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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셉 사람 엘리야와 왕후 이세벨(여호와와 바알의 갈멜산 전투)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왕상 19:0)
아합왕과 결혼으로 왕후가 된 이세벨은 시돈의 우상 바알을 이스라엘 전역에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이 왕이 되기 1년 전에 먼저 선지자 한 사람을 세웁니다. 이 선지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왕들이 죄를 범할 경우 이렇게 선지자를 세워서 일을 하십니다. 엘리야는 구약의 여러 선지자 중에서도 바알 추종자들에게 직접적이고 강한 대응으로 맞선 지도자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을 섬기면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 말은 비를 주는 신은 바알이 아니고, 여호와라는 것을 바알 추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비를 주지 않으시면, 오랜 기간 가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야고보서는 이 기간을 3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사렙다(사르밧)로 갔습니다. 사렙다는 바알 신봉자들이 들끓는 해안 도시 두로와 시돈 사이에 있습니다. 거기서 한 과부를 만났는데, 이 여인은 가뭄으로 끼니조차 구하기 어려웠지만, 한 줌의 가루와 기름을 그에게 내어놓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부의 믿음을 따라 엘리야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어놓은 한 줌의 가루와 기름이 비가 올 때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왕상 17:16). 그리고 아들의 질병까지 고쳐 주셨습니다(왕상 17:22,23).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시고, 이를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이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눅 4:25,26).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사렛 회당 사람들에게 시돈 땅,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는 모욕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절벽으로 밀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알려준 가뭄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아합왕은 엘리야의 경고를 듣지를 않았으며(왕상 18:17), 악녀 이세벨은 바알 추종자를 내세워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고 있습니다(왕상 18:4,13).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그런즉 사람을 보내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 18:19)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왕상 19:22)
여호와를 섬기는 엘리야와 바알 신을 추종하는 이세벨의 영적 대결이 갈멜산에서 벌어집니다. 이것이 유명한 갈멜산 전투입니다. 물론 이 전투에서 바알 신은 비를 오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이 3년 6개월 동안 계속된 가뭄에서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이 전투에서 여호와가 이겼고, 이세벨 추종자들은 모두 죽습니다(왕상 19:1).
엘리야는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시자 마차를 타고 아합이 있는 이스르엘로 달려갑니다(왕상 19:45,46). 하나님이 응답하신 소식을 아합에게 알려주고 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급하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듣지를 않습니다. 악녀 이세벨은 자기의 추종자들이 죽자 마음이 더 강퍅하게 되어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바알 신에 물이 든 종교는 기적을 보고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종교나 이념은 재활용도 하지 못하므로 쓰다가 버리는 고철 덩어리보다 못합니다.
갈멜산 전투와 기적의 역사성
갈멜산 전투는 비를 주관하는 신이 여호와인지 바알인지를 가려내는 대결이었습니다. 비를 내리는 것이나 가뭄은 자연 현상의 하나인데 이렇게 신의 이름을 걸고 대결하는 것은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 신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서 이런 기사와 이적을 계획하시고, 이를 실제로 보여 주셨습니다. 3년 6개월의 가뭄과 흉년은 바알 신을 받아들인 북쪽 사마리아 지역에 있었던 현상입니다. 그 지역이 시돈과 두로에 가깝고, 그 지역에 바알 신을 추종하는 자들이 많으므로 하나님이 이 지역을 한정해서 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뭄에도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사렙다 과부에게는 하나님이 먹을 것을 공급하셨고, 그 아들의 죽을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왕상 18:22). 엘리야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살았던 가난한 한 과부를 찾아가서 여호와가 맡긴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기간은(왕상 18:1) 사렙다에서 보낸 3년과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 산 기간을 합치면 3년 6개월 기간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에도 3년 6개월 동안 비를 오지 않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약 5:17). 비를 오게 하거나 멈추게 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정하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3년 6개월 간 흉년이 들었을 때 엘리야가 오직 사렙다 과부 한 사람만 찾아가서 구제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눅 4:25,26).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은 기적 하나에도 우연이 없습니다. 그 기적은 백성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어 있고, 현실성과 역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은 우연이 아니며, 신화도 아니어서 이처럼 시간과 장소를 따라서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한 3년 6개월의 기적은 더 큰 기간과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70 이레(단 9:24)와 예수 그리스도의 30회 희년 선포(눅 4:19)의 성취가 3년 6개월의 기간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1,260일 간 비를 내리지 않을 권세를 가진 예언자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계 7:11). 곧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하여 일을킨 3년 6개월 기간의 기적은 주전 870년경 일어난 사건으로 그친 것이 아니고, 시간과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물론, 미래의 어느 한 시기까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 중에 바알 신 추종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대응을 한 선지자입니다. 사무엘은 선지자라고 해도 직분은 제사장과 사사직을 겸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선지자 역할만을 수행했으며, 바알을 추종하는 왕과 왕후에게 가장 강력하게 대응한 선지자입니다.
엘리야에서 엘리사로(엘리야 -> 엘리사 -> 제자들 ...> 세례 요한)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6)
그리고 엘리야는 자신이 수행한 선지자의 역할을 후계자 엘리사를 세워서 넘겨줍니다(왕상 19:19~21, 왕하 2:1,2).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후계자가 될 제자(생도)들을 길러서 함께 활동을 했습니다(왕하 2:3,5,7,15, 4:38). 이것은 선지자 역할을 한 사무엘이 고향인 라마 나욧에서 후진들을 가르친 것과 비슷합니다(삼상 19:18~24). 열왕기하 2장을 보면 엘리야가 후계자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에게 역할을 인계할 때 물이 갈라지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이처럼 선자의 역활의 인수와 인계는 거창했습니다. 이처럼 왕들은 디셉 사람 엘리야에 비하면 잽(jap)이 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아들의 병을 고쳐 주고, 기업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왕하 4:17, 8:3,6). 이것은 희년법 취지대로 한 가계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여 혈통과 기업을 잇게 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도 낫게 했습니다(왕하 5:14). 이때 나아만이 엘리사의 사자에게 노새에 실을 흙을 “한 바리” 달라고 하는데, 개역 개정 성경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요구하는 번역을 했습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과 시돈의 여인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한 나사렛 회당 사람들에게도 전했습니다.
주) 열왕기하 5:17에 나온 “바리”는 히브리어 "쎄메드"이며, 소나 말의 등 양쪽에 나누어 실은 짐을 헤아릴 때 사용하는 단위이고, 순수한 우리말이다. 곧 ‘바리’는 영어로 ‘a pair(한 쌍)’, 신 ‘한 켤레’와 같이 짝수로 성립하는 수를 세는 단위다. 열왕기하 5:17에서 “바리”는 의역을 하려면 “두 마리에 실을 흙”을, “한 마리에 실을 흙”으로 번역해야 했다. 두 마리, 한 마리가 큰 의미는 없지만, 성경 원본이 환경이 바뀌면(농경 생활에서 도시 문명으로) 생활용어가 희석, 변질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이기에 지적을 해 보는 것이다. 이런 작은 것이 커지다 보니 주기도문에서 “빚”이라는 경제 용어가 “죄”나 “잘못”이라는 정신 용어로 뒤바뀌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이처럼 바알 신이 들어온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임을 받은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은 엘리사에게 넘겨졌고, 다시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계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보는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계보를 직접 잇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선지자의 사역이 필요할 때마다 반차를 정하여 세우듯이 선지자를 불러서 사역을 맡깁니다. 엘리사의 뒤를 이은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요나와 요엘, 아모스와 호세아 등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선지자의 역할이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까지 이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말 4:5,6). 세례 요한은 말라기 예언대로 그 역할을 수행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직접 소개한 선지자입니다(눅 1:15~17).
이처럼 선지자들도 혈통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처럼 한 시대의 대표자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섬기는 역사적 흐름과 하나의 일관된 속성을 보여주는 계보를 가집니다. 물론 이 선지자 계보는 가계의 족보처럼 혈통을 잇는 것은 아니며, 기간도 연속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때와 시대 상항을 따라 필요할 때 세우는 불규칙적인 계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처럼 구원자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그 역할이 그치지 않고, 그 계보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서 그 역할을 넘겨 주게 됩니다(눅 3:16,17). 이런 선지자의 계보를 북이스라엘과 관련된 선지자의 이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지자의 계보> 사무엘 -> 엘리야 -> 엘리사 -> (엘리사의 제자들) --> 아모스 --> 호세아
<오므리 왕조의 계보> 오므리 -> 아합 -> 아하시아 -> 요람 -// 멸족하고 예후 왕조로 바뀜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행위(악행)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왕상 21:2)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왕상 21:3)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왕상 21:16)
아합왕은 주전 874년부터 주전 853년까지 22년 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아버지 오므리는 모반으로 정권을 잡았고, 아들 아합은 시돈의 왕녀 이세벨과 결혼으로 나라의 힘을 키웠습니다. 사마리아성도 건축하고 경제로는 부국이었으나 이세벨이 들여온 신 바알로 인하여 북이스라엘은 병이 들고 있습니다.
아합왕이 있는 왕궁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요셉 지파의 영토, 사마리아에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가 세멜에게 매입한 산지입니다. 오므리가 사마리아에 성읍을 건축하여 불타버린 디르사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습니다(왕상 16:17,23). 아합은 이곳에 바알 신전을 지어서 제단을 쌓고, 젖가슴이 풍만한 아세라상도 만들어 세웁니다(왕상 16:32,33).
그런데 본문에서 나봇의 포도원은 사마리아에서 약 40km 떨어진 이스르엘에 있습니다. 지금도 40km이면 제법 먼 곳이므로 여기에 아합궁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이곳에는 아합의 별궁이거나 휴양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합이 사마리아 왕궁에서 필요한 채소의 생산지로 이스르엘 포도원을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본문에서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왕이 거처한 별궁에서 가깝게 있다고 합니다. 아합왕은 왕권과 세력이 커지자 별궁에 있는 신하들을 위해 채소밭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그 포도원을 구입하려고 나봇에게 제안을 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에게 주면 더 좋은 포도원을 줄 것이고, 팔기를 원하면 값을 쳐서 매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토지의 매매를 금지하는 레위기 희년법을 따라 아합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나봇에게 거절을 당한 아합이 식사도 못하고 수심에 찬 것을 본 왕후 이세벨이 나섭니다. 이세벨이 자란 시돈 땅은 바알 신을 섬기며, 바알법을 따라서 토지 매매가 자유롭습니다. 더구나 왕의 제안을 백성이 거절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금식을 선포하게 하고 비류들을 부릅니다. 비류들에게 나봇이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증거와 누명을 씌워, 나봇과 그의 아들까지 돌로 쳐서 죽게 했습니다(왕상 21:13, 왕하 9:26). 그리고 나봇의 죽음을 왕에게 고합니다. 아합은 나봇의 죽음 소식을 듣고 곧바로 포도원을 차지합니다(왕상 21:16).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렇게 전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에 피도 햝으리라(왕상 21:19)”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예후의 혁명에서 오므리 후손들, 이세벨 시체의 피가 이스르엘 포도원에 흘러서 개들이 햝으므로 성취되었습니다(왕하 9:25,26,34,36,37). 아합은 엘리야의 지적으로 회개하였기 때문에 바로 죽지는 않았으나, 이 죄로 인하여 오므리 왕조는 4대만에 멸족하게 됩니다(왕하 9:8).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아합과 이세벨의 합작으로 벌어진 나봇의 포도원 탈취 사건입니다. 이처럼 바알 신 숭배자 이세벨은 잔인했고, 그 신을 받아들인 아합은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성경에서 이들의 행위는 오므리 왕조가 저지른 최대의 악행이므로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행위(미 6:16)”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왕들에게는 따라 붙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라고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희년법과 왕들의 토지 거래에 대하여
<아브라함>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창 23:13)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창 23:20)
<야곱>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 33:19,20)
<다윗>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역상 21:24)
<오므리>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서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왕상 16:24)
<아합>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내게 주리라(왕상 21:2)
<나봇>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왕상 21:3)
레위기 희년법은 가족에게 분배된 기업이 영구로 존속하도록 소유와 매매를 금지했습니다(레 25:23). 그리고 토지를 경작하다가 자금이 필요하면 분배받은 토지의 사용권을 팔아서 자금을 융통할 수는 있습니다(레 25:15,16). 이런 경우 속량이 필요합니다(레 25:24). 곧 성경의 희년법은 속량을 하지 못하게 되는 토지의 소유권 거래와 영구 매매는 거래를 금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합의 제안을 받은 나봇이 왕의 제안에도 거절을 한 것은 여호와가 세운 희년법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역대의 족장이나 왕들을 보면 목돈을 치르면서 필요한 토지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로, 야곱은 단을 쌓기 위해, 다윗왕은 성전을 지을 부지로, 오므리도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이런 토지 거래는 모두 희년법이 정한 시한부 사용권 거래가 아니고, 영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거래입니다. 희년법은 토지에 대해 영구적 상속권만 인정하고 소유권과 영구 매매는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족장과 왕들의 토지 매입이 희년법과의 관련성 또는 위법성 여부를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헷 족속인 에브론에게 매장지를 매입했습니다(창 23:5,10). 이때는 아직 희년법이 제정되기 전이므로 희년법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토지를 팔지 않고 무상으로 주려고 합니다(창 23:6). 그러나 아브라함은 굳이 토지를 매입하겠다고 하면서 은 400세겔을 주고 매입합니다.
야곱도 세겜에서 하몰의 아들에게서 밭을 사서 제단을 쌓습니다(창 33:19,20). 밭을 팔은 하몰의 아들들은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하여 레위와 시므온에 의해 살육을 당하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레위인은 생업용 기업은 얻지를 못하고 흩어져 살게 됩니다(창 49:5~7, 수 21:1~3). 야곱은 세겜에서 영구 거주를 할 생각이 있었으나 아들들이 일으키 사건으로 다시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 이 당시 하몰이 야곱에게 기업을 매입하며 그곳에 살라고 하는 것을 보면(창 34:10, 21), 세겜 땅은 소유권 거래가 관습인 사회입니다.
그다음 다윗왕이 성전부지를 매입한 것도 아브라함과 비슷합니다. 이때 토지 소유자는 여부스 족속 오르난(아라우나)입니다(삼하 24:18). 오르난은 토지를 무상으로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결단코 돈을 주겠다면서 은 50세겔(삼하 24:24) 또는 금 600세겔(대상 21:25)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구입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값이(희생이) 있어야 한다면서 고액의 값을 지불합니다. 하나님은 이에 응답하시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할 때 시작한 이스라엘의 재앙이 그치게 됩니다(삼하 24:25).
주)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 매입대금은 삼하 24:24는 50세겔, 대상 21:25는 금 600세겔이라고 하여 큰 격차가 나고 있다. 이것은 일부에서 은 50 세겔은 토지 매입에서 계약금(선금)으로, 금 600 세겔은 매입대금 총액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 50세겔과 금 600세겔은 금 50세겔과 은 600세겔을 서로 바꾸어 기록한 필사자 오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 당시 금과 은은 15:1의 가치 차이를 가짐). 이런 차이는 성경을 보존해 내려오는 긴 역사에서 필사자의 오류나 번역 또는 해석의 인식 차이로 생긴다. 필사자의 오류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왕이 될 때 나이를 8세(대하 36:9) 또는 18세(왕하 24:8)로 다르게 기록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번역상의 오류나 인식 차이는 왕하 5:17에서 노새에 실을 양쪽 등짐의 단위 “바리”를 “(두) 마리”로 번역한 것과 마태복음 6:12(눅 11:4 포함)에서 “빚”을 “죄”나 “잘못”으로 번역한 경우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부분적 불일치가 있어도, 성경 전체의 일관된 내용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경전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기서 발견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공통점은 토지 매입 대상자가 이방인이라는 것이며, 이들이 값을 받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창 23:11, 삼하 24:23).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왕은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래를 확실하게 하여 뒷날 있을 수 있는 토지의 소유권 문제를 없애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고, 다윗은 토지 거래보다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을 먼저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이 문제를 길게 다루고 있는 이유는 오므리가 구입한 사마리아의 땅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 오므리왕은 세멜에게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산지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오므리에 대하여 바로 악을 행하였다고 노여워하십니다(왕상 16:25,26). 또 나봇은 아합왕의 토지 거래의 제안에 대하여 여호와가 금하신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해 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토지 매입은 하나님이 수용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므리나 아합왕의 토지 매입,제안에는 하나님이 동의하지 않았고, 오히려 격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에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었고, 오므리와 아합은 바알 신을 섬기고 악한 왕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다수가 알고 있는 일반적 견해입니다. 또 이 견해는 틀린 것이 없으며,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면,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거나 제물을 위한 희생 제물이나 성전 건축을 위한 부지는 토지 거래에서 희년법을 어겨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아합왕이 나봇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토지 매입 또는 대토(代土)를 제안했을 때, 이것이 선한 목적이었다면, 이 제안을 거절한 나봇의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는 신앙 문제로만 풀려고 하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됩니다. 물론 필자도 다윗의 토지 매입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재앙을 그칠 만큼 인정을 하시되, 오므리와 아합의 토지 매입에는 이토록 분노하셨는지, 아직 그 현실적 이유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왕들의 토지 매입과 희년법의 저촉성 여부
족장들과 왕들이 거래하는 토지 매입 사례를 보면 이방 족속들, 특히 바알 제도는 토지의 자유 매매를 허용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스라엘은 토지의 자유 매매를 희년법으로 금지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년법이 있음에도 족장이나 왕들이 토지의 소유권을 거래한 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족장들과 다윗왕의 토지 매입은 묵인을 하거나 인정하고, 오므리와 아합왕의 토지 매입은 격한 감정으로 대응하십니다. 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추정해 보고 있습니다.
1) 오므리와 아합은 우상숭배는 물론이고, 정치적 행위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사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른 믿음을 가진 자는 도로에서 역주행을 해도 된다는 말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아브라함의 매장지 매입은 아브라함이 아직 자기 기업을 갖지 못하고, 유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헷 족속의 권리에 속한 토지 매입은 부득이 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그 토지 매입을 묵인 또는 인정하신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야곱의 토지 매입도 이와 비슷합니다.
3) 다윗이 매입한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일찍이 아브라함이 100세에 난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받쳤던 그 모리아산입니다(창 22:2). 이것을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삼하 6:7, 대상 11:5),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여부스는 유다 지파나 베냐민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여 예루살렘은 장기간 그들에게 점령을 당하고 있었습니다(수 15:63, 삿 1:8,21). 그러므로 오르난의 타작마당 매입은 의미가 컸습니다.
4)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앞으로 성전이 들어설 자리입니다. 성전은 제사장이나 성전 봉사자의 신분을 가진 레위인이 관할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이 타작마당은 농지 일부이겠지만, 성전을 짓고 나면 그 성전과 부속 토지는 레위인의 기업으로 바뀔 곳입니다. 그리고 희년법은 레위인의 들판(텃밭)은 다른 지파의 기업과 다르게 사용권 거래도 금하고 있습니다(레 25:34). 그래서 하나님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대한 거래는 일반 희년법과는 적용을 달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타작마당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대하 3:1).
그러나 여부스는 다윗이 정복한 지역인데 그 땅을 피정복자의 위치에 있는 여부스 족속 오르난에게 목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다윗이 정복한 여부스 전역(삼하 5:7)은 매입하지 말고 성전 지을 부지만 남기고 분배를 해야 합니다. 정복한 여부스 지역은 여호수가 토지분배를 한 것처럼 여부스(예루살렘)에 거주할 주민에게 재분배를 했어야 합니다. 이러면 성전 지을 부지(오르난의 타작마당)는 목돈을 치르지 않아도 해결이 됩니다. 물론, 다윗의 토지 거래는 경제적 의미보다 하나님께 드릴 희생 제물의 가격이며, 거룩한 성전을 짓기 위한 봉헌물이었다고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므리의 사마리아 산지의 매입은?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24,25)
오므리가 세멜에게 구입한 사마리아 산지는 에브라임 산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관할권 내에 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이곳에 사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수 16:10, 17:12). 이들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종교를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가 소속한 북쪽 이스라엘 곧 사마리아 전역에서 우상숭배가 심했습니다. 사마리아는 페니키아의 상업 신, 바알의 본거지인 시돈과는 도로가 있어서 지리상 가깝습니다.
오므리가 다윗왕의 경우처럼 토지를 산지를 매입하여 성읍을 건축해도 사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지가 된 오르난의 타작마당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과는 제사를 따로 하여 벧엘과 단에 제단을 두었고, 수도는 외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세겜에서 디르사, 사마리아로 옮기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산지의 주인 세멜도 가나안 원주민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땅이 어떻게 세멜의 소유가 되었는지, 그리고 희년법이 금지한 소유권 매매가 가능한지가 의문입니다.
사마리아 산지는 평지보다 90m 높은 가파른 언덕이며, 그 언덕 위에는 60만 m2의 넓은 평지가 있습니다. 추정컨대 높은 급경사 지대이므로 가나안 진입 당시는 방치된 땅이었거나 목초지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 지역의 지리를 잘 몰라서 확실하지 않지만, 이 사마리아는 레위인에게 분배된 목초지나 도피성이 있었던 에브라임 산지로 보이기도 합니다(수 20:7, 21:21). 여호수아서 11:7에서 말하는 레위인의 기업으로 분배한 세 언덕(높은 곳) 중 므낫세 지파의 영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가나안 진입 당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쫓아내지 않아서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던 곳일 수도 있습니다.
세멜은 이 넓은 산지가 방치된 지역이거나 레위인의 목초지, 아니면 가나안 진입에서 남아있던 가나안 족속의 점유지를 자기가 개척하여 소유지로 삼은 것이기에 그 땅의 소유권을 오므리에게 고가로 팔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므리의 통치 시기에는 이 지역이 높은 언덕이라서 외세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있었고, 그 위는 넓은 평지라서 성읍을 건축하기도 적합했습니다. 다만, 사마리아 산지는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당시 사마리아 지역에 3년 6개월간 비를 내리지 않으신 것도 이 지역의 자연조건에 맞춘 징계이었을 것입니다.
오므리는 이 사마리아를 은 두 달란트에 매입합니다. 은 1달란트는 그 당시 단위로 34.27kg이며, 신약시대 초기 시세로 6,000데나리온, 구약시대 그 당시는 10,0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노동자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으로 보면(마 20:2,9), 두 달란트는 10억원이 넘는 고가격입니다(그러나 그 당시 은의 가격을 지금 가격과 오해하여 사마리아를 헐값으로 매입했는 주장도 있음).
그런데 희년법으로 보면, 이러한 고가격의 토지를 세멜이 소유하고, 그것도 영구 소유권을 오므리에게 매매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셉 지파가 쫓아내지 못해 분배하지 못한 땅이면, 이를 정복하였으니 요셉 지파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이곳이 레위인의 목초지나 도피성이 있었던 곳이면, 이 땅은 세멜이 불법으로 점유한 땅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레위 지파를 제사장과 제단 봉사자로 인정도 하지 않는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오므리가 이 땅을 사서 성읍을 건축하면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은 그 목초지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또 사마리아 산지가 레위인에게 분배된 목초지가 아니었더라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곧 오므리의 통치는 그들이 세운 사설 제사장으로 인하여 레위인의 역할이 없었고, 그들의 기업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마리아 산지를 세멜의 기업으로 인정을 한다고 해도 희년법은 그 땅의 권리는 영구적 경작권과 상속권만 인정을 해야지 오므리에게 소유권까지 팔아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나봇의 경우를 비교해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봇은 토지 소유권 거래는 왕의 제안이라도 여호와가 금지한다면서 즉석에서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므리가 세멜에게 구입한 사마리아 산지는 경우의 수를 모두 살펴보아도 희년법을 위반한 불법 거래나 부당 거래입니다. 이와 같이 오므리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처럼 레위기 제사법도 어기고, 레위기 희년법도 정면으로 어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므리가 세멜에게 땅을 매입하자 곧 바로 강한 분노를 표출하십니다(왕상 16:24~26). 이처럼 하나님은 오므리 왕조가 바알 신과 바알 제도를 도입하여 희년법을 정면으로 어길 때 가장 강하게, 그것도 수차례 연속하여 격노하셨습니다(왕상 14:22, 15:30, 16:27,13,33).
희년법의 수호자와 파기자
오므리와 아합은 희년법을 파기한 오므리 왕조의 대표자들입니다. 이에 비하여 나봇은 일개 농부로 보잘것없은 신분이지만, 오므리 왕조가 파기한 희년법을 지킨 자입니다. 여호와의 법을 지키려다가 억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봇은 성경의 인물 중에 몇 명 안되는 “희년법 수호자”로 불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합이 통치한 시기는 주전 874년부터 853년까지 22년 기간입니다. 이 기간 안에 희년은 주전 857년이 12회 희년이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 나봇이 희년법을 지키다가 죽은 때도 이때와 시기적으로 비슷합니다. 사사시대 룻과 보아스는 주전 1102년 7회 희년을 20~30년 당겨서 준행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희년법 수호자입니다.
<희년법 파기자 오므리>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24,25)
<희년법 파기자 아합>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왕상 21:2)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왕상 21:16)
<희년법 수호자 나봇>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왕상 21:3)
하나님이 제정한 희년법은 이렇게 이스라엘 북쪽 왕들에 의하여 먼저 파기됩니다. 그리고 이 바알 신과 바알 제도가 북쪽 이스라엘에서 남유다로 넘어갑니다. 오므리의 4대손 요람이 남쪽 유다, 곧 남쪽 요람(여호람)을 사위로 삼아서 바알 신과 제도가 넘어갔습니다(왕하 9:16~18). 남쪽 유다의 왕 요람(여호람)은 악녀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남편입니다. 이렇게 바알 신과 제도가 남쪽으로 넘어가니 남쪽 유다도 희년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 무용지물의 희년법이 3,500년 역사를 흘러오면서 세상에 빛을 보지는 못하고, 성경으로만 남아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희년법을 파기한 바알 신과 바알 제도가 들어오는 때부터 선지자의 불을 뿜는 예언 활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디셉 사람 엘리사에서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까지 이어집니다.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 요한의 외침을 따라서 그 역할을 이어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눅 3:21,23).
그러나 "오므리의 율례"를 만들어 희년법을 어긴 '오므리 왕조'의 족보는 4대손에서 바알을 청소한 예후 왕조의 등장으로 멸족합니다(열하 10:18~36). 이때부터 성경 구속사의 중심축은 왕들의 계보보다 희년법 준수를 요청하는 선지자의 계보와 희년법을 지켜서 족보가 끊어지지 않은 나단 계보로 옮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 남북에서 한 두 사람을 뺀 거의 대부분의 왕들과 이방의 5대 제국(앗시라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왕들은 모두 희년법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성경에 이름들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희년법과 누가복음 족보로 이어가는 하나님의 구속사로 보면, 들러리 사용자로 쓰기도 어려운 방해꾼들이었습니다.
<선지자의 계보> 사무엘 -> 엘리야 -> 엘리사 -> (엘리사의 제자들) --> 아모스 --> 호세아
<오므리 왕조의 계보> 오므리 -> 아합 -> 아하시아 -> 요람 ->// 멸족하고 예후 왕조로 바뀜
아마도 미래에 희년법이 이 땅에서 실현된다면, 이런 희년법 수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하며, 나라를 통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희년법 파기자들은 구원을 받았으면 함께 있기는 하겠지만, 왕 노릇, 백성 노릇, 종노릇으로 구분된 사회에서 어느 하나의 신분으로 세상 끝날(?)이 올 때까지 살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레위기 제사법과 희년법에 따르면 속량으로 받는 구원은 무료이지만, 그에 따른 상급은 속량의 믿음과 순종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후손들의 족보, 이스라엘 토지분배와 남북 분단, 바알 신의 정체 등은 앞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