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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0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선으로 악을 이기라. 善をもって悪に勝ちなさい。
본문: 로마서 12장 9절~21절
롬 12: 9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11 열심을 내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 13 성도들이 쓸 것을 공급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15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16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18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19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9. 愛には偽りがあってはなりません。悪を憎み、善から離れず、10. 兄弟愛をもって互いに愛し、尊敬をもって互いに相手を優れた者と思いなさい。11. 怠らず励み、霊に燃えて、主に仕えなさい。12. 希望をもって喜び、苦難を耐え忍び、たゆまず祈りなさい。13. 聖なる者たちの貧しさを自分のものとして彼らを助け、旅人をもてなすよう努めなさい。14. あなたがたを迫害する者のために祝福を祈りなさい。祝福を祈るのであって、呪ってはなりません。15. 喜ぶ人と共に喜び、泣く人と共に泣きなさい。16. 互いに思いを一つにし、高ぶらず、身分の低い人々と交わりなさい。自分を賢い者とうぬぼれてはなりません。17. だれに対しても悪に悪を返さず、すべての人の前で善を行うように心がけなさい。18. できれば、せめてあなたがたは、すべての人と平和に暮らしなさい。19. 愛する人たち、自分で复讐せず、神の怒りに任せなさい。「『复讐はわたしのすること、わたしが報复する』と主は言われる」と書いてあります。20. 「あなたの敵が飢えていたら食べさせ、渇いていたら飲ませよ。そうすれば、燃える炭火を彼の頭に積むことになる。」21. 悪に負けることなく、善をもって悪に勝ちなさい。
요즘 새벽에 전도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전도서를 읽고 묵상하다보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득인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그대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형통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이라도 어떻게 가치가 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폴 부르제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렇게 패러디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믿게 된다.”
성경은 우리가 거룩한 삶에 대한 믿음과 소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영생하는 천국에서도 그 거룩한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살게 될 것도 믿습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혼자 하면 기억이 되고, 함께 하면 추억이 된다.”
우리의 거룩한 삶의 소명도 혼자서 열심히 살면 기억에 남지만, 함께 이루어 나가면 추억이 될 것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지요.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꿈을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교회는 바로 그 거룩함에 대한 소명을 함께 현실로 일구어 가는 소중한 공동체이며 관계입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의 시간과 장소는 우리의 소명을 기억의 지평에서 추억의 지평으로 확장하는 놀라운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로마의 성도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행실이 매우 모범적이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칭찬을 받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정말 믿음이 좋다고 소문이 난 로마 성도들이지만, 복음을 다시 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이들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대단한 모습에 엄지를 치켜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진짜 행복한 것과 행복하게 보이는 것이 다른 것처럼, 복음을 믿는 것과 복음을 믿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은 1장부터 11장까지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복음의 명확한 정의가 무엇이며, 왜 복음이 우리에게 복음인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는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거룩한 성도의 거룩한 일상생활의 규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과도 완전히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반드시 그렇지 않은 덕목도 있지요. 중요한 것은 이 규범들은 ‘나의 자아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에 합당한 일상을 살게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기록된 모든 덕목들이 다 중요한 것이기에 하나하나 그 의미를 곱씹어 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따로 기록해 놓고 두고두고 격언과 가르침으로 보고 듣고 기억해야 할 것들입니다.
존경하는 어떤 목사님들은 매일 아침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로 결단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 오늘의 본문도 거룩한 삶을 소명으로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중에 꼭 기억했으면 하는 덕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마음과 거짓이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그리스도인들의 비율이 높지 않아서 교인이 저지른 비위로 인해 교회가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오해를 사는 일이 적습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인이나 사회의 지도급 인사가 거짓과 비리를 저질러 지탄을 받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한국에 평양 대부흥이 있었을 때 많은 중국인 비단장수들이 교회의 교인들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렇게 사기를 치는 장삿군들이 많았는데,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은 어떠한 손해를 보더라도 절대로 속이거나, 돈을 떼먹지 않는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교인 중에도 비단을 외상으로 가져갔다가 대금을 갚지 않던 사람이 부흥회에 다녀와서 회개 한 후에 돈을 갚는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났다고 합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거짓과 술수, 그리고 사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탄의 유혹과 결별한 사람입니다. 이익을 위해서 남의 눈을 속이는 묘안과 절교한 사람입니다. 이미 남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려는 탐욕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은 사람입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먼저 거짓을 버리는 일, 악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굳게 잡는 것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 12절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참고, 기도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생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태어나는 것 자체로 이미 사람은 자신의 주권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으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혹 자신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지만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평을 말하며 불만을 품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의 뜻을 이룬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에 나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꿈꾸는 자로 유명한데요. 그래서 어떤 강연자들이나 설교자들은 젊은이나 청소년들에게 요셉과 같은 원대한 꿈을 꾸라고 소리 높여 도전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그가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예로 팔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부러 꿈을 해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고 나서 이집트에 곡식을 사러 온 자신의 형들을 만나고 난 뒤였습니다.
그는 단지 견디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시종으로 두었던 보디발의 고백을 통해 유추해 보면 요셉은 항상 기도했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자신의 꿈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꿈에 합당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해서 억울하고 속상합니까? 요셉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큰 그림을 기대하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거룩한 소명을 위해 주신 사명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는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지 않는 것입니다. 14절에는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19절에서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시지요. 20절에는 오히려 원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세속적인 관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규범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적십자 위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흔히 적십자사라고 부르는 곳인데요. 적십자위원회의 첫 번째 이념은 전쟁에서 부상당한 이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곳은 기독교인의 비율이 34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근처에 여수 애양원이라는 나환자 수용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에 예배당이 있고,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중학교 때 일본에서 유학을 하던 중에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는 소위 성령체험을 합니다.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가 목회자가 된 손 목사님은 일본에서 받은 은혜를 실천하기 위해서 여수에 있는 나환자 수용시설인 애양원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목회하셨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서 일본 당국에 의해서 박해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고 한국은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목사님이 사역하시던 애양원이 있던 여수와 순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 때 ‘안재선’이라는 자가 손 목사님의 아들 둘을 총살하였습니다. 손 목사님은 ‘안재선’이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옥으로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를 용서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을 자신의 아들을 삼겠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했지요. 결국 그를 살려 내었고,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여 가족으로 함께 살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손 목사님은 한국전쟁 때 퇴각하는 공산군에게 총살을 당해 순교하셨습니다.
물론 육신적인 결과만 본다면 그다지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하지만, 손 목사님의 그 희생과 사랑은 성경 그대로의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손 목사님의 선택은 어떤 이들에게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거룩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실제로 증언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손 목사님의 양아들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은 목사가 되어서 여전히 인생과 몸을 바쳐서 그 사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명령하십니다. 악과 대립하여 악을 쓰면 악은 두 배가 됩니다. 그러나 악에 대항하여 선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선을 배가되게 하시고, 악의 씨를 말리실 것입니다.
악은 미움을 먹고 자랍니다. 선은 미움으로 인해 썩어 갑니다.
선은 배려를 먹고 자랍니다. 악은 배려로 인해 힘을 잃게 됩니다.
거룩한 삶이라는 소명은 오직 거짓이 없이, 인내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완성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사는 형편에 따라서 사탄의 속임수를 믿게 됩니다.
비록 원수와 같은 사람이라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능력과 필요한 여건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은 거룩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지 주님을 바라보며 살면 거짓이 사라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인내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넓고 깊은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나답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 수 있는 힘은 나의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일의 열매는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가정을 통해, 교회를 통해, 그리고 믿는 자들의 공동체와 연합을 통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보혈의 혈맹으로 연합하여 온전히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꿈을 주십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지평이 한 걸음 더 확장된 것을 믿습니다. 이 사역에 동참하신 여러분의 모든 일상과 인생을 주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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