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原炭
엉뚱하게 네가 왜 나를 사랑한다지
내가 왜 너를 사랑한다지 자나 깨나 네 생각뿐
사람들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헛소리로 들을 거야
사랑해선 안 될 사회적 관계 환경을 넘어
사랑해선 안 될 엄청난 연령차를 넘어선 사랑
해선 안 될 것 뼈아프게 느끼면서
너와 나 사이 사랑이 사랑으로 성립될 수 없음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너를 끌어안을 수도 없고
마음 놓고 울 수도 없고
아리고 쓰린 눈물 속으로 속으로만
내를 이루어 흐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으면서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으면 내세였으면 좋겠다
네가 네가 아니고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20191210
12월에
나, 전능하신 할아버지께
떼 써 볼 거야
그동안 뭘 했나
억울하게 헛 먹어버린 열두 달
모두 토해내시라고
그리고 새로 시작하게 해달라고
되든 안 되든
할아버지께 한 번 떼 써 볼 거야
응석 부리듯
2018년 12월 21일(구고)
*송산초교 100주년에 붙여
구봉산과 놀다 / 정대구
구봉산과 놀다
십리쯤 멀리 우리 마을에서 바라보는 구봉산은
울멍줄멍 아홉 봉이 분명한데
막상 산에 들어와 보니 몇 봉인지 알 수 없어
오르락내리락 구봉인지 팔봉인지 오륙봉인지
장삼이사는 칠봉이라 하고
필부필부는 팔봉이라 우겨
내려가다 보면 또다시 오르막길
어떤 갑남을녀는 오륙봉인지 칠팔봉쯤인지
손가락 꼽아가며 헤아리는데
여기 모여라 송산땅 선남선녀들아 기차놀이하자
칙칙폭폭 기차가 일렬로 이어이어 100년을 달려가듯
칙칙폭폭 쉼 없이 힘차게 힘차게 역사의 수레를 굴리는
고만고만한 머리통, 꿈틀대는 아홉 봉우리 구봉산 정기로
100년을 달려온
우리고장 배움의 선두주자 송산초등학교
아홉수의 힘으로 끝없이 이어져
백년에서 이백년 대대로 이어나가리
송산초교 출신 모두가
푸른 솔의 기백으로 큰 일꾼 되리
더욱 씩씩하게 모교를 빛내고 세상 두루 밝히리
♣구봉산;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기인하여 그 초입에 송산초교가 있고 육일리 칠곡리 서신면 상안리 전곡리 장외리에 걸쳐 기차처럼 일렬로 길게 달려 서해로 뻗어 나간 화성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깃든 이 고장 명산으로 정상엔 옛 망해루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백제의 고성 국가 사적 217호로 지정된 당성(당항성)이 있다.
내 사랑 사강
내 어렸을 적 팔일오 해방 때
태극기 물결 속 어른들 뒤따르며 만세 만세를 연사흘 외쳤던 곳
이칠 사강 장날이면 각처 장사꾼이 모래처럼 모여 들던 곳
사랑스런 여자 sagang도 생각나게 하는 思江이요 沙江
1919년 기미 만세운동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지만 흰 옷의 배달겨레
송산 서신 마도 삼개면 주민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하얗게 몰려나와 만세를 불러 발안 제암리로 번져나갔고
사강교회를 불 지르고 총질을 해댄 왜인 순사부장을 저기 돌무더기 속에 묻어버린
살아있는 도도한 역사가 흐르는 고장 史江이요 沙江
소문난 우시장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 소문난 사강회단지 찾아오는 대처사람
사람들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시장 골목골목 와글와글 시끌벅적
사람 섬기는 이런 저런 일로 활기가 넘쳐 事江이요 沙江
사강,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밝은 이름으로 나를 어루만지는 내 고향 내 사랑아
20191129
겨울하늘
새파랗게 드높은 빙판바닥에 구름 넘어져 시커멓게 멍 들고
기럭기럭 기러기들 쭈욱 그물을 던져 허공을 건지고 있다네
20191124
12월의 바람
365명선수들 다 달려 나간 빈 운동장 구석구석
떠나지 못한 바람만 가랑가랑 가랑잎에 엉기네
20191125(구고수정)
12월에 꾸는 꿈은
아직도 밖은 캄캄한데
겨울밤은 깊고 길기만 한데
만화방창 꽃 활짝 핀
저리도 환한 봄꿈
20191125
갈 가을 가흘
벌써 ‘가’에서 ‘을’까지 다 갔나
발길에 차이는 이 가랑잎
소월은 산유화에서 ‘갈’이라 아주 짧게 발음했지만
짧아도 너무 짧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가’에서 ‘흘’까지 ‘가흘’이라
오색찬란한 시간을 늘여보리라
이제부턴 한글큰사전에도
가을을 가흘로 고쳐 쓰기로 하자
201911207
시간의 강
11월을 보내고 12월과 1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나나
흐득흐득 12억년 오래 된 별이 스러지고
응아응아 초생 아기별이 태어나는
출렁출렁 찰랑찰랑 엄청난 시간의 강을 건너며
어른울음과 아가의 울음이 교차하는 차이
아장아장 걷는 시간과
비실비실 걷는 시간의 차이를 재며
전화를 걸어본다
새해에 성미가 아기를 낳는다니
그 순간 너는
외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초침과 분침 분침과 시침 사이
사이를 촘촘히 박아가며
끝없이 이어가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여
시간의 톱니바퀴는 고장 나는 법 없어
재깍재깍 새로 생겨나는 별들로 면면히 반짝반짝 반짝 20191208
금강경을 읽다가
유리창 밖으로 문득 바라본 하늘
말없이 파랗게 펼쳐진 더없이 높고 둥근
보다 높은 곳 낮은 곳 없이
평등하게 두루 함께하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온새미로 아름다운
아,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편각이 무언가
바로 빈틈없는 저 허공 아닐까
그런 생각 문득, 문득,
20191130
귀두라미 악사樂士
창밖 휘영청 환한 달빛
달빛 물든 창틀에 스며든
명가수 귀두라미 악사
무슨 사연인지
저렇게 아름답고도 설운 음악을
비장의 악기인가
보름달처럼 둥글고
밝고
가득하다
저 달 속에 귀뚜라미 한 마리
20190912
새벽에
새벽이 어디서 오는지 천지상하 사방팔방 시방세계 천천히 세상을 열고 있다
상상불허의 알 수 없는 어떤 큰 기운을 모아 캄캄한 어둠을 조용히 밀어내고
이글거리는 둥근 태양을 불끈불끈 끌어올리는 게 아니가 그런 생각
내 주변 온갖 물체들 기지개를 켜고 선물로 받은 빛으로 눈을 비비며
눈부신 세상에 힘차게 시동을 걸어 새로이 어기찬 하루가 또 시작된 것이다
20191203
첫댓글 사강사강~~선생님 여기에사는우리 참 행복하지요? ㅎㅎ
들어와 보았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졸시 사강에 손질을 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사는데 편하지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