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진도(比珍島)는 모양과 크기가 거의 비슷한 자그마한 크기의 두 섬 '안 섬'과 '바깥 섬' 그 두 섬을 550m의 사주(沙洲)가 다리처럼 이어주고 있다. 신기하게도 서쪽은 백사장(白沙場)이요, 동쪽은 제법 큰 몽돌 자갈밭이 두 섬을 위 그림처럼 이어주고 있다. 그중에 가운데 서쪽 백사장이 그 유명하다는 비진도 해수욕장으로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비진 산호빛 해수욕장'이다.
어떻게 이런 모양의 백사장과 몽돌 자갈밭이 되었을까?
비진도 서쪽은 태평양 거센 파도가 정면으로 마주치는 지역이고, 동쪽은 그런 파도가 거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렇게 서쪽은 백사장으로, 동쪽은 몽돌 자갈밭이 생긴 것이다.
이에 따라 비진도의 마을은 북서쪽인 '내항 마을'과 사주(沙洲)가 시작되는 외항 마을 둘이 있다.
사주(沙洲)란 '바람, 파도, 조류로 말미암아 모래나 바위가 밀리어 쌓여 수면이나 연안에 둑 모양을 이룬 모래톱이다'란 사전적 설명을, 모양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런 모양을 보여 주고 있다.
비진도(比珍島)란 이름은 섬의 오른쪽에 한산도(閑山島)가 있어서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 왜적과의 대전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한산대첩(閑山大捷)으로 대승한 바다가 이곳이어서 '보배에 비길만한 섬'이라고 섬 이름을 비진도(比珍島)란 이름을 붙였다'는 섬이다.
비진도는 일명 미인도(美人島)라 할 만큼 예쁜 섬이다.
남쪽 지방이라서 날씨도 온화한 기후라 아열대 식물이 자라지-, 가파른 해식애(海蝕崖)로 수심도 깊어 낚시꾼의 천국이지-, 경치가 한국에서도 으뜸인 한려 해상 국립공원 한산도 지구(閑麗海上 國立公園 閑山島 地區) 내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과 피한(避寒), 피서지(避暑地)에다가 산호빛 청정 해수욕장에 이어, '선유봉 산호길 등산로'의 개통으로 등산(登山)을 더하여 관광 명소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 남북의 두 섬을 외항(外港)과 내항(內港)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북쪽의 '내항'은 남쪽의 '외항'보다 약간 작고 내항에 있는 212m 대동산보다 외항에 있는 선유봉(仙遊峰, 312.5m)은 이름난 바위의 명산이어서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비진도 마을에는 내항 마을, 외향 마을과 수포 마을 셋이 있었는데 수포 마을은 없어지고 지금은 내항에 있던 외항 마을과 내향 마을 둘만 남았는데 그중 비진도의 중심 마을은 이 사주가 가까운 외항 마을이다. 따라서 이 섬에는 선착장도 내항 마을 선착장과 외항 마을 선착장 둘이 있다.
비진도 전체 종주를 원하는 사람들은 내항마을 선착장에 내려서 내항 마을을 잠깐이라도 둘러보고 사주( 沙洲)를 건너 바깥 섬의 선유봉(仙遊峰, 312.5m)을 종주하여야 하지만 물놀이를 하러 온 관공객이 아닌 사람들 대부분은 선유봉 등반길에만 오른다.
비진도에는 많은 펜션과 민박집이 있다. 1일 숙박에 6만 원 이상을 호가하고 있어서 이는 여러 섬을 혼자 여행 다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어서 민박을 찾아 외항 마을 깊숙이 들어가서 드디어 내가 찾던 민박 집을 만나 거기서 이틀을 유하게 되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민박집은 시설보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집으로, 가급적이면 어부였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거기서 해산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실컷 식도락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런 내가 비진도에서 그런 어부를 행복하게도 만난 것이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는 김 승일 어부는 60대 후반의 정년퇴직한 분으로 낚시로 소일하며 사는 어부가 아닌가, 어부도 직업적으로 고기 잡는 어부(漁夫)가 아닌 취미로 고기를 낚는 어부(漁父) 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외지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내와 더불어 앞으로 민박을 운영하려고 집 한 채를 새로 지어 놓고 사는 후덕한 분이었다. 이 김 어부를 만나 뜻하지도 않던 푸짐한 회를 대접받으며 잊지 못할 분을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
비진도의 첫날은 김 어부 승용차를 타고 섬 북서쪽에 있는 안섬의 내항 마을의 선착장에 가 보았다.
내항 마을 선착장은 제방 끝에 멋진 붉은 등대가 서있는 곳이었다. 내항 마을 노인정 앞에는 위령비 셋이 서 있다. 6.25와 월남 전에서 이 고장 출신으로 전사한 전몰장병의 위령비였다. 현충일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잊지 않고 모여 제를 지내 주는 곳이었다.
키 큰 소나무를 지나 언덕에 오르니 지금은 폐교된 한산초교 비진 분교가 옛 이 섬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해방 바로 직전인 1944년 개교하여 2012년 3월 1일 폐교할 때까지 1,94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주민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학교다. 거기서 나는 옛날을 생각하며 공산당이 싫어요 외치며 죽은 이승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등을 둘러보았다.
*. 선유봉 등반길
김 어부의 말에 의하면 비진도 관광은 다음과 같은 2코스가 있는 모양이다.
*. 비진도의 여행코스
코스 1: 외항 선착장- 비진암- 후박나무 자생지- 외항 선착장(1 시간 40분)/ 해안 가를 거니는 간단한 트레킹
코스 2: 외항 선착장- 미인 전망대- 흔들바위- 선유대- 후박나무 자생지- 비선암- 외항 선착장(총 4.2km/3시간)
역(易)으로 가면 순행보다 덜 힘듦/ 주 등산로임
밥을 일찌감치 먹고 이른 새벽인 5시 30분에 2코스로 선유봉 등산길에 올랐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나는 100m마다 쉬어 가야 하는 허리 아픈 디스크 환자에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 90이 가까운 고령에다가 여기 오기 전에 일주일간이나 부산을 다녀 소매물도를 2번씩이나 오르내리며 기력이 쇠잔한 늙다리가 아닌가.
허나 중국 속담에 천천히 가는 자가 멀리 간다 했으니 오늘도 남들 3 시간 코스를 7 시간 이상 걸을 작정이다. 그런 자신은 있다. 나는 그렇게 신기록을 세워 가면서 단독으로 지리산, 겨울 설악과 겨울 덕유산, 백두산도 종주한 사람이 아닌가. 가장 천천히 가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말이다.
그림 같은 550m의 사주(沙洲)를 지난다. 여름이 오늘보다 더 깊어져 '비진 산호빛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이 파란 바다에 수상 오토바이, 제스트 스키에 바나나 보트 등이 바다를 누비며 파도 가를 것이다.
이 해수욕장을 지키듯이 서 있는 축구장 반 만한 크기의 조그만 섬 '춘복도'가 내항 섬 옆에 떠있다.
이곳은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는 섬이라서 파도에 해식애가 발달하는 곳이라서 바위가 많고 수심이 깊다. 바위는 물고기의 안식처라 고기가 많아서 여름에는 해녀들의 물질로 갓 잡아 올린 전복, 해삼, 멍게, 털게로 유명하다 한다. 물론 스킨스쿠바인들이 찾을 테고-..
드디어 등산로 입구인 멋진 네모난 한려 해상 국립공원 포토존이더니 공중화장실을 지나 갈림길에 들어섰다.
이 갈림길은 선유봉과 비진암 갈림길로 해안 따라 비진암을 지나서 선유봉까지 이르는 완만한 오름길이고, 직진하는 선유봉 코스는 돌길 코스의 가파른 돌길로 미인 전망대를 지나 선유봉에 이르는 아기 자기한 비진도의 대표 적 등산로이지만 대신 '비진암 코스'보다 힘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선유봉 코스로 들어섰다.
목재로 만든 아취형의 문은 '한려해상 산호길 3 구간'에 들어섰다는 한려 해상 바닷길 문(gate)다.
길은 남쪽 나라라서 대나무 오솔길로 시작된다. 그리곤 아름다움을 만나기까지 치러야 할 고된 대가가 시작된다.
20 보도 못 가서 주저앉아 쉰다거나, 스틱에 너무 몸을 의지하다가 보니 팔목이 아플 지경이라거나, 이 코스로는 한동안은 섬길을 오르면서도 바다 구경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생략한다. 그러다가 바위에 누워 기진맥진한 몸으로 바위에 누워 깜빡 잠들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건넨다. 사고 나지 않았나 걱정이 되어 불러본 것이란다. 그런 오랜 고행이 계:속되더니 층계 길이 데크 길로 바뀌면서 정상이 가까움을 알게 하더니 그렇게 어렵게 올라온 길이 갑자기 하산 길로 바뀐다. 아, 아쉬워라! 어떻게 올라온 산길인데-.
기를 쓰고 다시 올랐더니 반가운 이정표가 오른쪽 오솔길 30m에 '망부석 전망대'가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미인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도 서로 모여 사는가 보다
*. 한려 해상 바다 100리 길
선착장에서 겨우 1.3km를 죽을힘을 다해, 있는 기력을 다해 '미인 전망대(美人展望臺)에 이르러 나는 넋을 잃고 감격하면서 비진도를 굽어 보고 있다. 시흥(詩興)에 겨워하며 `.
누가 그린 그림일까?
아령 같기도 하고,
8자 같기도 하고.
부라자 같은
모래 시계 같은
,아름다움이 되어
비(比)
진(珍)
도(島)에 다 모여
한 편의 시화(詩畵)가 되었네!.
-비진도 산호 길에서
'한려 해상(閑麗海上) 바다 100리 길'은 아래와 같이 6 개의 길로 이루어지는데 그 길은 새로운 길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섬 주민들이 산에 나무하러 가던 길이요,. 가족 생계를 위해 이동하던 길을 활용해서 연결한 것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한려 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다.
1. 통영 미륵도 달아길(14.7km)/ 5시간: 미륵산- 미래사-야소마을- 박경래 기념관- 희망봉- 달아 전망대-달아 마을
2. 한산도 역사길(12.0km)/ 4시간: 덮을개- 대촌 3거리- 망상- 야소/-진두
3. 비진도 산호길(4.8km)/ 3시간: 선유봉 가는 길
4. 연대도 지갯길(12.3km)/ 1시간 30분: 연대 마을-옹달샘-연대해변
5. 매물도 해품길(5.2km)/ 1시간: 당금 마을- 장군봉- 대항 마을-
6. 소매물도 등대 길(3.1km)/ 2시간 31분: 마을-폐 분교- 등대
*. 선유(仙遊峰) 전망대에서
선유봉 가는 길에도 흔들바위가 있지만, 그 모습보다는 그 옆에 있는 '흔들바위의 전설' 설명이 더 멋지다.
노루여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젊어서 가본 섬, 가보지 못한 섬이 즐비하다. 비진도 다음에 가보고 싶은 섬, 보고 싶은 섬이 아직도 이렇게도 많구나. 그중 제일 가보고 싶은 섬이 '연대도~만지도'다. 이름만도 그렇지만 산양읍에 있다는 두 섬은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새로 놓은 출렁다리(길이 98m 폭 2m) 현수교를 지나면서 한려수도의 절경과 바람 따라 출렁이는 생생한 체험을 하고 싶어서다.
옛날 다녀온 섬으로는 연화도(蓮花島)와 욕지도(欲知島)도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연화도에 가서는 연화도 용머리를 다시 한번 보고 싶고, 새로 연결되었다는 '우도 보도교'도 건너보고 싶다.
연화도를 건너 욕지도에 가서는 하룻밤 1박 하면서 한려 수도의 보석 같은 섬들과 쪽빛 바다를 단 16분만에 오른다는 총연장 2.1km의 순환식 모노레일을 타고 그 생생한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오고 싶어서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는 목적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중국인은 잘 먹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집을 사기 위해서-, 유럽인들은 여행가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한다. 여행은 학창 시절에는 시간은 많으나 경비가 없어서, 직장 시절에는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어서, 늙어서는 돈과 시간은 있어도 체력이 부족하여 여행을 못 간다고 한다.
이 사람은 어떤가. 나는 정년퇴직한 사람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 연금수급자다. 시간은 갑부(甲富)에 해당할 정도로 많으나 몸이 마음을 부리는 늙다리여서 체력이 문제이지만, 군인이 전장(戰場)에서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여야 하듯이, 여행작가도 몸보다 여행이 우선이어서 여행하다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은 사람이다. 죽을 준비를 어느 정도하여 놓았으니 거북이처럼, 달팽이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홀로 떠돌아다니는 구름 같은 행복한 나그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 국립공원 산행기', '한국 도립공원 산행기'에 이어 나의 마지막 저서 '한국 국립해상공원 섬 이야기' 책자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까 봐 항상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팔손이나무 지대를 지난다. 팔손이나무는 남해와 거제도 등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관목으로 직사광선을 싫어하여 그늘 진 곳에서 잘 자라는 상록 관목이다. 공기 정화를 시켜 주는 식물로 1962년에 한국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식물로 잎사귀가 여덟이어서 팔손이 나무로 비진도가 팔손이 한계선인 모양이다..
*. 비진암(比珍庵)
수포 마을의 비진암을 지난다.
1968년 비진도 수포 마을 어부 6명이 통영호를 타고 연평도 부근 해상으로 고기잡이 갔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 납북되어 4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 돌아온 것이 문제가 되어 이를 계기로 섬사람들이 5인 미만인 섬 마을은 정부의 권유로 폐쇄되어 없애 버릴 때 없어져 버렸다는 마을이 수포 마을이다.
그 마을에 살던 한 부부가 이혼을 하고 그 아내가 비구니가 되어 지은 절이 비진암이라 하는데 이를 다른 스님에게 팔고 갔다는 절이다. 비진암은 찾아가는 유명한 절이 아니라 등산로 초입 길 가에서 보이는 언덕 위에 있어서 등산객이 등산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하산하는 곳에 있어 등산객들이 바라보고 지나가는 위치에다가 비진도는 0.3km 2에 181명이 사는 작은 섬이라서 절에 스님이 살지 않는지 썰렁하다.
드디어 아침에 등산 입구에서 보던 '한려 해상 바다 100리 길' 게이트(gate) 입구에 이어 출구가 보인다.
힘들고 힘들게 선유봉을 종주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남들은 3시간 30분이면 족한 것을 나는 7시간 30분이나 걸렸으니 오늘도 늦게 가는 신기록을 세웠구나!
-2022. 6. 16 ilman
.
첫댓글 삼백 리 한려수도 노래도 있는데 바다 바람 맞으며 비진도 여행을 하고 싶어집니다. 일만 성철용 선생님!
더욱 더 건강하시고 더 즐거운 여행 많이 다니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국립해상공원 섬 이야기' 책자, 완성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찾고자 하는 민박집,
이 고장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집,
어부였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
비진도에서 김 어부 승용차 타고 섬 내항 마을의 선착장에 가 보셨다는 이야기,
생각대로 이루시니 참으로 낭만 부자이십니다.
남들 3시간 코스를 7시간 이상 걸을 작정이다. 그런 자신은 있다.
나는 그렇게 신기록을 세워 가면서 단독으로 지리산,
겨울 설악과 겨울 덕유산,
백두산도 종주한 사람이 아닌가. 가장 천천히 가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말이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바위에 누워 깜빡 잠들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건넨다.
(순간, 방랑 시인 김삿갓 생각이 났습니다^^)
그곳에 가고 싶게 하는 선생님의 글 따라가 본 ‘미인 전망대(美人展望臺)’,
실제로 한 번 가 보고 싶어집니다.
방랑 시인 김삿갓처럼-요^^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
항상 댓글로 격려 해주시는 임 회장님 고맙습니다.
최작가님도 정성스레 써 주신 댓글 고맙습니다. '주소를 문자로 주신다면 제 저서 '한국도립공원 산행기'가 몇 권 남아 있는데 부쳐 드릴께요. 010 77566776 ilman 성철용
일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한국도립공원 산행기』 더위에도 끄떡없이 잘 도착했습니다.
조선일보 미술관에서도 전시하셨네요.
아드님의 축하 글이 마음을 잡습니다.
삼대(三代)가 덕숭산 도립공원 오를 때의 이야기,
어린 시절 태산 같던 아버지,
설악산에서 폭설로 막힌 길을 찾아 헤매다가 도망가는 수달(水獺)의 발자국을 좇아 비로산장에 밤늦게 도착하셨다는 이야기,
책의 완성을 위해서 추자도는 물론 팔공산에 이어 금오산 등을 다녀오신 이야기,
이 책을 들고 아버지의 발자국 따라 우리의 산하가 얼마나,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라는 이야기.
듬직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을 모아 보내주신 책,
산을 오르듯 천천히 읽으며 구경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