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 짤츠부르그성
하이델베르크성처럼 요새를 목적으로 지어진 성이다. 짤츠부르그 어디서나 보이므로 길 찾는 이정표가 된다. 여기서 조금 들어가면 ’논베르그 수도원‘이 있는데, 뮤지컬에서 마리아가 기거했던 곳이다. 리프트를 타고 성 내부를 관람했다. 제일 처음 우리 눈길을 끄는 건 배수로였다. 빗물이 바닥을 흐를 때, 한 곳으로 흐르도록 작은 고랑을 만들었는데, 희고 검은 자갈돌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바닥 위에 그려진 예쁜 그림 같았다. 성 위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폰트랩 대령‘’집을 찾아보았다. 시내가 한 눈에 조망되어 시원하다. 성 주위를 흐르는 해자와 더불어 붉은 지붕과 녹색의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카페 ’슈마셀리‘는 1705년부터 약 300년 역사를 가진 콧대 높은 커피숍으로 비엔나의 명물이다.짤츠부르그 대성당에는 5천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오르간이 있으며, 일만 명의 신도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동유럽 최대의 성당이기도 하다. 버스 안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며 빈으로 향했다.
뒤른스타인성
이곳은 오래된 목가적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포도와 살구 재배가 성했던 곳이라 그런지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옛날을 쉽게 떠 올리게 한다. ’사자왕 리처드‘가 갇혔던 ’뒤른스타인성‘은 거의 폐허에 가까워 오래된 성문이 강어귀에 우뚝 서 있고, 산의 절벽에 붙여 건축된 집과, 벽에 장식처럼 붙여 키운 포도나무와 나팔꽃,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다.
뒤른스타인의 ’바하구 ‘마을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리슬링‘이란 종으로 청명하고 산도가 높아,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제일 좋아한단다. 바하구 계곡 언덕 위부터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식 밭에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나우‘강은 2860km를 흐르고 오스트리아를 360km 돌아 흘러 헝가리까지 발칸의 젓줄이 된다. 홀리데이인 호텔에 짐을 풀었다. 처음 길인지 기사도 엄청 헤매고, 길도 어두운데다 한쪽에 숨어 있어서 찾기 힘들었다. 위로 높이 솟은 호텔만 생각했는데 옆으로 길게 퍼져 있었다. 저녁은 닭고기에 밥, 과일 샐러드가 나왔다. 늦은 시간이라 식당 안엔 우리뿐이다. 정성껏 차려진 음식이라 맛있었다.
봄의 왈츠가 흐르는 비엔나
13세기 후반 640년간 합스브르그 궁정 문화와 함께 발전한 음악의 도시(모짜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베토벤) 그 공기와 분위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차분함이 가득하다.’고요한 밤‘ 오스트리아 짤즈부르그 부근의 오베른 도르프라는 작은 도시의 성 ’니콜라우성당 사제 ’요제프 모어‘가 작사하고, 프란츠그루버’ 작곡으로 136개 언어, 193개 버전으로 지구촌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세계인의 캐롤이다. 빈의 중심가 스테판 사원이 있는 ‘스케트르 스튜라니 거리는 케이크로도 유명하다. 카페는 빈 사람들에게 중요한 장소로 요리를 시켜 나눠 먹으며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고, 밤 12시 까지 이어진단다. 단걸 좋아해서 단 거라면 사죽을 못 쓰고, 딸기랑 과일을 듬뿍 얹어 즐긴다. 카페에선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여름엔 밖에서 마실 수 있어, 지역민의 따뜨ㅅ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스퍼델 베르그 거리는 예전엔 땅값이 싸 예술인이 많이 살았으며, 스타일리시한 가구와 그림들이 넘쳐, 느긋하게 빈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오페라 극장은 9월 공연 열리는데, 중후한 큰 건물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최고이다. 비엔나 나슈 시장은 벼룩시장, 시골 장터같은 느낌이어서 사람과 사람과의 온기를 사고 파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싸우어크라우트‘는 오스트리아의 흰 무우김치.
’뒤른스타인‘은 오래된 목가적 도시로 비엔나, 빈으로 불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이 번성하게 된 것은 황실에서 자유, 평등, 박애란 기치 아래 6국의 귀족들이 모여 빈회의를 하게 됐고, 파티가 자주 열리게 되면서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가 무도회를 수놓게 된다.
’쉘부른 궁전‘은 ’아름다운 샘‘이란 뜻이다. ’요세프 황재‘의 집무실엔 황후의 사진과 가족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마리아 테레지아’여제의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인 이곳은. 외부는 바로크 양식, 내부는 로코코 양식이다. 26개의 방으로 나뉘어진 궁 내부를 한국말로 녹음된 리모콘을 받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시종들의 방을 지나 황제 집무실, 알현실, 침실, 아이들의 장, 황후의 방, 화장하는 방, 대연회장 등을 거쳐 26번 방을 나오면 뒷정원이 펼쳐진다. 거울의 방에선 그 유명한 ‘모짜르트’가 공연을 펼쳤단다. 대연회장의 천정 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 궁에서 1500명의 시종과 함께 살았다.
요제프 황제의 부인 엘리자베스 일명 ‘씨씨’의 초상은 흰 드레스에 검은 긴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다. 씨씨는 가끔 자신의 미용사를 자신으로 변장시켜, 궁전의 따분함을 피해 뒷문으로 사라지곤 했단다. ‘씨씨’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벽에 걸린 그림 중에 각국을 대표하는 마차행렬이 있었는데 문장, 말들 , 당시 입었던 귀족들의 의상, 시종들의 숫자, 화려한 치장을 섬세하게 그려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갔다. ‘프란츠 요제프’황제는 60년을 통치했으며, 86세에 사망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성실하게 정무에 임한 검소한 황제였음을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황태자 ‘오히겔’이 지은 궁전으로, 군인답게 실내장식을 투구등 많은 군수품으로 장식했다. 2-3층으로 이루워졌고, 자연사 박물관과 짝을 이루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7천여점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렘브란트, 루벤스, 데에고, 벨라스케즈를 비롯해 구스타프 크림트, 에곤쉴레, 코카슈스,등 빈 분리파의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쉴레는크림트의 제자로 프리히 남쪽 불타강 체스피 마을에서 태어나, 빈으로 이사했다. 저 유명한 크림트의 ‘입맞춤’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비엔나의 입맞춤-크림트와 바셔
‘크림트’를 주축으로 한 빈 분리파의 전당 건물은 ‘인생은 예술이며 예술은 곧 자유다’ 라고 외치던 기존 분리파에서 분리되어 나온 예술운동으로 크림트의 ‘황금빛 유혹’이 주축이 되었다. 2층에 걸린 크림트의 ‘키스’를 보았다. 천국을 상징하는 꽃밭, 몽환적 분위기,화집보다는 색감이 떨어졌지만 실물이라 가슴이 떨렸다.
‘훈더르드 바셔‘는 건축가로 더 알려진 화가이다.’예술이 인간과의 대화의 창‘이길 바랐던 그의 작품에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리듬과 선을 따라야 함을 강조했고, 직선대신 곡선을 중요시했다. 동그란 창문이 나무와 함께 형형색색의 조명처럼 빛을 발한다. 창문은 모두 크기가 다르다. 바셔 하우스는 바람을 테마로 설정. 건물 내부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놀이방이 있다. 정글짐도 나사모양, 겨울에도 안에서 놀 수 있게, 천진난만함 까지 더했다. 복도 바닥 전체가 미끄럼틀이다. 윈터가든은 겨울 주민들의 휴식공간인데 1년 내내 녹음이 우거져 신비함을 더해준다. 벽에는 아이들의 낙서까지 바셔의 건축의 일부다. 하늘과 맞닿은 건물에선 왕관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그가 지은 비엔나 쓰레기 소각장은 테마파크공연장 같아 연 5000명의 관광객이 찾는 단다 현대의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그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빈의 밤거리의 분위기는 낮과 다르게 아름답고 차분하다. 와인 선술집 에른스트는 동굴과 같은 가게 내부에 250종의 와인을 진열해 놓고, 밤12시 까지 느긋하게 요리를 시켜 나눠 먹으며 편하게 식사와 술을 즐긴다., 지역민의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한 이곳, 빈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빈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곳, 의외로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 도시다. 빈의 숨겨진 모습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스트라우스‘ 음악관에 가니,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직접 지휘해 볼 수 있는 방이 있다. 놀이하듯 음악을 접하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나 같은 음치도 이곳에선 지휘자가 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영광인가, 온 세상을 춤추게 만들었던 스트라우스는 실은 몸치였단다. 봄의 왈츠가 흐르고, 도나우의 강물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음악과 예술, 비엔나와의 입맞춤, 벌써 비엔나가 그립다.
’까를 광장‘ 분수대 옆에 세워진 까를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 화는 화려함의 극치로 유명하다. 중앙의 돔은 까를 5세가 흑사병이 물러간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그린찡‘ 마을에서 저녁식사는 전통식인 ’호이리게‘ 정식을 먹었다. 비엔나 전통 술집의 단골 메뉴란다. 우리로 하자면 모듬불고기 쯤 될까, 정말 맛없었다. 할아버지 악사들이 연주하신 구슬픈 아코디언 소리는 삶의 비애가 잔뜩 묻어 있고, 그 비애가 섞인 와인을 마시고, 탁한 도나우 강을 바라 보았다. 모처럼 와인이 얼굴에 퍼지자 우리 모두는 한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