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의 비결
동장군이 세월에 떠밀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터치하고 서서히 제 자리를 내주던 어느 봄날, 황량하기만 했던 주택 텃밭에는 봄의 교향악 연주를 위하여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며 서로서로 튜닝(tuning)하듯 분주했다. 한 귀퉁이에 호박도 그렇게 봄의 왈츠곡 준비하느라 간간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앙증맞은 잎새들이 춤을 춘다. 바람 타고 날아온 호박씨가 남몰래 이 밭에 터를 잡고 때가 되니 이렇게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달이 바뀔 때마다 성큼성큼 그놈의 성장 발걸음 소리는 요란하고 어느새 점령군처럼 그 작은 밭을 뒤덮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디든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어오른다. 출발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거침없이 벋어가는 그놈의 행보가 놀랍기만 하다. 그 모습에서 일취월장(日就月將) 승승장구(乘勝長驅) 괄목상대(刮目相對) 일진월보(日進月步)란 단어들이 연상된다. 꿋꿋하게 올라간 그곳에 아주 실실한 호박 열매를 토해냈다. 그 열매를 보니 그놈의 정체는 단호박이었다. 그 여세는 쉬지 않았고 계속 벋어가다가 또 하나의 단호박 하나를 만들어 놓고는 말도 없이 널따란 호박잎으로 고이고이 감싸놓아서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귀한 열매를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모습이 꼭 손주를 사랑하는 할아비의 마음 같다. 그만하면 쉴 만도 한데 여전히 꺾기지 않는 그 기세를 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꿋꿋이 달려가는 사도의 마음이 겹쳐진다. 이렇게 미천한 식물(植物)은 가끔 호박밭을 찾는 이 무면허 농부에게 하늘의 가르침이 담긴 침묵의 음성을 들려준다.
호박은 박과에 속하며 원산지는 아메리카와 멕시코로 추정한다. 흔히 호박 종류로 단호박, 애호박, 늙은 호박이 있고, 땅콩 호박, 쥬키니 호박, 밤 호박 등도 있다. 호박에는 카로틴, 베타카로틴, 미네랄, 식이섬유, 각종 비타민, 탄수화물 등의 성분이 풍부해서 항암, 면역력 강화, 피부미용, 위 기능 강화, 혈액순환, 동맥경화 및 노화 방지, 눈 건강에 좋은 식물로 알려졌다. 특히 펙틴 성분은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에 매우 좋아 우리 몸의 독소를 제거하여 부종을 빼주는데 탁월하다. 호박을 해독이란 뜻의 ‘pumpkin’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런 효능과는 달리 호박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아쉽다. 속담 ‘호박씨 까다’는 안 그런 척 내숭을 떨면서 몰래 나쁜 짓을 하는 짓을 뜻한다. ‘호박꽃도 꽃이냐’는 속담은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게 활짝 핀 노란색의 호박꽃이 못난 여자를 비유하는 비속어로 사용된다. 동요 ‘사과 같은 내 얼굴’ 중에서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다는 가사를 부르며 성장한 세대들의 심저(心底)에는 호박 같다는 말이 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호박의 효능을 알았다면 그런 마음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게다가 벋어가는 그 모습은 번성(繁盛)하는 용기를 북돋고 있으니 더욱 귀한 식물임을 깨닫는다. 번성은 태초에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첫 번째 약속이다. 그 복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무심코 호박넝쿨을 보면서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호박의 꽃말이 해독, 광대함, 포용이라고 하니 호박에 잘 어울리는 작명이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약속하신 번성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호박은 함부로 천하게 여길 식물이 아니다.
호박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로 구성된다. 뿌리의 중요성을 자세하게 언급한다면 분명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모든 식물처럼 뿌리와 연결되지 않은 호박은 기대할 수 없다. 호박의 뿌리는 두 개인데 원뿌리(原根)와 땅 윗 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막뿌리(支根)다. 저 멀리멀리 벋어가는 줄기는 원뿌리에서 거리가 멀어서 영양분이 거기까지 전달되기가 어렵다. 창조주는 중간중간에 줄기가 땅에 닿으면서 막뿌리들이 생겨 저 멀리 벋어가는 줄기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하셨다. 사람도 뿌리와 잘 연결되어야 번성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하나님은 천하 만물의 시작이시다. 당연히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뿌리가 되시고, 시작이요 처음이시다.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는 인류의 뿌리가 첫 사람 아담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전한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누가복음 3:38). 삶의 번성은 반드시 하나님과 깊은 연결이 되어야 이룰 수 있는 약속이다.
호박이 저 멀리, 저 높이 벋어나갈 수 있는 광대함과 번성의 비결은 뿌리 말고도 하나 더 있다. 그 멀리까지 벋어나가도록 든든하게 붙잡는 넝쿨손이다. 넝쿨식물에는 모두 이 손이 있다. 넝쿨손의 임무는 주변의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주저하지 않고 확실하게 붙잡는다. 그 큰 호박의 무게를 견딜 만큼의 강력한 악력(握力)과 장력(張力)을 가지고 있다. 한번 그 손은 벋치고 휘감기만 하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그 강도가 놀라울 정도다. 무엇이든지 꼭 붙들고 나가는 이 넝쿨손은 호박을 광대하고 번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호박은 번성의 복을 받으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꼭 붙잡고 의지할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호박의 넝쿨손처럼 하나님을 꿋꿋하게 붙잡고 있을 믿음의 손은 악력이 든든한가? 담장을 넘는 호박처럼 좁은 땅에만 머무르지 않고 넓은 세계를 무대 삼고자 꿈을 꾼다면 당장 전능하신 하나님을 꿋꿋하게 붙들 믿음의 손을 점검해 봐야 한다. 번성해야만 그다음으로 충만과 정복으로 이어진다. 비로소 세상을 통치할 지도자가 된다. 번성은 모든 복의 출발이다. 넝쿨손을 가진 애굽의 총리 요셉처럼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꼭 붙들어야 번성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내 작은 텃밭에서 오늘도 씩씩하게 자라나는 호박을 보면서 새삼 번성의 비결을 묵상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장을 넘었도다”(창세기 49:22).
호박의 넝쿨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