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하루-사리암에서>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맑고 포근한 날
어제 대학원 강의를 끝내고 오늘은 가을 산행을 떠났다. 님은 가지산 석남사를 정했다. 9시에 출발. 한 시간 30분쯤 걸려 석남사에 닿았다. 요일도 평일인데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행랑객이 거의 없다. 석남사를 돌아보다 사당 앞에 ‘가져가세요’하는 책꽂이를 보았다. 『참선이란 무엇인가?-마음의 고향에 이르는 길』 진제 대선사가 쓴 책이라 반겨 잡았다. 한글과 영어로 쓰여 있다. 외국인을 배려한 책이었다. 한 권 집어 배낭에 넣었다. 석남사를 돌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니 길이 가파르고 고요 적적하여 무섭기까지 하다. 님은 이런 길이 좋은 길이라며 앞장서 서두르지만 가지산 정상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런 등산길이라면 사람들이 우우 몰려다녀야 안심일 것 같다. 중턱에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냈다. 님은 이런 숲속에 앉아 먹으면 꿀맛이라는데 날파리, 쇠팔이들이 윙윙거려 정신을 사납게 한다. 예초에 물가에 앉아 맑은 물에 발 담그고 점심을 먹고 싶다던 내 마음을 접게 한 님이 야속하다.
점심을 먹고 내려와 청도 운문사로 방향을 틀었다. 청도!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지역이다. 가는 길에 청도감이 군데군데 나무에 달려있고 팔려고 상자에 담아놓은 홍시도 발간 얼굴을 보인다. 운문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푸른 나무 우거진 청정지역 길을 따라 걸었다. “이런 여유! 차암 좋다!” 푸른 나무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더 깊은 곳에서 차들이 내려온다. 사리암을 다녀오는 차들이었다.
“잘 왔다. 우리도 온 김에 최 교장 부동산 중계사 시험 합격 빌고 가요.”
우리도 올라가보려고 차를 세웠다. 그 전에 운문사 선물방에 들러 신교장 시어른 건강회복을 기원하는 팔찌를 하나 샀다. 팔찌 종유랑 색깔이 워낙 많아 어느 것을 사드려야 마음에 흡족해할지 몰라 몇 개를 골라 들고 사진 찍어 보내며 신 교장께 전화를 했다. “여기 운문사인데 염주 하나 골랐어. 어느 게 마음에 들지 몰라서 찍어 보냈어.” 그랬더니 “내 염주 많은데?” 한다. “너 말고 너거 어르신!”
“우리 어머니도 염주 많은데?” “그래도 한 번 물어봐. 어느 게 맘에 드는지?” 그랬더니 빨간색 염주가 맘에 든다고 하신단다. 그 염주는 님이 제일 마지막에 추천한 염주로 내가 어린애 장난감처럼 유치해보인다고 타박 주었던 염주다. 내딴에는 황색이며 고등색이며 고상해 보이는 염주를 들어보았는데... “여자들은 취향이 다 달라.” 그 말이 맞지. 신 교장 시어른도 빨간색 염주를 좋아하니 내맘에 드는 것을 사가기 보다 잘 물어봤다.
“사람들이 올라가던 저 안에 사리암 암자가 있어.”
님이 지도를 본 모양이다. 사리암? 그러고보니, 대학 졸업하고 발령을 아직 못 받았을 때 독일어 전공 채석희 선생님과 『베로니카의 땀수건』을 번역하러 절에 들어가 기거했던 곳인데? 40년 전 일이라 암자가 어떻게 변했을까 호기심이 동했다. 하지만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가도 절이 안 보인다. 내려오는 사람들한테 얼마쯤 더 가야 하나 물으니 30분 정도란다. 그 말에 뒤돌아서고 싶은데, 뒤에 분이 “30분은 무슨? 20분 정도 가면 되요. 높이 보지 말고 이 지팡이 짚고 땅만 보고 가요.” 하며 자기가 짚고 내려오던 네모난 지팡이를 손에 쥐여주었다. 엉겹결에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그 분의 격려가 고마워서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팡이가 묵직하다. 얼마쯤 가다 저 멀리 까마득히 높은 곳에 달린 듯 네모난 건물 하나가 보인다. “저기가 암자일까?” 님이 그런다. “아니, 천문대 같은데?” 나는 그리 높은 곳에 암자가 덩그러니 달려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암자는 안 나타난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암자 닿으려면 얼마나 더 가야되느냐고?
“저어기 모롱이만 돌아가면 나와요.”
이럴 때 내려오는 사람들 말은 다 거짓말임을 안다. 나도 누가 내게 물으면 곧 다 왔다고 거짓말할 게 뻔하니까. 돌아가고 싶은 발걸음을 한 걸을 한 걸음 디디는데 멀찌감치 집이 보인다. ‘저기가 사리암인가봐?’ 그 옛날 내가 한 동안 머물렀던 암자는 저리 웅장하지 않았다. 저리 높은 곳에 달려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쪽으로 보고 있는 집의 방향뿐, 모든 게 최신식 절로 변모되어 앉아 있다. 겨우 도착해 기도 접수처를 들여다보았다. <백일기도 접수>라고 붙어 있어 최상만 교장의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과 신교장 시어른의 건강 완치를 빌며 시주함에 만원을 넣었다. 사리암 꼭대기 절방에서 스님 두 분이 바깥을 내다보고 앉아 마이크를 잡고 누가 무슨 소원을 빌었다는 명단을 불러대고 있었다. 저렇게 명단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소원성취를 염원해 시주하는 이들에게는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생길 것 같다. 하긴, 천지지간에 울림 있는 소리를 부처님도 귀담아 들으시리라. 절방에 들여다보니 부처님이 가운데 앉아 계시고 절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들어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아 바깥에 서서 절만 꾸벅하고 내려왔다. 3시 40분에 사리암에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길은 가뿐했다. 뛰다싶어 내려오니 30분밖에 안 걸렸다.
오는 길에 길가에 감을 팔려고 내어놓은 상점 앞에 차를 멈춰 섰다. 감말랭이며 단감이며 홍시들이 익기엔 아직 이른 가을이라 풋내 나는 색깔로 놓여 있다. 그래서 두 세 곳에 들러 이틀 쯤 두었다 먹을 홍시감 한 상자(이만원)랑 단감, 감말랭이를 샀다. 신교장 댁에 들러 단감, 홍시, 감말랭이, 튀김 할 때 쓸 긴 나무젓가락(3천원)을 건네주었다. 우리 집 것도 샀는데 나무를 만지면 왠지 정겹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신교장이 차려놓은 저녁상에 앉았다. 어르신을 보고 반갑게 염주(만원)를 팔목에 채워드렸다.
”이건 맛있는 것 사잡수세요.“
하며 용돈도 준비해간 봉투에 십만 원 담아 드렸다. 우리 시어머니 살아 계실 때도 십만 원씩만 드렸던 것 같다. 아직 정정하신 어른을 모시고 사는 최 교장, 신 교장이 부럽다. 우리 친정어머니는 치매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른들이 정신 말짱하게 사는 걸 보면 차암 부럽다. 신 교장은 급히 저녁을 준비했는데 버섯 부치게랑 잡채, 된장국, 생채 나물을 준비해두었다. 건강식단이다. 식당에서 먹기보다 이렇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게 내가 좋아하는 집밥이다. 늘 식당에서 밥 먹자던 신교장이 집밥을 차린 걸 보면 이제 내 마음을 알까하는 생각도 든다. 집밥을 얻어먹고 차 한잔 마시고 급히 일어섰다. 최 교장 시험 앞두고 시간 아까울 텐데 눈치 없이 죽치고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일어섰다. 오늘 하루는 사리암에서 친구 대신 부처님도 만나보고 친구도 만나보고 친구의 시어르신도 만나보아 내 삶의 하루-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