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보다 더 좋은 우리 나라
-영광군
다른 나라를 다녀볼수록 우리 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밖으로 밖으로만 나가는 게 추세이지만, 때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참 소중하고 멋진 곳으로 가볍게 떠나는 일도 행복의 하나다.
‘영광’은 영광스럽게도 앙코르사람들이 처음으로 떠난 우리 나라 여행지다. 물론 북한에 있는 영광군(榮光郡)이 아니라 전라남도 영광(靈光)이다.
포항에서 영광까지 가려면 광주를 거쳐야 한다. 2007년 6월 16일 토요일, 고속버스로 광주까지는 네 시간이 걸린다. 종합터미널에서 18:05 다시 홍농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배차 간격이 사십 분인데, 용캐 바로 연결되어 기분이 좋았다.
세오녀와 테레사 등 모두 홍농에 도착하여 일몰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지개를 보았다고 한다. 나는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법성에서 내렸다. 전화를 받고 하늘을 보니 법성에서도 멋진 쌍무지개가 보인다. 식당을 찾아 법성포단오제가 열리는 장터를 찾아 걸어간다. 굴비의 고장 답게 굴비 가게가 수 없이 많이 보인다. 한참 공사중인 포구 앞에 이동 천막들이 줄지어 있고, 시끌벅적한 축제거리가 나타난다.
서울, 분당, 평택, 부산, 포항에서 온 친구들이 반갑게 만났다. 서울예식장과 붙어 있는 만나 식당에서 아구찜으로 저녁을 먹는다. 물론 굴비도 빠지지 않는다.
야시장 장터를 돌아본다. 나의 전속 코디네이터인 세오녀가 ‘무명씨’ 한복 한 벌을 사준다.
홍농으로 모두들 이동한다. 선발대가 이미 구경한 한마음 공원 야경을 본다. 가을날처럼 바람이 시원하다. 원전의 돔이 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광 원전에 풍력 발전소가 함께 있는 건 처음 알았다.
마리아-안드레아님은 자택에 초대하여 칠산 바다에서 나온 병어회무침과 안드레아님이 아침에 갓 덖어낸 뽕잎차를 대접하신다. 우전에 버금가는 향기와 감칠맛이 입안 가득 맴돈다. 오늘 이곳까지 오는 길에 오디를 판다고 선전하는 펼침막을 많이 보았다. 고창 복분자의 성공에 따라 영광에서는 오디에 승부를 걸고자 하는 모양이다. 센스 만점 테레사님이 가지고 온 붉은 포도주 맛도 일품이었다.
6월 17일 일요일
아름다운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하늘은 흐리지만 바람이 불어 상쾌하다. 사택의 일부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것도 무척 신선해 보인다. 공동주택(아파트)에서도 아래층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면 좋겠다. 집에서는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다가 아래층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을 묵게 한다. 호텔이나 여관보다는 정결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사적인 공간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아 주객 모두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어 좋다. 테레사님은 캐나다에서는 이런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얘기해 준다.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첫 번째 코스인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로 간다. 모내기가 끝난 논과 산야가 정겹다. 최근에 오디 수확을 위해 새로 심은 뽕나무 밭이 많이 보이고, 담배와 고추 농사도 제법하고 있다. 비닐 하우스에 심은 고추는 싱싱한 고추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인도에서 마라난타 존자가 동진을 거쳐 백제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이라고 하여 기념물과 전시장을 만들어놓았다. 입구 조형물은 간다라 양식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좀 색다르다. 간다라 유물관에 들어가 인도에서 백제까지 전해져 온 불교 문화의 변화 모습을 배운다. 파키스탄에서 가지고 온 소중한 불교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이런 유물들을 쉽게 국외로 반출시켰을 지도 모른다.
부용루에는 부처님 전생담(자타카)을 화강암에 새겨놓고 있다. 모두 스물 세 장면인데, 감상하다가 잘못하면 높은 기단에서 떨어질 염려가 있다. 뭔가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고추를 하도 만져 벌써 새까맣게 때가 탄 부분이 우습다.
수리중인 사면대불상은 앙코르톰의 바이욘을 연상케 한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백합 조개를 잡고 있는 아낙네들이 보인다. 게를 잡기 위한 도구가 물이 드러난 갯벌 곳곳에 보인다. 저런 게잡이 틀이 불법이라고 한다. 건너편에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산중턱을 허무는 모습을 보니 좀 안타깝다. 그냥 구불구불한 옛길을 그대로 두어도 좋을 듯하다.
불교 도래지를 둘러본 후 원불교 영산 성지로 간다. 성래원에는 도자기를 굽는 장작 가마와 찻집이 있다. 찻집 앞에 정원이 예쁘다. 허브와 차나무도 보인다. 영산 성지로 들어가는 길에 느티나무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아주 시원한 길이다. 노루목에 차를 세운다. 관광버스를 타고 성지 순례에 나선 신자들이 비석 쪽에 모여서 설명을 듣고 기도를 한다. 萬古日月(만고일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다. 이곳이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고 한다.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대종사가 만든 우리 나라의 민족 종교다.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활 불교다. 70년대 나와 같이 활동하던 선배가 독실한 원불교 신자였기에 그때 소태산 대종사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물론 원불교 성지에 오니 선유도님이나 석두암님이 생각난다. 참, 무심하고 무례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보이는 법이다. 거룩한 성지 입구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고기를 굽고 소주를 먹는 불한당들이 보인다.
건너편에 생가가 있다고 해서 걸어갔다. 초가삼간 집이다. 마당엔 향기로운 치자꽃이 피어있다. 만경대 옛집을 연상케 하는 소박한 장소다. 한쪽 눈이 먼 바둑이랑 한배에서 나온 듯 싶은 흰둥이가 주인집 소년보다 우리가 더 반가운지 생가까지 따라온다.
소년은 “낭중에 집으로 오거래이~” 하면서 사라진다. 아마도 두 마리 바둑이가 생가를 찾는 이들을 항상 졸래졸래 따라가는 모양이다. 바둑이 이름이 ‘무궁’이와 ‘봄이’였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거린다. 고 녀석들 제대로 집을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백수 해안도로로 드라이브에 나섰다. 가는 길에 작은 갑문이 보이고 갑문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낚시에 걸려 올라온 팔뚝만한 숭어가 기형이다. 낚시꾼은 기형 숭어를 다시 물에 던져준다. 환경 오염은 결국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미칠 것임에 분명하다.
전망 좋은 서해안 해안도로의 정점은 마파도 촬영지다. 아주 예쁜 길과 절벽이 발길을 잡지만 막차 시간이 쫒겨서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백수로 간다. 영광스러운 곳에 왠 백수냐. 이름은 바꾸면 어떨까? 대구에서도 황청동을 황금동으로 바꾼 예가 있다. 한자음의 뜻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한글 표기가 주로 사용되므로 발음이 더 중요하다.
백수면 사무소 앞에 한성식당에 들어갔다. 미리 예약해놓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차잎을 넣고 찐 족발, 홍어무침, 동태찌개 등이 맛있다. 스무 가지 정도 반찬이 나오는데, 마리아님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한다.
마지막 목적지인 불갑사에 들어간다. 주차장과 불갑사가 무척 멀다. 마침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경내까지 조용히 들어갔다. 천왕문과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이 나온다. 아름다운 창살에 다시 감탄한다. 호기심천국님의 안내로 부처님께 세 번 예를 올린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정돈한다.
한참 앉아 있다가 영광으로 향한다. 낮에 막걸리를 맛보지 못해 아쉬운 맘을 마리아님이 헤아려 고목식당으로 안내한다. 막걸리는 없고 동동주가 있단다. 그런데, 동동주가 아니라 청주다. 맛이 향긋하여 술이라기보다는 음료수를 마시는 것 같다. 안주로 나온 두부 김치와 단호박 튀김이 색다르다. 액자엔 近墨者黑(근묵자흑)이 걸려 있다.
이제 다시 일상을 향하여 돌아가야 한다. 부산, 서울, 분당, 평택, 포항, 영광으로 각자 흩어져야 한다.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여 악수를 나눈다. 이날은 그 어느 곳에도 차가 막히지 않고 모두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앙코르보다 더 좋은 우리 나라 구경을 마치게 되어 기쁘다. 다음 행선지가 기대된다.
* 전라남도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면 광주에서 하루 일정으로 함평과 함께 영광을 돌아볼 수 있다.
08:50 광주 광천터미널-12:50 함평생태공원-15:20 불갑사-16:50 불교최초도래지-17:40 백수해안도로-18:40 광천터미널
운행요일은 화,수,금,토,일이고 요금은 15,400 원(초중고생 11,000 원)
첫댓글 와우~ 연오랑님, 대단하세요. 일기 쓰듯 깔끔하게 정리하신 걸 보니 아주 생활화되셨나봐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영광에서의 시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추억의 목록 속에 오롯이 자리하게 되어서요..
부럽다잉 사진도 올려주시면 좋을텐데...
사진기 배터리가 다되어 찍은 사진이 머리속에만 있답니다. 다른 분들의 사진을 참고해서 상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