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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삭개오야 내려오라 ~ 삭개오 입성
26.02.17(화)
오늘은 누가복음 19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두 달 만에 다시 교회에서 모여서 이렇게 새벽에 만나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격스러운 날 말씀이 누가복음 19장이에요. 누가복음 19장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가 나오니까요? 삭개오가 나오니까요?
예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은 교회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리 어린아이도 아무리 나이가 드신 분들도 삭개오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유명하고 그만큼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 왜 여기에 나올까 여러분 누가복음이잖아요. 지금 누가만 삭개오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마태도 마가도 요한도 그냥 지나가 버렸던 사람인데 누가는 그 삭개오를 무려 10절이나 되는 말씀 속에 소개하고 있단 말이죠.
왜 그럴까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바로 이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이 누가가 전하려고 하는 예수님 상과 딱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누가는 예수님을 어떻게 전해요. 인류의 보편적인 구원을 위해서 오신 분 누구나 그분 앞에서 자격에 관계없이 누구든 혈통에 관계없이 누구든 행위에 관계없이 그분에게 붙잡힌 바 되고 그분에게 하나님 자녀로 부름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강조하는 것이 뭐였냐면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 그리고 그 당시에 소외받던 여인들 어린아이들 노인들 장애우들 모든 이들이 다 누구든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누가가 누가 복음을 쓴 다음에 쓴 책이 사도행전이거든요. 사도행전으로 가면 이게 완전히 어디까지 이방느냐면 이방인까지 퍼져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리가 자신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거예요.
기준을 누가 정하나 하나님이 정하신다
그 하나님이 누구냐 천국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면 누구든지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누가가 강조한 복음이에요. 그런 면에서 오늘 이 삭개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가운데에서 아 나는 이 정도면 구원받을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구원이라고 하는 기준 앞에 우리 모두는 무력해요. 너무나 작아요.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보듬어 주시고 불러주시고 감싸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고 다시 한번 십자가 앞으로 불러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라고 하는 거죠.
오늘 1절 말씀 한번 같이 볼까요?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자 여리고로 들어가셨다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여러분 예수님은 지도에서 북부 지방 갈사용을서 사역을 하셨어요.
갈릴리에서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어디로 오셨냐면 남부에 있는 남유다의 예루살렘 바로 옆에 여리고로 오신 거예요.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들이 지나가는 통로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만남의 광장이에요.
그래서 이 여리고를 통해서 모든 예루살렘의 물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여리고는 굉장한 무역 도시이고 부자 도시입니다. 어마어마한 부자 도시예요.
자 그런데 이 여리고로 예수님이 왜 지나가시나 여리고를 통해서 어딜 들어가요 예루살렘은 들어가기 위한 것이죠.
예루살렘의 예수님이 왜 가세요. 십자가 지려고 가시는 거죠. 십자가 지고 내가 죽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들어가죠
그런데 그러면 여리고에서 누구를 만났나 하는 게 왜 중요하냐면 바로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 들어가 십자가를 지는 사건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이것을 행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 케이스가 되기 때문이에요.
근데 여리고에서 누굴 만나냐하면 우리가 어제 봤던 18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바로 바디메오라고 하는 소경이 나옵니다.
여리고에서 두 명 만났는데 한 명은 소경 바디메오이고 또 한 명이 오늘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그러니까 여리고에서 이 두 명을 만난 이유는 무엇이냐하면 이제부터 내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십자가 지고 죽을 텐데 이것이 누굴 위한 것이냐
첫 번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즉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저 오늘을 급급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치 눈이 가려지는 우리들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미래를 열어 보여주시는 천국을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바로 십자가라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오늘 이 사케오의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이유다 라고 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 무역도시 여리고에 누가 있었나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랬어요.
자 여러분 세리장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세리 중에도 우두머리예요. 세리가 이 당시에 로마가 이스라엘에게 유대인에게 주던 직접세와 간접세 중에서 직접세는 직접 걷어갔어요.
근데 간접세는 세리를 세워서 그 세리가 입찰 형식으로 들어와서 중간에서 이제 로마에 세금 바치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중간에 입찰하면서 낸 돈이 상당하거든요.
그 상당한 돈을 뽑아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세리장들은 정말 대놓고 도둑질을 하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10냥 걷을 것 20냥 30냥씩 걷어서 자기 배를 채우던 그러니까 이 당시에 세리와 창기가 왜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았냐 창기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고 세리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에요.
대놓고 어겨요 대놓고 도둑질을 해요.
그러니까 세리장은 사람들에게 아주 손가락질 당하던 직업이었는데. 중요한 게 뭐냐 삭개오라는 이름이에요.
여러분 이름을 지을 때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짓죠 될 대로 되라 하고 짓습니까? 아니죠.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짓습니다. 자 부모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뭐라고 지었나 사케오란 뜻이 뭐냐 순결한이에요. 결백한이에요. 깨끗한이에요.
즉 삭개오란 이름은 순결하고 깨끗하고 고결한 삶이 되어라 라고 지어준 이름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기대를 가지고 지은 순결이란 이름을 가진 삭개오가 왜 세리장이 되었을까?
그것도 여리고라고 하는 가장 가장 치열한 지역 아마 경쟁이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부자 지역이니까. 여기에서 회장이 될 정도로 그는 어떻게 이렇게 살게 되었는가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죠
주석가 바클레이라고 하는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 이 당시에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내일의 만족을 위해서 오늘의 정직을 포기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자 내일의 만족을 위해서 오늘의 정직을 포기한 사람 여러분 이게 누구 같으세요. 우리예요. 우리 이게 우리들이에요.
내일 더 많은 것을 얻고 덩덩거리기 위해서 오늘의 정직쯤은 포기할 수도 있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삭개오는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러고 보면 이름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워요 그죠 삭개오 순결 순결이라는 이름대로 살기가 참 어렵죠
여러분 교회의 이름 보면 그 교회를 좀 알 수 있잖아요. 여러분 해외에 나가보면 한인 연합교회라는 교회가 많아요.
그런데 연합교회일수록 연혁을 따져보면 한 12번쯤 깨졌어요. 10번 12번 뭐 20번째 깨져서 다시 만난 교회가 이름이 연합교회예요. 이름대로 살기가 참 어려워요
그리고 여러분 은혜교회도 많은데 은혜 교회 중에 저는 은혜로운 교회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예 싸늘해요. 아름다운 교회 예 아름다운 일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름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이냐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는 거예요.
이름은 삭개오인데 저는 삭개오 같이 살고 있지 못하는 이 삭개오의 삶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잖아요.
자 그런데 이 삭개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나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바로 3절과 4절입니다. 3절
그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여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그랬죠 자 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까? 사케오는 세리인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 세리가 있잖아요. 또 예수님 별명이 뭐냐 세리의 친구예요.
그러니까 야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 같은 세리를 제자로 두고 세리의 친구가 되었을까? 궁금했겠죠.
자 그런데 그에게는 결정적인 장애가 있었죠.
바로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자 키가 작다 여기 키가 작다란 말이 미크로스라는 말인데 미크로스에서 뭐가 나왔냐 마이크로 여러분 마이크로가 그냥 작은 거예요. 심하게 작은 거예요. 심하게 작은 거예요.
마이크로는 심하게 작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마이크로는 장애가 있다는 뜻이에요. 일반적으로 남보다 키가 조금 작은 편이 아니라 너무 작아서 이건 이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이건 문제가 있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랬던 사람이 어떻게 해요.
4절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 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가니 얘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게 됨이어라 그랬어요. 자 보세요.
달려가서 돌 무화과나무로 올라간다고 그랬죠 이 돌 무화과나무가 옛날엔 뽕나무라고 했던 그 나무예요. 자 그런데 이 사람은 키가 작다고 하는 자기의 아주 결정적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았어요. 지금까지 달려가는 삶을 살았어요. 남들이 걸어갈 때 난 뛰어갔어요.
일단 키가 작으니까 보폭이 작으니까 억지로 억지로 달려서라도 내가 남보다 더 앞서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고 내가 남보다 키가 작아 그럼 올라가면 되잖아. 그리고는 열심히 나무를 타고 올라갔던 사람이죠.
즉 어떻게든 내 힘으로 내 장애를 이겨보려고 노력한 사람이죠. 내 노력과 내 공로로 뭔가 더 올라오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 바로 삭개오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삭개오가 태어났을 때 그에 대해 순결한 삶을 기대했던 결백한 삶을 기대했던 부모님이 보실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애가 장애가 있어요. 애가 키가 안 커요 그러니까 여러분 부모라는 사람들이 애를 키우면서 점점 사랑하게 되고 점점 아이의 기대가 되고 점점 이 아이를 잘 받아줘야 되는데 애가 장애가 있으니까 이 당시 장애인은 지금과 달라요.
지금은 아픈 손가락이잖아요. 더 사랑받잖아요.
이때는 아니에요. 이때 장애인은 누구냐 저주받고 태어난 아기였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남들이 다 욕해요. 아 부모가 죄인이구나 그래서 저런 아이 낳았구나 손가락질 봤던 시대예요.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공개를 안 해줬을 거예요. 사랑도 안 해줬을 거예요. 보면서 짜증을 냈을 거예요.
보면서 한탄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는 이 아이가 인생 최고의 오점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삭개오가 어땠겠어요. 마음이 얼마나 상처가 됐겠어요.
게다가 여러분 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이 당시에 왜 문제가 되느냐 하나님께 예배하러 성전에 들어가는데 장애인은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참 지금으로서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시대죠 장애인이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어 예배할 수 없어 하니님 앞에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었던 거예요. 나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아무도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저 집은 저주받은 집 부모의 죄인지 본인의 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죄를 지어 저렇게 장애인으로 태어난 집 여러분 이게 견딜 수 있었겠어요.
모든 사람이 잘 그렇게 봐요. 돌아버리죠 견딜 수 없죠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건 어떻게 했을까? 바로 남보다 더 공부하고 남보다 더 악착같이 더 열심히 그러나 더 악랄하게 해서 내가 본때를 보여주마 내가 니들 복수할 거야. 이런 마음 가지고 살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가 수많은 직업 가운데 세리를 택해서 로마의 편에 서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되었던 것이죠.
그는 이렇게 험악한 세상을 살았어요. 자 그런데 세리가 되니까. 어떡해요. 사람들의 눈은 더 싸늘하고 사람들은 더 그를 증오했겠죠.
역시 역시 저주받은 인생 저거 봐 저렇게 밖에 못 사는 인생이야 자 그런데 자 그에게 이렇게 악착같이 살던 그에게 변화가 찾아오죠
바로 5절에 주어가 바뀝니다.
5절에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아멘
자 예수님이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곳에 이르셨어요. 이때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저주받은 인생 그것을 내가 극복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던 그 세리의 삶에 예수님이 오셔서 쳐다보시고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그에게 말씀하는 거예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다른 멀쩡한 사람 키 큰 사람 뭐 다들 막 우러러보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키가 작아 달려가서 올라가던 그 인생에게 말씀하시는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다 하겠다. 하시니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예요.
삭개오야 여러분 이게 얼마나 귀합니까?
처음 보는 동네이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줬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당시 세리들은요, 남들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답니다. 뭐라고 불렀나 개라고 불렀대요 그냥 개가 아니죠.
그의 개 뒤에는 xx가 붙었겠죠. 그러니까 자기가 집에서 부리는 종들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게 불렀다는 거예요. 다 강아지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니까 삭개오의 이름은 대외적으로는 강아지였어요.
여리고의 강아지가 삭개오여요. 그런데 그 삭개오를 예수님이 뭐라고 불러요 삭개오야 이런 뜻이 뭐라고요. 순결한 사람아 결백한 사람아 깨끗한 사람아 라고 불러주신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제가 어제 아파트 산책을 하다가 저희 교회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어 얘들아 안녕 그랬더니, 애들이 뚱 멀뚱하게 봐요. 마스크를 쓰고 또 옷도 교회에서 입는 분홍색 옷이 아니니까 평상복을 입었으니까 애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
부모님들도 어 저 사람 누구지 하는 표정을 보시는데 제가 마스크를 조금 내리고 성민아 성원아 잘 있었어 분홍 목사님이야 안녕 그랬더니, 애들이 얼굴이 확 펴요 그러면서 부모님도 얼굴이 확 비면서 어머나 목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렇게 인사를 했어요.
여러분 그냥 얘들아 안녕 하면 저 사람 누구야 이렇게 보는데 성원아 성민아 목사님이야 그러면 아이들이 얼굴이 확 펴요.
그게 뭐냐 하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이름을 부른다 왜 나를 안다는 거고, 잘못 본 게 아니고 나를 위해 이분이 여길 왔다는 거잖아요. 이게 얼마나 귀해요.
삭개오야 여러분 성경에는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님이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다가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나는 게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여러분 기도할 때 나를 불러주시는 주님을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도 모세야 모세야 그가 호렙산에서 예수님 만날 때 주님 만날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부르셨잖아요. 사울도 마찬가지죠 사울도 다메섹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이름을 모르시는 주님이 자 부르신다면 어떻게 해요. 속히 내려오라 이게 무슨 말이에요. 너 남보다 더 올라가려고 남보다 더 잘 다 보일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너 억지로 너 꾸미지 마 그렇게 막 달려가고 올라가는 인생 더 이상 살지 마 더 이상 그렇게 너를 혹사시키면서 니가 너를 증명해 보려는 삶을 살지 마 라고 하는 거죠.
내려와 내려와 안 올라가도 돼 내려와 억지로 너를 포장하고 억지로 너를 그렇게 과시할 필요 없어 내려와 왜요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할 거야. 여러분 이건요 이 당시에 상상을 못 하는 일이에요. 유대인들 사회에서 손님이 간다는 건 굉장한 일이고 밥 한 끼를 먹는 것도 상대방을 존경하지 않으면 밥을 먹잖아요.
그런데 그 집에 하룻밤 유한다는 것은요 그 사람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예요. 누가 예수님이 누구를 세리 사케오를 완전히 받아줘서 내가 너와 함께 내가 함께 살겠다는 뜻이에요.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이에요.
내가 네 집에 위하여야 하겠다. 여러분 이 집이라고 하는 것을 동그라미 한번 쳐보세요. 이 집 이 집이 뭐냐 이것이 오늘 우리로 말하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삶입니다. 삶 속으로 들어오시겠다는 거예요.
내가 너의 마음을 원한다는 거예요. 지금 잠깐 만나고 차 한잔 마시려고 집에 가는 게 아니라 너의 집으로 내가 지금 찾아가겠다. 너희 집과 함께 하고 싶다. 여러분 이건 다른 일 아닙니까
오늘 교회에 오셔서 저를 만났지만 그냥 교회에서 만난 거하고 제가 여러분 집에 오늘 심방을 가는 거랑은 다른 문제잖아요.
집에서 만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나의 삶을 오픈하고 주님을 맞이한다는 거예요. 네 집에 위하여가 있다. 너무 다르죠 그랬더니,
예수님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자 너무 즐거운 거예요. 지금까지는 돈 버는 즐거움만 알았어요.
지금까지는 사람들한테 돈 자랑하고 내가 위세 떠는 즐거움을 알았는데 이제 진짜 즐거움을 깨달았어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을 합니다. 주님을 영접해요.
자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죠 예수님은 그에게 찾아오셔서 이름도 불러주시고 내려오라고 하고 너희 집에 유하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7절
묻 사람이 보고 수근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여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자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야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구나 예수님이 너희 집 내가 네 집에 유하겠다. 집 동그라미 했죠. 그런데 사람들은 뭐래요. 죄인의 집에 또 남이 해보세요. 집에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라고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합니다.
저거 죄인인데 죄인 집에 가면 안 되는데 야 예수님이 별거 없네 죄인 집에 들어가네 자 그랬더니, 삭개오가요 이 말 듣고 화가 난 거예요.
아니 예수입니다. 찾아와 주셨는데 어 사람들이 저렇게 얘기를 해 그랬더니, 어떻게 해요. 이전의 방식이 또 불끈하고 솟습니다.
이전의 방식 뭐예요? 돈으로 누르는 거죠. 돈으로 누르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그 마음이 벌떡 일어납니다.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어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자 큰소리를 칩니다. 뭐라고 합니까?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내 가짜리나 갚겠나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죄인의 집에 온다고 아니 나 죄인 아니야. 나 이제 죄인 아니야. 나 이제 회계 합당한 열매 맺었어 라고 하면서 또 돈을 끄집어내는 거죠. 또 돈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한계여요.
예수님이 우리를 불러주셔도 우리는 이전의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리고 내가 벌었다 내가 모았다. 내가 너희보다 위다 내가 돈으로 한번 뿌려서 나를 한번 증명해 보겠다.
이게 우리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내가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 주님 뭐라고 하십니까?
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너 그런 거 안 해도 돼 라는 거예요. 네가 뭔가를 해서 증명하려고 하지 마 네가 뭔가 돈을 쓰고 힘을 쓰고 애를 써서 네가 하나님 자료가 되려고 하지 마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는 거예요. 이 집 너 하나가 아니라 너의 모든 가정이 다 오늘 하나님 앞에 구원받았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을 만났으니까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더 이상 돈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 마 안 해도 돼 라고 하면서 주님은 그에게 은혜를 선포하시면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장애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했던 그에게 말씀하는 거예요.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지금까지 그가 듣고 싶었던 이 회복하고 싶었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예수님은 지금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야 아브라함 자손의 삶은 돈으로 되는 게 아니야. 힘으로 되는 게 아니야. 능으로 되는 게 아니야 그것은 니가 나를 만나서 되는 거야. 천국인 나를 만나면 니가 아브라함 자손이 회복되는 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건 뭐예요? 오늘이에요. 오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어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집을 우리의 삶을 오늘 주님 앞에 내어드리길 원합니다. 영접하길 원합니다. 오늘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좋은 차 타고 좋은 집 살고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뭔가 외형으로 보여주려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것 다 내려놓고 오늘부터 우리의 집은 오직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그 집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가 뭐 큰 교회 다니니까 내가 뭐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 다니니까 아니요. 그거 다 소용없어요.
오늘 삭개오 보세요. 여리고 최고의 돈 많은 세리장 다 필요 없어요. 내려놓고 예수님이 내가 너를 찾아왔으니 됐다.
다 내려놓고 너 나랑 같이 이제 나와 함께 하나님 백성 되지 않을래 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씀하시길 10절입니다.
오늘의 주제죠 같이 읽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아멘
내가 왜 왔는 줄 아니 나는 잃어버린 자를 위해서 왔어 돈 많은 자 위에 온 거 아니고 힘 있고 군림하는 자 남에게 큰소리 덩덩 치는 자 아니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려고 왔어 너 누군지 아니 너 잃어버린 자야
돈으로 잃어버렸어 힘으로 잃어버렸어 원래 니가 누군지 잃어버렸어 원래 너는 누군지 아니 너는 삭개오야 너는 순결한 사람이고 결백한 사람이고 너는 깨끗한 존재야 그런데 악으로 깡으로 살다가 너의 인생이 지금 망가져 버렸어 내가 너의 인생을 회복해 줄 거야. 라고 우리 주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그 삭개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지금 하나님의 자녀를 회복시켜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삶에 와 닿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수백 번 들었던 삭개오 설교 아이고 삭개오 다 알아 살게요 지겨워가 아니라 과연 나는 오늘 어떻습니까?
오늘 나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오늘 잃어버린 나의 인생을 주님은 찾아오셨습니까? 그분 앞에 나를 내어드리고 주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주님의 감격적인 은혜를 체험하고 내가 그 천국백성 되는 기쁨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교회에 모여서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로 만날 수 있는 은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삭개오처럼 돈으로 힘으로 외모로 가진 여러 가지 나의 행위들로 나를 포장하고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달려가는 인생 올라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를 만났으니 내려놔라 괜찮다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한번 감싸주시고 천국 백성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회복시키고
다시 한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셔서
오늘 우리의 모든 삶이 회복되고 다시 한번 큰 힘을 얻어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영광과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의지하오니 주님을 다시 한번 영접하기를 원하오니
오늘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결한 백성으로 다시 한번 힘내게 하시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만 고백하며 하나님만 예배하며 경배하는 거룩한 주의 자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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