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1. 친구의 애인을 만났다. 잠시 스치는 감정이려니 치부하고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심상치가 않았고 얼굴 한번 꼭 보여주고 싶다 해서 만났는데 사람이 너~무 괜찮아서 친구와 둘만 남았을때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인석아 왜 이제서야 멀쩡한 남자를 만나니. 당장 이혼시키고 이 사람과 재혼시키고 싶은 나의 감정이 낯설면서 강렬했다.
2. 드라마 모자무싸에 박경세(오정세)는 자기를 보며 너무 재밌다고 웃어주는 서브작가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아내인 고대표(강말금)는 둘사이를 눈치채고 헤어지자 한다. 경세는 결국에 아내를 선택하지만 나는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부는 의리로만 사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생각했는데 왜 급 부아가 나는걸까?
3. 2+1 숙취해소제가 편의점 꼭대기에 진열되어있다. 손이 겨우 닿는 높이라 훠이훠이 저었더니 뒤로 쓰러져 아예 잡히질 않는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내 뒤로 누군가 쑤욱 팔을 뻗더니 3병을 꺼내서 내려준다. 키가 185센티미터는 되어보이는 남학생이다. 고마워요 라는 말 할새도 없이 꾸벅하고 가버리고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아들뻘에게 나대는 심장이라니.
4. 2024년 4월부터 2년간 빠져있던 선재(변우석)에 대한 애정이 운동 코치선생님에게로 옮겨갔다. 회원님~회원님~ 하면서 맑게 웃으며 가르쳐주는 30대초반의 뽀얗고 하얀 코치쌤. 다정하게 건내주는 말에 나는 녹아버린다. 집에 와서도 얼마나 코치쌤 이야기를 했는지 신랑은 돈을 그만큼 쓰는데 친절해야지 호구잡힌거라고 비아냥대고 딸아이는 자기랑 아빠를 볼때와는 달리 코치쌤 이야기할 때만 하트로 변하는 눈이 신기하다며 재밌어한다.
5. 친구 부친상에 하얀셔츠 차림으로 앉아있는데 내앞 테이블 바로 앞에 빨간 고추양념이 떨어져 있다. 휴지를 찾아보니 저 멀리 있고 달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옷에 묻을까바 기대지 못하고 신경쓰면서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옆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사친이 팔을 뻗어 휴지로 스윽 닦아 준다. 그걸 본 후배가 오빠 너무 스윗하다고 난리다. 나의 하얀옷에 묻을까 신경쓰였단다. 그걸 언제 어떻게 봤대? 다시 나대기 시작하는 나의 심장 어쩔쓸까.
“두사람 여전하네. 황혼이혼각이야” 올해 2월 기숙학원에서 한달만에 돌아온 딸이 우리부부를 보더니 뱉은 첫마디였다. 신랑은 움찔, 난 태평.
건설현장직이라는 특성상 주말부부로 16년을 따로살다 함께 산지 3년차, 구혼인데 신혼인 중년내를 숨길수없는 우린 19년차 부부다. 붙어 산지 3년. 나의 목에 목줄이 채워진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신랑에게 바라는게 없는데 신랑은 나에게 바라는게 많다. 주말부부하다 느즈막히 붙어사는 부부사이가 의례 이런다고 해서 예상은 했지만 3년차에 들어서자 최악의 최고조에 이르렀다
학생일때도 없던 통금이 생기질 않나. 퇴근하자마자 밥상이 차려져 있길바라고 매주 나가는거 뻔히 아는 정기적 모임조차 모르쇠로 어딜가냐 잔소리를 하는데 이 남자 뭐지? 싶다
세상 부지런 해서 가만히 있질 못했던 사람이 쇼파나 침대에 딱 붙어있는것도 보기 싫은데 점점 고갈되는 체력을 짜증으로 채우고있으니 말섞기도 싫어졌다.
조금이라도 다정하거나 친절한 이성에게 심장이 나대는 나의 이상증상은 수세미같이 까칠해져버린 신랑이 발병원인이었다.
3년동안 이상해져 버린 아빠를 보고는 이혼하라고 은근 종용했던 딸. 나는 물었다 “왜 이혼하면 좋겠어?” “난 저런 남자랑 못살아 매사에 짜증내고 시비걸고 엄마는 계속 참고. 한 살이라도 젊을때 이혼해서 빨리 재혼해. 난 새아빠한테도 사랑받고 친아빠한테도 사랑받고 좋잖아? 아빠는 저 성격으로 재혼못할걸? 누가 받아줘” “엄마는 이 나이에 누구랑 재혼하고?” “엄마는 성격좋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할수있을꺼야” “엄마 재혼안하고 싶다면?” “아!? 새아빠 없는건 좀 아쉬운데… 근데 엄마 혼자 살 수 있어?”
딸아이와의 이 대화이후 우리 부부 관계를 오래도록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3년반의 연애. 사랑한다는 말은 손에꼽을정도로만 했지만 누가봐도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온몸으로 증명하며 뿜어내던 남자. 아줌마가 된 여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던 남자. 결혼하고도 지금까지 자식보단 아내가 더 먼저라는 남자. 딸바보아빠를 가지지 못한 딸의 원망에 미안해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남자.
주말이면 콩닥거리는 설레임을 안고 신랑을 기다리던 여자. 아직도 설레이면 심장병이라고 놀림을 자주 받았던 여자. 한달에 하루이틀만 쉴수있던 신랑 찾아 공휴일이면 전철타고 기차타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애기 들쳐업고 신랑 숙소로 향했던 여자. 도합 22.5년 서사가 깨지는게 근 3년으로 가능할까?
얼마전에 물었다. ‘오빠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화가나는거지?’ 그 물음에 부정하고 싶지만 못하던 남자. 붙어살며 챙김좀 받고 싶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때까지 기다려줬더니 기껏 건강해지니 공사다망하여 집에 잘 붙어있지 않은 아내한테 뿔딱찌가 나는 남자. 안다알아. 당신보다 내가 더 멀리 나와 버렸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보려한다. 나의 심장이 다정함에 흔들린다는 것을 알았으니 좀더 다정해질 당신을 기다리며 줏대없이 흔들려버리는 나를 더 멀리 날아 가지않게 다 잡으려 한다. 내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의 감정을 문진삼아서 말이다.
보리의 덧
-우리 부부는 언제든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헤어져주자 라고 약속하고 결혼했고 얼마전에도 다시 확인했어요. 40대 중반에 맞닥뜨린 저와 친구의 흔들림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어요. 세상 커플들의 관계안에 이뤄지는 모든것을 (폭력을 제외하고는) 응원하고 존중합니다.
첫댓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따님과 보리님의 대화 ㅋㅋㅋ 제 딸과 저도 비슷하게 나눴던 기억이....
오늘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재밌게 쓰는 게 진짜 어려운 건데 막히는데 없이 술술 읽히더라고요!! 👍👍 제가 말한 소설은 위수정 작가의 <풍경과 소설>이란 단편이에요.
보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글이었어요. 그 남자, 그 여자 이런 제목들이 들어간 노래도 떠오르고, 설레는 드라마가 오버랩되기도 하고요 ㅎㅎ 치열하게 사랑했던 그 시절을 문진 삼아 노력해보겠다는 마음을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헤어져주자고 한 둘만의 약속의 구체적인 조항이 궁금해졌어요! 퇴고버전을 읽어볼 수 있기를요…!
솔직담백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뚝딱 읽었어요. 간혹 주변에 '우리부부는 소울메이트야'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보이는 이들을 보는데, 그것이 진정 가능한 것인지 나의 가정을 돌아보면 의심이 들어요. 저의 이런 생각을 알면 남편은 아마 깜짝 놀랄지도요. 동상이몽입니다.
우와 우와! 영화 속에서 나올법한 부부의 대화. 서로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을지 오히려 그려보게 됩니다.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 결핍이 무엇인지 바로 설명이 되어서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