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에든버러로 와서 미니밴을 반납한 후,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향하는 길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16일). 우리나라의 중소형 항공기 회사처럼 작은 회사의 비행기를 타아만 했다. 탑승한 후에도 거의 2시간을 기다리다가 이륙하여 마펠라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늦은 시각이지만 미니밴을 빌리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달하니 벌써 자정이 넘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왈도파 지역을 가기 위해 토리노를 지나갔다. 알프스 산맥 어귀에 위치한 곳인데 토리노와 밀라노와는 달리 기온이 낮았다.
내일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비가 조금씩 내리지만 등산하여 왈도파 흔적을 방문하기로 하고, 산을 올랐다(17일). 박물관도 들렀지만 충격을 받은 것은 동굴성전, 즉 예배처였다. 핍박이나 박해를 받는 시기이기에 소리를 내서 찬송을 부를 수도, 기도할 수도, 예배를 드릴 수도 없기에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이면서 바위틈을 지나 동굴로 기어서 들어갔다. 한 가닥의 빛만이 비취는 캄캄한 곳이었다. 일반인에겐 둘레길이고, 여름 휴가처이지만 왈도파 신앙을 따르려는 우리에겐 생각과 발걸음이 매우 진중했다. 캄캄한 곳에 우리 탐사 일행은 조용히 찬송을 불렀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이 찬송을 함께 부르는 가운데 우리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찬송을 부르고 나니 캄캄했던 곳에 눈동자가 적응했는지 조금씩 밝게 보이는 듯 싶었고 서로의 얼굴을 조금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런 캄캄한 가운데 왈도파가 오랜 시간을 걸어서 올라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로 기도 하고 찬송 부르다가 하산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슬픈 눈물보다 송구하고 죄스러움의 눈물이 흘렀다. 이런 감동과 은혜의 시간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하산하였다.
다음날(18일) 비가 오전부터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렸다. 하지만 한양도성과 북한산 등산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내리는 비와는 상관 없이 비옷을 입고 산으로 향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가파른 곳이고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올라야 한다. 이곳 이름은 카스텔리오 루조(Castellio Luzzo)이다. 이 뜻은 빛의 성이다. 약 800m를 미니밴으로 올라갔다. 운전하는 나나 조수석에 앉은 이기정 집사는 걱정하기를 가파른 경사 좁은 길과 비오는 도로에서 바퀴가 헛돌지 않을지였다. 미니밴이 올라갈 수 있는 한 올라서 가파른 경사 길에 주차했다. 가벼운 옷차림이라고 하지만 촬영하는 김소윤 자매나 다시 방문하여 꼭 찾겠다는 낯선 알프스산에 오르는 이기정 집사나 심정을 내리는 비처럼 무거운 심정이었다. 송주연 자매와 이나라 자매 역시 많은 이야기를 통해 들은 곳이 어떨지 기대하면서 우리는 함께 올랐다. 비를 계속 맞다 보니 몸도 옷도 비에 젖고 등산하기에 몸에서 땀이 비와 섞여서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안팎으로 젖기에 쉽지 않았다. 산꼭대기까지 1.5km이다. 경사는 거의 45도에 이를 정도이다. 지그재그로 산을 탔다. 이기정 집사는 먼저 오르면서 길을 찾았고, 우리는 거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면서 오른 2시간 만에 산 정상에 이르자 50m 남았다고 안내판을 보았다. 약 200명 정도 설 수 있는 큰 바위에 수천 명이 추운 겨울에 죽은 자녀 시신을 들고, 안고서 이 자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386m 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바라보자 그들이 당시 아찔한 바위 위에서 바라본 하늘나라를 보며 함께 주님의 품으로 안겼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나님! 이곳에서 그들이 바라본 하늘과 당신은 영원하기에 오늘의 우리도 보고 계심을 믿습니다. 언젠가 그들처럼 당신이 준비한 곳에 이르겠다”고 다짐한다. 올라오는 내내 힘들고 지치지만,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주의 나라 올라가서 보좌 앞에 나아가 인자하신 그 얼굴을 뵈오니 ...”라는 찬송을 저절로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