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윤동재
한여름, 지금은 폐교가 된
안동 옛 임동동부초등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이 고추밭으로 바뀌어 있었지요
고추들이 모두 나를 보자 두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지요
베트남에서 시집왔다는 교문 옆집 아주머니
일하다 말고는 내게 다가와서
이곳은 아이들이 없어 오래전 폐교가 되었다고
우리말로 떠듬떠듬 얘기해 주었지요
교문 옆 늙고 큰 나무는 자기가 만든 그늘 속으로 들어오라고
뙤약볕에 서 있지 말고
어서 자기가 만든 그늘 속으로 들어와 얘기를 나누라고
나와 베트남 아주머니에게 손짓했지요
베트남 아주머니 말로는
고추들이 밤낮
무어라고 무어라고 외치는데
자기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지요
그 말을 듣고 내가 고추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더니
이오덕 선생님을 이곳으로 모셔와
글쓰기와 시 쓰기를 꼭 배우고 싶다고 했지요
꾸밈없이 정직하게 글 쓰고 시 쓰는 법을 꼭 배우고 싶다고 했지요
뽕밭이 바뀌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 보았지만
학교가 문을 닫아 운동장이 고추밭으로 바뀐 곳은 처음 보았지요
글쓰기와 시 쓰기를 꼭 이오덕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다는
고추들의 간절한 바람도 안동 옛 임동동부초등학교 터에서 처음 들었지요
*안동 옛 임동동부초등학교: 이오덕 선생이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시 쓰기 교육’을 온몸으로 실천한 대곡분교의 본교. 1996년 폐교되었다.
#고추 #폐교 #안동시 #임동동부초등학교 #베트남 아주머니 #글쓰기 #시 쓰기
첫댓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