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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목사 ⑨ :
워필드 ‘은사 중지론’을 부정하면 이단인가?
사계四季 (2018.02.17 01:05)
정이철 [‘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서평 ③:
박영돈은 스스로 고신을 떠나야 할 거짓선생 또는 이단옹호자]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064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감격. 기쁨. 평안.1)
‘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이 책이 나왔을 때 {페북}에서 이 책을 알게 된 저는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박영돈 교수님께서 저와 페친이시기는 했으나 박영돈 교수님을 잘 모르는 때였고, ‘내가 성경의 근거가 없는 설로 생각하는 은사중지론 관점에서 성령론을 다룬 책이겠지.’ 하는 선입관, 은사 문제에서 성령의 권능을 삭제 제거한 은사중지론자들 성경 해석을 무척 낮게 여기는 선입관에 따른 교만으로 관심을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이철 목사가 박영돈 교수님 은사론을 문제 삼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구입한 때는 지난 1월 13일이었습니다.
참고로, {페북} 정이철 목사 담벼락 글에 따르면, 정이철 목사는 지난 1월 11일에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채 지난해 12월 27일 [박영돈 교수의 99% 밥, 1%의 독으로 만든 쥐약 같은 칭의론] 말미에서 ≪현대 방언 등 거짓 복음 운동을 두고 제대로 비판도 못하고, 오히려 대세를 따르면서 망해가는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크게 누리는 유명한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박영돈 교수님도 그 속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며 문제 삼는, ‘근거를 대는 비평으로서 텍스트 비평’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라면 상상도 못하는, 참으로 대범(?)한 짓거리를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지른 것입니다.
‘개혁 교회 계시종결 교리는 성경보다 체험을 중시하게 만든 무분별한 은사주의, 교회를 허무는 무분별한 은사운동을 경계할 수 있는 교리,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충족함을 드높이는 교리다.’고 생각하는 제가 ‘은사중지론’을 ‘성경의 근거가 없는 설’로 생각하는 까닭은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나는 나다. (나는 여호와다.) : 나는 나였고, 나는 나고, 나는 나일 것이다.” 하시는 하나님, 세상 역사 속에서 “나는 나다.” 하시는 하나님이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은사중지론은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주님 말씀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은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능”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까지만 제한함으로써 땅 끝까지는 효력이 없는 말씀으로 삭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완독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동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故 김홍전 목사님입니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 적힌 박영돈 교수님 성령론이나 은사론은 저로 하여금 김홍전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강설집’이나 ‘다른 강설집’에서 베푸신 성령론이나 은사론을 떠올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박영돈 교수님을 두고 “거짓 선생, 이단 옹호자”라는 극단의 정죄를 서슴지 않은 정이철 목사 글에서 정이철 목사가 그 근거로 내세운 것 하나는 ‘은사중지론’입니다. 링크한 정이철 목사 텍스트로 갑니다. 리차드 개핀 목사님께서는 신유 은사를 계시와 연관 짓지 않으시건만, 방언과 신유 은사를 모두 ‘계시’로 연관 짓는 정이철 목사 ‘저 중증 몹쓸 병’을 어찌 치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박영돈은 이런 사상을 가졌다면 사실 일찍 고신을 떠났어야 했다. 개혁 신학 은사중지론(기적중지론)은 박영돈이 이렇게 함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성경의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 소경을 보게 하는 이적 등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계시임을 증거하는 특별계시 사건이었다.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어 “과연 당신이 오시기로 예정된 메시야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해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 7:22)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러한 이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특별계시 사건이었다. 성경으로 계시가 확립됐고 교회가 설립되고 난 후 이러한 초대교회 이적이 종결됐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고, 지금 어디에서도 이러한 이적이 나타난다는 증거가 없다. 기적중지론(은사중지론)을 부정한다는 것은 개혁 신학을 부정한다는 것이므로 박영돈은 개혁 신학을 추구하는 고신의 교수직을 떠나 자기 길을 가야만 했었다.
“성경으로 계시가 확립됐고 교회가 설립되고 난 후 이러한 초대교회 이적이 종결됐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고, 지금 어디에서도 이러한 이적이 나타난다는 증거가 없다.”??? “기적중지론(은사중지론)을 부정한다는 것은 개혁 신학을 부정한다는 것이므로”??????? 개혁 신학 안에는 ‘방언 은사를 “불멸의 은사”로 높이신 칼빈 선생님 방언은사 지속론’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리차드 개핀 목사님 신유은사 지속론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언제부터 ‘(방언, 신유) 은사중지론=개혁 신학’이라는 도식이 절대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정이철 목사와 그와 함께하는 목사들, “다른 불”로 정죄하기 바쁜 목사들에게만 ‘워필드 은사중지론=개혁 신학’이겠지요. 그런데 ‘워필드 은사중지론’을 절대로 여기는 나머지 우리나라 초대 교회에 있었던 수많은 치유 기적들을 모르쇠 할 수밖에 없는 정이철 목사가 ‘벤자민 워필드 {기독교 기적론} 이길상 역 (서울: 나침반사, 1989)’를 읽었나 봅니다. 이 점에서 ‘워필드 은사중지론’을 부정하신 박영돈 교수님 텍스트로 갑니다. 그리고 김홍전 목사님 텍스트 두 곳으로 갑니다.
이처럼 현대에도 치유가 계속돼야 한다면, 왜 이런 역사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치유 기적을 이해하는 일에서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교회의 발전 단계를 감안해야 한다. 치유 기적은 특별히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표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에서와 같이 어떤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돼 하나님 나라가 침투할 때 이런 기적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금도 중국이나 아프리카 등지 선교 현장에서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난다는 보도를 듣는다.
한국 교회 초창기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 김익두 목사를 통해 많은 치유 역사가 일어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병자들이 집단으로 치유되기도 했다. 1921년 황해 노회에서 그의 사역을 통해 치유된 사례들을 자세히 조사해 {조선 예수교회 이적 증명서}를 펴냈다. 지금도 여러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구체적인 표징으로 귀신이 쫓겨나고 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자주 일어난다.
···(중략)···
복음이 전파돼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게 되면 치유 기적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는 꼭 성령의 역사가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교회 발전 단계에 따른 순리적인 현상일 수 있다.2)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13~115쪽.
다음은 김홍전 목사님 텍스트입니다.
이처럼 기적이 이 시대에 있었고 또 기독교 역사상에도 때때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는 계시 시대로서 성경을 기록해서 완성하기까지 시대이고 초대 교회 시대입니다. 그때는 기적이 참 많이 일어나서 사도 바울 선생도 많은 곳에 다니면서 기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적이라는 것은 다른 굉장한 것보다도 주로 병든 사람을 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장 현저한 사례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느냐 할 때 물론 기독교 역사상 그 후에는 그때처럼 기적이 항다반사로 늘 일어나지도 않았고, 또 사도 이후 시대 교부들이나 교부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그 나라의 거룩한 사실들을 천명해 가면서 목자로서 교회를 이끌고 하나님 나라의 경영을 해 나갔으되 병을 고치는 이런 기적들은 교회에서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도 초대 교회 맨 처음에 복음의 기초를 전하고 다닐 때 목사님들 손에서 여러 가지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김익두(1874~1950) 목사님이나 이기선(1878~?) 목사님 같은 분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적을 많이 행하신 목사님들일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병을 낫게 하신 일이 많아서 아주 유명하십니다. 부흥회를 많이 하셨지만 남쪽으로는 비교적 많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기적을 많이 행하신 분입니다. 모두 다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적을 행하는 분들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타락해서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역사의 발전에는 항상 그런 시기가 있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3)
그 다음에 그때의 교회는 병을 고칠 뿐 아니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마음 고통과 정신 이상을 낫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병도 있고 정신상 질병이나 심령상 질병이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낫게 할 힘이 오늘날 우리에게 없다면 이것은 마치 그런 모든 질병이 우리를 우롱하는 셈입니다. ‘너희들이 과연 낫게 할 수 있느냐? 너희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 어디 한번 낫게 해 보라.’ 하고 놀려 먹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우롱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올바로 처리할 수 있으려면 우리 교회가 항상 순수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순수성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 있는, 병을 낫게 한 이야기나 신약 성경에 병을 낫게 한 역사役事를 쭉 보면서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이 하나 있다는 것을 영국의 유명한 캠벨 모건(Campbell Morgan, 1863~1945) 박사가 지적했는데, 저도 거기에 수긍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여기에 소개하겠습니다. 교회의 어떤 사람들에게 병을 낫게 하는 은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병을 낫게 하는 은사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느냐 할 때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일정한 상태의 신앙에 도달하면 다 임한다는 조건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4)
‘워필드 은사중지론=개혁 신학’이라는 자기들만의 절대 확신으로 극단의 정죄를 일삼으며 교회를 허무는 {바른 믿음} 류 목사들은 박영돈 교수님뿐만 아니라 김홍전 목사님을 두고서도 “거짓선생, 이단옹호자”로 정죄해야만 합니다. 또한 김홍전 목사님께서 “모두 다 훌륭하신 분들”로 평가하신 김익두 목사님과 이기선 목사님을 두고서도 “무당신학 잡설을 전파한 이단들”로 단죄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권능”은 땅끝까지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 오늘날 교회에도 유효한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 말씀에서 “권능”을 제한 삭제한 워필드 목사님 은사중지론은 당연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는 {페북}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성도의 교통이 활발한 시대입니다. ‘인터넷 소통이 활발한 시대 흐름에 따라 워필드 목사님 은사중지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선교지에서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 신유 같은 기적으로 복음의 장애물들을 제거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분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증거하는 선교사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분들 가운데는 워필드 목사님 은사중지론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는 철저한 은사중지론자이셨다가 선교지에서 경험한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 때문에 은사지속론자로 바뀐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물론, 제가 ‘신실하신 개혁(장로) 교회 목사님들’로 생각하는 선교사님들이십니다. 다음은 링크한 정이철 목사 텍스트 마지막 문장입니다.
치유를 사모하고 권장하는 박영돈 자신을 통해서는 치유나 어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가?
주님 말씀 “권능”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지닌 오늘날 교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라도, ‘교회 모든 사람이 치유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건만, 정이철 목사가 똑똑한 초등학교 2학년생 정도라면 하지 않을 이런 듣보잡 질문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듣보잡 질문 하나하나 대꾸하는 제 수준이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유치한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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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칼 <불>’에서.
2)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13~115쪽.
3) 김홍전 {사도행전 강해 ④: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132쪽~136쪽.
4) 김홍전 {사도행전 강해 ②: 순결하고 능력 있는 교회} 352쪽~353쪽.
※ 김홍전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초대 교회 때 주신 기적(신유 은사)>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D0VS/8649
방금 보니, 제가 이글을 올린 석 달 뒤인 2016년 11월 초에 뒤늦게 {바른 믿음} 김대운 목사님이 댓글을 쓰셨군요. ㅠㅠ
···(또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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