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봉화 5갈 : 남천주길 (신둔 도예촌역 - > 부발역)
봉화 5길은 신둔 도예촌 역에서 시작한다. 역광장에는 도자 문화로 유명한 고장을 상징하는 금빛의 커다란 손으로 옹기를 빚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하여 놓았다.
‘천년의 혼’ 이란 조형물은 ”천년 도자 문화의 역사적 맥을 잇고 있는 이천 도예가의 손과 주름을 통해 도자 공예에 헌신한 장인의 혼과 삶을 표현”하였고. “700여 명의 도예가와 300여 개의 요장에서 장인의 혼과 맥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이천 도자 문화의 정체성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김원용 박사는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말로써, 글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하였으니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불립문자이기에 입을 벌려면 이미 그 아름다움을 반감하는 행위일 것이다.
백자대호 - 김원용
조선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 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의 민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 미유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레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천년의 혼‘이란 작품을 통해 우리 자기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련히 느끼며 이천의 북쪽에 있는 신둔면에서 남쪽 마을인 남천주(이천의 옛 이름) 향하여 걸어간다.
신춘 도예초역 앞의 도로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대로인 남정로에 이르면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경충대로에 이르기 전 소로인 골목길로 진행한다.
소로인 골목길을 걷다가 대로인 경충대로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니 식당이 있어 해물 순두부찌개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9시 30분) 다소 늦게 아침을 먹고 경충대로의 인도로 걸어가는데 다소 멀리 설봉산이 솟아있다.
산을 만나면 가슴이 뛰는데 오늘 넘어가야 할 산이었기에 더욱 반갑고 마음이 설렜다, 길가에는 도예촌의 지역답게 옹기점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투박한 옹기그릇은 무뚝뚝한 사내 같아 마치 내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정겹다.
경충대로에는 차량 통행이 잦았는데 소로에서 우회전하여 진입하는 차량들이 일시 정지의무를 위반하는 것도 모자라 직진하는 차들에 준하는 과속으로 진입하여 매우 주의를 요했다.
어서 빨리 자동차의 소음과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걸어가 도예 래카 시업소가 있는 곳에 이르러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마을 길로 진입하여 경충대로를 우회하여 사음 2동에 이르렀다.
이곳에 사기막골 도에촌이 있었다. “사기막골 도예촌은 설봉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이천 9경 중 한 곳으로 도자기 단일 품목으로 이루어진 전국 유일의 전통시장으로 2017년 전통시장 특화 거리로 선정되었다.
이천에는 대표적인 도예촌이 2곳 있는데, 현대적 느낌의 도예촌인 예스파크와는 달리,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도예촌으로 아담한 규모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퍼옴
상점의 유리창 너머의 도자기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을 햇볕을 쬐며 은은한 빛을 띠며 진주보다 영롱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돌을 깎아 다보탑, 석가탑으로 탄생하고 흙을 빚어 자기가 되니 우리의 장인들이 말로 천재 예술가들이 아닐까?
사기그릇을 굽는 막이 있던 골짜기 마을인 사기막골 도예촌을 지나 설봉산으로 향하였다. 봉화길은 아스팔트의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화계사가 소재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곳에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 정상까지 1.43km임을 알려주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자동차 통행이 잦은 경충대로를 걷다가 들어선 산길에는 낙엽들이 가득히 쌓여있고 풀벌레가 우는 호젓한 산길이 되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지연의 향기에 젖어 기분 좋게 고갯마루에 오르니 도드람산 4,7km, 설봉산 0.73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도드람산은 처음 산행을 시작하였을 때 갔던 산인데 그 아기자기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는 산이다. 사람들은 도드람산을 가리켜 이천의 소금강이라 불렀다. 문득 설봉산 ↔ 도드람산 종주 산행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설봉산에 오르는 등산로는 계단이 설치된 가파른 등산로였다. 계단은 끝이 날지 모르고 계속되어 숨이 차서 오르는데 경사가 심한 등산로의 파헤쳐진 곳에는 모레 주머니가 계단을 대신하였다.
모래주머니는 평상시에는 관계없지만, 눈이 내린 겨울철에 아이젠을 착용하였을 때 모래주머니가 그 힘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라고 숨이 차오르면서도 질타를 하고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라는 속담을 상기해 보았다.
계단길이 다하고 등산로가 평평해지어 정상인 줄 알았으나 설봉산 오르는 길, 호암약수 가는 길, 도드람산으로 가는 삼거리였고 정상은 아직 0.1km가 남았는데 봉화길은 호암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봉화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 고스락을 눈앞에 두고 지나칠 수 없어 고스락으로 향하였는데 등산로 또한 평지처럼 완만 하여 가볍게 오르니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설봉산 고스락인 희망봉이었다.
설봉산은 ”동국여지승람에 부의 서쪽 5리 되는 곳에 있는데 진산 鎭山이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일명 부아악이라 부르기도 하는 영산이다. 산중에는 영월암과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각축전을 벌이던 축성등 문화유적이 많다. 앞으로 이곳은 우리나라 한복판 노른자위로 통일과 번영의 심장부가 될 것이다.”라고 고스락(정상)의 표지석은 설명하고 있다.
설봉산 아래 선비의 기개를 품고 있는 소나무 지대의 연자봉을 넘어 하산하는 길은 가을의 정취가 물씬거렸다. 화려한 단풍으로 온산을 물들이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빨강, 노랑, 파랑색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단풍으로 물든 산에는 이천의 진산답게 고스락에 오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평탄하고 완만한 등산로에서 거침없이 내려가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의 각축장이었음을 알 수 있는 설봉산성이 있었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설봉산에서 내려오니 설봉 공원이 있는데 노란 은행나무잎이 길가에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노란 잎을 밟으며 걸어간다. 가을은 산속에만 있지 않고 길가에 있었고 내 마음속에 있었다.
공원 주차장에서 설봉 저수지의 산책로에 진입하여 호숫가를 걸어간다. 잔잔한 호수를 보니 단풍으로 물든 마음에 호수의 정경이 가해지니 산과 단풍 그리고 호수가 담긴 한 폭의 동양화가 바로 내 마음이 되었다.
저수지 산책로에서 봉화길은 경충대로에 또다시 진입하여 이천시가지를 향하여 걸어가는 길은 이천의 원류인 중심부를 향하여 가는 길이다. 경충대로상의 중일 사거리를 지나 육교를 건너며 이천 시내가 펼쳐졌다.
현대식 대형 건물은 눈에 띄지 않지만, 고만고만한 상가들로 가득 차 있고 교통량은 많으나 길은 좁은 곳이지만 어제의 이천에서 새롭게 단장된 중심 변화가인 이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고속 터미널 사거리를 지나 이천 시민들의 새로운 휴식공간인 안흥지에 이르러 이천 둑방으로 불리는 안흥지의 산책로를 따라 애련정에 이르렀다.
애련정은 안흥지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 조성한 정자로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서 깊은 정자이며 역대 왕들이 세종대왕릉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들리던 곳이라 하였다.
애련정이라는 명칭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신숙주가 지었다고 하며 일제가 원래의 애련정은 파괴하였는데 이천시가 1998년의 현재의 정자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의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그러면서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이 오히려 제국주의 야욕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일부 학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현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흥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이천 시내를 빠져나와 중리천을 만나 물길 따라 천변으로 걸어간다. 이곳을 이천시에서는 이천 알음길로 명명했다. 천변 산책로의 왼쪽은 시냇물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내를 벗어나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넓은 고요한 광장이 펼쳐진 길을 걸어가면서 봉화5길 남천주길의 의미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남천주길은 이천의 유래를 찾는 여정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이천 일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했습니다. 우선 고구려 때 남천현(南川縣)이 되었으며, 568년에는 신라에서 남천주로 명명하고, 행정 구역화하였습니다.
고려 태조인 왕건은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지금의 복하천(福河川)에 이르렀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천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 후 왕건은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내려주었고, 여기서 이천이라는 지역명이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라고 경기 옛길 홈페이지에서 설명하였다.
한강 유역을 쟁취하여 패권을 차지하고자 서로가 힘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신라가 지금의 이천에 설치한 상급행정 구역의 거점인 남천주·오늘날에는 그때의 아픔과 상흔은 복하천에 씻겨 내려가고 따사로운 기운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중리천이 복하천으로 합류하면서 천변은 갈대 숲을 이루어 은빛의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복하천에 피어난 은빛 갈대숲을 바라보며 둑길에서 다리를 건너 대로인 자동차 통행이 잦은 도로변을 걸어가다 신하1리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진 지점에서 소로인 마을 길로 진입하였다.
이곳에서 종착지인 부발역까지 0.5km를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0.5km라는 거리에서 종착지에 도착한 것으로 간주하고 발걸음을 서둘렀으나 가도 가도 부발역은 나타나지 않아 지도를 확인하니 3km는 더 가야 할 것 같았다.
다소 지친 몸으로 대산로507번길을 걸어 대로인 차도에 이르러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새 힘이 솟는 것 같아 가뿐한 마음으로 대산로532번길에 진입하여 죽당천 산책로를 걸어가 부발역에 이르렀다.
● 일 시 : 2024년 11월12일 화요일 맑음
● 동 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14분 : 신둔 도예촌역
- 10시15분 : 사기막골 도예촌
- 10시50분 : 설봉산 고스락
- 11시40분 : 설봉 저수지
- 12시15분 : 안흥지 애련정
- 13시00분 : 신하1리 표지석
- 13시50분 : 부밟역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6km. - 소요시간 : 4시간 36분
첫댓글 설봉산과 이천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정독했습니다. 나라사랑은 우리 국토를 잘 아는 것으로 바탕을 삼아야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