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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10(금)
chapter 10. 통(通)으로 본 예레미야
마치면서
힐기야의 아들 에레미야 그리고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
통(通)으로 본 예레미야
자신의 아버지가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라고 자랑스럽게 밝힌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가 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힐기야 제사장 아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시기는 남유다 말기에 해당하는 요시야 왕 때부터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의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 사람들이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도 예레미야의 사역은 계속되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역 요시야 왕 31년 ~ 남유다 멸먕까지
요시야 왕(31년간 재위) - 여호와하스 (3개월 재위) - 여호야김 왕 (11년간 재위) - 여호야긴 왕 (3개월 재위) 시드기야앙 (11년간 재위)/ 남유다 멸먕 586년
성경속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다 쉽지 않은 사역을 감당했지만 특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이전의 선지자들과 달리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아닌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 사역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징계로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결정을 동족들에게 전해야 했던 예레미야의 고충은 말로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사실은 남유다 사람들이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고도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거나 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 까닭은 남유다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래로 지난 900여 년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시민의 사명을 망각한 채 우상을 섬기며 죄악 된 길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만을 경험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이전 100년 전에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18만 5천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며 그들을 구원해주셨던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남유다는 고대 근동에서 유일하게 앗수르 제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대로 앗수르 제국의 경제가 북이스라엘까지였기 때문입니다
bc 8세기 히스기야 왕 때 이사야 선지자 활동와 상황이 이미 확연하게 바뀐 bc 6세기 시드기야 왕 때 예레미야 선지자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남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징계를 내리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유다 사람들은 그들이 듣고 싶은 딸콤한 말을 해주는 하나냐와 같은 거짓 선지자의 말에는 국민적 지지를 보내며 열광했습니다
더 나아가 남유다의 왕과 왕의 신하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복 대신 징계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대놓고 싫어했습니다 에레미야에게 당시 하나님의 뜻이 아닌 150여 년 전 이사야 같은 예언을 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해주셨던 것처럼 바벨론의 손에서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 37장5-7절
37: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리고 바벨론에 순순히 항복하라는 예레미야를 매국노이자 친바벨론주의자라고 매도했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국제 정세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에게 520년간 상아시아의 주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북이스라엘을 혼혈족 사마리아인으로 만들었던 앗수르 제국이 차츰 세력을 잃어가고 신흥 강국 바벨론이 고대 근동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벨론이 앗수르 제국을 무너뜨리며 고대 근동의 새로운 강자가 된 것은 앗수르 제국의 식민지들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앗수르 제국을 도우며 제국의 케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메데(메디아)가 국제 정시를 살피던 중 바벨론 편으로 돌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앗수르를 살피며 차츰 세력을 키워가던 바벨론은 마침내 메대(메디아) 연합군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을 급습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는 니느웨 성을 버리고 하란으로 수도를 옮기며 (bc612) 고대 근동의 주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자막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자 남쪽에서는 애굽(이집트)이 자신들이 고동안 고대 근동에서 가지고 있었던 최소한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바벨론에 대항하며 앗수르를 도우러 하란으로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바벨론이 중심이 되는 고대 근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진군하는 애굽이집트의 군대를 남유다의 요시아 왕이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남유다가 히스기야 왕 때부터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요시야 왕 때지 계속해서 반앗수르 친바벨론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 이전
히스기야(29년간 재위) - 므낫세 (55년간 재위) - 아몬 (2년간 재위) - 요시야
요시야 왕이 애굽(이집트) 군대의 진격을 막으며 벌였던 전투가 바로 므깃도(Megiddo BC 609)전투입니다 그런데 므깃도에서 벌어졌던 남유다와 애굽(이집트)의 전투가 생각 이상으로 치열했기 때문에 남유다는 요시야왕까지도 전사했고 애굽(이집트)은 므깃도에서 생각 이상으로 긴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애굽(이집트)은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전쟁터에 도착하지 못함으로 고대 근동의 주인이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바뀌는 역사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애굽(이집트)이 하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바벨론이 하란까지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이비다
바벨론의 강력해진 힘을 인정하면서 자국으로 퇴각해야만 했던 애굽(이집트)은 요시야 왕 사후(死後)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 여호와하스를 왕으로 삼은 남유다에 도착해 분풀이를 해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이집트)은 여호아하스를 애굽(이집트)으로 끌고 가면서 대신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을 남유다의 왕으로 삼고 그동안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애굽(이집트)에 바치게 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남유다는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이 고대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그때부터 당분간 애굽(이집트)에 조공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남유다는 애굽(이집트)에 바치던 조공을 바벨론에 바치게 됩니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이 앗수르 잔당들과 애굽(이집트) 군대를 모두 격퇴했기 때문입니다 갈그미스 전투의 패배로 인해 애굽(이집트)은 더 이상 다른 나라들과 어떤 무역도 하지 못하며 더 이상 자국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맙니다
왕하 24장7절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그리고 바벨론은 갈그미스 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들어와 예루살렘에서 1차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어갔습니다 (BC605)
그 후 남유다에서는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여호야긴이 왕이 된지 겨우 3개월 되었을 때에 바벨론은 다시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여호야긴 왕과 에스겔 그리로 1만여명의 우수한 기술자들을 바벨론으로 끌어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게 진귀한 성전 기명들도 탈취해갑니다 이것이 바벨론 2차 포로입니다
바베론은 여호야긴을 자기 나라로 끌어가면서 요시야 왕의 막내 아들이자 여호야긴의 삼촌인 맛다니야를 바벨론식 이름 시드기야로 바꿔 부르게 하고 남유다의 왕으로 삼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세워진 왕인 시드기야가 결국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때부터 시드기야 왕을 상대로 하나님의 확고한 뜻을 더욱 강하게 전하며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던 시드기야 왕도 살게 되자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도 살게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과 집들도 불에 타지 않게 되고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심판이 바벨론 포로 70년의 징계를 받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항복하며 순순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다시 제사장 나라 거룩한 시민으로 재교육을 빋고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이 예루살렘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며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바벨론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바벨론 포로 70년은 재앙이 아닌 평안이고 오히려 그들이 극상품 무화과 열매가 되는 놀라운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왕의 신하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바벨론 군대가 에루살렘 성을 18개월 동안이나 포위하며 항복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에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되자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보복을 당합니다
성난 바벨론 군대는 에루살렘 성안에 들어와 왕궁과 성전과 집들을 불태우고 성벽을 모두 부수고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여자들을 폭행하자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기절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도망 길에 올랐던 기드기야 왕은 얼마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앞에 잡혀와 어린 두 아들이 칼에 목 베어 죽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자신의 두 눈은 뽑힌 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드기야 왕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데 이들이 바로 바벨론 3차 포로입니다
바벨론 1차 포로 : BC 605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바벨론 2차 포로 : BC 598 여호야긴 왕 에스겔과 1만여 명의 우수한 기술자들
바벨론 3차 포로 : BC 586 시드기야 왕과 남유다에 남은 모든 사람들
예레미야는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전했던 하나님의 뜻이 동족들에게 받아 들어지지 않고 결국 바벨론 군대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만 예루살렘 거리에서 그만 주저 앉아 울고 맙니다
밤새도록 얼마나 울었던지 예레미야의 눈이 눈물로 상할 정도였고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졌다고까지 자신의 책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지 하나님께 토로할 정도로 울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렇게 술피 울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바벨론에 남은자를 두셨다는 사실에 새벽에 다시 소망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예레미야의 노래인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인 예레미야 애가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로 끝을 맺습니다
애 5장19-22절
5: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5:20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5:22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한 북이스라엘은 이런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앗수르 제국의 정책에 의해 사마리아의 귀족 남자 3만 여명이 앗수르가 다스리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그곳에서도 귀족으로 경제활동에 가담했고 사마리아는 앗수르가 다스리는 다른 식민지의 귀족들이 들어와 혼혈족 사마리아인이 되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그 곳에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여 강제 노역에 투입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발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불러야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남유다에서 끌려온 노예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 다윗 시대에 이미 성전 찬양대를 통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다윗 시대처럼 기쁜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발 강가에서 깊은 반성과 뉘우침과 회환 가득한 슬픈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시 137편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137: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137: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137: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137: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137: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그 슬픈 노래가 후대에도 작품이 되어 베르디의 오패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되었고 보니엘의 바벨론 강가에서와 같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가라 나의 마음이여 금빛 나래를 타고 부드럽고 따뜻한 향기가 부는
나의 조국의 언덕으로 날아가 앉아라 요단 강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인사하라
오 너무나 사랑하는 잃어버린 나의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왜 버드나무 위에서 침묵하고 있는가
우리 마음속의 기억에 다시 불을 붙이고 옛 시절을 이야기해다오
예루살렘의 잔혹한 운명처럼 쓰디 쓴 비탄의 노래를 부르자
참고 견디는 힘을 주는 노래로 주께서 용기를 주시리
바벨론 강가에서 River of Babylon
바벨론 강가에 우리들은 앉아 있엇어요 그래요 우린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어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납치하여 끌고간 우리에게 노래를 요구하였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방의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어요
우리들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언어와 마음속에 영그는 명상으로 오늘밤 주님의 눈앞에서 거두어주소서
1970년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슈퍼디스코그룹 보니엘이 불러서 크게 히트한 팝송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처참함과 비참함을 노래함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의 엔딩(Ending)인 예레미야의 기도가 다니엘 에스겔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극상품 무하과 열매를 배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레미야의 눈물과 포로민들의 슬픈 노래가 혼혈족 사마리아인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 유대인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노예 생활을 경험하면서 슬픈 노래를 통해 제국이 만든 모든 문명을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으로 이겨낸 것입니다 기적은 이처럼 문명을 뛰어넘습니다 이것이 통(通)으로 본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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