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09-13 주일설교
하나님과 공동 운명체
(열왕기하 19:21~22, 32~35)
어떤 권사님이 동네 사람들과 목욕탕에 갔는데 같이 목욕하던 아주머니가 ‘하여튼 교회 다니는 것들이 문제야’ 라고 하더래요. 그 말을 들은 권사님이 ‘것들은 빼고’라고 응수했답니다. 그러자, ‘아참, 언니 교회 다니지. 미안해요’라고 사과하더랍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CV를 생산하고 교인들이 CV를 퍼뜨리고 다니는 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고 다정한 이웃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뉴스의 댓글을 보면 무서워요. 교회를 폭파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세동에 있는 한우리교회에 불이 켜졌다고 주민이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경찰은 사모님이 혼자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기독일보를 보니 파주의 운정참존교회는 불이 켜졌다고 주민이 신고해서 교회당 폐쇄까지 당했습니다. 요즘 교회가 이런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9월 7일 머니투데이에 “성당 미사는 방역 괜찮나” 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9월 9일 한국경제에 절에서도 무더기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3시에 중대본에서 “종교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지속되고 있으니 예배를 비대면으로 하라”고 안전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국민들을 당연히 또 교회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미워하게 되겠지요.
교회가 이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성경 말씀을 통해 저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정결해지고 더 단단해지고 결과적으로 더욱 부흥할 것입니다. 성경과 역사를 돌이켜볼 때 교회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세상 세력이 교회에 호의적일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점점 부흥하자 결국 로마는 박해를 멈추고 심지어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국교가 되어 잘 된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크게 부흥했지만 사실상 그때부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개발 시대에 교회 다니면 복 받는다는 기복주의 논리로 급속도로 부흥했지만 그때부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지금처럼 국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어서는 이 세상에 천국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입은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지요. 또 칼에 녹이 슬면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고 다시 날을 세웁니다. 지금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세탁기에 돌리고 풀무에 담금질을 하고 계십니다. 버릴 옷은 세탁하지 않고 버릴 칼은 담금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버리지 않으셨기에 이렇게 세탁과 담금질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매일 성경 구절을 하나씩 보내어 드리는데 지난주에 한 성도가 제게 이런 답장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코로나가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의 시간인 것 같아서 더욱 설레고 고난이 고난 같지 않습니다.” 그 말을 받고 상당히 깊은 생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코로나19를 통해서 교회는 반드시 정결케 되고 강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 기회에 반드시 한국교회가 정결케 되고 강하게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렇다면 교회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세상 세력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이 반드시 명심할 것은 하나님은 성도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자녀가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을 때 부모는 막대기로 때리지요. 하지만 그 막대기는 부러뜨려 아궁이에 던져 버립니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이 패턴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막대기, 사람채찍이라는 말이 곳곳에 나옵니다. 막대기가 사람을 때린다고 막대기가 사람보다 착하거나 잘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억울하게 세속 세력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그 세력이 개인이든, 어느 단체든, 국가든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는 한 사건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같이 확인해 보십시다.
오늘 읽은 말씀에 등장하는 인간막대기는 앗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입니다. 주전 7세기 앗수르는 중동지역 대부분을 정복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에 이제 유다에게 항복을 요구해 왔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전 세계 어느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백성을 지킨 적이 있으냐 라고 말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이나 잡신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의 왕은 믿음이 좋기로 소문난 히스기야였습니다. 산헤립의 위협을 듣고 그의 편지를 받은 유다 왕 히스기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귀를 여시고 그 위협하는 소리를 들으시며 눈을 뜨시고 그 위협하는 편지를 좀 보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과 대답은 우리가 시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시 86:7)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자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에게 예루살렘이 너를 비웃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하나님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향해 소리친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왕하 19: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그날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죽였습니다. 자, 여기서 퀴즈입니다.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죽일 때 천사 몇 명이 갔을까요? 천사는 한 명일까요? 어려 명일까요? 성경에는 천사는 단수로 나옵니다. 즉 천사는 한 명입니다.
천사 한 명이 185,000명을 하루 밤 사이에 죽였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하나님이 훅 불면 75억 인구가 바로 죽습니다. 하나님이 훅 불면 어떤 권력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교회를 억울하게 하고 부당하게 대우하고 비방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끄럽게 멸망할 것입니다.
시편에는 아름다운 노래도 있지만 하나님의 원수들을 향한 저주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편을 읽으면서 그런 고민을 해 보지 않으셨나요? 어떻게 이런 저주가 성경에 들어있을까? 성도가 어찌 이렇게 저주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께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들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코지하는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79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시 79:12)
사도행전 7장에는 초대교회 시절에 유대인 청년들이 스데반 집사에게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씌워 돌로 쳐 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청년들의 대표자 노릇을 한 사람이 신분도 상당히 높고 공부를 많이 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그렇게 한 것은 예수는 신성모독죄를 지어 사형당한 사람인데 그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하고 그 예수가 메시아라고 선전하고 다니는 사람도 신성모독죄를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성도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재판해서 죽이는 일을 계속하다가 어느 날은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까지 성도들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 일행 앞에 예수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낮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나타나시자 사울은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사울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교회와 성도를 박해했는데 예수님은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심으로 박해받는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비방했을 때 하나님은 네가 전능자를 비방하였다고 하신 것처럼 사울이 성도들을 박해할 때 예수님은 네가 ‘나를’ 박해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은 사울을 죽이는 대신에 전 세계에 다니면서 예수님이 바로 구원자라는 사실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고 결국 순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울이 원래 공부를 많이 했기에 그가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들이 우리가 믿는 교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낸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몰랐기에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신 후에 전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산헤립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으니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매우 어렵습니다. 정부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국민들에게도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욕을 먹지만 잘못이 없는 것까지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시 69:4)
그러나 이렇게 부당한 대우와 억울한 비방을 당하더라도 교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손가락으로 눈동자를 한번 만져 보세요. 반드시 눈꺼풀이 막아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눈동자같이 보호하십니다. 반드시 원수를 갚아 주시고 결국 승리하게 하십니다.
(시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박해를 당한 로마교회는 결국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조선말기 정부의 박해도 이겼고 일제강점기의 박해도 이겼고 공산당의 박해도 이겼습니다. 중국교회는 마오쩌뚱의 문화대혁명 이후 다 망한 줄 알았더니 덩샤오핑 시대에 개방하고 보니 두 배로 부흥해 있었습니다. 이제 궁금한 것은 북한교회입니다. 북한교회는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북한에는 적어도 가짜 크리스천은 없고 오로지 강철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만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70년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북한교회를 열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북한교회와는 달리 대한민국에는 스티로폼 같은 교인이 너무 많습니다. 건드리면 부러지고 입김에도 날려가는 스티로폼으로 건물을 세울 수 없듯이 연약한 교인들로는 천국 건설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탈탈 털고 계십니다. 쭉정이를 날려버리고 알곡만 남기고 계십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망할 수 없듯이 교회는 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불의와 부정으로 권력을 가진 세상 세력이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앞에는 심판과 멸망이 기다립니다. 그렇다고 평안하기만 한 교인도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의 징벌을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지금 고난 받는 저와 여러분이 바로 복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시 94: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요즘 뉴스를 보면 누구는 아빠 찬스를 사용했고 누구는 엄마 찬스를 사용했다고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성도들은 아빠찬스, 엄마찬스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빠 찬스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바로 성도들입니다. 성도는 아빠 빽이 든든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공동 운명체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건드리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과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 성도는 이렇게 아빠 찬스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공동운명체라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할 때는 뻔뻔하게 하세요. 뻔뻔하게 기도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그 믿음으로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이겨내고 강철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을 삼은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