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평가는 기술과 이념적 측면의 긍정적 견해와 사회, 경제적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모두 혼재한다.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측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 가지를 취하거나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암호화폐의 시작인 비트코인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대한 반동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블록체인의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우리 역사 속에 등장했던 통화(通貨)들을 간략히 되짚어보면 조선시대에도 어음과 수표가 쓰였다. 공인된 서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공증하는 기관도 없었지만 활발히 쓰였다. 특히 평판이 좋고 신용도가 높은 상인이나 객주에서 발행한 것은 현금보다 선호했고 궁중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엽전은 쌀보다는 편리한 통화 수단이었지만 금속으로 만든 것이어서 큰돈을 운용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종이에 지급을 보증한다고 기재한 어음이나 수표는 그것을 신용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엽전보다 사용이 훨씬 간편했다.
물물교환이나 다름없는 쌀이나 면포 같은 교환 수단이 발전하여 고려시대의 건원중보, 조선시대의 상평통보 같은 철이나 구리, 주석 따위로 만들어진 금속화폐가 사용되었다. 현물은 오래 보관할 경우 가치 하락으로 자산 축적에 한계가 있었으나 금속화폐는 보관 기간에 따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엽전을 땅속에 묻어 보관하는 전황(錢荒)으로 인해 화폐 유통량 부족해지는 등 대중화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흥선 대원군 시대에 이르러 조정의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중건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는데, 상평통보의 100배에 달하는 가치를 부여한 신화폐였다. 단 6개월 만에 1,600만 냥 발행했는데, 일시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갑작스런 화폐 유통량 증가로 오히려 화폐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했다. 그 결과 구한말의 경제 상황은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화폐는 일종의 약속으로 유, 무형의 것에 부여된 가치를 신용할 수 있다면 교환 수단이 된다.
그 약속을 국가가 독점한 것이 현재의 법정통화이다. 당백전은 통화 발행권한이 잘못 사용된 극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사회에선 그런 일이 없을 듯 하지만 “고통 없이 거위의 털을 뽑는” 것처럼 교묘히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느끼지 못하면 고통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가 법정통화라 착각하고 사용하는 통화수단. 즉! 신용카드, 티머니(교통카드), 휴대폰 소액결제등은 명목화폐의 또 다른 명목이다.
비약하면 우리는 장부거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최초의 블록체인인 비트코인은 중앙집권적 화폐 발행의 권한을 기술과 네트워크의 힘으로 분산하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실험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그 실험을 실패로 내모는 듯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욕망은 상당한 가치를 블록체인으로 이전하여 가능성을 확인 시켜준 셈이다. 400년된 주식시장의 역사나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생각해볼 때 10년된 블록체인이 겪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명현현상(瞑眩現象)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