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타포라 첫 시간을 다녀와서
'한남동 관저 실시간'을 유튜브에 검색했다. 수업에 가기 전에 집 앞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집 앞 집회 참여자가 더 많아졌고, 도심으로 가는 4차 도로는 이미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날 망원동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따뜻한 집에서 뉴스를 보며 아늑한 저녁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첫날부터 결석을 할 수는 없지 싶어 16개월 된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유난히 춥고 시끄러운 1월 2일이었다.
평소면 아기를 재우고 나도 잠들 깜깜한 저녁 시간에 뭘 배운다고 집을 나서는 게 어색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응 그렇게 까지 해야지.'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차벽을 지나, 민주노총 집회 깃발을 지나, 사복 경찰, 정복 경찰을 지나 지하철 입구로 들어갔다.
망원동은 조용했다. 망원 시장에 사람이 그렇게 적은 것도 처음 봤다. 평일 저녁이라곤 하지만 시장이 이렇게 조용하다니, 불경기는 귀로도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번호표를 받아 한 시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인기 튀김집 앞을 지나면서 바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활발하게 김이 올라오는 만두 찜기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평소 망원 시장 분위기와 너무 다르다, 어색하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걸었다.
이후북스가 위치한 골목 사거리는 유난히 어두웠다. 혹시 내가 날짜를 잘못 알았을까 이후북스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려고 할 때, 내 앞에 바쁘게 걸어가는 두 사람이 이후북스 쪽으로 걷는 걸 봤다. 오늘이 맞나 보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유 선생님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웃으며 맞아 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다들 그러지 않나? 눈을 피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총 20명이 모였다. 80cm 정도 폭이 되는 책상에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앉아서 은유샘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앞으로 10번 만나는 동안 우리가 읽을 책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그 책들(무려 노벨상 수상작들)이 은유샘 말을 들으면서 '당장 읽고 싶은‘ 책들로 변했다.
10시를 훌쩍 넘겨 수업이 끝났다. 완전히 파한 망원 시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도 마음도 훨씬 가벼웠다. 몇 시간 내내 뉴스를 안 봐서도 그랬을 것이고, 메타포라에서 앞으로 함께 읽을 열 권의 책과 수업이 가져다 줄 경험과 새로운 시선도 기대돼서 그런가 보다. 새해가 온 것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시작의 설렘을 느끼고 있다.
2. 기억에 남는 은유 샘의 말들
"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계속 읽는 것이다. 글쓰기는 경험의 해석인데, 읽기는 해석의 시선을 주는 것이라서 무척 중요하다.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쓰는 사람은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경계에 있어야 보인다.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배운다는 건 다른 삶의 자리에 가는 거다. 그래서 수업에 오셔야 한다.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 피곤해도 일단 수업에 와서 졸아라."
"과제, 해치우듯이 하지 말아 달라. 성실하게 해 달라."
"작가는 판단자가 아니다. 관찰자다.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지 말고, 어떤 말, 행동이 있었는지 써달라."
"오늘 잘 썼다고 기살 필요 없고, 오늘 못 썼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어제 잘 쓴 사람이 오늘 못 쓸 수도 있는 게 글쓰기다."
"도대체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 모르겠는 게 글쓰기의 얄궂은 면인 것 같아요."
첫댓글 카후나님 ^^ 글을 엄청 잘 쓰시는군요~~ 한번에 쭈~ 욱 읽었습니다. 아기가 어려서 수업 나오시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끝까지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수업때 뵐께요~ : )
폴 클루니 님 전혀 잘 쓰지 않습니다 ㅠㅠ 일단 사유가 얕고요. 그래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뱃지도 받아야죠.
와, 카후나의 그날 하루가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앞으로도 카후나의 후기글이 기다려질 거 같아요
후기글 성실하게 써볼게요.
시장 사진이 글이랑 어울려요. :)
망원시장 파한 걸 처음 봐서 신나서 찍었어요. 저에게 올해 신년의 한 장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