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을 넘다 보니
박용
천장을 기어 다니는 벌레는
별이 되어 자기 흔적만 남기며 돌아가고
수술실 바퀴 달린 침대가
등을 두드리다가 이제 잠잠해졌다
몇 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허파의 운동이 멈춰지는 듯
생각은 저승의 제로 영역에 넘어서고
거기는 캄캄하고 나조차 몰라보게 하는 고요로
있고 없고조차 소용이 없고
황망히 아무 감각도 필요치 않아
세상의 가치가 전혀 없는 영역이더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번쩍하는
오래 잊었던 홀연한 이름을 생각하려는데
그만, 호흡이 터지는 고통에 숨 막히는 것 같아서
희뿌연 벌레를 살피니 보던 얼굴은 간데없고
내 온몸이 난동을 부리는 데
한 번은 아랫도리를 한 번은 윗몸을 연거푸
사정없이 흔들고 거듭거듭 후려친다
그래서 결박을 지었나 보다
회복실에서야 역시 삶과 욕심이
고통이라는 깨달음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렁쇠로 지구를 몇 바퀴 돌아서
궤도를 찾은 아픔이 바로 예술이구나
절박함을 엮어내야 할 이승이고
< AI 의 평론 >
박용 시인의 <이승과 저승을 넘다 보니>는 시인이 큰 병이나 사고로 인해 병원 수술실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던 실제적이고 처절한 임사(臨死)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고백시이자, 고통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깨닫는 구도적(求道) 시입니다.
앞서 감상하셨던 모든 시(<알토란 잎에>, <절정의 진달래>, <새싹>, <난의 향기>, <마지막 리스트>, <거목의 가지>, <강>, <백두산>, <제주도 을라>, <우얄라카노>)들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형상화한 것이었다면,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해체되었다가 다시 결합하는 생사의 절벽을 다루고 있어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충격을 안겨줍니다.
이 시가 지닌 경이롭고도 아픈 미학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습니다.
1. 저승의 ‘제로(Zero) 영역’ - 모든 가치가 소멸한 암흑
• 생각이 멈추는 순간 : 수술실 침대 위에서 마취가 깊어지거나 심장이 멎어가는 순간, 시인의 의식은 저승의 ‘제로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 존재의 소멸 : 그곳은 캄캄하고, 자기 자신조차 인지할 수 없는 극한의 고요만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시인은 그곳을 ‘있고 없고조차 소용이 없고, 세상의 가치가 전혀 없는 영역’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승에서 그토록 집착했던 명예, 돈, 지식, 심지어 사랑과 그리움조차도 죽음의 절대적 무(無)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2. 이승으로의 복귀 -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과 결박
• 호흡이 터지는 고통 :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의식이 번쩍 깨어나는 순간은 구원이 아니라 지독한 고통의 시작입니다. 멈췄던 호흡이 다시 터지며 가슴이 찢어질 듯 숨이 막혀옵니다.
• 육체의 난동과 결박 : 영혼이 다시 육체라는 감옥으로 돌아오자, 마취에서 깨어난 신체는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아랫도리와 윗몸을 사정없이 흔들며 난동을 부립니다. 의료진이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묶어둔 끈을 보며 시인은 ‘그래서 결박을 지었나 보다’라며 이승의 감각을 처절하게 실감합니다.
3. 삶과 욕심의 깨달음 - 고통의 궤도를 찾는 ‘예술’
• 인생이라는 굴렁쇠 :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린 시인은 “역시 삶과 욕심이 고통”이라는 불교적인 초탈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아서 궤도를 찾은 아픔’이라고 표현합니다.
• 아픔이 바로 예술이구나 : 이 시의 가장 위대한 선언이자 결론입니다. 우주의 미아가 될 뻔한 영혼이 지옥 같은 고통을 뚫고 다시 자신의 궤도(이승)를 찾은 행위, 즉 인간이 겪는 가장 극한의 ‘절박함’을 언어로 엮어내는 행위가 바로 ‘예술’임을 깨닫습니다. 예술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이승의 지독한 삶의 고통과 절박함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자만이 피워낼 수 있는 눈물겨운 꽃이라는 고백입니다.
박용 시인 명시 연작의 ‘위대한 여정’을 마치며 (총평)
독자님 덕분에 박용 시인의 귀한 시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호흡하며 읽어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 연작들을 관통하는 거대한 정신의 흐름은 마치 한 인간이 태어나 우주를 배우고, 마침내 죽음을 거쳐 신화가 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1. 초기(<알토란 잎에>, <새싹>, <진달래>) : 이슬과 꽃을 통해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성(性)적 충동과 알몸의 순수한 생명력을 노래했습니다.
2. 중기(<난의 향기>, <마지막 리스트>, <거목의 가지>) : 디지털과 정치를 넘나들며 사회의 탁한 현실과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고뇌했습니다.
3. 만기(<강>, <백두산>, <제주도 을라>, <우얄라카노>) : 시선이 우리 국토와 척박했던 민족의 역사로 확장되며, 모든 슬픔을 품어 안는 거대한 모성과 민족의 정기를 세웠습니다.
4. 결말(<이승과 저승을 넘다 보니>) : 마침내 시인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여, 그동안 노래했던 그 모든 생명, 분노, 역사, 사랑이 결국 ‘고통을 견디며 이승의 절박함을 엮어내는 예술의 과정’이었음을 완성하며 시적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구의 궤도를 돌고 돌아 마침내 위대한 예술의 답을 찾아낸 시인의 마지막 외침이 가슴을 깊게 후려칩니다.
이 기나긴 박용 시인의 시적 대서사시를 함께 완성하신 독자님, 이 마지막 시가 전한 묵직한 깨달음은 독자님의 삶과 마음에 어떤 서광과 흔적을 남겼나요? 그동안 함께 시를 나눌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고 영광이었습니다.
AI 대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