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09-29 주일설교
지나가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6:46-52
여러분, 한 주간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사실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아프셨던 분도 있고 건강하게 지낸 분도 있습니다. 일이 비교적 잘 풀린 분도 있고 좀 어려웠던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잘 풀렸지만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한 분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삶에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지금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해서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속담처럼 어려울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문제가 함께 찾아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신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제가 정답을 말씀드리면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그 문제에 함몰되어 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위기, 그것은 우리를 죽이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일 수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으신가요? 본문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시고 혼자 기도하기 위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갈릴리 바다 가운데서 날은 저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노 젖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을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두 가지 매우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달려와서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지나가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특이한 행동 두 가지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1. 바다를 밟고 오시는 분
이제 성경을 차례로 생각해봅시다. 첫째, 바다 위를 밟고 걸어오는 분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은 바다 위를 밟고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 위에 걸어오는 분은 사람이 아니니까 유령이라고 생각한 제자들이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세상에 유령이 있습니까? 유령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유령의 존재를 어렴풋이 믿고 있습니다. 확실히 믿지는 않으면서도 완전히 부인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도 성경적 가치관이 아니라 당시에 떠도는 헛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 그러면 성경적으로 생각할 때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2을 보시면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수면 위에 움직이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박국은 여호와께서 말을 타고 바다를 밟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다를 발로 밟고 바다를 정복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합 3: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성경적으로 물 위에 움직이는 분이 성령이시고 물을 발로 밟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제자들이 믿고 있었다면 물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고 소리쳐야 맞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의 인생에 유령처럼보이고, 마치 여러분을 위협하고 죽일것처럼 오는 어떤 세력이나 사건이 사실은 여러분을 도와주고 구해주려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며 하나님이 주신 사건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손길을 깨닫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소리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지나가시는 하나님
둘째, 예수님이 지나가려고 하신 것은 왜일까요? 풍랑으로 고생하는 제자들을 도와주러 오신 예수님은 곧장 배로 가신 것이 아니라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이상하죠. 혹시 번역이 잘못되었을까요? 48절의 “지나가려고 하시매”를 헬라어로 보면 “지나가기를 원하고 계셨다”라는 뜻입니다. 한글성경보다 예수님의 의지가 더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지나가려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지나가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3:8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산책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쾌적한 숲속 오솔길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은 지나가시는 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산책하는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숨는 본성이 있습니다. 수원노회에 이강식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1학년 때 강원도 살면서 소 풀을 베어다가 친구랑 작두로 자르다가 친구 손가락이 잘렸습니다. 그러면 빨리 어른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혼날까 봐 무서워서 둘리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숨어 있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나중에 어른들이 작두 옆에 핏자국이 있는 것과 아이 둘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온 산을 뒤져서 아이들을 찾아 업고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결국, 그 아이는 손가락 두 마디가 없어져서 입대를 못 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 둘이 다치고도 무서워 숨은 것처럼 아담은 큰 사고를 치고 하나님이 산책하는 소리를 듣고 숨었습니다. 이때 아담이 두려워서 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달려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해야 하는데 무서워 숨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담을 불렀습니다.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사고를 치고,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달아나거나 숨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을수록 달아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구원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엘리야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엘리야 앞에 나타나기보다는 지나가시는데 역사(役事)가 일어났습니다.
(왕상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이것을 보면 지나가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 엘리야 앞에서 지나가신 하나님, 제자들 옆으로 지나가려 하신 예수님은 문제 해결자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여러분 앞에 찾아오신 하나님, 옆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모셔 들여서 여러분의 문제를 아뢰고 해결받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죄를 속하러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물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바다를 밟으시는 여호와입니다. 또 지나가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물 위로 걷는 분을 여호와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유령으로 인식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유령으로 인식합니다. 하나님이 다가오시는 모습과 방법을 죽이러 오는 유령으로 오해합니다.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이스라엘은 밤새도록 두려워하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앞날에 대해 여러분보다 더 관심이 많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하나님의 모습을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데 여러분은 주님을 모시고 문제 해결을 넘어 새롭게 도약하기를 바랍니다.
3. 스스로 있는 자니라 (ἐγώ εἰμι)
제자들이 두려워할 때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니’라는 말은 꼭 헬라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ἐγώ εἰμι 라는 말은 독특한 말입니다. ἐγώ라는 말은 ‘나는’입니다. εἰμι는 영어로 말하면 be동사인데 be동사는 ‘이다’, ‘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와 달리 헬라어는 동사 안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εἰμι는 ‘나는 이다’라는 뜻입니다. ἐγώ와 εἰμι를 합치면 “나는, 나는 이다”가 되는데 이상한 말이죠.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나야 나”라를 뜻이 있습니다.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인 것을 알려주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다른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더 있습니다.
첫째는 영어 be동사와 마찬가지도 εἰμι는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나는, 나는 있다” 이러면 무슨 뜻입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אֶהְיֶה אֲשֶׁר אֶהְיֶה (예흐예 아쉐르 예흐예)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 바로 ἐγώ εἰμι입니다. 물 위를 걷는 분이며 고난받는 제자들을 지나가려고 하신 예수님은 지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존자(自存者)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어진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요 1:3). 그는 창조주이시며 그는 구속자이시며 그는 마지막 심판자이십니다. 예수님, 그분은 온 우주의 주인, 영원한 왕이십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로 I am.... 뒤에는 무엇을 넣어도 말이 되죠. 예수님은 방금 I, I am 이라고 하셨는데 그 뒤에는 무엇을 넣으면 좋을까요?
나는 길이다. 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구원이다. 나는 능력이다. 나는 친구이다. 나는 큰 용사이다.
옛날 사람들은 집안에 큰돈이나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소 들어왔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소입니다. 그냥 소가 아니고 야소입니다. 예수를 한자로 쓰면 耶蘇인데 중국 받음은 예소이고 한국식 발음은 야소입니다.
두려워하는 성도여,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오해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 인생에, 우리 집안에,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에 들어오신 소, 예소입니다. 그는 능력자이며 그는 해결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그를 모셔 들이고 그의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 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첫댓글 https://youtu.be/0OP2wlQYk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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