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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던 날 아침, 문정인 교수는 이번 회담에 대해 워싱턴에서 어떤 평가를 내놓을지 지켜보고 있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민주 공화 양당 하원의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특별히 초대받아 이들의 생각도 직접 들었다.
아미 베라/민주당 하원의원 한반도 연구모임 공동대표: 대화를 거절해선 안됩니다.
문정인: 대화하는 동안엔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을테니까요. 그건 좋은 신호죠.
앞으로 북미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국의 차세대 한반도 연구자는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자1: 북한이 결국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학자2: 지속 가능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조약을 위한 명확한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하노이 회담후 북미관계는 다시 위기에 놓였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북미관계의 길은 연제쯤 열릴 수 있을까.
2019년 2월 26일 베트남 동당역, 지난 2월말 전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에 집중됐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이어 두번째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에 도착한 김정은 위원장, 북한이 어떤 카드를 들고 왔을지 기대가 컸던 만큼 김 위원장의 의중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같은 날 늦은밤, 2월 26일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와 두번째 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이번 회담의 성패는 북한이 비핵화를 어디까지 약속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2월 27일 메트로폴 하노이 호텔, 싱가포르 정상회담후 260여일만에 다시 마주선 트럼프와 김정은, 북미역사의 새 길을 열고자 했던 하노이 회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기자: 김위원장님 비핵화 준비가 되셨습니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그럴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좋은 대답이죠? 최고의 대답아닌가요?
기자: 김 위원장님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김정은: 아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충분한 이야기를 좀 더 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
좋은 결과를 기대하였던 회담이었다. 그러나 오찬시간이 지나도록 정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회담은 결국 결렬됐다.
도날드 트럼프: 오늘 합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100% 합의할 수도 있었어요. 이미 서명할 합의서도 다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적절한게 아니었습니다. 전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미국 워싱턴, 같은 시각 미국 워싱턴,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미국 워싱턴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뉴스였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만남을 준비해온 문정인 교수는, 워싱턴에서 회담 소식을 들었다. 북미가 어떤 합의문도 내지 못하고 회담을 끝낼 줄은 문교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문정인/연세대 특임명예교수: 기대 밖의 결과죠. 우리가 원했던게 이번 하노이에서 큰 협상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방도 이루어지고, 후에 우리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은게 우리 정부의 바람이었는데 이번에 제동이 걸린 건 사실이죠.
앞으로 달리는 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북미관계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이번 회담은 왜 무산된 것일까.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보기로 했다.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1990년대부터 북핵협상에 관여해온 그는 미국의 북핵협상대표인 스티브 비건의 자문관이자 CNN의 북한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문정인: 합의 없이 끝난 하노이 정상회담 어떻게 보시나요?
로버트 칼린: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했어요. 누가 큰 합의를 제안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회담에서 영변시설 외에 다른 곳까지 협상하기엔 무리였다고 봐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지역의 비핵화를 협상카드로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그 이상을 요구했고 북한이 거부하자 결국 협상은 중단됐다.
문정인: 결렬되는 것이 나쁜 협상을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미국이 100% 이겼거나 북한이 100%이긴게 아니니까요?
로버트 칼린: 둘 다 졌죠. 그것도 좋은 건 아니에요. 어떤 교훈을 얻었고 이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해요. 북한은 이제 미국이 조심해야 할 대상이란 걸 알았어요.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아서 거기서부터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출발점은 왜 달랐던 것일까? 3월 1일 랜드연구소, 미국 국방정책을 연구하는 랜드연구소 (RAND 1776 Main Street), 국방부의 주요자문을 하는 곳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다음날 랜드연구소에서 회담을 평가하기 위한 비공개간담회가 열렸다. 평소 외부인에게 잘 개방되지 않은 곳이지만 문정인 교수가 간담회에 초대받아 촬영을 특별히 허가받았다. 간담회에는 전직 아시아 대사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들은 문교수의 의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문정인: 북한과 미국 사이의 견해 차이가 매우 큽니다. 트럼프의 기자회견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는 아직도 북한이 먼저 핵시설을 해체해야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고 밟히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미는 누가 무엇을 먼저 내놓을 것인가를 두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 정책을 30년 이상 연구해온 랄프 코사(Ralph Cossa), 그는 결렬로 끝난 이번 회담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2018.6.12)은 트럼프와 김정은, 두 지도자의 결단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들은 네가지 큰 틀의 합의를 이뤄냈다. 이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2018.7.8)을 시작으로 실무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합의해야할 의제들이 워낙 크고 복잡해 협상은 초기부터 삐걱됐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는 등 북미는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 1월(2019.1.19) 스웨덴 스톡홀름의 외딴 휴양지에서 어렵게 양측 대표가 만났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곳에서 이루어진 비공개 2박3일 회의, 이곳에서 스티브 비건 대표, 최선희 부상이 실무협상에 돌입했다. 하노이 회담을 한발 앞두고야 본격적인 의제협상이 시작됐지만 방대한 의제를 조율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태평양세기연구소(PCI)만찬모임(2019.2.28 저녁 LA),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날 저녁, LA의 한 연구기관이 주도한 만찬모임이 열렸다. 이들은 그동안 미국과 아시아 대륙간에 이해와 교규증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이번 하노이 회담에 대해서도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캐슬린 스티븐스: 하노이 회담후 저녁 만찬을 함께 하고 있는데요. 태평양 세기연구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반도 상황을 오래 지켜봐온 전문가들은 회담을 어떻게 평가할까?
캐슬린 스티븐스: 지난 며칠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북한과 미국에게 비핵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 세부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핵무기가 없는 북한의 모습은 어떨지 김정은이 합의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말이죠.
연구소에서는 특별한 시상식도 열렸다. 미국과 아시아 간에 가교역활을 한 사람에게 주는 빌딩 브릿지상이다.
문정인: 빌딩 브릿지상 수상자인 피터 헤이즈(Peter Hayes)를 소개하겠습니다. 피터를 알고 지낸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는 군산에 980개의 전술핵을 배치했다는 미국정부문서를 처음으로 찾아냈습니다. 또한 핵폭탄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수상자는 피터 헤이즈 소장, 그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북핵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북한핵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그 해법을 모색해 왔다.
피터 헤이즈/現스틸러스연구소 소장: 제가 1991년 처음 방북했을 때 영변을 원격 탐사한 인공위성 사진을 가지고 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영변에 초점을 맞춰왔는데요. 당시 한 북한 장군에게 영변에 뭐가 있는지 알여달라고 했어요. 그는 고위직이었는데도 잘 몰랐습니다. 가장 중요한 핵무기 관련 시설 중 80%가 영변 단지에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어요.
피터 헤이즈는 영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노력해 왔다. 주요 핵시설이 밀집한 영변을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터 헤이즈: 영변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 있는데 바로 삼중수소를 만드는 곳이에요. 삼중수소는 핵분열 무기가 아닌 핵융합 무기를 만들 때 사용됩니다. 보통 수소폭탄으로 알려졌죠. 도화선 역활을 하는 삼중수소가 없으면 수소폭탄을 쉽게 만들 수 없습니다. 플루토늄과 우리가 알고 있는 농축시설뿐만 아니라 삼중수소 생산시설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북한핵 프로그램의 2/3 정도를 통제하게 됩니다. 플루토늄 생산시설, 농축시설 한 곳, 삼중수소 생산시설을 통제하는 것은 첫 단계로는 꽤 큰 것인데 하노이 회담에서 결국 실패하곤 말았죠.
리용호/북한외무상: 우리는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나라 기술자들이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북미 양국 사이의 현재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단계에서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입니다.
영변의 모든 핵생산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것, 북한은 비핵화의 첫단계로 영변을 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북한의 카드를 받지 않았다.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폼페이오와 전 오랫동안 협상을 해왔고 우리 끼리도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영변시설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제재 완화를 하기에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자: 김정은이 영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 이상을 원하셨단 말씀인가요?
트럼프: 우린 그 이상을 원합니다.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던 다른 시설들에 대해 북한은 얘기하지 않았어요.
기자: 우라늄 농축계획까지 포함해서요?
트럼프: 그렇습니다. 우린 여러가지를 얘기했습니다. 북한에선 우리가 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영변은 핵무기의 연료가 되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것으로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로 불린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미국은 영변+A를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비핵화의 대상조차 서로 합의를 못한 것이다.
랄프 코사: 우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공통된 정의가 수립되어 있지 않아요.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란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위협은 남한에 주둔한 미군뿐만 아니라 괌이나 미국 동맹국, 일본과의 관계까지 포함한 겁니다. 북한에서 보는 비핵화는 미국에서 생각하는 비핵화 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미국은 비핵화와 관련해 영변은 핵 프로그램의 일부이며 또 다른 시설 역시 밝혀져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협상 초기부터 미국이 요구한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였다. 이를 위해 모든 핵 시설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비핵화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피터 헤이즈: 궁극적으로 모든 핵물질의 단계별 재고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채굴, 분쇄, 농축, 원자로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플루토늄에서 무기로 가는 과정, 우라늄으로 가는 과정, 최종 무기 숫자 등 이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조사해야 그 물질이 어디로 가는지 신뢰성 있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부는 누락되고 또 일부는 제조공정상 추적을 하다 놓쳐 버릴 수 있거든요. 매우 작은 양의 물질이 어디로 언제 사라졌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거죠. 파이프 안에 계속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늘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신뢰성 있게 파악해야 합니다.
비핵화는 수많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며 진행을 해 나가야 한다. 핵시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검증하고 비교하려면 단계별로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영변 핵연구소-연구용 원자로 실험용 경수로(ELWR) 핵연료 저장소), 비핵화의 복잡한 과정을 풀어나가려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일까. 레온 시걸 교수, 동북아 인보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그의 비핵화 방안은 무엇일까.
레온 시걸/現미사회과학 연구위원회(SSRC)국장: 핵분열 물질 생산을 멈춰야 합니다.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이 더 이상 생산 돼선 안됩니다. 그건 핵무기의 폭발 물질이니까요. 그게 첫 단계예요. 북한이 이 시설을 폐쇄했는지부터 검증해야 합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영변 시설뿐만 아니라 북한내 다른 핵분열 물질 생산시설까지 해체하란 말을 들었습니다. 시설 해체를 약속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해체해선 안됩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 시설들에 가서 어느 정도의 핵물질이 생산되었는지 검증을 해야 하거든요. 이 과정에는 북미간 상호협력이 필요해요. 채굴장과 광물처리시설 등에 먼저 가봐야 하니까요.
문정인: 이 과정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시나요?
레온 시걸: 핵분열 물질이 얼마나 생산되었는지 검증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릴거예요. 이를 빠른 시일안에 파악할 방법이 없어요. 많은 인력과 감마선 탐지기 등 여러가지 장비가 필요해요. 검증에는 시간이 걸려요. 짧은 시간에는 불가능합니다. 2년안에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현실성이 전혀 없는 거예요. 정치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10년 이상은 걸릴 거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미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분명히 확인했다. 회담 첫째날 저녁 만찬 자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뒤에서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논의된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북미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전면 해제냐 부분 해제냐를 두고 양측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리용호: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결의 총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5건의 해제가 사실상 전면적인 해제라 보고 협상을 중단했다.
랄프 코사: 북한이 모든 제재를 철회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의 조찬은 미하원의원들로 구성된 한반도 연구모임이 주도했다. 한국계 하원의원인 앤디 김(미민주당 하원의원)도 자리를 함께 했다.
마이크 켈리/공화당 하원의원: 저는 한국에 여러번 갔었어요. 즐거웠어요. 막내아들과 딸이 한국 아이와 8학년부터 학교에 같이 다녔어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아미 베라 의원, 그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간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줄 곳 강조해 왔다.
아미 베라: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 교수님의 말씀을 기대하겠습니다.
문정인: 제가 감사하죠. 대화를 하는 건 늘 바람직하죠. 대화를 하는 동안엔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테니까요. 그건 좋은 신호죠. 물론 그게 해결책은 아니지만요. 더 심도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좋은 신호예요.
오늘 조찬은 비공개 모임이었다. KBS 스페셜 제작진이 특별히 촬영을 허가받은 것도 인사를 나눈부분까지 였다.
문정인: 오늘 미의회 하원의원들과 상당히 흥미있는 대화를 가졌습니다. 제재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많이 했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애요.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위해서 상당히 과감한 행동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제재의 부분적 완화로 가는 것 아니냐 이런 것들이 이분들 생각인데 저는 놀랐습니다. 왜냐면 미행정부도 그렇고 의회에서도 다 그랬거든요.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 라고 했는데 하원의원들이 ‘만약 북한이 가장 설득력 있는 비핵화를 행동으로 보이면 제재의 부분적 완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를 한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 듀크대학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다시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을까. 문교수는 20여년째 듀크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일년에 한번씩 동아시아 정치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강의의 주제는 북핵과 한반도 평화, 문교수는 북핵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된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정인: 전 운이 좋게도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이었고, 2007년 10월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에도 갔었어요. 2018년 세번째 평양정상회담에도 참석했었고요. 저는 많은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과거엔 어디에나 군인이 있었습니다. 군대는 혁명의 수호자를 자처합니다.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 수령을 수호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군인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게 경제와 관련되어 있었어요.
문교수의 발제에 이어 듀크대 피버 교수의 반론이 이어졌다.
피터 피버/듀크대 교수: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회담 때의 전략을 보면 대가를 얻고자 먼저 주는 방식을 택했지만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제대로 홍보해 주겠다는 식이었죠.
북한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미국은 양보만 했다는 비판, 뉴욕 맨해튼, 현재 미국 조야에서는 이처럼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전쟁평화연구소에서 북한 연구로 저명한 학자들을 만났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잭 스나이더/컬럼비아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북한은 모든 핵 억제력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북미 모두 전쟁을 시작해서 얻을 게 없어요.
찰스 암스트롱/컬럼비아대 한국학 연구소장: 북한은 핵 억제력을 유지하고 싶어해요. 늘 핵을 보유할 겁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절반의 합의일 거예요.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공원 미국 워싱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오랜 역사와 함께 깊이 쌓여 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미적대 역사도 시작됐다. 냉전체제가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개발에 몰두하며 미국과의 적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련붕괴로 냉전체제가 무너지자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다. 70년이 흘렀지만 북미적대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도는 왜 계속 실패한 것일까.
문정인: 여기는 미국 뉴욕주 아몽크 라고 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입니다. 여기에 한국의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국대사님이 살고 계십니다. 그 분은 1990년대초 한국에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평화의 기운이 싹틀 때 그 현장을 목격했고 그때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조율했던 분입니다.
90년대 초반 한반도의 평화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숨은 조력자였던 그레그 대사, 문교수와는 3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사이다. 1970년대부터 CIA 간부로 한국에 머물렀던 그레그 대사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북핵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
문정인: 대사님 집에서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現태평양세기연구소(PCI)회장: 오랜 친구를 집에 초대하게 돼서 기쁩니다. 처음 오시는 거죠. 앞으로 많이 오세요. 환영합니다.
문정인: 대사님이 2003년, 2004년에 북한을 방문 하셨잖아요. 그 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셨어요. 어떤 내용의 서신이었나요?
그레그: 북한을 악마로 만드는 걸 멈춰야 한다고 했어요. 왜냐면 우린 북한을 잘 모르니까요.
그레그 대사는 조지 부시 前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을 바탕으로 탈냉전시기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감사장).
문정인: 대사님은 CIA에서 30년 이상 일하셨는데요. 회고록을 통해 CIA 정보수집에서 가장 실패한 곳이 북한이라고 하셨거든요. 그게 북한의 악마화와 관계가 있을까요?
그레그: 맞아요. 우린 북한이 우리에게 보내는 많은 신호를 외면해 왔어요. 관계 개선을 원하는 북한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느렸어요. 북한을 악마로 보는 걸 멈추고 그들과 대화를 했다면 진작에 관계개선이 되었을 거예요.
그레그 대사는 1990년대초 팀스피리트 훈련중단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이끌어 내는 등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크게 개선시켰다.
문정인: 이런 주장은 어떻게 보세요?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는 이룰 수 없다”
그레그: 그 주장은 늘 듣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비핵화를 가장 위에 두어선 안됩니다. 비핵화는 다른 단계들과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한 단계씩 밟아가다보면 비핵화 역시 해결 가능할 거예요.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해요. 비핵화를 이루는 데는 긴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거절당한 북한의 선택은 핵무기였다. 1980년대말 영변 핵시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북핵문제는 처음 불거졌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정에서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받았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조선중앙TV/1993년 3월-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는 나라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 조약(NPT)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평양시위-지금 조선 반도에는 당장 핵전쟁이 터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검토했다. 그러나 커터 前대통령이 방북 (1994년 6월)해 대화를 시작하면서 전쟁 위기를 막아냈다. 1차 북핵위기가 불거진지 18개월 만에 북한과 미국은 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1994년 10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IAEA에 핵사찰을 허용하면 미국은 경수로 2기 건설과 50만톤 중유를 공급한다는 약속이었다. 북미간 첫협상으로 이뤄낸 제네바 합의, 그런데 왜 지속되지 못했을까.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만나 제네바 합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대표이자 90년대 중반 국무부 북한담당관이었던 조엘 위트(Joel Wit),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측 협상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두 사람은 제네바 합의를 어떻게 평가할까.
문정인: 제네바 합의의 근본은 무엇이었나요?
로버트 갈루치/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협상대표: 북한의 기존 핵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원자로 두 곳의 신설계획을 동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거였죠. 그게 목표였어요.
조엘 위트/1995년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 우리가 제안했던 것은 경수로 원자로였어요. 경수로 원자로가 제법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50억 달러가 넘는 규모였으니까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콘크리트타설기념식/함경남도 신포, 제네바 합의후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은 경수로를 지원하기 위한 기구로 KEDO를 설립하고 북한 신포지역에 콘크리트 타설공사를 시작했다. 건설비용의 90%는 한국과 일본이 부담했다.
조엘 위트: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매우 좋은 시도였습니다. 동북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다국간 기구였으니까요. 일본, 한국, 유럽 국가들이 협력해서 50억 달러의 원자로 프로젝트와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그러나 부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2001년 1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됐고, 제네바 합의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북미관계는 다시 얼어붓기 시작했다. 신포의 경수로 건설사업은 중단됐고 KEDO도 결국 해체됐다.
로버트 갈루치: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의회 모두를 차지했는데 그들이 클린턴의 합의 내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등 수많은 변명을 늘어놨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관계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북한과 합의한다고 해도 그 합의 내용을 실행하는 것이 합의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부시정부때 2차 북핵위기가 터졌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가 방북해 고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이 이를 시인한 것이다. 제네바 합의후 IAEA 사찰에 응하고 있었던 북한은 2002년 12월 사찰단을 추방했다. 또한 영변 핵시설 동결해제를 선언하고 핵확산 금지조약을 탈퇴하는 등 북한은 연이은 초강수로 미국을 자극했다. 2차 북핵위기로 제네바 합의는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문정인: 1994년 첫번째 핵위기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일단락 됐는데요. 2002년 (2차 핵위기)은 어땠나요?
조엘 위트/38노스대표: 북한의 우라늄 농축활동을 중단시킬 계획이었어요. 우린 1998년부터 북한이 우라눔 농축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부시정부가 기존의 합의를 받아들였다면 두번째 위기를 막을 기회가 있었을 거예요.
로버트 갈루치: 북한이 원했던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였다고 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 정권을 교체하려는 시도를 북한은 핵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런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원하고 있어요. 정권교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말이죠.
버지니아 대학교 미국 버지니아주, 2차 북핵위기는 어떻게 해결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위기를 막는데 결정적인 일을 했던 사람, 버지니아 대학교 필립 젤리코(Philip Zelikow) 교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 백악관에서 일하며 정책 자문을 맡아온 젤리코 교수, 독일통일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왔다.
필립 젤리코(Philip Zelikow)/現미국버지니아대 석좌교수: 이건 2002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초안을 작성한 것에 대해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브 헤들러 부장관이 준 감사장이예요. 이건 아들 부시 대통령이 준 국가정보국 자문위원회 임명장입니다.
젤리코 교수는 1990년대부터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과 함께 일하며 많은 국가 안보정책을 개발했다. 특히 독일 동일의 과정을 분석해서 쓴 책은 현대 외교사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통일과 유럽의 변환, 필립 젤리코-콘돌리자 라이스 공저).
필립 젤리코: 전 2005년초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되자마자 국무부에 합류했습니다. 우린 국무부 대외전략을 짰는데 함께 했던 동료 외교관이 크리스토퍼 힐이었습니다. 우린 북한문제해결을 위해 대안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비핵화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평화협상을 하고자 했어요.
핵문제만 보지말고 포괄적으로 접근하려는 것, 젤리코 교수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정인: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 APEC 회담을 통해 부시 前대통령이 노무현 前대통령과 만났어요. 당시 부시 前대통령이 노 前대통령에게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했어요. 한국전쟁 종전이나 평화선언 없이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요. 한국에선 필립 젤리코가 작성한 보고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었거든요. 사실인가요?
필립 젤리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인정받을 만한 일은 아니에요. 왜냐면 저뿐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몇 년 동안 다양한 면에서 협력했으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익숙했거든요. 2006년 부시 前대통령이 그렇게 제안을 했죠.
9.19공동성명 발표(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가 주요 내용이다. 9.19 공동성명은 북핵문제를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9.19 공동성명의 단계적 이행조치를 담은 2.13 합의가 채택됐다.(2007년 2월).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영변 냉각탑 폭파(2008년 6월)도 2.13합의에 따라 북한은 영변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하지만 비핵화 과정이 난항을 거치면서 모든 합의가 수포로 돌아갔다.
필립 젤리코: 비핵화 외에 관계정상화 등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어떤 것도 총체적인 평화협상이 아니었어요. 당시에도 비핵화를 중심으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비핵화가 실패하자 모든 것이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죠.
미국평화연구소(USIP)워싱턴, 워싱턴의 차세대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찾은 곳, 미의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전세계 분쟁지역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은 문교수와 토론하기 위해 젊은 한반도 전문가들이 대거 모였다.
프랭크 엄/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문정인 박사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군비통제와 핵 비확산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젊은 전문가들도 참석해 주셨고요.
패트리시아/미국평화연구소 아시아센터 연구원: 지난해는 북미관계,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 역사에 남을 만한 해였습니다. 이제는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인 외교적 합의를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노이 회담이 무산된 후 북한과 미국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여기서 멈춰서지 않고 다시 움직일려면 어떤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까.
제이크 스톡스/미국평화연구소 선임분석관: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기본적인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결과물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협상방향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담겨야 합니다. 각국이 생각하는 합의에 대한 근본적인 윤곽도 잡아야 하고요.
북미가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양보할 수 없는지 알아가는 것, 협상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토비 달튼/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핵정책 공동책임자: 오늘 회의의 요점은 충분히 희망을 가질만 하지만 앞으로 어려운 과제들이 있고 창의력과 인내심이 요구될 거라는 거죠. 앞으로 노력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버지니아 대학에서 외교사는 강의하는 필립 젤리코 교수, 그가 말한 것처럼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함께 만들어가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문정인: 한반도의 평화선언은 비핵화와 함께 이뤄져야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필립 젤리코/미국 버지니아대 석좌교수: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은 비정상적이고 위험합니다. 이게 문제의 핵심이에요. 문제의 핵심을 현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이란 휴전이후 한반도에서 평화협상을 제대로 시도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젤리코 교수는 지난 2.13 합의 때 처럼 비핵화는 여러 문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한 단계씩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젤리코: 당장의 목표는 현재의 군사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전쟁을 예방하는 겁니다. 중장기적인목표는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서로가 어떤 것을 포기할 지 걱정하는 겁니다. 평화협상 과정에는 수많은 주요 문제들이 있습니다.
한반도는 우리 삶의 터전이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남과 북이 손을 마주 잡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화해할 때 한반도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의 역할이 더 커졌다.
랄프 코사: 이제는 전문가들이 합의를 위해 노력할 때 입니다.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문대통령의 차례입니다. 전문가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필립 젤리코: 비핵화를 위한 모든 시도는 미국이 주도해 왔습니다. 비핵화 협상절차는 늘 북한과 미국만의 일이었습니다. 한국은 늘 옆으로 물러나 있었고요. 이는 근본적인 실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협상은 남북한 중심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모튼 할페린/前미국 국가안보회의 특별보좌관: 궁극적인 목표는 북미관계의 정상화입니다. 베트남을 보더라도 과거의 적대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과 베트남 관계처럼 북한과 미국도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북미 관계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적대관계였던 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정상이 지난 해에 이어 두 차례 만난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서로의 요구와 수용 가능한 부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을 다시 만나게 하는 것 그래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남1] 끝. (KBS 스페셜 51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에서 정리).
① 2019.2.27. 2차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지역의 비핵화를 협상카드로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그 이상을 요구했고 북한이 거부하자 결국 협상은 중단됐다. 남북한과 비핵화에는 수많은 복잡한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어떻게 비핵화를 할 것인가 다른 문제들이 무엇인지 등 여기에는 평화협정, 신뢰구축, 남북한 관계, 경제원조, UN 제재 등 수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문제들은 두 정상이 몇시간 함께 한다고 해결되지 않다. 사전에 실무급에서 논의가 돼야 했다. 실무선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두정상이 서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② 북한 핵무기 관련 시설 중 80%가 영변 단지에 있다. 영변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 있는데 바로 삼중수소를 만드는 곳이다. 삼중수소는 핵분열 무기가 아닌 핵융합 무기를 만들 때 사용된다. 보통 수소폭탄으로 알려졌다. 플루토늄과 우리가 알고 있는 농축시설뿐만 아니라 삼중수소 생산시설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북한핵 프로그램의 2/3 정도를 통제하게 된다. 플루토늄 생산시설, 농축시설 한 곳, 삼중수소 생산시설을 통제하는 것은 첫 단계로는 꽤 큰 것인데 하노이 회담에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③ 정상회담이 무산된 날 늦은 밤 (2019.2.28 심야 베트남 하노이), 북한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나라 기술자들이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 이것은 북미 양국 사이의 현재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단계에서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다. 영변의 모든 핵생산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것, 북한은 비핵화의 첫단계로 영변을 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북한의 카드를 받지 않았다.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④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 회담 때의 전략을 보면 대가를 얻고자 먼저 주는 방식을 택했지만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북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제대로 홍보해 주겠다는 것, 북한은 모든 핵 억제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모두 전쟁을 시작해서 얻을 게 없다.
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미적대 역사도 시작됐다. 냉전체제가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개발에 몰두하며 미국과의 적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련붕괴로 냉전체제가 무너지자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다. 70년이 흘렀지만 북미적대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도는 왜 계속 실패한 것일까.
⑥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검토, 커터 前대통령이 방북 (1994년 6월)으로 1차 북핵위기는 18개월 만에 북한과 미국은 극적으로 제네바 합의를 체결(1994년 10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IAEA에 핵사찰을 허용하면 미국은 경수로 2기 건설과 50만톤 중유를 공급한다는 약속이었다. 북미간 첫협상으로 이뤄낸 제네바 합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그런데 왜 지속되지 못했을까.
⑦ 2001년 1월, 부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됐고, 제네바 합의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북미관계는 다시 얼어붓기 시작했다. 신포의 경수로 건설사업은 중단됐고 KEDO도 결국 해체됐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의회 모두를 차지했는데 그들이 클린턴의 합의 내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⑧ 부시정부때 2차 북핵위기가 터졌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특사가 방북해 고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이 이를 시인한 것, 제네바 합의후 IAEA 사찰에 응하고 있었던 북한은 2002년 12월 사찰단을 추방했다. 또한 영변 핵시설 동결해제를 선언하고 핵확산 금지조약을 탈퇴하는 등 북한은 연이은 초강수로 미국을 자극했다. 2차 북핵위기로 제네바 합의는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⑨ 하노이 회담이 무산된 후 북한과 미국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여기서 멈춰서지 않고 다시 움직일려면 어떤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까. 첫째, 기본적인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결과물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협상방향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담겨야 한다. 각국이 생각하는 합의에 대한 근본적인 윤곽도 잡아야 하고, 북미가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양보할 수 없는지 알아가는 것, 협상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⑩ 당장의 목표는 현재의 군사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전쟁을 예방하는 거다. 중장기적인 목표는 갈등이 어느 정도 완화되면 서로가 어떤 것을 포기할 지 걱정하는 거다. 평화협상 과정에는 수많은 주요 문제들이 있다. 한반도는 우리 삶의 터전이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남과 북이 손을 마주 잡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화해할 때 한반도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우리의 역할이 더 커졌다. 이제는 전문가들이 합의를 위해 노력할 때다.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는 문대통령의 차례다. 전문가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⑪ 남북문제나 미북문제나 먼저 상기할 것은 6.25 한국전쟁이다.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는가. 종전 후 70년이 흘렀다. 남한은 가난을 극복했고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40배나 우위에 있다. 선진국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최빈국에 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70년간 대를 이어오면서 아주 통치를 잘못했다. 북한 주민들이 참 불쌍하다. 2년후 다음 남한 대통령은 이순신 같은 국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