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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는가. 몇 백 년 동안. 자연 마음속에 앙심이 솟아 엉뚱한 이씨 문중 대종가의 부인들, 반남박씨, 청주한씨를 비명에 잡아가고, 남양 홍씨 부인을 달아나게 하였다고 수군댔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청암부인의 초립동이 신랑 준의를 열여섯의 나이에 조세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조개가 그렇게 캄캄한 흙 속에 파묻혀 짓눌린 채 목이 말라 있으니 자손이 번성할 리가 없다고들 하였다. 산 속에 묻히는 것은 곧 죽음이고, 죽음은 무덤을 의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조개는 용궁의 신령님이라고도 했다. 그 신령님을 이제 종손부 청암부인이 구해 드렸다. 죽어가던 조개를 살려 내고, 그것도 세세생생 물속에서 살 수 있도록 넓으나 넓고 깊고 깊은 집까지 마련해 드렸으니, 이보다 더한 공덕이 어디 있으랴. 해원을 해 드린 것이다. 말랐던 조개에 물이 오르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을 안팎은 물론이요, 몇 십 리 바깥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정성을 드리러 조개바위를 찾아왔다. 그 치성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성을 드리고 난 떡과 밥, 음식들은 정갈하게 쪼개서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신령님도 잡수시고 신령님의 신하들인 물고기들이 먹으라는 정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나 공을 들이고 정성을 바치던 물속의 조개바위가 검은 등허리를 내밀어 버린 것이 한
달여 전의 일이다. 그때 인월댁은 안 서방이 조심스럽게 전하여 주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농사의 풍흉보다 훨씬 더 깊은 불길함을 그 속에서 느꼈던 것이다. 하늘받이 매안리에서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면 물이 마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저수지의 물이 마르니 그 속에 숨었던 조개바위 등허리가 솟아나고, 드디어는 누가 잡지도 않고 몇 십 년씩 신성하게 여겨 온 물고기들도, 물 바닥에 새까맣게 몰려 드글드글 뒤재비를 치며 흰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인월댁에게는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 왜 그랬던고. 나는 마치 무슨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그때 관수 공사를 서둘렀네. 내가 목이 타서, 꼭 무엇에 씌인 사람마냥 저수지를 팠던 게야. 숨이 넘어갔어... 헌데, 이듬해... 막바지로 공사가 치달아 마무리가 되려는데, 꼭 기다렸다는 듯이, 나라가 망했다, 하지 않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네.
하늘과 땅이 합벽을 하고 맷돌을 갈아, 천지가 캄캄한 일이었지.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남모르게 벅찬 희망이 샘솟았다는 것이야. 맷돌질 해 보면, 왜, 우아랫짝이 맞물려 돌면서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지만,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채 통째로 빠져 나오는 놈이 있지 않던가? 신기하지. 꼭 그 통밀이나 통팥, 녹두같이 또글또글 살아서 튀어나온 희망, 그것이 저수지였다. 그때 나는 믿었네. 우리 조선이 망했다 하지만, 결코 망할 수 없는 기운을 갈아서 여기 우리 매안이 저수지에다 숨겨 둔 것이라고. 남모르게 그득 채워 재워 놓고 우리를 살려 줄 것이라고. 예사로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다 뜻이 있지. 밖으로 난 숨통을 왜 놈이 막았다면, 한 가닥 소중한 정기는 땅 밑으로 흘러서 예 와 고인 것이라, 나는 확신했었네. 아무한테도 발설한 일은 없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내게 맡긴 이 물을 잘 간수하리라 다짐했어."
청암부인은 인월댁한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매, 저것이 혈이지. 혈."
그런데 지금 그 혈이 마르고 있는 것이다. 인월댁의 피가 마른다.
"청암마님 근력은 어떠시든가?"
인월댁은 안서방한테 그것부터 물었다.
"실섭을 허셌지요."
안서방은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실섭을... 언제부터..."
인월댁의 목소리가 툭, 꺼져 내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 안서방의 수그린 고개도 아래쪽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 인월댁의 얼굴빛이 바랜다. 그네는 진정을 하려는 것처럼 저고리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오그려 잡는다.
"실섭하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한 사날 되능만요."
"대서에."
인월댁은 손가락 마디를 짚으며 날짜를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예."
"어떻게?"
"그날 아침의 누우신 자리서 기양 못 일어나시고 말었답니다. 첨에는 아무도 그렇게 끄정 되신 중을 몰랐지요."
"그럼 오늘까지 벌써 나흘째나 되지 않었는가."
"예"
"그런데 왜 인제서야 그 말을 허는가? 그날로 올 일이지."
"일어나실지 알고요"
"원, 사람... 참"
인월댁은 쯔쯔 혀를 차고, 소식을 전한 안서방은 근심스럽고 송구스러운 낯빛으로 두 손을 맞잡고만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인월댁은 그 걸음으로 원뜸의 청암부인에게 서둘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뒤로도 지금 벌써 몇 차례인지 모르게 종가에 다녀온 것이다. 그네의 걸음걸이는 초조하고 빨랐다.
"이날 펭상에 질쌈만 허시제 덧문 한 번을 활짝 안 열고, 마당에도 제대로 안 나오시든 인월마님이 저렇게 자조 원뜸에 오르내리시능 거이 암만해도 청암마님 오래 못 사실랑갑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소복을 하고 아랫몰에서 원뜸 사이를 오르내리는 인월댁의 모습에서 까닭 모를 불안을 느낀 평순네는 놉들과 같이 중뜸의 고추밭을 매다가 공연히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날 펭상, 그림자맹이로 사시는 양반이..."
그것은 인월댁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인월댁은 청상의 과수도 아니면서 자신이 소복을 입기 시작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잊을 수가 없는 것만이 아니라 그날을 생각하면 뼛골이 사무쳐 왔다. 그날로부터 입기 시작한 올 굵은 무명옷 은, 살아있다 할 수 없는 그네의 반생을 그렇게 허연빛으로 표백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월댁은 원뜸의 청호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고샅을 훑고 지나간 다음에도, 한참 동안을 그렇게 찬 방바닥에 망연히 누워만 있었다. 미영씨 기름등잔의 빛이 바래어지는 것으로 보아 동이 트고 있는 모양 이었다. 인월댁은 기진한 듯 눈을 감는다. 청호 저수지의 물이 마르다 마르다 못하여 뻘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허옇고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다리를 걷어붙이고 소쿠리며 삼태기, 물통에 물고기를 건지는 모습 또한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뙤약볕이 하얗게 내리 쪼인다. 둥그렇게 드러난 조개방위가 뙤약볕을 받아 불덩어리처럼 달구어진다.
이글거리며 달구어진 조개바위가 타오르면서, 그 불길에 뜨겁게 끓어 넘치는 청호에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흡사 장바닥 같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손에 손에 횃불을 들고 있다. 불빛이 넘실거린다. 횃불이 햇빛을 가리운다. 햇빛이 가리
워지자 천지가 캄캄해지면서 관솔불, 횃불들이 어지럽게 쏟아진다. 가슴의 복판에 쏟아진 불덩이로 꺼멓게 뚫리는 인월댁의 가슴이 써늘하게 식는다. 달도 없는 깊은 밤이었지. 천지는 무거운 어둠에 쓸리며, 한쪽으로 기울어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소쩍새는 온 산에서 음울하게 울었다. 그 울음의 울림이 밤바람을 타고, 번뜩이는 방죽의 수면으로 젖어 내리었다. 봄이 흐드러질 대로 흐드러져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밤이면 그렇게 목이 갈라져 쉰 소리로 소쩍새는 울었다. 그 몹쓸 소리. 컴컴하게 핏속으로 잦아드는 소쩍새의 울음소리에 홀린 듯이 앉아서 해마다 몇 봄을 그렇게 그네는 쓰라리게 넘겼었는지. 내게 아무러면 소쩍새만한 한이 없으랴. 기미년, 그때 서른 살을 막 넘기었던 그네는 아무 미련도
없이 초가삼간을 나섰다. 그네가 시집이라고 와서 십여 년 동안을 의탁하였던 집이었다. 그 사립문을 지그려 닫고 허청허청 원뜸의 방죽을 향하여 걸어가던 인월댁은 어둠 속에서 초가를 돌아보았다. 집은 마치 벗어 놓고 온 신발처럼 봄밤의 어둠을 슬어 안고 있었다. 하기야 그네가 매안의 이씨 문중으로 오게 된 것 부터가, 기구하다면 기구하였고 억지라면 억지였다.
"사람의 한평생이란 뜻 같지만은 않은 것이네. 뜻밖의 일이란 항상 뜻밖에 일어나는 법 아닌가. 비록 지금은 이와 같이 서러운 신행을 왔네마는, 참고 살자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 것인가. 나도 빈 집으로 신행을 왔었네. 오속의 가까운 일가도 없이, 의지하고 살 사람 하나도 없는 집에 흰 옷 입고 왔었지. 이 사람아,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줄 아는가? 자네 나이와 꼭 같은 열아홉이었어. 나는 그때 ... 속으로 그랬었네... 얼굴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신랑을 두고, 죽지만 않았다면 좋겄다. 한평생 만날 일 없이 살어도 좋고, 평생토록 소식 한자 못 듣고 살어도 좋으니 어디서든지... 아무 곳에서라도... 나 모르는 어떤 곳에서라도... 살아만 있었으면 원이 없으련만... 하였더라네. 지금도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아. 목숨이 살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설움을 갚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더란 말일세."
(차라리 죽고 없으면 심정이 이와 같으리오. 청암아짐은 마음속에 한은 있으되 원이 없으시니, 원한을 함께 품고 있는 저와 같으시겠습니까?)
"내가 남의 일이라서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세. 사람이 살어 있으면 마음에 품은 원이건 한이건 대상을 삼을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주는 끈이 되는 것이야."
(그 끈이 나를 동여매고, 목을 조이고, 한평생을 속박하는 것은 또 어쩌리까? 지난 봄, 삼일운동에는 남원 읍내 온 사람이 다 나와서 목이 메이게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하더이다만, 나는 무엇에 묶여 있길래, 무엇에서 벗어나고자 이리하는 것이리잇가.)
"대상 없는 허공을 향하여 사는 것보다 더 고달픈 일은 없느니... 장애가 디딤돌 되는 일도 있으매, 묶여서 오히려 떠내려가지 마소. 비록 그 사람이 오늘은 여기에 없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집을 지키고 있게. 누추하나마 아랫몰에 초가한 채를 지어 놓았네. 나의 심정으로는 솟을대문에 기와 겹집이라도 얼마든지
지어 주고 싶네만,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여 일부러 저만치 아랫몰에 조촐하게 초가를 지었으니, 과히 섭섭히 여기지는 말게나."
그것은 옳은 처사였을 것이다. 과연 그것을 신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아홉에 신행을 온 인월댁을 앞에 앉히고, 청암부인은 마치 인월댁의 심경을 거울로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인월댁은 그때 하늘보다 높은 어른 앞이라 고개를 수그린 채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자신의 말을 새기고 있었다.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여인이 시집의 문중으로 들어온 것만 하여 도 소문거리이온데, 무슨 염치로 고대광실에 살겠습니까?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니 초가삼간도 제게는 바늘방석입니다. 오히려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람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일이지요. 친정에서 죽지 않고 시댁의 문중으로 들어와 죽는 것조차도 제게는 과분한 일입니다.)
"기서가 일찍이 조실부모해서 집안에 자네 시어른이 안 계시네. 자격은 없으나마 내가 그래도 명색이 종가의 종부로서 시어른 대신 기서 부모님의 흉내를 낸 것일세. 그리 알게나. 지금은 자네가 죄도 없이 근신을 허게 되었네만, 달리 또 어찌하겠는가. 일단 이씨 문중으로 들어왔으니 우리 같이 세월을 기다려 보세."
청암부인은 인월댁을 안쓰럽게 여기며, 집 한 채를 내려 주었다. 그때 청암부인의 나이 서른일곱, 인월댁은 열아홉이었다. 아랫몰의 개울가에 세워진 인월댁의 초가 토담 옆에는 각시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애잔하게 서 있었다. 그 개울을 경계로 저쪽은 거멍굴이었고 이쪽은 문중의 마을이었다. 열매도 탐스럽게 맺지 못 할 각시복숭아의 꽃잎은 무엇하러 그렇게 진분홍으로 고울 일이 있었던가. 기껏 설레게 꽃잎이 피어도, 결국은 도토리만한 열매를 맺고는 그만일 것이. 인월댁이 안서방네의 안내로 그 초가의 사립문을 들어서려 할 때, 복숭아 꽃잎은 하염없이 날리며 개울로 졌다. 물 위에 진분홍의 꽃잎이 물소리에 섞여 떠내려가던 그 밤에 온 산에서는 소쩍새가 그렇게도 음울하게 울었었다. 인월댁은, 신랑 기서가 잠깐 나갔다 올 것처럼 일어서서 장지문을 열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밟혔다. 사모관대도 벗지 않고 자색 단령 자락에서 휙 바람 소리를 내며 나가던 때의 그 써늘한 기운은 오래오래 인월댁의 가슴에 남았다. 그 기운은 가슴에 자리를 잡으면서, 살 속으로 파고들고, 뼛속으로 근을 내렸다. 기서는 그 길로, 매안에도 들르지 않고 경성으로 떠나 버렸다.
"기서한테 역마살이 있는 것이라... 역마살을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반가에 나도 끝내는 엿장수라도 하고 마는 법이거늘. 한 사람의 청춘이 가엾고, 끝내는 인생이 안쓰러운 일이로다."
청암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 홀로 탄식하였다. 그저 단순히 가엾고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핏줄이 땡기는 것 같은 아픔에 가슴을 오그리며 한숨을 토하였다. 결국, 문중은 종가에 모여 인월댁의 일을 의논하게 되었다. 남의 일이라 가끔 궁금하게 생각하고 염려는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까지는 가지지 못했던 문중 사람들은, 청암부인이 주도한 문중 회의에서도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그렇게 분분한 의논 중에도 가끔씩 가라앉을 것 같은 침묵이 무겁게 좌중을 짓누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만 청암부인만은 시종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책임을 질 사람도 없이 무조건 이쪽으로 데리고만 오면 무슨 수가 나겠습니까? 차라리 친가에 있는 것이 신간이 편할 겁니다."
그때 생존해 있던 병의는, 데리고 오자는 청암부인의 말에 난색을 보였다. 병의는 기표의 부친으로 청암부인에게는 시아재였다. 형수인 청암부인은 간곡하게 말했다.
"이미 이씨의 문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번 출가하면 그뿐, 친가에는 더 머무를 수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쪽에서 오라는 말이 없으면 그곳에서 한평생을 얹혀살아야 하는데 그 정경이 오죽 딱합니까? 비록 신방에는 신발 한 번 벗었다 신은 인연밖에는 짓지 못하였으나 그 역시 내외는 내외인지라, 남편의
가문에 와서 생애를 보내야지요. 이곳에 와서 사는 것이야 어찌 살든 흉될 것이 없습니다만, 그쪽 친가에서 산다면 껀껀이 말이 될 것이며, 처신에 괴로움이 많을 터이고, 죽어도 이곳에 와서 죽어야 도리일 것입니다. 기서 부모님께서 구존해 계시다면 그 어른들께서 알아 하실 일이나, 지금은 두 분이 계시지 않는 형편입니다. 문중이 책임을 지고 보살펴 주어야지요. 새댁도 지금이야 나이 젊고 부모님이 계시 다지만 미구에 타계하시면, 그 인생이 어디에 몸을 의탁하고 살겠습니까? 결국 자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소홀히 하고 있는 동안에 한 인생이 시들어 죽어간다면, 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기서는 이미 돌아오기 어려운 사람이나, 법도대로 새댁을 신행 오게 하십시다. 비록 신랑은 없는 집이라 하나, 이씨의 가문으로 오는 것이 바른 이치일 겝니다. 결정만 내리면 목수를 불러 초가 한 채를 짓겠습니다. 새댁도 호사할 생각은 없을 것이니, 죄인은 아니로되 누옥에서 근신하며 살자면 때가 오지도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 가문의 사람이라 종가에서 돌보겠습니다."
청암부인의 심정이 너무나도 간곡하여 사람들은 무해무득한 일에 공연히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아랫몰 개울가에 초가를 짓고 홀로 있는 듯 없는 듯 살 것인데, 정경은 딱하겠지만 굳이 막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신행이었다. 물론 잔치도 없었다. 다만 구경꾼들이 울타리같이 두르고 있는 중에 종가의 청암부인에게만 시부모님께 올리는 구고례를 대신하여 절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랫몰 개울가 초가집에 들어서, 토방 아래마당에도 나서지 않을 만큼 방안에서만 숨어 살다시피 하던 만 십이 년의 세월. 그것을 어찌 말도 다할 수 있으랴. 십삼 년째 되던 해, 봄 소쩍새가 그렇게도 울음을 토하던 밤. 그네는 방죽에 몸을 던졌다. 울다 울다가 제 목에서 피를 토한다는 새, 토한 피를 다시 삼키며 무슨 서러운 일, 무슨 한 많은 일로 제 속에 피멍이 들게 간직한 원통한 일로, 한세상을 밤이면 울다가 죽어 가는 새. 인월댁은 방죽의 수면 위로 번득이며 파고들어 울려오던, 그 낮고 목 쉰 울음소리가 조금도 무섭지 않았었다. 내가 죽으면 그 넋은 무엇이 되랴. 그때 여우가 빈 어둠을 향하여 길게 울었던 것
도 같았다. 그네의 귀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차가운 물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방으로 건져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신이 물에 젖어 혼곤하게 눈을 떴을 때, 인월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똥이 떨어지고 있는 횃불의 무리였다. 횃불들은 허공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지럽게 웃으며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하늘이 불붙으며 쏟아져 내렸다. 그 불덩어리 하나가 가슴에 떨어지면서, 그네는 다시 정신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길고 긴 혼수에 빠져 있었던가. 그네가 깨어났을 때, 북향의 뒷방에는 청암부인이 보낸 베틀이 그네의 정신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월댁을 위하여 각별히 새로 맞추어 만든 베틀이었다.
"한꺼번에 다 살려고 하지 말게나. 두고두고 살아도 꾸리로 남는 것이 설움인데, 원수 갚듯이, 그렇게 단숨에 갚아 버릴 생각일랑 허지 말어... 그런다고 갚아지는 것도 아니니."
청암부인은 지그시 눈을 내리감고 한참씩 쉬어가며 숨소리로 말했었다. 인월댁은 아직도 얼굴빛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푸르게 질린 채 듣고만 있었다. 그 말소리와 숨소리 사이에 복숭아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리었던가, 아니었던가. 그 날로부터 이십여 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인월댁은 베틀에 앉아 살아 왔다. 동무라면 오로지 속으로 나직이 흥얼거리는 베틀가 한 자락. 천상에 놀던 각시가 세상으로 귀양을 왔더라오 배운단 게 길쌈이요 부르나니 베틀가라 명주 한 필 짜을라니 베틀 놀데가 전혀 없어 좌우 한편 둘러보니 옥난간이 비었구나 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낮에 짜면 일광단 밤에 짜면 월광단 옥난간에다 베틀 놓고 베틀 몸을 동여매어 베틀다리는 네 다리요 앞다릴랑 두 다릴랑 동에 동창 배겨 놓고 뒷다릴랑 두 다릴랑 남에 남창 맞쳐 놓고 앉을개라 돋우 놓고 그 우에가 앉은 각시 허리 부테 두른 양은 절로 생긴 산지슭에 허리 안개 두른 것고 북 나드는 저 기상은 피징강도 건넌 기상 대동강도 건넌 기상 용두머리 우는 양은 조그마한 외기러기 벗을 잃고 슬피 우네 황새 같은 도투마리 청룡이 여의주를 다투난가 달을 따서 안을 삼고 해를 따서 거죽을 삼고 삼태성의 끈을 달아 무지개로 선을 둘러 금자를 갖다 대어 옥자로 재어보니 서른 대자로오구나 청태산 구름 속에 만학이 넘노난 듯 옥색 물을 반만 놓아 서울 가신 서방님 청도포라 지어 보세 옷이라도 지어 보세 누가 올리도 없고 달리 갈 데도 없는 세월이, 베틀에 짜여지는 무명필처럼 흘러
갔다. 다만 인월댁이 남의 눈을 피하여 청암부인에게 다녀온 몇 번을 제하고는, 그 긴 세월 동안 집을 비운 일이라고는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원뜸의 종가에서 안서방 내외가 번갈아 심부름을 내려오는 것이 손님의 전부라고나 할까. 그네는 그림자처럼 홀로 살아왔다. 인월댁의 길쌈 솜씨는 드다지 두드러진 편은 아니었다.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꼬박 앉아서 하루 열 자를 짜기도 하였으나, 매달이어 억세게 일을 하지는 않았다. (내 할 일이 이것뿐인 것이라 ... 그저 ... 벗 삼아서...) 그네는 때때로 잉앗대에 이마를 대고 베틀에 엎드려 울었다. 멍울멍울 떨어지는 눈물은 무명의 올 사이로 스며들어 실을 젖게 하였다. 실은 살이었다. 그리고 용두머리 위에 기름등잔을 밝혀 얹어 놓고, 밤을 새워 베를
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을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그네가 잘 못 이루며 길쌈하는 소리는 덜컥, 덜컥, 밤의 가슴에 얹히곤 하였다. 그럴 때 차갑게 귀를 적시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얼마나 시리었던가. 차마 베틀에도 앉지 못한 채, 가슴을 오그려 우는 밤도 있었다. 명주 실낱같은 핏줄 하나하나가 땡기어 그대로 터져 나갈 것만 같은 설움에 목이 메어 홀로 우는 밤이면, 각시복숭아 꽃잎이 개울에 날려 떨어지는 소리까지라도 역력히 들리었다. 무섭게 적막한 밤이었다.
"부질없는 것들같이 보일지라도 무엇에다 마음을 묶어 두면 의지가 되느니. 바늘 쌈지 부지깽이 하나라도 애중히 아껴 보면 어떻겠는가. 한 세상이라는 것이 허허벌판 위태로운 바람닫이인 것을, 바람벽도 없이 어디에 마음을 가리우고 살 것인고."
청암부인은 인월댁에게 그렇게 간곡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인월댁은 길쌈한 것으로 논이나 밭을 사지는 않았다. 그네 앞으로 단 한 마지기의 논이나 하루갈이의 밭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다른 치장을 할 리도 없었다. 다만 그네는 겨우 연명할 곡식과 몇 가지의 일용품을 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일은 장날이면 안서방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충직하게 맡아서 해 주었다. 인월댁은 늘 그렇게 생각하였다. (논 사고 밭을 사면 무얼 하겠는가. 그것도 애착의 끈이 된다. 내 무엇을 위하여 흙덩어리에다 마음을 묶어 두리오. 내 마음 하나도 나한테 묶여 있는 것이 짐스럽고 무거운 것을... 삼간초가에 이 한 몸 의탁하고 있다가, 때 되면 툇마루에서 일어나 길 떠나가면 그뿐이라. 무엇에든지 나를 묶어 두면, 떠나는 발걸음이 또 얼마나 무거우리.)
그런 인월댁의 생각에 청암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깊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인월댁은 인월댁대로 그러한 청암부인의 모습에서 풍우를 가려 주는 지붕을 느끼었다. 그런데 지금 청암부인은, 이미 며칠째 혼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인의 연세는 올해 일흔. 고희에 이르렀다. 인생칠십고래희라, 해서 사람의 나이 일흔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니. 일흔 살이 되는 생일에는 환갑 때보다 더 융숭히 차려 큰 잔치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도 물론이겠지만, 청암부인의 고희연이라면 가히 그 정성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을 뻔했으나. 이기채의
간곡한 소청에도 부인이 끝내 허락 아니하여서, 내놓고는 준비하지 못하던 중, 팔월 열 나흗날, 그러니까 추석 하루 전날이 생신이라. 율촌댁이 알게 모르게 마음 쓰고 있는데, 그 눈치를 못 챌 리 없는 청암부인이 아들 내외를 불렀다. 그리고 준절히 나무랐다.
"시절이 이와 같아, 나라를 잃은 것도 분하지마는, 그 통한을 지금에 비하겠느냐. 나는 일개 아녀자라 큰일은 모른다. 다만 내 앞에 주어진 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나라 이름 앞세운 것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내 힘을 다 하려 했다. 만일에 결과가 불미스럽거나 미흡했다면 이는 내 능력이 모자라 할 수 없었을 뿐. 내 뜻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헌데 오늘, 이 가문의 성씨를 바꾸어 왜놈의 이
름으로 갈아야 한다는데, 창씨개명을 내 손으로 해야 하는 마당에, 내가 무슨 염치로 낯을 들고 앉아서 고희 상을 받는단 말이냐. 조상님께 사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부족하리라. 내 일찍이 너희 아버님 조세하신 것이 늘 애통하여, 세상의 온갖 목숨이 다 아름다워 보이고, 곰배팔이 째보도 살아만 있다면 귀해 보였다만. 이제 와 이런 참혹지경을 당하니, 일찍 죽지 못한 것이 오직 한스러울
뿐이로다. 내가 오래 살아 이런 전고에 없는 욕을 당하는 것이야. 너희가 나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고희라고 물 한 그릇도 떠 놓지 말아라."
그리고... 쓰러졌다. (아무래도 큰집에 좀 올라가 봐야겠다. 오늘은 차도가 있으신가) 인월댁은 찬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리고 아직도 빛을 밝히고 있는 등잔불을 불어 끈다. (저렇게 사람들이 청호로 몰려가서, 공들이던 고기들을 손으로 거머잡고, 저수지 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면 종가의 운수가 ...)
마음이 허방으로 떨어진다. 그네는 서둘러 매무시를 고친다. 이만큼 날이 밝았으면 청암부인을 찾아뵙는 것도 이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월댁은 아까부터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애가 탔었던가 보다. 여자가 식전 손님이 될 수는 없는 탓이리라. 그네가 막 방문을 열고 나오자, 햇살이 실린 감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까악 까악 운다. 지금까지의 인월댁은 아무리 아침 까치가 울어도 마음이 설레지 않았었다. 설렐 일이 없는 것이다. 기다릴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까치에게라도 걸어 보고 싶은 아무 소망도 없었다. 그저 무심히 까치 둥우리를 한 번 울려다보면 그뿐이었다. 그럴 때까치는 검은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서 까악 까악, 눈부시게 아침 햇살을 토해 내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달랐다. 저수지로 몰려가던 거멍굴 사람들의 어수선한 발소리와 양철 대야 물통, 물지게 소리를 몰아내 주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월댁은 까치 소리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뻘밭이 되어 버린 저수지 밑바닥과 뒤재비를 치는 가물치, 뱀장어, 큰 붕어들의 검은 몸부림, 그것들을 삼태기로 건져 내는 사람들의 손, 덩그렇게 드러나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는 조개바위들이 한꺼번에 청암부인에게로 달려들어, 덮어 누르는 것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까치 소리를 마셨다.
3부에 계속
혼불 최명희 5 1985
1권
1부에 이어
10 무심한 어미, 이제야 두어 자 적는다
여아봉견 거 이십일일은 날도 청명하엿다. 매안 역을 출발하야 순천서 일숙하고 이십이일 오전 십 시 득량착 기차로 무사히 집에 도라왓다. 그런데 너의 모친과 남욱이는 무탈한데 용원이가 이십일부터 알키 시작하였다는데 그 형상이 대단 안탁갑게 되였다. 곳 의사에게 왕진을 청하여 진찰하니 신열이 사삽오도이며
급성폐렴에 늑막염이 겸하였다 한다. 겁이 안 날 수 업서 백방으로 치료하여 십 일일 만에 어제부터 게우 사십 도가 넘든 열도 나리고 차차 미음도 마시고 잠도 자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은 대소가가 소동되고 정신이 수수하엿난데 이제는 안심이다. 조금이라도 걱정은 하지 말어라. 요사이 너의 시조모주 기력은 엇더하시냐. 좀 차도가 잇스시냐. 궁금하구나. 요사이 용원이 약하려 노동 의원이 오섯난 데 노환에 조흔 약을 좀 지엇기로 조생원 편에 보낸다. 지극 정성으로 다려 드려라. 그리고 너의 성질을 잘 아는 바이나 매사 승순하면 탈이 업스리로다. 일기 화창하면 한 번 갈가 한다. 남욱이는 날로 충실하게 자라고 잇스니 걱정 말고 너의 몸을 주의하여라. 일자가 너무 오래되어 네가 답답할가 하여 두어 자 소식을 전한다. 일후에 너의 모주도 편지할 것이다. 대소 층절이 일안하시길 빌며 이 만 긋치니 너는 속히 소식을 통하여라. - 기묘 음삼월 이일 부서 효원은 아버지 허담의 편지를 손에 들고 글씨를 가만히 만져 본다. 글씨에서 아버지의 체온이 묻어난다. 가늘고 선명한 주색 붉은 줄이 세로 그어진 편찰지 칸에 잉크를 찍어 쓴 글씨였으나, 서법과 필체가 여전히 예 같고 역력해, 마치 아버지의 숨결을 마시는 것만 같다.
일전 조생원 편에 네 소식을 들엇스며 또 너의 수서로 대략 알고 잇섯스나. 네가 조생원 편 구전으로 용원 병기를 들엇스면 얼마나 놀라 상심하엿슬가. 용원 이는 지난 번 병치레 끝이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이번 음유월 이십일 경부터 우연 목이 앞으기 시작하여 낫지 안 터니, 할 수 없이 음칠월 이십일에 광주도립의원에 입원하여 그날 오후 구시에 수술한 후 인공호흡하여 차차 치료하니 칠월 이십오일에는 완치되어 이날에 퇴원하여 귀가 하였다. 입원한 지 누 이십일 간에 칠백 원의 경비를 내엿스나 의사의 말에 딸 하나 병원에서 어더가지고 간다고까지 말하엿스니 병세가 엇더하다는 것은 알 수 잇슬 것이다. 병명은 지유 데리(디프테리아)라는 것이었는데 호흡이 불통되어 못 사는 것인데 수술하기 전 삼십분만 경과하엿스면 곤란하다고 의사로서는 일희일비를 마지안엇섯다. 불행 중 대행인 것은 그 가운데 추석은 집에서 맞은 점이다. 보름달을 갓치 보았다. 그러니 이 앞으로는 안심하고 일신을 보전하여라. 남욱이도 습종으로 불안하나 약치를 하고 잇스니 요사이는 좀 나은 듯하다. 이외에는 별다른 말 없스니 다음에 자상히 통신하겟다. -음팔월 이십일 부서
추신. 너의 시조모주께서는 여전 그만하시다니 일변 다행이고 일변 근심이다. 이럴 때일수록 성심을 다하여 손부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바란다. 매안에 거짓말인 듯, 꿈결인 듯, 아버지 허담이 들리어 며칠간 사랑에 유하다 간 것은 작년 봄, 음이월 말이었다. 부녀 상봉이라고는 하나, 허담은 사랑에 머물며 이기채와 함께 이씨 문중 대소가 종족들을 만나면서, 담소로 인사하는 데 거의 모든 일과가 다 지나고 막상 효원과는 마주앉을 겨를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법도였다. 시가에 어른들 엄존하신데, 저의 친정에서 살붙이가 왔다 하여 버선발로 뛰어나간다거나, 그 곁에 붙어앉아 떨어질 줄을 모르는 것은 몰풍스럽고 본데없는 짓이었다. 벙싯거리며 반가움을 참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범상한 낯빛으로 은근히 교감하고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비켜서서 친정붙이를 대하며, 시댁에 자신이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도리였다. 둘이서 낮은 소리로 속삭이거나, 남모르게 무엇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짓는 것은 결코 가격 있는 집안의 풍도가 아니었다. 지그시 가슴을 누르고, 가까운 곳에 와 계시는 밧어버이 훈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 일상에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는 위선이 아니라 품위였던 것이다. 그것은 사돈댁을 방문한 친정 쪽에서도 출가한 여식을 대하여 지켜야 할 은연중의 불문율 이었다. 하지만, 심정도 그러했으랴. 효원은 돌덩어리를 삼키듯, 복받치는 반가움과 설울을 함께 삼켰다. 늦도록 까지 불이 밝혀진 사람에서 두런두런 홍연대소가 터지는 밤. 효원은 이만큼에 서서 남모르게 그 덧문에 번지는 불빛을 바라보며, 어느 그림자가 우리 아버지신고. 헤아려 보았다. 다만, 그렇게. 허담이 떠나는 날, 효원은 큰사랑에 좌정하신 아버지께 마루에서 하직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는 은혜로이 높으시니, 여식은 문외배로 방문 밖에 엎드리어 공례로 큰절을 하는 것이다. 허담은 묵묵히, 수그린 여식의 노란 저고리 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며 말했다.
"삼가 공경을 다해서 조석으로 어른들 지성껏 모시고, 이 서방 잘 섬겨라. 아부지 간다."
효원은 눈물어린 고개를 수굿하였다. 말씀을 잘 알겠다는 표시다. 정거장으로 가는 먼 길까지 고불고불 한눈에 들어오는 대문간에 서서, 허담은 잠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세상에 제일 큰 것은 마음이다. 마음 안에는 담지 못할 것이 없느니."
효원의 고개가 좀 더 숙이어졌다.
"항상 부지런하고, 너의 규문의 예에 어긋나지 말아라."
"... 예"
"들어가거라."
"예..."
허담은 시선을 멀리 들어 아물아물한 길 끝 너머를 바라보았다.
"네 어머니한테는, 잘 있더라고 전할 터이니 그리 알고."
효원은 목이 막혀 대답을 못한다. 잘 있지 못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차마 여쭙지는 못하옵지요만, 이 불효여식은 아직까지 음양을 모르고, 부부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랑이 어리어 초립동이 소년이라 그러한가 하옵고, 다음에는 학업이 중하여 객지타관 전주로 유학을 하느라고, 집을 떠나 멀리 있어 그러하옵고, 혹 어쩌자 집에 들러도 시어르신 뫼시고 사랑에 머무온즉, 여식은 빈방에 청 등을 홀로 지키고 있사오니, 병자년에 혼인하여 정축에 신행 오고, 무인, 기묘 다 지나서 경진 년에 이르도록 아직 공규를 면치 못, 하릴없는 세월만 축내고 있습니다. 아무 생산 없는 세월은 쌓여서 무엇에 쓰오리까. 손이 귀한 남의 집 대종가에 종손부로 들어와서, 책임이 막중한 무릎에 좀이 슬고 먼지만 가득하니, 슬하의 근심을 어디에 하소하올지. 시조모님 뵈옵기 민망하고 면구스러워 삿갓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머니. 한 여인으로서 이 수모를 어찌 당하며, 어찌 갚으리잇가. 눈물이 굳어서 돌덩이 되었단 말 들은 일은 없으나, 이 마음은 돌보다 더 굳어 풀리기가 어려우니. 이 돌로는 또 인생에 무엇을 하오리요. 성벽을 쌓으리잇가.
"자, 이제 들어가거라."
허담이 효원에게 눈빛을 남긴다. 대문간에 저만큼 고샅길로 내려선 이기채가 기표, 기응과 함께 몇몇 안면들을 대하며, 허담을 배웅하려고 나와 있다. 그만큼까지 나가 있는 것은 부녀 작별의 말미를 잠시 주고자 하는 배려이다. 이제, 언제나 다시 뵈올꼬. 근친이나 한 번 간다면 모르지만. 그날이 쉽게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효원의 뇌리로 나부산 형님이 근친 오던 날이 번개처럼 스친다. 그네가 나
이 아직 어려서 철모를 때 본 정경이었지만, 하도 기이하여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 뒷산이 나비머리 모양이라 동네 이름도 그러한가, 나부산으로 시집간 재종매가 대실 천정 부모님께 처음 근친을 온 것은, 출가한 지 사 년인가 오 년 인가 지난 다음이었다고 한다. 그때 재종매는 젖먹이 아이를 하나 안고 왔는데, 안에서 비자가 나와 아이만 안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부산형님은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시부모 상을 당하였거나 시댁에 우환이 있어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닌데,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뵙는 근친을 신행 후 삼년 안에 못하면, 그 다음에도 가도, 버젓이 대문으론 못 들어가고 개구멍으로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 것이 법이라 했다. 왜 그리했을까. 사람 못났다는 나무람일까. 괘씸하다는 꾸중일까. 야속하고 매정한 시댁에 대한 무언의 응징일까. 금의환향을 해도 시집간 딸은 바라보기 애처로운데, 굳이 이처럼 홀대하여 우세 망신을 주는 심정인들 오죽하리야. 이러한 시속을 아는 까닭에 시댁에서도 어지간만 하면 삼 년 안에 며느리 근친을 보내 주는 것이 상정이었다. 그러나 죄 많은 세상에 여자로 난 것이 또 하나 죄라서, 한 번 시집가고 나 끝내 친정에는 못 오고 만 사람도 있었다. 개구멍을 기어 나가느라고 흙투성이가 된 나부산형님이 친정어버이께 절을 하면서, 온 식구 한바탕 폭소를 터뜨렸다는 말도 있고, 폭소 끝에 목을 놓아 울었다는 말도 있었으나. 지금 와 생각하니, 그 둘 다 맞는 말 같았다. 어떤 마을에서는 개구멍 입납을 시집간 햇수로 세어 삼녀이라 하고 어떤 마을에서는 햇수와 상관없이 첫아이 낳도록 까지 안 오는 경우에 행한다고도 하지만. 어무러나 두 세월 모두 짧다고야 어이 하리. 눈이 짓무를 시간인 것이다. 효원은, 내가 언제 매안으로 왔던가, 헤아려 본다. 그리고는, (나도 이미 대문으로 들어가기는 틀렸구나.) 고개를 젓는다.
"매안이 작별이 본대 길어서 아마 오늘 해 지기 전에 정거장까지 닿기는 어려우실 겝니다. 아예 천천히 이약 이약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별사가 섭섭잖게 나누고 가시지요."
기표가 농을 섞어 말했다. 그러나 아주 빈말은 아니었다.
"다 정 깊은 일이지요. 그래서 귀문에 예부터 체리암이 있지 않겠습니까?"
허담의 응대에 기표가 호오, 놀란다.
"체리암을 알고 계십니까?"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체리암은, 동구 밖에서 한참 오 리 바깥으로 나간 길목에, 큰 내를 낀 갈림길 어귀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바위다. 매안 이씨 문중에 손님이 왔을 때, 헤어지기 몹시 서운하여 떠나는 길의 발걸음 동무를 하면서 따라 걷다가, 차마 떨치기 어려운 소맷자락을 아쉽게 서로 놓고 "자, 이제는 여기서 헤어지자."
고 명표를 해 놓은 이 바위 글씨는 매안 이문 몇 대조 할아버님께서 몸소 쓰시어 음각한 것이라 하였는데. 머물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떠나는 바위. 이 은근하고 그윽한 위까지 효원은 아직껏 한 번도 나가 본 일이 없으나, 대문간에 선 채로 흰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 펄럭, 검음을 따라 나부끼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날은 날씨도 ...
청명하였다. 그 아버지가, 매안 역을 출발하여 순천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대실이 있는 득량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 음력 삼월 초이틀. 그리고 다시, 소식 없는 효원에게 두 번째 서한을 띄운 것은 팔월 스무날이었다. 그 사이에 반년이나 흘렀건만 효원은 일자 서신을 감히 올리지 못하고, 날마다 속으로 먹만 갈았다. 효원은 벼루에 붓을 적시려다 말고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손끝이 떨리는 것을 진정하기 위함이었다. 아직까지 시집와서 한 번의 문안서도 올리지 못한 까닭은 단순히 인편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힘주어 버티고 있는 어깨의 천근같은 무게가 손끝으로 쏟아지면, 결국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큰 불효 인 것을 그네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는 탄식이 두려웠다. 검은 벼루 시꺼먼 먹물보다 더 짙은 한숨을 밀어내며, 효원은 아우 요원의 봉서를 펼친다. 여린 듯 부드럽고 애처로운 글씨체가 아직 병중인 기색을 머금고 있어, 울컥 눈물이 솟는다. 아아, 내 동기간. 간절 사념 나의 형님은 무용제의 필적을 받으소서. 우리 형님 옥음을 언제 드럿든고. 수십 년 수백 년이나 되온 듯 기억에도 아득하고 지체 없는 세월은 머나먼 곳으로 달리는지 발서 기묘를 지나 경진춘이라.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는 만춘청산의 너울이 되고 진달래 봉오리가 오는 봄을 재촉 난대 이 수심 많은 아녀의 심리를 울울케 하오며 일우우일우하니 시드는 고목에 봉오리가 구슬 갖고 빳빳 마른 잔디 우에 새 움이 동아 금수강산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데, 그간이라도 우리 형님 기체후여전 만안하시온지요. 이곳은 아버지 기체후 강녕하시옵고 어머니께서도 여일하시오나 아버지께서는 몇 가지 집안일로 분망하시오 며, 거번에도 기곳 행차하려 하셨사오나, 이제는 단 십 리만 왕래하셔도 기력이 부치시니 하정에 뵈옵기 죄송만만, 작추지사를 생각하면 심장이 탈 지경이나 뉘라서 일호인들 아라 주리요. 이 쓸모 업는 아우 뜻밖에 병을 얻어 목을 찢고 구멍을 뜯어 대수술을 하온 끝에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과 가산
을 만금이나 탕진하여, 아버님 그 일로 십년 쇠하시고, 문서와 곳간이 남의 것이 되오니, 이 사제의 찢어지는 설움을 뉘기 다려 말 한 마디나 할까. 입술이 마르고 심장이 타는 이 속을 그 뉘라 일 분인들 아라 주오며 뉘게다 반분인들 호소하올까요. 쓸 곳 업는 이 인생, 무엇하러 차세에 탄생하여 이렇게 자라는고. 분분하고 원통절통. 전생에 뉘게다 척을 지어 이 세상에 태였든가. 피어나는 한 시절에 설빙을 뿌려노니, 무쇠라서 견듸오며 철석이라 견듸리요. 부귀영화로 한 없이 살아도, 초로인생이니 부유인생이니 하난대 이 갓탄 인생이야 무엇에나 비하리오. 삼경 월색 명백하야 남창에 가득하고 고요이 들려오는 귀촉도 소리 깊어가는 울울심사 더욱 잡지 못하온대 꽃 피어도 아까운 청춘의 구곡지중에 회한만 가득 넘치나이다. 상전이 벽해 된다 하더니만, 사람의 사는 일이 일일 한 만 커지오니 우리 형님이나 계시오면 만단정회를 풀어 볼까요. 집안의 형세가 이와 갓타 마음이 무너지고 질정을 못하온대 여자로 태어난 죄를 또 어이할까, 무용제의 혼사로 걱정만이 크십니다. 우리 형님 떠나실 때 그다지도 작별을 설워하여, 소맷자락 잡고 울고, 놓고 돌아서서 울고, 꿈속에서 반겨 만나 또 울었는데, 이 무용제,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르고, 천산 갓튼 한이 남아 이 한 몸 바회에 부서뜨려 다 바친다 할지라도 손톱 티끌만치라도 갚을 길이 전혀 없어, 앉아 생각하여도 어즈럽고 일어서서 헤아려도 일천간장이 촌촌이 잘리우는 것만 갓타서 첩첩한 이 죄를 어디다가 호소하여 용서를 받으리오. 터질 듯 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업나이다. 그리운 우리 형님, 해동하여 일기 온화하면 만사 제폐하시고 이 아우를 생각하여 이삼 일 경영하시와 부듸부터 오시압소셔. 아무쪼록 이 소원이 공허가 되지 안토록 천신께 복원 축수 하나이다. 학수고대 일각이 여삼추로 우리 형님 반가운 발소리를 기다리오니 형님은 사제의 심정을 저바리지 마 오소셔. 만일에 못 오실 테면 점점이 금옥 갓튼 알들하옵신 글이라도 반기게 하여 주옵기 간절히 바라오며 금츈 상봉을 고대 고대하옵고 회생하난 봄바람에 내내 귀체 만안하시옵소셔. 그리운 우리 형님 - 경진 중츈 염일일 사제 용원 올림
글자마다 가슴을 짓찧으며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용원의 편지를 차마 접지 못하고, 옷고름짝 하나도 떼어 줄 수 없어 애간장이 미어지는 효원의 무릎 위에, 어머니 정씨부인의 두루마리 궁체들씨 편지가 어루만지듯 펼치어져 놓여 있다.
시시로 보고 십흔 여아 보아라. 무심등한한 어미 이제야 두어 말 적난다. 너를 일생 삼셰 유아로 아랏더니 너의 연기 어나듯 스무 살이 되어시여 어언간 다리 밧기여 열두 다리 가고 또 몇 해가 가니, 보고 십흔 내 여아야. 우리 모녀 상봉은 밤마둥 안면을 대하여 흔흔 반기다가 깨다르면 헛본 몽이라 실 데 업더라. 내 새끼야. 이졔나 저졔나 마음 조려 문 밧글 내다보아 이리저리 둘러보나 내여아 오는 기색이 업섯구나. 일구월심 고대하던 너의 제 용원이 하로에도 몇 차례나 문소리에 놀라건만, 지나가는 바람 소리 마음을 희롱하니 그 정경이 안쓰럽다. 어미가 너 가는 아침, 여엿븐 너의 거동 새로 한 번 보려 하고 깃차오기를 기달르며 머리를 들고 보니 너의 거동 실 잇기로 새로 한 번 보려 한즉 번개 갓치 가난 깃차 언 듯 압페 드리다라. 다만 나믄 게 석탄 연기뿐이더라. 집에 오면 네 모습을 다시 볼가 급한 걸음 드러와서 문을 열고 둘너보니 내 새끼는 간 곳 업고, 신엇든 너의 보선만이 윗목에 노였구나. 밤낮으로 신고 다닌 하릴업난 보선 들고 내 새끼 발목인 듯 쥐어 잡고 불너보니 이리저리 다 보아도 듯고 십흔 여아 음성 대답 소리 간 데 업다. 들리 난 듯 보고 십흔 그 거동을 인제 어디 가서 어이 보랴. 지척이 만 리라고 매안이라 하난 곳이 어느 만한 거리인고. 첩첩산중 가로 노여 빈 구름만 오갈 뿐 소식조차 듣기 어려온데 어미 살아 생전 내 새끼를 다시 만나 반길 날이 잇기나 잇슬 거신가. 너를 보내고는 엇지 그리 보고 십흔지 어디서 그리 소사 나는지 모를 눈물로 심정을 적시더니 이제 용원이도 저와 갓치 중병을 치르고 기사회생 목숨만을 건졌난대 허청허청 거러가는 발걸음이 안스러온 지라 어미 마음 새삼 진정을 못하는구나. 어미 심정 이 갓틀 때 미듬직한 내 새끼야 네가 곁테 잇슬지면 그 얼마나 조흐리오. 내 새끼야 어미가 너를 볼 때 헌헌장부 남아를 의지하는 심졍이엇스나 안개 갓튼 꿈결인 양 한 번 가고 나니 모든 거시 하릴업다. 세월은 어디 가서 머물고 있는고. 이곳 사정은 날이 갈수록 핍박하여 안팎그로 근심이 천 근 만 근. 거번 공출에는 제사에 쓰라고 감초아논 쌀마저도 헤집어서 뒤져가니 억장이 무너지고 심사울울 답답하기 그지없다. 몇 바가지 안 되나마 지성으로 감고 싸서 뒤안 담장을 허무러 그 밋트
로 숨겻으나 엇지그리 자세 알고 대창으로 헤적이니 야속 한심한 정경이야 말로 다할 수가 잇스리오. 문중에도 지붕을 못 이어서 초가가 기와 되게 골골이 패어나고 연구 아니 나는 집이 한둘이 아닌지라. 사람 사는 지경이 설상가상 트인 곳이 업구나. 그저 다만 비난 거슨 너이 내외 평안하고 우리 사돈께서도 기체 안영하시며 우리 현서게서도 일일이 재수 대통하오며 우리 사돈께서 미거한 너를 사랑이 역이시여 귀히 귀히 어엽비 보시기를 천만 축수하는구나. 매사 온순 정직 부듸 마음 단단히 먹고 심신을 중히 하여 위로는 층층 시어른 지극 봉양할 일이며 부덕을 게을리 하지 마라. 흉중이 어즈러와 이만 난필을 총총 접으나 너는 이미 뽄을 보지 말고 다만 두어 자씩이라도 편지 자조 하여라. - 경진 칠월
그믐 어미 씀
3부에 계속
혼불 최명희 6 1985
2권
1부에 이어
11 그물과 구름
"어머니, 창씨개명을 하기로 문중에서 결정이 됐습니다."
이기채는 단도직입으로 말을 던진다.
"혈손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허울뿐인 성씨만 가지고 있으면 무얼 하겠습니까? 우선은 급한 불을 끄고, 강모, 강태, 목숨을 보존하고 있자면 언젠가는 일본이 망허지 않겠습니까? 그놈들이 오래 간다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몇 백 년 몇 천 년을 갈 것인가요? 아이들이 제 근본만 잊지 않고 정신을 놓지만 않는다면, 성씨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나, 자손이란 한 번 맥이 끊어지면 다시 잇기는 어려운 법이라, 강물 같은 시세를 어찌 손바닥으로 막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징병 문제만 해도, 한 번 출병 허면 그 목숨은 개나 도야지 값도 못하는 형편인지라, 기표가 손을 써 보겠다고 했구만요. 우선 이렇게 창씨개명을 허지마는, 이것은 사람이 옷만 바꿔 입는 것이나 한가지라서 근본은 그대로 남는 게지요. 어머니, 너무 심려는 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와 같으니 참아야지 어쩌겠습니까."
이기채는 자신에게 타이르듯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청암부인은 그런 이기채를 바라보지도 않고,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있더니, 한참만에야
"별 도 리 없는 일이지."
하고, 한 마디만 말하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서로 깊은 침묵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윽고, 질식할 듯 한 침묵의 무게에 눌린 이기채가 고개를 들자 청암부인도 이기채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기채가 본 것은 그네의 눈
매였다. 그 눈매에는 이미 서리가 걷혀 있었다. 무심코 이야기하다가 부인의 눈매에 부딪치면, 보는 사람을 서늘하게 하였던 허연 서릿발은, 지금 습기처럼 축축한 물기로 번져나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이기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은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큰 죄를 지었구나. 그는 노안의 늙은 주름 갈피로 번지는 습기를 보면서, 지금까지 보아온 청암부인의 어떤 모습에서 보다 깊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날 이때까지 거대한 기둥처럼, 혹은 질긴 힘줄처럼 버티고 긴장시켜 오던 무엇인가가, 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탄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끝이 차게 식어들었다. (이 일을 어찌하랴) 그는 심장이 거멓게 죽어드는 것을 가까스로 견디며 허리를 곧추세우려 하였으나, 한쪽 어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청암부인은 소리 없이 낙루한다. 눈물이 옷섶으로 떨어져 젖는다. "한 생애가 허사로다..."
청암부인의 허리가 앞으로 꺾인다. 삭은 나무토막이 부러지는 것처럼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진 그네는 두 팔로 몸을 버티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었다. 이기채는 감히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더는 잇지 못한 채, 자실하여 넋이 나간 얼굴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티끌처럼 형체도 없이 흩어지는 것을 느낀다. 자기 몸을 이루어 주던 단단한 껍질을 잃어버리고 나니, 남는 것은 티끌뿐이었다. 아아, 내가 이 어른에게 지금까지 이대도록 마음을 의지하고 살아왔었단 말인가. 어찌 사람이 태산이며 하해이리요. 한낱 생물에 불과한 것을,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를 사람이 아니시라고 생각했었다. 이기채는 자신의 심정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물이란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좁은 통에 들어가면 좁아지고 넓은 바다에 쏟으면 넓어진다. 낮으면 아래로 떨어지고 높으면 그 자리에 고인다. 더우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추우면 얼어 버린다. 그릇과 자리와 염량에 따라 한 번도 거역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순응하지만, 물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 있지 않은가. 모습과 그릇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 물은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마는 지하수가 되어 샘물을 이루고, 하늘로 증발한 물은 이윽고 구름이 되어 초목을 적시는 비를 이룬다. 대저 형식에 집착한다는 것이 무엇이랴. 보이는 것에 연연하여 보이지 않는 것이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오히려 형식에 본질이 희생을 당하는 것이리라. 작금은 시세가 불운하여 내가 조상을 욕되게 하고 가문의 문을 닫는다마는, 이것은 다만 형식일 뿐이다. 얼음이 아무리 두꺼운들 실낱같은 봄바람을 어찌 이기며,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천지를 한 입에 삼킬 것 같아도, 구름이란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무게를 못 이기어 빗방울이 되고 마는 법. 기다리면 때가 안 오랴... 내 대에 안 오면 강모가 있고 가모 대에 안 오면 그 다음 대가 있지 않은가. 그러고도 자손은 면면히 대를 이어 갈 것이니, 아무러면 때가 안 오랴...) 그러나 그런 것들은 어거지에 불과한 이론이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심중을 편히 하려고 생각을 고쳐 보아도 (잃어 버렸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는 허전한 절망감은 어떻게도 메울 길이 없었다.
(무엇으로 보상을 받으리오. 내가 무슨 부귀영화와 복락을 누리려고 이런 욕된 일을 하고 말았을까. 무엇인가 이 일에 합당한 대용의 결과가 있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기채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서성거렸다. 자신의 내부에서 허물어져 버린 맥락의 기둥을 어떤 것으로든지 떠받치지 않으면 금방이 라도, 가문이고 재산이고 그냥 그대로 쓰러져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 빈 곳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채워 넣어야만 이 허전함이 다스려질 것 같았다.
"한 생애가 허사로다..."
청암부인의 사그라지는 한숨 소리가 이기채의 가슴에 흙더미 무너지듯 무너져 얹힌 것이, 숨을 들이쉬어도 내쉬어도 뱉어지지가 않는다. (한번 잃어버리면 그뿐, 어찌 다른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으리오. 내가 믿느니 다음 대라고 하지만, 강모가 어디 실한 사람인가. 제 심중 하나를 이기지 못하여 비틀거리는 허약한 놈이고, 그놈이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어찌 그 아들을 또 믿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 저러다가 힘없이 돌아가시면, 나도 성치 않은 몸 언제 덜컥 죽을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다시 성씨를 찾아 줄 것인고. 어허어. 이 노릇을, 허망한 이 노릇을 어디 가서 하소연을 헐 수 있을꼬) 확실히 이기채는 평정을 잃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노랗게 졸아들었다. 본디도 이재에 밝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기채의 곤두선 신경 때문에 그의 소맷자락까지도 손이 스치면 베일 정도로 날이 서 있었고, 기표는 이기채의 사랑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이기채는 문갑 속에 쟁여져 있는 문서들을 빈틈없이 점검하고, 산판으로 계산을 맞추고,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느 결 엔지 가슴이 무너진 자리에는 불안이 소리 없이 스며들어 조금씩 이기채를 삼키고 있었다.
"대실 사가에서는 별반 거조할 기미가 없지요?"
이기채가 문서를 접어 봉투에 넣는 것을 보며 기표가 무심히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허가들이 뭐 언제는 거조를 했는고?"
이기채의 말꼬리가 아니꼬움을 참지 못한다.
"참, 내색을 드러내 놓고 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웬만하면 그만헌 살림 몇 천 석씩 가지고 있다면서 여아를 출가시키는데 그래 한 백 석 거리 논문서 한 장을 농지기 에다 못 끼워 보냅니까? 다 그만 못해도 사오십 석의 문서 정도는 으레 예의로 따라오는 거지요. 쓸모없는 장롱 이부자리에 온갖 가구 집기만 바리
바리 싣고 오면 뭘 합니까? 실속이 있어야지요. 더구나 며느리가 또 있는 것도 아니고 달랑 하나 외며느리 인데, 그 사장 어른도 어지간히 변통이 없으신 분이 구만요."
이기채가 마른기침을 돋우어 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
"뭐 며느리 맞어들여 치부를 허자는 것은 아니올시다만, 이쪽에서 바라지 않더라도 그리허는 것이 저쪽 인사가 아니겠습니까? 혼인 당시에야 어찌어찌 사정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씨 문중 대종가의 외며느리가 자신의 눈치나 수완으로 그만한 일을 못해내고 맙니까. 부혼이라고 남들이 부러워했던 일도 다 빛 좋은 개살구고, 남보기만 민망하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가서 내놓으라겠나?"
"형님이 그러실 수야 없는 일이고, 강모를 시켜서 제 안(아내)한테 말하랄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게 속보이는 일이 아닌가? 집안의 체면도 있는 것이고."
"속은 무슨 속이 보인다고 그러세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백모님은 저렇게 맥을 놓아 버리시고, 강모는 나이만 스물 몇이지 그 소견이나 언행이 유아를 벗지 못하였습니다. 시국 또한 심상치 않어요. 이런 고비에 집안 고삐 단단히 틀어쥐지 않으며 어느 귀신이 와서 채갈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형님."
아기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대실에 혼행 갔을 때 일이 잊혀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대실의 허담은 기표의 예언을 무색하게 하고 말았었다. 기표는 그쪽의 살림형세로 보아 상당한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시속으로 보아, 그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행세하는 집안의 혼수에 논문서가 끼여 오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만만치 않은 재산이 여식을 통하여 시댁으로 건네지기도 하였으니까. 그것은 무슨 과잉 혼수라든가 허세가 아니라 비록 여식으로 나서 삼종지도와 여필종부의 법도를 따라, 연한이 차면 자라던 집과 낳아 주신 부모를 떠나 시집으로 가는 자식이지만, 그도 소중한 자식이 분명한 까닭에 재산 있는 부모로서는 아 들에게 그러한 것과 꼭 같이 딸에게도 상속을 해 주었으니, 아들은 부모 임종 후에 그 재산을 분배받고, 딸은 시집갈 때에 미리 받는다고 생각하면, 논문서란 천박한 시속의 오랑캐 짓이 아니라, 어쩌면 자식이 부모에게서 받는 당연한 지분 일는지도 몰랐다. 근자에는 같은 자식일지라도 남녀를 엄히 구분하여 출가하는 여식을 남 된다, 치부해 버리는 것이 시속으로 퍼져 있으나, 거슬러 선대로 올라가 선조 임금 때까지만 하여도, 부모의 재산을 상속하여 문서로 남길 때, 출가한 딸이라 하여 조금도 차별하지 않았으니, 시속이 변했다뿐이지 근본 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모의 혼담으로 매파가 바쁜 걸음을 치며 안채에 드나들 때,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대실의 효원이 올려진 내면에는, 이러한 계산이 어느 정도 숨겨져 있었던 것은 사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막상 혼인은 이루어졌
으나 그 인사라고 하는 것이 빠진 채 짐꾼, 일꾼, 하인, 하님들이 엄청나게 기다란 행렬로, 살림살이 농지기만을 싣고 온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 내색을 할 수 있겠는가? 사돈이 딴전만 보면서 고담준론으로 자신의 청빈을 자랑하는 데야 난들 어찌하겠어? 양천 허씨 가문에 청백리가 몇몇이며, 허씨 선조들은 치부나 벼슬보다 낙향은자로 시서화에 능하였다, 하는 선비 앞에서 무슨 흉금을 털어놓아, 털어놓기를, 혼자서 마않이 청백허고 혼자서 도도허게 고상헌 사람한테 말이야."
대실에서부터 내내 심기가 편치 않던 이기채는 매안으로 돌아와 기표에게 내뱉았다.
"농인 척허고 흉금을 좀 털어놓으시지 그랬습니까?"
하는 기표에 대한 대답인 셈이었다.
"형님 성품이 너무 깐깐허신 탓이올시다."
"깐깐허지 않으면 어쩌라고? 이런 일이 어지 말로 해서 될 일인가?"
"안 되는 일을 되게 해야지요. 세상 일이 어디 말로 해서 된다면야 오죽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무릉도원이지 누가 인간 세상이라 허겠습니까?"
"답답한 일이야."
"가문, 가문 하지만 그도 다 선대쩍 말입니다. 팔 한림에 열 두 진사가 나고 정승, 판서 즐비하게 했다는 족보가 자랑이 아닌 것은 아니올시다마는 이 당장에 그 후손인 우리는 무엇으로 가무을 빛냅니까? 벼슬을 하려니 조정이 있기를 합니까아, 충신이 되자니 임금이 계시기를 합니까. 거기다가 선비로서 갈고 닦은 학문으로 후학을 기르자니 학동이 있기를 합니까. 죽림칠현이 되자 해도 대밭이 없는 세상 아닌가요?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 가문을 번창하게 할 수 있게 습니까? 체면, 체면,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난국이 어디 체면 있는 세상인가요? 상놈이 상전 되는 세상 아닙니까아. 왜놈들이 상감노릇 허는 것을 눈 뜨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백성이라면, 솔직히 무력헌 것을 인정하고 쓸데없는 양반 체면 따위에 매이지 말 일입니다. 힘도 없는 주제에 정신만 살어 가지고 앉은 방석을 못 돌리면 결국 앉은뱅이 노릇밖에 더 헐게 무에 있단 말입니까? 이럴 때는 시대를 이용해야 합니다. 시대를 거슬러 산 사람치고 성명 삼 자 온전허게 보존헌 사람이 없습니다. 형님. 도대체 지금 이 가문에 구체적인 힘이 될 수 있는 게 무업니까? 형님 당대에 와서 무얼로 대종가의 명맥을 이어 놓으실 겁니까?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무엇으로 반석을 만들어 강모한테 물려주시려고 하시는 건가요? 큰집 재산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찍도 다 청암백모님 자수로 이루신 것인데, 형님 대에 와서 얼핏 안심한다면, 이런 난세에는, 그 재산이 하루아침에 남의 것 되기란 일도 아닙니다. 가세란, 명성으로든지 재물로든 지 창성해 나가야지, 기울기 시작하면 그도 또한 순간의 일이올시다."
기표의 음성은 꼬챙이처럼 이기채의 심정을 아프게 쑤신다. 그럴수록 이기채는 정신이 헛갈릴 만큼 어지러워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송두리째 누구에겐가 떠맡겨 버리고 싶어진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일세를 풍미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내가 나이 마흔여섯이라 오십을 바라보는 이 마당에, 공명을 떨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바라지게 가세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유야무야 한평생이 허퉁하기 짝 없는 일인데. 무엇으로 이 세상에 왔다 갔다 갔다는 점을 찍으리. 그것도 명맥이 끊기다시피 된 종가에 종손으로 들어와서 제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나라고 생각이 없고 중정이 없겠는가......? 다만 선조에게 누가 되지 않고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가산을 늘리자니,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는 게 제일이라. 피가 나게 절약하여 살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신통치가 않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는 모르겠더니만 이제 나도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려니. 몸
속에서 가랑잎 소리가 나.......어디 평지를 걷다가 허방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현기증이 나게 초조한 생각이 나서, 나도 내 정신이 아닐 때가 많다."
대실에서 돌아온 이기채의 심기가 그러하였으니,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한테서 나온다는 말도 있었으나, 불편하게 구겨진 그의 심정이 쉽게 풀릴 리가 만무하였다. 그때 만일 청암부인이 재촉과 채근만 아니었다면 효원의 묵신 행은 삼 년, 혹은 몇 삼 년이 미루어졌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막상 신랑인 강모의 태도도 왠지 대실에 두고 온 신부에 대하여 서먹한 것 같은데다 좀체 어울리려 들지 않아서, 아무리 나이 어려 음양을 모르고 부부의 도리에 서툴다 하나, 그것만으로 보아 넘기기 섬서한 면면이 남의 눈에도 드러났으니. 대실 말만 나오면 강모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기미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린 청암부인이 서둘러서 효원을 불러온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집안으로 들어온
며느리인지라, 사사건건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며느리는 터무니없이 손만 컸다.(제 구실도 못허는 주제에 대갓집 마나님 흉내부터 배운답시고) 그것은 ,이기채에게는 심히 못마땅한 구석이었다. 지난번 일만 해도 그랬다. 물론 곳간의 열쇠꾸러미는 율촌댁이 지니고 있었지만, 살림을 가르칠 요량으로 논에 내갈 놉밥 양식을 효원에게 맡겨 보았다.
"네가 장차는 이 집안을 꾸려갈 사람 아니냐? 쌀 한 톨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규모 있게 살림을 해야 헌다. 아무리 바깥어른이 천석꾼 만석꾼이라 해도 안에서 살림을 흘려버리면 모조리 허사가 되고 마느리라. 집안 살림이 불어나고 줄어드는 것은 오로지 안사람 손끝에 달린 것. 손끝이 곧 재산이라. 쓰러져가느 초가삼간 누옥일지라도 안식구가 바지런하고 아껴 살면 훈김이 나는 법이요, 천하 없는 부호 갑부라도 손끝에서 살림이 새 나가면 빈 집이나 한가지다."
한평생 이 생각을 명념해라.
율촌댁은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면서 곳간을 열어 주었다. 그네의 마음속에는 시험을 해 보자는 심산도 들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주에서 함지에 쌀을 퍼내는 바가지를 보고 놀란 사람은 율촌댁만이 아니라 안서방네도 마찬가지였다. 쌀에 보리와 콩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듬뿍듬뿍 반찬거리를 담 아 내줄 때는 아예 율촌댁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날 논에서는 경사가 났다
고 할 만큼 양껏 포식들을 하고 나서 놉들이 신바람이 나, 평소보다 곱절이나 일을 많이 하였다.
"너, 무슨 심산으로 그렇게 양식을 퍼냈느냐? 그렇게도 대중을 못하겠더냐? 그릇 수 따라서 알 맞추어 양식 대중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율촌댁 음성에 모가 섰다. 효원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앉아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야 어디 대궐 살림이라고 견디어 낼 재간이 있겠느냐? 허허어. 네가 시에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구나. 한 끼니 놉밥이 세 끼니 모가치가 넘는 것 이 어디세 배운 요량이란 말이냐? 그렇게 네가 표시내지 않어도 천석꾼 만석꾼 대갓집 따님인 것은 내 알지만, 가난헌 집으로 출가해 왔으면 이 집 가풍대로 다소곳이 따러야지, 참으로 괴이하고 알 수 없는 일이로다. 인심을 얻을 데가 따로 있지 놉들한테 인심 얻어 무슨 일을 꾀아겠다는 것이냐? 누구는 칭송을 들을 줄 몰라서 쌀 한 톨을 애끼는 줄 알았더냐? 괘씸한 것 같으니라고."
효원이 고개를 수그린 채 가만 있자 율촌댁은 할 말을 한꺼번에 다하겠다는 듯 이 다긋쳤다.
"우리 집은 그런 집 아니다. 수챗구멍에 밥티가 허옇게 쏟아지고, 돼지 구정물토에도 쌀밥 붓는 집이 아니야. 친정에서 그렇게 배웠거든 여기서는 그 버릇 고쳐라. 놉한테 퍼 주고 하인, 머슴, 계집종 멕이자고 농사짓는 거 아니다."
그제서야 효원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눈은 아래를 보고 있었다. 어른 앞에서 눈을 똑바로 뜨지 않는다는 공손한 예의로 다소곳이 내리뜨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호원의 꼿꼿한 고개와 곧추세운 허리로 보아 오히려 그렇게 내리뜬 눈이 율촌댁으로서는 불손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어머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것 하나도 없다. 네가 무얼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게야? 지금"
"어른 말씀에 대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한 일로 친정 부모한테 욕이 돌아가니 민망하여 그렇습니다."
"민망? 민망할 일을 왜 해?"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 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 아닌가요? 놉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에 제 몸을 부릴 때 누가 성심을 다 허겠어요. 눈치보고 꾀부리고 한눈파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요? 아무리 종리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지에 오장육부는 똑같이 타고났고, 그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은 양반이나 무에 다르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여지는 법인데, 배를 곯리고 마음을 상하게 한 뒤에 무슨 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요? 많이 먹고 즐거워서 힘이 나면 결국은 내 집 일을 그만큼 흥겹게 할 터이니, 한 그릇의 밥을 더 주고 한 섬지기 쌀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밥심으로 일하는 일꾼들한테다 몇 숟가락 밥을 아낀다고, 그것이 쌓여 노적가리가 되어 주게 씁니까......"
눈을 내리뜨고 침착하게, 낯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말하는 효원의 모습에, 율촌댁은 가슴이 벌벌 떨려 턱이 다 흔들렸다. 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만 자리를 차고 일어나 버리고 싶은 것을 율촌댁은 기어이 참는다. 내 이날까지 어머님께 눌리어 산 것도 어는 순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거는 이제는 며느리 시집까지 살아야 한다니, 무슨 놈의 한세상이 돌아가며 시어머니뿐이냐. 아니 저런, 저 눈꼬리 저 입귀퉁이 좀 보아라. 저것을 ......저것을 어쩔꼬. 말로 해서 다스리기는 이미 틀렸다. 제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또박 또박 끊어 가며 말대답을 한단 말인가. 무어? 놉이 누군가요오" 놉이 놉이지 누구란 말이냐. 타고날 때부터 그런데 무엇이라고? 오장육부는 다 똑같으니 무엇이 어쩐다고? 어히구우. 율촌댁은 드디어 한숨을 터뜨렸다.
"너 아주 말 잘허는구나. 그렇게도 소견이 훤허고 뜻이 분명하다면 삼정승 육판서도 돌아가며 허겄다. 터진 입이라고 아무 앞에서나 앞뒤가릴 것도 없이 말을 잘해.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시에미를 가르칠 작정이냐? 훈장 노릇을 해 보기로 마음에 아주 작정을 세웠어?"
그네가 무릎 위에 얹고 있는 주먹이 저도 모르게 안으로 오그라지면서 푸르르 떨린다. 효원은 그런 율촌댁의 서슬에도, 앉은 자세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그네는 할 말은 했다는 듯 조금도 당황하지는 기색이 없다.
"옛말 그른 데 하나도 없구나. 하나도 없어. 개같이 버는 놈 따로 있고 정승같이 쓰는 놈 따로 있다더니, 바로 이 집안에서 그 꼴이 날 줄이야 누가 알았든고. 이 날 이때것 싸래기 한 토막이라도 쪼개서 애껴 먹은 사람 따로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것이 무슨 징조란 말인가."
율촌댁은 좀처럼 심사를 가리지 못한다. 효원은 요지부동하고 앉아 있으니 그네의 끓어오르는 심정은 더더욱 다스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효원은 그런 율촌댁에게 무슨 변명조차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해 보아, 말을. 찍소같이 그렇게 버티고 앉아 있지만 말고. 네가 아직도 잘 했다고 생각허는 것이냐?"
그제서야 효원이 고개를 든다. 물론 감히 똑바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요, 목소리 또한 불손하지 않았다.
"어머님.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기 속에 심중을 가지고 할 것입니다. 심중을 가지고 한 일이라면, 남이 무어라고 한다 해서 쉽사리 부화뇌동, 주견도 없이 남의 의견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이번 제가 한 일이 설령 어머님 보시기에 잘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평소에 제 생각이 그랬던 것이라 아직은 잘못이라고 꼭 닫지 못하겠습니다. 속으로는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용서를 빈다는 것은 오히려 어른께 욕되는 처사가 아니게 습니까. 그것은, 속으로는 비웃으면서 겉으로만 아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 어른을 능멸하는 일입니다.
그저 앉은 자리 난 모면하자는 얕은 잔꾀로 어머님께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효원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율촌댁의 주먹은 방바닥으로 내려앉았고, 그 주먹으로 효원을 후려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율촌댁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강모가 불쌍하다. 강모가 불쌍해. 그렇게도 여리고 순한 사람이 어쩌자고 너같이 대찬 사람을 만났을꼬. 여자란 그저 위아래로 순탄해야 집안이 화목한 법이거늘, 꼬챙이 같은 그 성정으로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잡는단 말이냐. 어히구우, 가련한 인생이로다."
율촌댁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허공을 향하여 혼잣말처럼 탄식한다. 이번에는 효원의 얼굴이 벌겋게 된다.
"너 그래 가지고 평생 공방 면허기 어려울 것이다."
드디어 율촌댁은 그 한 마디를 뱉는다. 마치 벼르고 별러 오기나 한 것처럼. 그러더니 바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미닫이를 거칠게 열어붙이고 대청으로 나가 버린다. 효원은 앉은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바람벽을 쏘아본다. 그네의 뒷등에서 쩌엉, 소리라도 날 것 같다. 그날 밤 율촌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소상히 전해들은 이기채는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집구석 되어가는 꼴 허고는. 참 잘헌다 잘해....... 시애비도 아껴 먹는 곡식을 그렇게 함지로 퍼다가 놉이나 멕이고. 공덕비를 세워 주겄그만."
하고는 죄 없는 놋재떨이만을 두드리며, 불편한 속을 어떻게도 다스리지 못하였다.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있어야지. 한 톨 양식이라도 보태기는커녕, 도리어 물 퍼내듯이 퍼내기는."
"그저 대만 세어 가지고, 어디 보드랍에 스미는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으니 강모가 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바깥에서 떠돌 수밖에요......."
"허허어, 이거 집안 어찌 되려고 이 지경인가. 온 식구 권속들이 손발같이 한 속으로 정신을 채려도 눈만 뜨면 도척이가 천지에 이글거리는 이 마당에, 이건 식구마다 각동 삼동으로 흩어져서 제멋대로 논다니.......어머니 쾌차하시기는 바랄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었는데. 여기다가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기나 하면 대체 이 집안은 무었이 될꼬."
이기채의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덮쳐 오는 불안과 씨름을 하는 사람처럼 어둡고 침울하였다.
"무엇이든 어머님 혼자서 다 해오셨으니까 이렇게 어머님 한 분 실섭하시자, 아무 일도, 아무도, 어떻게 손을 못대 보는 게지요."
"이게 어디 어머니 탓으로 그런가? 그 어른은 또 왜 들먹이는 거요?"
"그전에도 그런 말 입답디다. 큰 나무 그늘에서는 풀뿌리도 다리를 못 뻗는다고."
율촌댁은 이기채와는 다른 심정으로 말꼬리를 꼬았다. 그네는 아무래도 아까 효원에게 당한 일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당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수모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어머님이 나를 허수롭게 알으시니 이제 겨우 귀때기에 솜털도 안 벗어 진 것까지 제 시에미를 짚신짝같이 아는 거 아니겠소......?"
"이건 또 무슨 봉창 뚫는 소린고? 아니 지금 새삼스럽게 시집살이 하소연을 허자는 게요, 무어요."
이기채가 역정을 내자, 모처럼 만에 남편 앞에서 속에 응어리졌던 말을 털어놓으려던 율촌댁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저 오나가나 나는......) 그네는 웬일인지 전에 없이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여편네의 소가지란 어쩔 수가 없구나 싶어 쓴 입맛을 다신다. 이기채는 온 밤을 앉아서 새
우다시피 하였다. 날이 밝으면 부르지 않아도 기표가 올라오겠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사람은 보내서 부르고 싶었다.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했다. 무슨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이 어둠의 무게에 짓눌리어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본디 그는 성품이 느긋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놋재떨이를 새되게 두드르면 두드릴수록, 깊은 밤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을 쳐 더욱 깊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날은 밝아 주지 않았다. 결국 닭이 첫홰를 치고 나서 숨 몇 모금 마실 여유도 참지 못하고 그는 붙들이를 내려 보냈다. 기표는 바로 올라왔다.
"안색이 아주 안 좋으십니다."
"안색이나마나."
기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묻지 않으면서도 이기채의 의중을 환히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이기채는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일일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쪽 생각을 전할 수 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리도.
"형님. 강모한테 직접 말씀 허시기가 난처하면 제가 변죽을 울리지요. 마침 강모도 이따 전주서 온다고 했다니까 말하기 좋겠습니다."
기표의 말에 이기채는 말끝을 잘라 대답했다.
"그래?"
"이젠 저희들도 내외지간에 흉허물 없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은 어차피 집안일이니까 질부도 한 속이 되어야 할 것이고요. 시집간 딸은, 친정의 명당도 훔쳐 온다는데."
"알아서 해 봐."
이기채는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놈이 이런 일을 경우지게 해낼 수 있을까?
웬만한 자각만 있다 하더라도 이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련만. 제가 무슨 집안일에 뜻이 있으랴. 강단도 없고 무슨 계획도 각오도 없는 자식 놈. 아들이 둘만 되었으면 내 심사가 이러지는 않을 것인데......정신이 공중에 떠서 도무지 실속이라고는 없는 저 허수아비 같은 놈을, 그래도 자식이라고 믿고......도대체 이 집안이 어찌 되려고......난데없이 앵금을 치켜들고 풍각쟁이가 된다고를 하지 않는다,
동경으로 가겠다고를 않는가......제 놈이 어떤 종손이라고, 제 몸 알기를 길가의 돌멩이처럼 천하게 굴리다니......강모가 실하다면 내 심정이 이 지경이 되랴.) 이기채는 그만 속이 메슥거리면서 휘잉하니 어지럼증이 돌았다. 그것은 이기채에게 이제는 고질이 되어 버린 병이었다. 워낙 위가 실하지 못하여 삼시를 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창씨의 일이 있은 뒤 그의 심신은 몰랒보게 쇠삭하여,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의식을 놓아 버리다시피 한 청암부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머리도 허옇게 세어 버리고 수염도 누르께한 빛으로 바래어,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조차도 종잇장처럼 얇아 보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신경은 파랗게 긴장되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골몰하는 것이었다. (위태하다.) 이 생각은 한시도 이기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위태하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거리거나 연신 마른기침을 했다. 아랫사람들도 사랑 근처에서는 발걸음을 조심하여 더욱 숨죽였다. 이기채가 그러하니 자연 집안사람들은 물론이고 대소가에서도 마음이 어지러워, 모여 앉기만 하면 낮은 소리로 술렁거렸다. 바둑판같이 네모반듯하던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씨의 일이 있은 후, 지난 대서를 고비로 끝내 청암부인이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만 뒤, 급작이 더하여진 증세였다. (위태하다.......) 그날 아침 안서방이 사랑에 와서 더듬더듬 청암부인의 실섭을 천할 때 이기채는 뒷머리를 번개처럼 후려치는 이 생각에 아찔하였다.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 낭떠러지를 향하여 치닫고 있는 어떤 운명을 절감하였다. 그것은 청암부인의 임종에 대한 예감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 집안과 자신에 대한 소름 같은 예감이기도 하였다.
드디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일이 이다지도 순식간에 닥쳐오다니. 이기채는 오한이 났다. 그리고 그 오한을 감추려고 짐짓 심상한 체 꾸미었으나, 청암부인은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암부인의 와병 소식은 그날로 거멍굴에 까지 번져갔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강모에게도 다녀가라는 전보가 날아갔다. 바이올린 일이 있고 나서, 다시는 매안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강모가, 급한 연
락을 받고 단걸음에 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데. 기표는 미리 안서방한테 귀띔을 해 두었다가 강모를 수천 댁으로 불러서, 이기채와 논의하였던 일을 말한 것이다. 본디 강모는 수천 숙부 기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까닭 없이 어색하고 마음에 경계심을 품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표는 이야기를 하다가 도중에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의 눈 속을 지그시 들여다볼 때가 있었다. 그것은 어쩌다 한번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이 고비에 이르거나 꼭 관철시키고 싶은 확신이 전신에 팽팽하게 차오를 때, 마치 상대방의 속셈을 한눈에 캐내려고 하는 것도 같고, 자기의 계획을 상대방에게 심지 박으려고 하는 것도 같은 지긋함이었다. 지긋함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눈빛은 오히려 바늘 끝같이 예리하여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런 눈빛을 눈치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