의 존망을 모르겠다.’고 하였다. 대소가 이 말을 듣고 놀라며 후회하였다.”
까마귀, 삼족오는 고구려에서 3세 대무신왕 때의 적오와 덕흥리 고분의 “陽光之鳥履火而行”를 거쳐서 주작(朱雀)이 된다.『삼국사기』에 돌연변이 적오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인격신형태가 지배한다는 증거이고, 이후에 기축형태에서 평범한 자연변화는 더 이상 삼족오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제국들은 기축형태가 표준경전에 의지하지만 북부여-고구려 제국은 아직 표준경전을 만들지 않고 동맹(東盟) 같은 제천 행사에 의존하고 있다. 고구려사회는 천자사회로 대무신왕 때는 이미 비류부에 장을 관리로 교체하는 사회이다[『삼국사기』, 대무신왕]. 부자관계는 자식이 죽어도 부모에 허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효라는 의식이 지배해서 유리명왕 태자 해명이 자살하고 대무신왕의 왕자 호동이 자살한다[『삼국사기』, 유리명왕, 대무신왕].
동천왕 당시 태후 우씨는 고국천왕의 왕비이다가 그의 사후에 형사취수제 전통에 따라 산상왕의 왕비가 되고 이제 죽은 후에 고국천왕을 만날 것을 겁을 내며 산상왕릉에 묻힌다. 이제 형사취수제와 일부종사 의식이 갈등하고 있다. 동천왕(東川王, 209년~248년, 재위 : 227년~248년) 때까지 단군의 고지를 기억해서 수도를 “평양”[‘왕검선인의 고택’ 만주]으로 옮기며, 그의 사후에는 아직도 생전과 사후가 연결되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세계를 신뢰해서 자발적으로 순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다. 미천왕(300년~330년) 때에는 고구려, 선비족 단씨, 우씨와 함께 전연 모용씨를 공격해서 포스트고조선 세력 내에 전쟁이 발생한다. 전연 모용씨의 공격으로 고국원왕(331년~370년) 때 국내성이 약탈당하고, 고국원왕은 백제의 근초고왕과 싸우다가 전사한다.
소수림왕(371년~383년) 때는 전진을 통해서 불교를 수용하고, 대학을 세우면서 전통적인 태왕형 기축형태에서 불교와 유교를 수용한 기축형태로 전환한다. 고국양왕(384년~390년)은 북으로 전연과 싸우고 남으로는 백제와 싸우며 신라왕의 조카 실성을 인질로 잡고 신라에 불교를 믿어라. 고 하교한다.
광개토왕(391년~412년)은 거란을 얻고, 백제의 관미성을 얻고, 후연을 거의 점령하고, 북연, 고운을 종족의 예로 대우한다. 호태왕 비문에 따르면 국강상광개토호태왕은 고구려 전성기를 이루는 왕이며 고구려가 태왕으로서 고구려의 하늘을 수천한다는 사상을 보여준다.
고구려 장수왕(413~)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고구려의 국토를 최대로 확대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장수왕 이후로 고구려는 북조와 남조의 천자국 사이에서 제후 패왕으로서 등거리 외교정책을 취하고 백제·신라와는 국경분쟁을 벌인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고구려 제후국 기록은 고구려 당대기록인『호태왕비문』, 『모두루비문』, 『중원고구려비문』 등의 “천제-천제자-태왕”의 연호사용과 불일치한다. 고구려가 남북조의 약체국가들을 실질적인 천자로 섬길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삼국사기』기록에서 천자-제후의 책봉관계는 김부식이 제후사관에 따라 왜곡한 것이다. 고구려의 천하관 때문에 남북조를 통일한 수·당과 천하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하는 것이다.
실제 역사는 “스텝-만주-차이나”가 “가위-바위-보” 게임의 관계였지만 『사기』에서는 항상 차이나가 천하의 중심이라고 분식되었다. 사마천의『사기』는 한무제의 한족 자존천하관과 멸시사이관으로 분식되었고 이런 허구적 역사관은 청까지의 25사로 이어졌다. 이제 고구려 역사는 마던형태의 한국과 중국관계에서 “역사적 진실성”의 쟁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소수림왕 이후 자연인격신형태의 일(삼족오)월
(섬여)의 인식이 이승사회에서 사라지고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천상, 산상, 지상, 지하 세계에서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가 잔존한다. 고분벽화세계 속에서 자연인격신형태의 기록들은 사층세계의 신성한 공간 속에서 연대기적 시간 기록이 없고 이야기 전개의 시간 기록만이 있다.
2) 옛 예조선 지역의 화상석[한의 발해연안 화상석]
고조선의 예조선[번조선] 지역에서는 한에 흡수되자 발해연안의 화상석에서 은 전통의 영향을 받아서 무덤의 화상석 양식을 개발한다. 한 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한제국의 기축형태로 공자유교와 노자사상이 사회를 지배한다. 한 대 화상석은 비록 이승사회에서는 기축형태가 지배해서 삼족오가 사라졌지만 저승세계에서는 아직 생전과 사후를 연결하는 부족적 전통의 자연인격신형태의 이념이 적합했기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은 공자의 사후 효개념에 기대 무덤양식으로 화상석을 만든다. 한나라에서 화상석이 오직 발해연안 예조선 및 선진 시대의 동이영역에서만 나타나고 과거 하와 주의 영역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한 대 화상석이 고조선 문화권의 잔존 세계관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천상세계의 상징은 해 속의 까마귀, 달 속의 두꺼비와 토끼이다. 달 속의 토끼는 유래를 모른다. 천상세계에는 서왕모와 동왕부, 복희와 여와도 함께 나타난다. 고조선 문화권 중에서 한나라에서 가장 먼저 자연인격신형태의 한 대 화상석이 나타난 이유는 진·한지역이 가장 먼저 기축형태에 안착했고 또 여유 있는 가정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발해동안의 원낙랑인이 한반도 서안 대동강으로 이주해서 낙랑은 둘인데, 『삼국사기』는 발해동안의 낙랑군과 한반도 낙랑국을 모두 낙랑이라 호칭해서 이후에 해석에 착오가 발생했다. 낙랑은 오랫동안 그 명칭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후에 모든 기록을 하나의 낙랑으로 해석하는 것이 모두 착오이다.
고구려 대무신왕(18~44)이 최씨 낙랑국을 점령하자 낙랑국 유민들은 후에 한광무제 유수(漢光武帝 劉秀, 기원전 6년 ~ 서기 57년)의 점령에 호응하고 그 결과로 한의 화상석 무덤이 대동강 유역의 신낙랑 지역까지 전파된다.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이후에 동일 문화권이었던 낙랑무덤양식의 영향으로 자연인격신형태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사층세계관의 벽화가 등장한다. 선비족의 전연, 북위, 북주는 원래 고조선의 진조선의 일족이었다가 흉노 모돈에게 동호가 망하면서 흉노에 복속했다가 독립한 족속이기 때문에 예조선 지역의 영향으로 고조선의 삼족오 전통이 무덤양식에 등장한다. 고창국은 발해연안 구예조선인의 이동으로 삼족오· 섬여와 복희·여와가 전파된다. 수·당에서 삼족오가 빨리 사라진 이유는 고구려와 경쟁한 수·당이 고조선-고구려의 유풍을 의식하자 구예조선의 후예들이 부담스러워서 감히 그것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환인-환웅-단군의 조선과 북부여-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왜, 오환, 선비의 연속성은 “동이(東夷)” 개념의 연속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은주 시대의 “동이(東夷)”는 동쪽 해변가에 살던 족속들을 지칭하던 용어로 진의 통일 이후 사라지고, 그 후에 사마천의 『사기』가 자존관을 제시한 후에 『한서』(『예기』의 사이론)가 주변 사방족속을 사이(四夷)로 나누면서 “동이” 개념이 새로 등장한다는 ‘“동이”개념 비연속론’은 비파형동검, 고인돌, 삼족오 문명권에서 동이족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
“동이”개념 연속론은 고조선의 환웅[새], 곰, 범 삼족연합에서 환웅족이 ‘새-사람’토템을 가져서 은 갑골문의 인방(人方)이며 무씨사 사당의 새 토템이라고 생각한다. 『사기』의 “진·번조선”과 “예·맥조선”을 진조선, 맥조선, 번조선으로 보고, 족명으로 보면 한조선, 예조선, 맥조선으로 본다.
『한서』지리지에서는 “조선, 예, 맥구려”로 진조선, 예조선, 맥구려조선 삼족을
본다. 『후한서』의 “동이”, 『삼국지 위지』에서 “오환·선비·동이” 서술을 보고 진 “조선” 이외에 “맥구려”조선[곰 숭배], “예”조선[범 숭배]를 추출해서 고조선 삼족연합설을 증명한다. 신채호는 고조선을 신조선, 말조선, 불조선(『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이라하고, 『환단고기』,『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는 진조선, 막조선, 번조선이라 하고, 『후한서』와 『삼국지 위지』의 용어로는 진조선, 맥조선(“구려, 대수맥, 소수맥” 항목), 예조선(“동예” 항목)이다.
한 대(-206~220)에 과거 고조선의 예조선 지역인 발해연안(하남, 섬서, 산동, 호남, 강소, 사천, 지역)에서 삼족오가 등장한다. 장사 마왕퇴1호분 채회백화; 낙양복천추묘(-86~-49년경) 벽화, 평양 채협총 출토 채문칠갑과 안악 1호분 벽화와 유사. 평양 석암리 219호묘(기원적 2세기경 낙랑 왕근) 출토 칠전통; 하남성 당하현 침칙창 화상석묘, 천왕지신총과 유사;*36) 하남성 남양 양관사 화상석; 산동성 역성현 효당산 곽씨묘 석사와 가상현 무씨사 화상석(145~167)의 복희여와상 등이 있다.
3) 고구려 고분벽화와 선비, 고창국의 그림 해석
고분벽화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사층세계는 과거 고조선의 영역권이었던 북부여와 맥조선 지역, 예조선[한의 발해연안]지역과 선비족, 고창국에서만 나타난다. 선비족은 고조선의 일족이라 『삼국지 위지』“오환·선비·동이열전”에서 함께 거론되었고, 선비족 북위 『위서』에는 고조선(『삼국유사』, 고조선), 고구려(『삼국사기』, 주몽), 백제(『삼국사기』, 온조왕)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다. 포스트고조선시대에 고구려와 선비족 북위는 고조선의 정통성을 두고 경쟁했다. 『삼국유사』, “고조선”에서 구본의 북위, 『위서』에 2000년전 고조선 기록이 등장했던 이유는 고조선이 선비족의 선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축형태에 고구려 고분에서는 천상, 산상, 지상, 지하세계에서 이승과 저승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세계관이 등장한다. 고분벽화 세계에서 세상은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세계이고 그 세계 속에서 인간은 상호존중의 관계이다. 인간은 생전에 세속인으로서 지상에 살거나 탈속인으로서 산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조상이 사는 천상이나 지하 세계로 가면 각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상호존중 한다. 보통 인간은 지상에 살다가 죽으면 천상, 지하, 산상에서 산다. 고분벽화에서 망자인 생전의 지상왕과 귀족은 행렬과 의장기에서 해와 달의 상징이 천자의 상징으로 재현된다. 신화에서 해모수가 오우관과 용광검을 차는 이유는 그 자신이 해·달로서 천제이거나 아니면 천제자[오우관의 삼족오와 용광검의 용]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신라의 왕관 유물은 왕의 상징으로 해·달·별을 상징하는 새·까마귀와 뱀·개구리·연못, 그리고 쥐[스키타이, 신라 비처왕]를 보여준다.
왕은 생전의 행열과 사후의 행열도에서 과거의 영웅적 행적이나 공통의식의 권위를 상징체를 끊임없이 재현해서 보여줌으로서 삼족은 상호존중하면서 단결한다. 고분벽화에서 산상의 신선과 옥녀는 학을 타고 생활하며 천상의 소식을 지상계에 전달하고 지상의 희망을 천상계에 전달하면 천상과 지상을 상호 존중하는 산상의 존재가 된다. 단군은 생전에 왕위를 포기한 후에 생전에 아사달산에 신선이 되고 사후에는 아사달산의 산신이 되어 지상과 산상의 존재가 상호 존중된다. 산상의 세계는 천상과 지상을 잇은 중간계여서 지상의 인간은 새로운 후손을 얻기 위해서 산상에서 삼신할머니에게 생명의 점지를 기원하면서 지상과 산상의 상호존중은 지속된다. 고분벽화에서 저승의 천상세계는 해 속의 삼족오가 해의 운행 원리를 표현하는 상상 속의 동물이고, 달 속의 두꺼비가 달의 운행 원리를 표현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표현되고, 별들이 사방에 7개씩의 기준 28수 성좌로서 사방신수인 청룡, 백호, 현무, 주작으로 상징되고, 별의 밝기는 원 크기로 표현된다.
천상의 별자리에는 견우와 직녀, 야철신 등 문화영웅들도 있다. 채회백화와 고분벽화에서 저승의 지하세계는 망자가 생전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공포의 세계이다. 동천왕 당시 태후 우씨가 두려워한 것은 사후에 전 남편왕인 고국천왕의 반대로 천상세계에 올라가지 못해서 결국 지하세계로 떨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새 남편왕인 산상왕의 곁에 묻혀서 천상세계로 올라가려고 한 것이다. 고분벽화의 사층 세계에서 각 존재들은 상호 존중하면서 다른 영역을 넘보지 않는다. 고구려 벽화의 이승의 행열 의장기는 안악3호분, 안악1호분, 약수리고분, 덕흥리고분, 수산리고분 등에 재현된다. 일중 삼족오와 월중섬여도, 교미 복희여와상, 연유, 사신도가 결합하거나 각각 독립해서 4유형이 나타난다. 즉, 1-1. 일중 삼족오, 월중 섬여 유형은 무용총, 각저총, 장천1호도, 안악1호, 3호분, 복사리 벽화고분, 연화총이다.
1-2. 일중 삼족오, 월중 섬여 와 사신도가 결합한 형태는 강서 약수리고분, 삼묘리 중묘, 용강 쌍용총, 덕화리 1호, 2호분, 진파리1·4호분, 내리 제1호분; 용강 대안리 1호분, 남포 매산리 수렵총, 평양중화 개마총이다.
1-3. 교미 복희여와상의 유형은 우산하 묘구 삼실총, 평남 순천 천왕지신총; 산동 가상현 무씨사 교미복희여와상, 안양 은허 1001호대묘 교룡골식, 은주 시기 옥황, 산동 무씨사 화상석 연유이다.
1-4. 봉 일중 삼족오 월중 섬여 복희여와상와 사신도가 결합한 유형은 우산하묘구 사신총, 오회분4·5호묘 등이다.
선비계의 북연 풍소불(415년) 부부묘, 전연 모용씨:은 무용총과 각저총의 조문과 비슷하다. 선비계 북위(위서)의 탁발씨는 삼족오가 사서에 많이 출현한다. 선비계 북주(주서)에는 건덕 원년(572년)명 필루관묘석관 선각화가 일중삼족오 월중섬여 봉 복희여와상이다, 고창국(531~640)은 『내륙 아시아』의 견화 복희여와 복교미형가 삼실총과 유사하고,『토로번고고기』에 봉 일중 삼족오 월중 서여 복희여와상이 있다. 백제의 경우는 무녕왕릉출토 목제봉황두침, 백제금동대향로, 산경문전에도 봉황이 있다. 신라는 서봉총출토 금관봉황장식, 서조도, 목제칠기조형잔, 조형와 등이 있다. 월지출토 쌍조문수막새, 사천왕사지출토 조형와당이 있다. 가야는 환두대도에서 손잡이 고리에는 조형조각이 새겨지고 칼집은 룡이 새겨져서 봉룡이 짝을 이룬다.
Ⅴ. 대신라(668~935)·발해(698~926)·일본(701~1871)의 기축형태와 민속 삼족오
한 이후에 유교가 중시되고, 북조의 5호 16국 시대 이후에 기축형태의 유교·도교와 불교가 결합하고 당에서 유교, 불교, 노자가 결합된다. 고조선 지역이 포스트 고조선 시대에 중간의 대신라[통일신라]가 당의 제후국이 되자, 발해, 신라, 일본으로 분할된다. 발해의 기축형태는 북부여-고구려의 천자국을 계승해서 천자국으로 유지된다. 일본은 고조선, 예조선의 계승자이자 직접적으로 백제 천자의 계승자로서 의제 천자국이며 기축형태가 서서히 등장하고 그래서 기축형태와 자연인격신형태의 동거가 오랫동안 유지된다. 기축형태가 진전되자 자연인격신형태의 이승과과 저승을 연결하는 세계관의 해체도 빨라진다. 자연인격신형태의 이승과 저승의 사층세계관은 기축형태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데아설로 남고, 선지자-유태-기독교-이슬람교 문화권에서는 천상과 지하의 층구분이 천국과 지옥으로 변형되고, 힌두와 불교문화권에서는 전생, 현생, 후생의 삼생의 여섯 세계(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로 세분되고, 유교문화권에서는 사후세계가 육대봉사와 불천위제사의 대상으로 분할되어 유지된다. 당은 삼족오와 섬여 사상이 외부 사상이었기 때문에 유교화와 불교화의 진전에 따라 빨리 사라진다.
삼족오는 발해, 일본에는 전승되지만 대신라[통일신라]와 수·당에서는 점차 사라진다. 발해는 천자국으로 자연인격신형태의 믿음이 비교적으로 전면적으로 유지되어 봉황문수막새로 표현된다. 일본은 기축형태가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에 고구려형 고분벽화의 세계가 의제 천자국으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다. 북부여-고구려는 초기의 해모수, 주몽 시기에는 중방에 삼족오를 배치했고 중반에 고구려 고분에서 중방이 황룡으로 변하지만, 당·신라는 중방에 처음부터 황룡을 배치하고, 신라 문무왕의 사후 동해 호국룡도 중방[또는 좌청룡]의 의미가 있다. 신라는 지증왕 이후에 이승과 저승의 연결세계관이 해체되면서 순장 대신에 토용이 등장하고, 법흥왕과 진흥왕의 불교화에 이어 진평왕, 선덕여왕이 고구려와 대립하며 수와 당의 문화를 급격하게 수용하면서 삼족오도 빠르게 잠재세계로 넘어간다.
『삼국유사』에서 진평왕 때 천사가 준 옥대는 불교화와 당화에 대한 전통 선도사상의 소유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정책이다.『삼국유사』에서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자 일월의 정(精)이 빛을 잃었다는 설화는 급격한 당화로 전통의 자연인격신형태가 사라지는 것과 이웃에 자연인격신형태의 국명 “일본(日本)”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신라의 영일군[근오지현, 오천현, 오량지현] 민중의 반발을 달래는 과정을 보여준 설화이다.
Ⅵ. 고려(918~1392)의 기축형태(『고려사』)와 민속 삼족오
고려시대는 기축형태로 고유철학의 선도형태와 신라 이후에 전통이 된 유교, 불교, 노자·장자 형태가 있으며 양자의 기축형태 융합으로 유지된다. 고려의 기축형태는 팔관회, 유교, 불교가 모두 성행한다. 고려시대에는 사료에서는 자연인격신형태가 체계적인 전후맥락이 무시된 채로 왕가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신화, 설화에서 파편적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활용되지만[용의 도움 설화, 왕건과 나주 우물가의 버들아가씨 왕비설화], 사회전반은 이미 불교적 성불(成佛)과 무명(無明)의 세계관과 유교적 토성제도(土姓制度)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사회생활에서는 왕가의 행진 의장기에서 과거의 권위에 기대려고 자연인격신형태가 유지된다. 고려의 의장기는 고구려의 의장대 행열에서 유래하고, 고려의 의장기에서 중방은 천자의 상징인 봉기로 북부여-고구려의 전통의 ‘삼족오-봉기’를 따른 것이다. 송의 의장기의 경우는『대명집례』권43과 왕圻의『삼재도회(一)』에서 송대 형성되어 원·명으로 이어져서 고구려-고려 전통과는 다른 것이다. 민간의 묘장문화와 고려불교의 불화, 변상도, 가사에서 자연인격신형태의 풍습들이 부분적, 파편적으로 유지된다. 신라의 천마도는 고려와당에서 삼족마로 변형된다.
기축형태는 몽골대제국에서 최후의 최대의 정점에 도달하고 몽골대제국 시대에 고려는 몽골에게 복속된다.『몽골비사』에 따르면 징기스칸의 12대 시조모는 고려[고리] 출신이며 몽골건국신화는 북부여-고구려처럼 해의 자손이며 또한 해의 변형인 개의 후손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몽골대제국은 고구려의 후예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 되어 고려왕은 몽골 정치에 참여한다. 고려는 발해의 대진,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을 통해 세계사를 모두 경험하고 몽골을 통해서 과거 고조선 시대처럼 세계질서에 참여한다. 몽골대제국이 망한 이후에 원에서 명이 등장하고 고려에서 조선이 등장해서 농경사회와 기축형태를 복원해서 반복한다. 몽골대제국의 붕괴는 세계시장의 붕괴를 가져오고 그 변방 서구와 일본에서 상인과 해적이 결합한 해상세력에 의해 상공업문명이 등장해서 새로운 마던형태를 개발한다.
고려의장기는 고려 인종 1년, 1123년, 고려천자의 의장기에 상기(북방), 응준기(남방), 해마기(동방), 태백기(서방), 봉기(중방), 오방기(오방색), 소기가 있다(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권제구 儀物과 권제제십사 旗幟에 등장한다.). 고려 의종(1146~1170)의 상정고금예에 따르면, 용문기(홍문대기, 백룡·적룡·청룡·황룡대기, 오색룡기 등), 동물문기(백상기, 사자기, 기린기, 학기, 귀사합형의 현기, 角端기 등), 조문기(공작대기, 주작중기, 봉기, 벽봉대기 등), 선인기(좌우서왕모대기, 보주선인대기, 여의주선인대기 등), 기타(천하태평대기, 보주기, 군왕만세중기 등)(『고려사』)이 있다.
고려불가에는 가수장, 변상도 같은 불화, 법천사지의 지광국사현묘탑비(1085), 선암사의 대각국사의천의 삼보명자수가사, 고려대장경화엄변상도(1251), 대방광불화엄경제43권변상, 50권변상, 56권변상, 교토 지은원 소장 고려불화 관경변상도(1323),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약사불의 협시불인 일광·월광보살의 보관 등이 있다. 고려민간의 기와에는 유창증기증 기와·전돌 (국립중앙박물관, 2002, 122쪽)이 있다. 고려민간의 묘지에는 11세기 중엽~13세기 초의 고려석관의 봉황과 비천상, 류방언(문종5년, 1051), 최항(고종16년, 1229) 등이 있다.
Ⅶ. 조선(1392~1910)의 기축형태(『조선왕조실록』)와 민속 삼족오
기축형태를 정점으로 이끌었던 몽골대제국의 붕괴 이후에 그 변방 서구와 일본은 마던형태로 비상하지만 세 개의 대제국, 명, 무굴, 터키 대제국은 농경문명에 기반한 기축형태를 복원하고 중심부 명과 그 주변부 조선은 기축형태의 성리학을 개화한다. 몽골대제국의 붕괴 이후에 서구에서 두 번째 철학으로서 마던철학이 등장한다. 마던형태는 인권사상[인본주의]에 따라 노예제 없는 임금노동형태의 자유 시장경제[경제적 강제의 임금노예제]를 개발한다.
조선시대는 기축형태로 유교(성리학) 독존방식을 취했고 그 결과로 고유사상인 선도와 전통사상인 불교, 도교가 약화되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합리성에 따라 자연인격신형태가 유지되기 어려웠다. 조선시대에 자연인격신형태가 유지되는 부분은 의장기와 민간의 와당, 묘지, 그리고 무속, 불화, 민화 등에만 남아 점차 위엄 있는 관습적인 장식으로 이해되었다. 조선 세종 때(1418.8.~1450.12.)에 노부[궁밖 행진] 때의 주작은 사신으로 청룡, 백호, 현무와 함께 등장하며 오직 조선만 3두3족이며 두상의 방향은 각각 중앙·좌·우이다(『세종실록(1545)』, 권132 가례 서례 노부의 주작기).
『대명집례』 권43 의장 및 삼재도회(一) 권3 의제 의장은 두 쌍의 주작으로 조선과 다르다. 성종 5년(1474) 『국조오례의』의 의장기에서 세종 때처럼 주작은 3두3족이지만 두상방향이 서례 권1 길례에서는 모두 우향[서쪽]이고, 권2 가례에서는 좌·중앙은 서쪽이다. 성종 24년(1493) 『악학궤범』 권8의 의물도설은 3두3족이고 두상방향은 모두 서쪽이다. 영조25년(1749) 『속병장도설』의 주작기는 부리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같고 얼룩무늬는 공작 같은데 1두의 비상하는 모습으로 다리는 표현하지 않았다. 정조12년(1788)의 『춘관통고』 권49가례에는 3두3족 우향2좌향1이고, 권12 길례에는 3두2족 모두 우향[서쪽]이다. 광무8년(1904) 『진연의궤』 권의장 도식중의 주작기와 대한제국의 주작기는 봉황 모습이고 삼각기에서 하늘을 향해 비상한다.
조선 시대에 일기와 월기는 천자를 나타내는 상징기라 사용하지 않고 고종 황제 때만 사용했다. 조선의 주작기에서 나는 새는 한 무제시기, 동중서의 천응감응설의 영향으로 보이며 사회적 전환기, 영조, 중종반정, 고종황제 시기에 나타난다. 조선은 인조, 효종 시기에 명의 계승한 중화국로서 청에 대한 북벌의식이 있었다. 조선의 영조와 고종의 주작기에는 명을 계승한 중화의식이 있다. 조선의 의장기에는 해와 삼족오의 기는 없고, 용비어천가에서 이성계가 쏜 까마귀 다섯 마리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으며, 동물문(서수문 및 서조문), 천상문(성문 및 일월문), 태극문, 산수문, 선인문, 십이지문, 문자문 등의 방형만 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의장기에 오성기 일기와 월기의 삼각형(『산릉도감의궤』)로 일기가 처음 등장한다. 조선민간묘지에 해속의 삼족오는 연성군 이곤(1462~1524, 묘비 1559), 변안열(1334~1390)신도비(1571), 박운묘표(1488~1570) 등; 일월도는 이국주묘갈명(1557), 한사개묘갈(1564), 김상준신도비(17세기중반), 김상헌묘갈(17세기중반), 이경헌묘표(1682) 등에 있다. 조선와당에 삼족오는 경기도와당, ‘광능곡장수막새’, 와부읍 월문리 ‘묘적사수막새’에 있고, 토끼의 절구질은 ‘선암사수막새’, 미황사 부도에 있다. 조선무속에는 조선불가의 삼성 표현, 三災 부적의 삼두일족응,삼두이족응, 복개당애기 칠성도, 일월영수도 등이 있다.
Ⅷ. 한국(1919~)의 두 번째 철학으로서 마던형태와 드라마 삼족오
마던형태는 자연질서에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 성립하고, 사회질서에서 인권과 민족국가에 근거해 사회과학인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성립하고, 개인질서로서 인문학인 철학, 역사, 예술, 체육이 성립된 시기이다. 마던형태는 생물학에서 분립된 의학과 정치학에서 분립된 법학에 사회전체의 근간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최루 보루이다. 기축형태의 변방 해상세력인 서구와 일본은 마던형태로 비상한다. 마던형태는 서방 서구에서 출발해서 동방 일본에 도달하고 양 세력의 만남으로 마던형태는 완성된다. 서구와 일본은 기축형태의 변방이라 마던형태에서도 기축형태와 자연인격신형태가 융합한 형태로 유지되고, 서구와 일본은 기축형태의 변방이라 제국이 아니라 소왕국[기독교소왕국, 신도소왕국]이라 마던형태는 제국형태가 아니라 민족국가 형태가 된다.
민족국가형태에서는 세계체계 내에서 세력균형과 헤게모니경쟁이 법칙이 된다. 서구국가들은 제네바,[포르투갈, 에스파니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미국과 하위 축 러시아, 초강대국 미국 [...]이 차례로 서구의 헤게모니 국가가 되어 세계는 민족국가 세계체계가 된다. 마던형태는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이라는 시장의 논리로 성립한다. 마던형태가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변하고, 법과 의료가 양대 정당화의 축이 된다. 마던형태에서는 범주로서 “인류”, “민족”, “개인”이 등장한다. 마던형태는 인간은 처음으로 자기 종족 이외의 모든 인간들을 “인류”로서 한 종임을 수용하고 인본주의 또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발명한다. 마던형태에서 인간은 가족의 혈통재생산과 학교의 언어재생산으로 통해서 민족국가 형태의 국가를 건설한다. 마던형태에서 인간은 태어난 사회, 국가, 가족, 언어를 벗어나서 스스로 자기 소속 사회를 결정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개인이 된다.
마던형태에서 정보과학기술과 생명과학기술이 지배적이 되고,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 새로운 도전 사상이 된다. 마던형태의 세계시장 속에서 기축형태에 억눌렸던 부족의 자연인격신형태는 다시 민족국가의 민족주의적 영감의 원천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마던형태가 등장해서 기축형태를 배제하자 이제 기축형태에 억눌렸던 자연인격신형태들이 파편적으로 선별되어 의장기, 지역상징, 학교상징, 입법부·사법부·입법부 상징, 축제, 드라마, 영화, 게임 등에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마던 한국은 한편에서는 인접국간에 국경분쟁, 역사분쟁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류가 아시아 대륙에 퍼지고 있다. 파편 삼족오는 한국 드라마에서 “주몽”, “바람의 나라”,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대조영”에서 고구려만의 대표상징으로 전제된다. 삼족오는 마던형태에서 한국 민족주의의 고대사 연구의 산물로서 고구려사, 고구려왕가, 고구려 군대를 대표하는 깃발로 부활한다. 현대의 삼족오는 한국지명인 선산 구미 금오산, 금오천, 금오산성, 충남 예산읍내 금오산에 남아 있고, 한국불교의 천태종가사수장에도 남아 있다.
Ⅸ. 한국의 세 번째 철학에서의 삼족오의 미래
대륙섬이 미국이 붕괴해서 마던형태가 끝나고 새로운 세 번째 철학이 등장하기 전까지에는 동일한 법칙이 마던형태의 ‘마던형태-기축형태의 배경화-자연인격신형태의 파편들의 선별적 부활-토템형태의 파편들의 선별적 부활’의 복합체를 지배할 것이다. 우리 인류의 현존하는 모든 인식은 모두 서사가 있다. 인류의 인식에는 논리학과 수학, 그리고 과학조차도 역사가 있다. 삼족오에도 역사가 있다. 종합하면 고구려고분벽화는 기축형태에 잔존하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세계관이며, 이·저승이 하나로 결합된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사층세계이고, 그 세부의 특징은 다음이다.
첫째 일월의 상징으로서 삼족오와 섬여는 환인-환웅-단군 고조선 전통 또는 동이(東夷) 전통에서 유래했다. 근거로는 『산해경, 대황동경 26』의 오[삼족오]과 은허, 후가장 1004호 대묘의 “방정삼족조”, 그리고 『환단고기, 단군세기』 2-2-144구에 근거해서 해석했지만 주로 『산해경』에 의존하고 『환단고기』는 보조적으로 활용했다.
둘째 삼족오가 포스트고조선 시대에 옛 조선 지역에서만 유행한 자연인격신형태에서 구체적 세계상의 사례라고 해석했다. 현상적으로 출현순서에 따라 한 나라 화상석에서 발전해서 고구려 고분벽화로 전파되었다고 해석하지 않고 그 배후에 동이문명, 즉 환인-환웅-단군[고조선] 문명권이 있다고 해석했다.
셋째 포스트고조선 시대의 삼족오와 섬여는 기축형태의 보편세계를 전제한 후에 특수 영역에만 잔존하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사고방식이라고 해석했다.
넷째 포스트고조선 시대의 자연인격신형태의 전체 맥락을 고려해서 전체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해서 해석했다. 삼족오와 섬여가 나타나는 모든 영역인 행열, 와당, 묘지, 민화 등에 대해 하나도 빼지 않고 모든 구체적 사례들을 자연인격신형태라는 하나의 일반이론으로 설명했다. 대무신왕 때 적오 설명은 자신들의 내부 단속용이기도 하지만 소속대중 설득용이기도 하다.
다섯째 포스트고조선 지역에서 자연인격신형태의 고조선 방식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모두 거론했다. 포스트고조선지역에서 삼족오와 섬여가 모두 다 존재하지만 발해연안(한 나라 화상석)에서 먼저 나타나는 이유는 한나라 지역의 예조선 출신들에게 생전에는 한나라에서 먼저 기축형태인 유교와 도교(공식 기록,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구예조선출신들은 개인 망자의 사후에는 생전과 사후를 연결해주는 고조선방식으로 무덤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 아직 남아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한 화상석이 등장했다. 북부여-고구려는 당시 기축형태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아직 자연인격신형태가 생전(1세 주몽왕, 2세 유리왕, 3세 대무신왕의 적오, 11세 동천왕)에도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무덤에서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자연인격신형태가 『삼국사기』 17세 소수림왕의 불교와 유교의 수용 이후에 생전세계에 사라지면서 무덤벽화에서 강화되는 이유는 생전에 붕괴된 세계를 사후에는 복원해서 하나로 연결하고 싶어 하는 망자의 소망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여섯째 자연인격신형태에서 한국계보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모두 거론했다. 기축형태의 초반 열국[삼국]시대에는 자연인격신형태의 영향권이 상당히 있지만 발해, 대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갈수록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간다고 설명했다. 역사기록은 기축형태부터에 등장하므로 자연인격신형태에 대한 완벽한 역사기록은 드물고, 자연인격신형태에 대한 완벽한 상은 후대인 기축형태의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최초로 완전한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생전과 사후가 결합된 세계상 형태로 드러난다. 현재 마던형태에서는 ‘마던세계관-배경으로서 기축세계관-파편으로서 자연인격신과 토템세계관’이 공존한다. 마던형태의 민족주의 시대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고구려대 시대의 대표적 상징으로서 삼족오가 등장하고, 법원 앞에 “정의의 여신상” 외에 “해태상『신이경(神異經)』”[사실은 “동동상『산해경』”]은 민족적 전통을 상징한다.
일곱째, 삼족오는 철학탄생이전에 지배적인 ‘천상-지상-지하의 삼층세계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세계관’이었고, 기축형태의 첫 번째 철학의 탄생시기에 고구려고분벽화에서 ‘천상-산상-지상-지하의 사층세계’에서 이승과 저승 그리고 전생을 연결하는 잔존하는 세계관으로 전면화되었다가 서서히 파편화되었고, 마던형태의 두 번째 철학이 등장한 시기 이후에는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드라마 속에서 재부활했고, 다시 다가올 세 번째 철학이 만일 한국에서 등장한다면 공익이 바로 사익이라는 한철학과 함께 그 상징의 하나로 부상할 것이다. 세 번째 철학은 기축형태의 초월성도 아니고 마던형태의 윤리도 아니며 촛불축제시위 같은 공적이익이 사적이익이라는 사회적 책임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마던형태가 사익이 공익이라는 시장논리로 출발했다면 공익이 사익이라는 촛불축제시위의 논리는 새 시대의 탄생을 의미한다. 촛불축제시위처럼 공익이 사익이라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그날 한국철학의 ‘상호존중의 원리’와 ‘홍익인간’의 논리는 새 시대의 새로운 이념이 되고 삼족오는 상호존중의 원리를 상징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Ⅹ. 결론
삼족오는 한국이 세계사를 선도할 때에 등장한 것이다. 삼족오는 한국[고조선]의 자연인격신형태에서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천상, 산상, 지상, 지하의 사층세계’에서 천상세계를 표현하는 상징이며 전체 사층세계관을 표현하는 대표체이다. 삼족오는 한국[고조선에서 북부여-고구려까지]의 첫 번째 철학에서 상호존중의 원리와 포함삼교의 상징이었고, 두 번째 철학에서 마던형태의 한국민족주의의 상징으로서 고구려 천자[태왕]의 상호존중 원리의 상징이었고, 만일 한국에서 공익추구가 사익추구가 되는 촛불축제시위 같은 새로운 이념이 전면해서 한국에서 세계사를 선도하는 세 번째 철학이 등장한다면 그 상징으로 주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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