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파트 하나만 잘 사 놓아도 10억이 오르는 건 거뜬했는데 그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그게 아니어도 광명. 하남 등에서만 해도 5억씩 오른 건 기본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
또는 저것 매도하면 세금 떼어야 하는데 순자산이 확 줄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저걸 저렇게 기록하면서 일부라도 공유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만한 성과가 대단하고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내게 경제적 자유는 시간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저 자산을 잘 보존하고 불려 상급지로 이동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꿈만 같았던 광교도 들어갈 수 있고, 몇 년 잘 불리면 판교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꿈이 바뀌었다. 상급지 대신에 자유를 택하기로 했다. (거꾸로 그 자유가 나를 더 빨리 상급지로 가져다 줄 가능성도 있다)
수 억씩 오른 것들은 임대사업자가 끝나는 6년, 8년 뒤(일부는 이미 1년이 넘게 지났고, 아직 등록하지 않은 것도 있다)가 되면 세금을 아주 조금만 내고 매도하면서 차익이 발생한 자산을 지켜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조직에 속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에게 꿈과 영감을 주는 동기부여가로 활동해도 되고, 부동산 강사로 활동해도 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을 때에는 기간제 교사로 활동해도 된다.
내겐 상급지보다 자유가 소중하다.
이제 선택이 남아있다. 6년이나 8년이 아니라. 저 세월을 2년으로 앞당길 수 있는 선택말이다. 그건 절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투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은 의지의 문제로 봐야한다. 투자도 절약도 그에 따른 성과와 책임도 모두 나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결과물로서 자유를 생각보다 빨리 얻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거의 매일 돈에 대해 생각하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부동산을 타겟으로 하여 매일 같이 공부를 해왔다. 그러면 데이터를 어떻게 뽑아내야 하는지 알게 되고, 그러면 어디에 투자했을 때 성과가 나는지 일종의 냄새를 맡게 된다. 정확히는 냄새를 억지로 맡는 게 아니라 냄새가 난다.
조만간 규제지역을 추가지정하게 되면 이미 선점해있던 평택과 천안은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는 풍선효과로 또 한 차례 더 부풀어 오르게 될테다.
2개월 전 즈음에 샀던 청주는 이미 달아올랐지만 이건 내가 예측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시세 변동이 없는 전주가 내 예측과 비슷하다. 지금은 아직 전세가가 의미있는 수준으로 올라 매매가를 밀어올리기에도, 갭매우기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에도 조금 빠른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주도 천안도 상승은 시간 문제라는 걸 안다. 수원과 화성. 평택에서 그랬던 것 처럼. 물론 세상에 100퍼센트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정에 충분한 이론적 토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선택이 있다면. 설령 예측 못한 외부요인이나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고 해도 미련은 없다. 한 번 더 배울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틀릴 게 두려워서 선택을 유보하면 그것 자체가 틀리는 것이니깐.
나는 지금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 8년의 세월을 2년의 세월로 단축시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도 6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내가 모은 돈으로 2천만원 안하는 준중형 자동차를 장만하고 기분이 좋아서 차를 샀던 그 날 밤에 차에서 잠을 잤다. 나의 첫 천만원단위의 소비행위였다. 그 때는 그 차를 사느라 든 돈이 2천만원이 2년을 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다.
지금도 5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결혼하기전에 나랑 와이프가 수 년 간 모았던 돈이랑 부모님이 보태주신 돈으로 1.4억짜리 전세집을 구해서 입주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선하다. 겨울엔 난방비 아끼려고 침대를 작은 방으로 옮기고. 여름엔 더워서 침대를 거실에 빼놓고 생활하던 시절이 선하다.
지금도 4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그리고 그 아이가 내 힘으로 마련한 보금자리(비록 전세였지만)에서 울고 웃고 똥싸고 치우고 씻기고 쪽쪽이 물리고 쪽쪽이 떼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던 때가 선명하다.
지금도 3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작은 집으로 이사오면서 보증금 2천 더 남겨서 모았던 돈으로 소형 아파트를 월세 받으려고 샀다. 부모님은 왜 그러고 사냐고 나를 질책하고 우리를 안쓰러워했지만. 정작 와이프는 싫다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 없이 지지해준게 전부다. 그 때만해도 부모님께는 집 사는 걸 비밀로 해서 애도 못 맡기고. 애를 데리고 인테리어 하러 낡은 집에 갔다. 직접 문고리도 갈아보고, 전등도 LED로 바꿔보고,,, 입주청소 비용도 아끼려고 직접 둘이서 걸래질하고 구석구석 치웠다. 이런 추억 저런 추억을 어려울 때 함께해서 그런가 첫째에 대한 정이 많다. 그 아파트에서 45만원 받아 대출이자 20여만원 갚았다. 그렇게 손에 쥐는 돈 20여만원이 소중했다.
지금도 2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뭔가 잘 못되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살 집은 없는채로 월세받는 아파트 오피스텔이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현금흐름을 늘리려했는데 그게 결국 더 크게 현금흐름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 살집이 없으니 하루 하루가 불안하고 답답했다. 수억씩 뛰는 집값을 어떻게 내 손으로 마련해서 살 수 있을지 막막했다. 하락론자로 포지션을 잡고도 싶었지만. 공부할 수록 아니었다. 결심하고 집을 샀다. 2018년 9.13대책이 나온 1달 뒤였고 서울부터 하락세가 짙어졌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지 않았다. 와이프랑 애들이랑 함께 살 진짜 보금자리가 생겨서 더 행복했다. 내 집마련은 정말 축복의 순간이다.
지금도 1년 전 그 때를 기억한다. 처음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실거주가 아닌 투자용 분양권을 사려고 동분서주했다. 나는 잘될걸로 봤지만 세상의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때는 이런 시장의 오해로부터 스스로에게 확신을 줄 만큼 이론적 토대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매일 KB부동산에서 과거 시세 뽑아서 아파트 분석하며 보낸 시간들이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3개월 전 그 때를 기억한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대중은 자산시장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고 있었다. 주식시장은 패닉이었고 주택시장에서도 그런 기운이 감지되었다. 나는 어느새 과거와 달랐다. 세상과 다른 포지션을 갖고도 흔들리지 않을 이론적 토대와 경험이 단단해졌다. 그것을 바탕으로 평택. 청주. 전주. 천안의 주택을 차례로 구입했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사실 두려움은 첫 집을 살 때에 비해, 첫 투자용 분양권을 살 때에 비해 격감했다. 시세차익은 결과일뿐. 과정은 다른 곳에 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 시간들은 거꾸로 내게 시간을 벌어다주고 있다. 과정이 순탄치도 않았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굴곡도 많았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갈등도 많았다.
그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을 이제는 안다.
나도 내 2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궁금하다.
이 장황하게 쓴 글은 나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것 이기도 하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게 눈에 들어오고 있다. 내가 했다면 의지를 가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출처: 탁월한 보통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